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마 7:24~27)

  • 잡초 잡초
  • 530
  • 0

첨부 1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마 7:24~27)

본문은 주님의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 해당합니다. 모여든 무리들을 보시고 주님은 지혜로운 인생, 열매 맺는 인생, 천국 백성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하시고난 다음 오늘 본문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많은 무리가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리 모두가 변화된 삶으로 나아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변화된 삶은 말씀을 듣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실천하여 주님 닮은 사람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신앙생활의 의미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주일날 얼마나 많이 모였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다시 말해 천국 시민이란 단순히 복음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행하는 자임을 강조하며 집 짓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1.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화성을 탐사하는 21세기의 과학도, 초강대국 미국의 힘도 대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대지진 또한 극심한 가뭄과 산불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요동치는 주가, 물가, 정치, 경제 등 어느 것 하나도 든든히 서 있는 것을 볼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1) 반드시 닥칠 비바람

이 세상은 매우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지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올 한 해도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환난과 비바람이 기회만 있으면 무너뜨리려고 덤벼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살아간다고 해서 환난과 고통이 없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고통의 단계를 통과해야 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 선배들도 수많은 환난과 고난의 비바람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인 사도 바울도 수없는 고난(고후11:23-28)을 이겨내고 위대한 사도 중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모세의 위대한 신앙 속에도 수많은 비바람이 있었습니다. 요셉도 다윗도 수없는 환난을 이겨내며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2) 하나님이 보내시는 비바람

성경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기를 하나님께서 언젠가 일어나셔서 전 세계를 흔드실 것이라 했습니다. 이사야는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사 24:1). 에스겔도 하나님의 분노가 일어나면 하나님께서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흔드실 것이라 했습니다(겔 38:20-23).
히브리서 기자도 말하기를 땅을 진동하신 이가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실 것이며 흔들리지 않는 것을 영존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히 12:26-27). 그러나 야고보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약 1:2). 그것은 모든 환란의 비바람 속에 하나님만이 반석이심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3) 사단이 주는 비바람

성경은 또한 우리에게 경고해 줍니다. 하나님의 비바람과 동시에 커다란 사단의 홍수가 인류에게 내려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단은 곧 우리의 마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음란과 사악과 시험을 인류에게 격렬하게 쏟아 부을 것입니다. 사단은 그의 시대가 짧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는 거대한 악의 바람과 파도를 풀어놓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악의 비바람이 지금 아슬아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아슬아슬한 지경이란 모든 것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극적인 것은 우리가 그것에 길들여져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전혀 거리낌을 주지 않는 수많은 악을 보고 듣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하였습니다(벧전 5:8).


2. 우리가 지은 집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집을 짓는 사람은 둘 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밖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1) 집을 짓는 사람

우리는 인생 건축가이며 말씀의 재료를 가지고 순종을 통하여 믿음의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둘 다 집을 지을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두 사람 모두가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 성도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의 필요성을 아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집에다 비유하신 것은 집은 없어서는 안 될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필요에 따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신앙 집을 캠프 때 치는 텐트와 같은 집이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내가 짓고 있는 집은 어떤 집입니까? 어디에다 짓고 있습니까?

2) 완성된 집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둘 다 나름대로 집을 완성하였습니다. 교회에 나아오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시간이 지나가면 신앙생활의 틀이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요구되는 형식이 내 삶 속에서 적응되고 갖추어지면 신앙생활이 완성된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 완성한 집은 비슷할 것입니다. 집의 크기, 디자인, 심지어는 구조도 같은 설계도로 지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였습니다(마 7:21). 심지어 22절을 보면 더 충격적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병자도 고쳤습니다. 선지자 노릇도 합니다.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23절). 겉으로 드러난 공통점에 비해 차이점을 주님께서는 강조하고  싶어 하십니다.

3) 두 집의 차이점

먼저 두 집을 짓는데 드는 노력의 차이입니다. 누가복음 6장 48절에 보면 그냥 “반석 위에 지었다”고 말하지 않고 “집을 짓되 깊이 파고 기초를 놓았다”고 강조합니다. 나의 신앙생활의 기초 형성을 위해 얼마만큼 수고와 노력을 투자 했습니까? 주일성수 합니다. 예배드릴 줄 압니다. 기도할 줄 압니다. 찬송 부를 줄 압니다. 이제 ‘주여!’소리도 할 줄 압니다. 다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의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시련이 오면 견딜 수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창수가 났습니다. 홍수가 밀어 닥칩니다. 그리고 바람에 부딪힙니다. 모래 위에 세워진 집은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세운 집은 아직도 견고히 서 있습니다.  내가 가진 이 신앙이 얼마나 참 이냐 거짓이냐는 역경의 순간에 나타납니다. 


3. 인생의 반석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세운다고 했습니다(24절). 신약에서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반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삶에 어떤 기초를 점검해야 합니까?

1) 믿음을 점검하십시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예수님은 반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이 고백이 없다면,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아 질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합니다. 유행도 가치관도 변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주님 앞에 나의 신뢰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주님의 자녀다운 일입니다.

2) 사랑을 점검하십시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의 동기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기도 제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진정 기도해야 할 우리의 기도 제목은 한 가지입니다. 주님!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를 할 때 주님은 우리의 나머지 부차적인 기도 제목들도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모든 병의 근원은 사랑의 결핍입니다. 피조물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먹어야 하고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돈이 없는 것 때문에 탄식하는 사람은 많지만 내게 사랑이 부족하다고 탄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랑을 연습합시다. 사랑만이 주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이웃을 살릴 수 있습니다. 

3) 소망을 점검하십시오.

소망이란 다른 것은 다 없더라도 이것만 있다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주님의 복음이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도 이 소망의 기초만 튼튼하면 충분한 것입니다. 본문의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자의 반열에 동참하십시오. 변함없이 영원하신 주님과 주님의 진리를 반석 삼아 그 위에 인생과 신앙을 건축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십시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기초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갑니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자’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집은 기초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집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여러분 인생의 기초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집의 설계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그려 놓은 대로 집짓기를 실천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