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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임마누엘 (마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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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마 1:18-25)

  이 세상의 어휘에서 ‘아래’(down)라는 말은 패자들, 겁쟁이들, 하락세의 증시에나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것은 외면하거나 무시해야 할 말이지 진지하게 논의할 말은 절대 아니며 상류 사회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그 말과 닿기만 하면 무엇이든 색조가 변합니다. ‘빈털터리’(down and out), ‘규모 축소’(downscale), ‘내리막길’(downhill), ‘낙담’(downhearted) 그리고 최악의 경우로 ‘호주 혹은 뉴질랜드’(downunder, 북반구에서 볼 때 아래에다 밑이라는 뜻)에 이르기까지, 그 말과 짝을 이루는 다른 멀쩡한 단어들까지 예외가 아닙니다. 이 말은 약자들, 가난한 자들, 죽은 자들의 불운한 입술에나 오를 단어처럼 보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 말을 내리치는 결정타가 있습니다. 이 말의 반대말은 ‘위’(up)입니다. 힘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위라는 말은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다 못하여 거의 숭배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승자들, 영웅들, 증시의 상승세를 아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높은 수준’(upscale), ‘유망주’(up and coming), ‘상향성’(upwardly mobile), ‘상류층’(upper class)등에서 보듯이 그것은 흠모하고 추구해야 할 말이고, 파티석상에서 무언의 화제이며, 함께한 모든 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입니다. 선택된 소수의 말, 강자들의 말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만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입니다. 나침반의 바늘이 북쪽을 가리키듯이 인간의 바늘은 위를 가리킵니다. 인간 각자의 마음에는 어떻게든 스스로 높아지고 출세하고 자존심을 세우려는 타고난 기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역할 모델들과 영웅들도 그 주제를 부추깁니다. 위로 올라가서 아집의 근육을 뽐내십시오. 중력을 정복할 수만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마십시오. 노골적으로 하든지 아니면 겸손의 탈을 쓰든지 어쨌든 위로 올라가십시오. 왜 그래야 할까요? 그것이 크게 되는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상이 하는 말입니다. 이런 정황에서 빌립보서 2장은 성경에서 문화에 가장 역행하는 장일 수 있고, 특히 유행을 선도하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그렇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빌립보서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정말로 크고자 하거든 당신이 취해야 할 방향은 내려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내려가야만 크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역설의 핵심에 또 다른 역설이 있습니다. 크다는 것의 기준은 자기 의지가 아니라 자기 포기입니다. 많이 잃을수록 많이 얻습니다. 세상이 그것을 꺼리는 것도 외관상 가히 이해가 됩니다. 내려가야 크게 된다는 개념은 터무니없고 언어도단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사실 빌립보서에 분명히 나오듯이 내려감이란 세상에서 말하는 내려감의 모든 것, 즉 강등, 익명, 섬김, 규모 축소, 감소, 상실, 죽음입니다.

  내려간다는 개념에 선뜻 찬동하지 않는 것은 세상만이 아닙니다. 역사를 보면 하향성의 개념으로 씨름한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탐닉을 위하여 이것저것 바라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최근에 삶을 간소화하거나 뭔가를 줄였거나 희생적으로 베푸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을 당신은 몇이나 알고 있습니까? 질문을 좀 더 좁혀서,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목숨을 잃는 것이 곧 목숨을 얻는 길이라고 정말 믿습니까? 하향성의 위력을 믿는 첫째이자 분명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모본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고 그렇게 내려오시다니 왠지 비논리적인 방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장 억세게 저항하는 불신자조차도 그리스도의 영향력만은 여간해서 부인하지 못합니다. 아무나 역사 속에 들어와서 시간을 둘로 쪼개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정신이었는지 여부, 그분의 정직성, 동기 등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그분에 관하여 논쟁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역사에 위인의 발자취를 남기신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크게 되신 길은 전형적인 길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세상 속으로 “내려오셨다”고, 그것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오셨다고 밝힙니다. 빌립보서 2장에 보면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 되신”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창조하신 우주에서 찬송의 궁극적인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높은 지위를 생각하면, 성육신의 파격과 그분의 하향의 깊이는 자못 더 놀랍습니다. 그분은 신적인 특권을 자진하여 희생하셨습니다. 모든 권력의 근원이요 모든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 짐승의 지저분한 여물통에서 무력한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이 땅에서 삶을 시작하신 후로도 예수님은 내려가기를 멈추신 적이 없습니다.

전능하신 분이 우셨습니다. 만물의 주인께서 집이 없으셨습니다. 만왕의 왕께서 종이 되셨습니다. 진리의 근원이신 분이 신성모독의 죄를 쓰셨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생명을 주신 분이 벌거벗고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리시고 숨을 헐떡이셨습니다. 그분의 하향은 죽음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우주에서 찬송의 극점에 계시던 분이 바닥까지 낮아져서 고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인간의 악으로 인해 무죄한 피해자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시스템의 모든 법칙을 어기시고 한 인간으로 사시고 죽으셨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들을 섬기러 오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붙드시는 분이 오셔서 자신을 다 쏟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셨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성육신과 십자가는 미련함의 상징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신 목적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셨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와 백성을 이루셨습니다. 빌립보서에 나오듯이, 이런 하향성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반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려가셔서 하나님의 위대함이 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어떠한 존재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까? 오늘 본문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1. 인간은 죄악의 존재입니다

  본문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자기 백성’이란 유대인의 통치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권위를 내포한 말로서 본래 유대인을 가르치는 말이나 유대인에게만 한정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경건한 자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제자로 삼았으며 따라서 이방인들도 ‘자기 백성’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즉 ‘자기 백성’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통치를 전인적으로 인정하는 모든 ‘메시야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의 헬라어 ‘하마르티아’란 말은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갔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뜻에 인간의 의지와 행동이 빗나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보다 지나칠 때나 모자랄 때 모두를 가리킵니다.

