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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물 젖은 손수건(렘 31: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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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손수건(렘 31:15-16) 

전공의 뜻?
전공은 전기를 고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공이란 국문과, 수학과, 패션디자인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공이란 전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불안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것 같고요,
.그저! 뭐 잘 살고 있는 듯이 보여도,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불안합니다.

․ 내 자녀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 내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 갈 것인가?
․ 내 남편의 직장과 은퇴 후에는 뭘 하고 살고, 어디로 가  야 하는가?
․ 짐작하기도 어렵고, 짐작조차도 싫은 하루, 하루를 살아  갑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이 불안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불안을 이기기 원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불안을 멈추게 하기를 원하시면 아멘!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세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의 말씀입니다.

이 평안은 죽음도,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억누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모와 제가 동시에 병에 시달리고, 힘이 들 때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갈 바를 몰랐습니다.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습니다.
찬양이 안 나와요. 그러나,
이 아픔을 평안한 내 마음으로 이겨야만 했습니다.
부르고, 찬송을 또 부르면서, 웃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거 뭐가 좋아서 웃고 그래’ 하더라도 전 웃으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목사님!
눈이 참 선해 보여요.
목사님!
참 편안해 보이세요.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나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반응하시고,
.나와 함께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빼앗을 수 없는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이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눅7;11-17을 보면 나인 성 과부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과부라고 하니까, 남편을 잃은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과는 달리, 여자가 남편을 잃었다는 것은 그 당시로는 앞으로 ‘엄청난 시련과, 극심한 고독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는 한 가지의 희망이 있었는데 바로
아들이 하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요 고생인지도 모르고 이 아들을 길렀습니다.
예수님이 관을 향하여 청년아! 하신 것을 보면 이젠 고생이 끝나고, 이제는 다 기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아들이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었다는 거예요.
이거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얼마나 여인이 통곡을 했을지 상상이 가시죠.

그 때에 예수님이 이 여인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여인아, 울지 말라”

이건 빈말이 아닙니다.
.그냥 내뱉는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고통을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그러자 청년이 관 속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이 그 과부에게 청년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어떻게 됐어요?
․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 통곡이 변하여 춤이 되고,
․ 좌절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할렐루야!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는 주님의 선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이 아니하리니” 라고 요11: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고전15:22 하 반절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였습니다.

.정말요! 아직도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다윗도 다, 그대로 우리에게 살아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간 사람은 죽음이 아니라 그저 나보다 먼저 앞에 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옆에 안 계셔서 슬퍼 는 할 수 있습니다마는 절대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은 자들을 죽었다고 하지 않으시고 “잔다”(마9:24) 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다! 그곳으로 갈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눈길을 끈 것은?

우는 과부였습니다.

언제 웁니까?
.기가 막힐 때 울고,
.말문이 탁하고 막힐 때,
.말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때,
.슬플 때,
우리는 웁니다. 

인간은요 태어날 때부터 웁니다.
죽을 때에는, 눈가에 눈물이 다! 맺어요.

그래서 그런지 눈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수치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힘들어도, 힘들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가식이고 위선입니다.

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은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는 자를 주의하여 보십시다.
우는 자를 기억하십시다.
그러므로 다윗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 주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주여!
․ 기억하소서.
․ 당신의 아들이 울고 있나이다.
․ 내가 흘린 눈물을 기억하여 주소서.

히스기야 아시죠?
이제는 더 살 수 없다고 하였을 때 히스기야는 병원이나, 의사나, 약을 찾지 아니하고 벽에다 얼굴을 대고 그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네 눈물을 보았노니 네 수명을 15년 동안 연장 하리라” (사38:5)

․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고 계십니다.
․ 눈물에는 커다란 능력이 있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아버지의 보좌를 움직이고, 아멘,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히4:!6에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담대하게 나아갈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울지 말라” 고 위로 하시며
“네 눈물을 다 씻어 주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오늘의 눈물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1년, 2년, 3년 문제가 그대로 있어도, 아버지는 나에게 선한 뜻,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 눈물을 흘리시는 일이 있습니까?
그 눈물을 귀중하게 보시고,
그 눈물을 해결해 주시는 주님께 오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눈물 젖은 손수건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 주님 안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 주님 안에는 최후 승리가 있습니다.
․ 주님 안에서 영광의 내일을 준비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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