  「보물섬」을 쓴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Stevenson)이 폭풍우에 대해 쓴 이야기에는 배가 암벽 해안에 좌초돼 승객들의 생명이 위태롭게 된 장명이 나옵니다. 배가 옴짝달싹 못하자, 공포에 질린 승객 한명이 배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갑판 맨 위에 있는 조타실로 가 보았습니다. 키잡이가 두 손으로 배의 키를 조종하는 조타기를 꽉 붙잡고 선체를 돌려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 뱃머리는 조금씩 바다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키잡이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어깨 너머로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그 승객은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 “제가 키잡이의 얼굴을 봤는데요,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잘되어 가나 봐요” 라고 소리쳤습니다. 키잡이가 보여 준 그 미소는 배에 탄 승객들의 마음에서 공포의 먹구름을 일시에 거둬 갔습니다. 그리고 절망을 소망으로 바꿔놓았습니다.

  키잡이의 미소가 승객의 두려움을 잠재운 것처럼, 우리는 삶의 폭풍우 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바라봐야 합니다. 고통 중에 주님을 바라보려면 무엇보다 주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오직 그분의 임재 안에서만 치유와 기쁨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 중에 하나는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찬양과 예배라는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삶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철저한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는 희망이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소망과 생명이 있습니다.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순간에 예수님의 구원과 사랑이 우리 가운데 충만케 됩니다. 이것이 기적이며 성령의 역사이며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예배와 섬김과 찬양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필요한 죄악의 존재라는 은혜를 깨닫는 성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인간은 사랑의 존재입니다

  본문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사용되기보다 성부 하나님에 대한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그분의 위격과 그분의 사역의 한 단면을 암시하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와 예수가 되실 뿐 아니라 그분이 곧 죄악으로 인해 절망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이 땅에 내림하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죄로 인해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인간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다가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는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죄사함을 받고 그분의 실존을 날마다 인정하는 백성들은 모두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해의 성탄절 전날, 부드러운 눈이 내리고 젊은 병사들의 마음은 고향과 가족에게로 가 있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조용히 콧노래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마침내 참호 안에 성탄절 노래가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그들이 노래를 마쳤을 때, 최전선을 사이에 두고 무인 지대를 지나 건너편 참호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편 병사들이 그들의 언어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에 그들은 함께 평강의 왕이신 성탄절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가 계시면 천국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가까이 계실 때 이 땅에 횡행하는 불일치는 평화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실 때 한밤의 어둠은 대낮의 밝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평화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찾아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우리는 그리스도께 헌신함으로써 그분의 평화를 누릴 수 있고, 또 세상에 그분의 평화를 알리는 메신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 쓸모없거나 무가치한 존재는 없습니다. 모두가 귀합니다.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분들입니다. 어린이, 청년, 장년, 노인… 하나님의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랑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누구나 사랑의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절대적 가치를 지닌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사랑의 존재임을 믿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인간은 구원의 존재입니다
  본문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말구유에 오신 유일한 목적은 죄로 인해 지옥 가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여 천국 백성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천국에 가 있는 자신을 생각할 때 얼마나 놀랍고 감격하겠습니까?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이 엄청난 구원의 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 돈, 권력,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무엇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람을 결코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어 지옥 가는 사람은 가장 미련하고 불행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 받은 사람은 가장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 받았습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택과 예정과 축복입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언제나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마음껏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하고 간증을 해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과 선교의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구원을 양보하거나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더욱 누리고 전하고 보여 주어야 합니다. 가짜를 가지고 진짜처럼 사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진짜를 가지고 가짜처럼 살면 안 됩니다. 진짜를 가지고 진짜처럼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20년 이상 성탄절이 되면 어김없이 오르는 연극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도 많이 공영된 바 있는 연극 「빈방 있습니까?」입니다. 이 연극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우리나라에서 극화한 것입니다. 연극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성탄극을 준비하던 어느 교회 고등부 연극반에서 연출교사는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능이 좀 모자라던 ‘덕구’에게 조연급인 여관주인 역을 맡깁니다. 모든 면에서 소외되던 덕구에게 자신감을 주려는 연출 교사의 배려였습니다. 마침내 성탄절 전야에 무대의 막은 오르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 연극은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문제의 여관 장면에 이르러 덕구가 사건을 일으킵니다. 빈방을 애타게 찾는 요셉과 만삭의 마리아를 보고 여관 주인인 덕구는 “빈방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차마 못한 것입니다. 그 대신에 “가지 마세요. 우리 집에 방이 있어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마구간에 가지 마세요”라고 외치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객석에선 폭소가 터지고 연극은 엉망이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극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빈방이 준비돼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 그리고 삶의 현장에 예수님을 언제든지 모셔 들일 수 있는 정결한 방을 예비하는 성탄절이 되길 기도합니다. 부모를 떠난 자녀는 가난하고 불행해집니다. 어린이는 부모와 함께 있을 때 안전하고 넉넉하고 행복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기뻐하시는 예수님을 결코 떠나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수많은 이유로 상처 받고 실망하게 만들어 예수님과 교회와 사명을 떠나게 만듭니다. 구원을 가볍게 여기고 부인하게 만듭니다.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나 세상적인 것과 바꾸게 만듭니다. 마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꾼 에서처럼,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버린 유다처럼 살게 합니다. 구원과 예수님과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더 가까이 하고 감격해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이 확실하고 더욱 풍성한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함께 할 수는 없으며 언젠가는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죄악과 사랑과 구원의 존재입니다. 임마누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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