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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적을 이루는 행복 (막 11: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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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이루는 행복 (막 11:35-45)

이런 말이 있습니다.“시계가 하나인 사람은 시간을 정확히 알지만 시계가 두 개인 사람은 결코 확실한 시간을 알지 못한다.”무슨 의미일까요? 어느 시계가 정확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몇 시라고 선뜻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 볼 곳이 오직 한 곳이라면 집중해서 그것만을 바라 볼 텐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실패하기가 쉽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무엇에든지 집중하기가 힘든 시대입니다. 얼마나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또 얼마나 많은 놀이 문화며 취미생활이며 갖가지의 볼거리, 먹 거리들이 있습니까? 날만 새면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한 달만 지나면 유행이 새로워지는 세상입니다. 과연 이런 세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아주 쉽게 여러 곳에 주의력이 분산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창하게 어떤 목표를 설정해 놓아도 그 목표에 가까이 가보지도 못하고 빗나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자꾸 자꾸 마음이 달라지거든요. 처음 먹은 마음은 그게 아닌데 조그만 지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람이 처음 먹은 마음을 끝까지 가져간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 시대의 지도자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초심에서 빗나가버린 삶 때문입니다. 부부가 불행한 것은 초심에서 크게 벗어나버린 애정 때문입니다. 처음목적을 향한 마음 그것이 흔들리면서 실패하고 말았더라는 말입니다.

저널리스트인[게일 쉴리]라고 하고 하는 사람이<통로를 찾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자기가 저널리스트로 있으면서 한 조사를 해보았답니다. 40넘은 사람들 중에 이만하면 인격적으로 훌륭하게 살았고 이만하면 성공적으로 살았다는 사람들을 전부 조사를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무려 일곱 가지의 공통점이 있더랍니다. 첫째는 확실한 방향을 가지고 일생을 그 방향을 향하여 외길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휘청휘청하지 않았어요. 목적과 방향이 분명한 생을 한 평생 살았다는데 그 공통점이 있고 두 번째는 헛되게 살았다는 자책감 이 없더라는 것입니다.'내가 잘못 살았다.'하는 생각이 없고'잘했다. 그만하면 잘 살았다.'고 생각을 할 만큼 떳떳하게 살았더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이가 들었어도 무엇인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입니다. 은퇴했다고 빈둥거리는 게 아닙니다.

오늘도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겁니다. 내 나이에 걸맞게 할 만한 일을 찾아서 열심히 일하는 그런 체질의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살더랍니다. 왜요? 미리 다 정리했습니다. 앞을 환히 바라보고 남은 생을 정리해 가면서 살아가는 이것이 특징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잘했다고 하나, 못했다고 하나 그거 생각 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체면 때문에 망하거든요. 이 유교문화적인 의식 때문에 뭔 일을 못합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하면 남들이 뭐라고 할까? 실패했다고 할까? 성공했다고 할까? 이거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합니다.

여러분, 정말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면 남이 뭐라고 말한들 그게 무슨 중요합니까?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그럽니다. 교회 봉사를 하면서 눈치를 봅니다. 정말 뭐라 하는 사람이 있긴 있나 봐요. 이건 아닙니다. 교회 봉사에 대해서 뭐라 하는 사람도 문제요, 눈치를 보는 사람도 문젭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한 거지요. 사람에게 신경 쓰다 보니깐 사람이 처절해 지는 겁니다. 사람 눈치 보다가 하나님께 복 받을 일을 놓친다면 이건 불행이거든요. 성공한 사람들의 일곱 번째 공통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신앙을 삶의 중심에 간직하고 살더랍니다. 젊었을 때는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목표한 바를 이루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성공을 했다고 믿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신앙에 충실하면서 세상적인 가치관 보다는 신앙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것이 성공적으로 인생 하반기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이며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정말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가 궁금합니다. 이제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각자의 삶을 다시 한 번 정리해봅시다. 먼저는 내 생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습니까?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평소에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면서 살아갑니까? 사람에게는 생일이 두 번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몸이 아기로 세상에 태어난 순간을 몇 년 몇 월 몇 일생이라고 하여 생일로 정합니다. 그러나 그 생일에 대해서는 사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던 날입니다. 금방 태어난 내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 날이 생일인지 뭔지를....그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부모님들에 의해서 알게 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짜 생일은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하는 자기 존재 의식을 가지는 그 순간이 비로소 자기 생의 시작이요, 생일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을 돌아볼 때 주의 깊게 여겨야 할 것이 배고프면 먹고, 먹어야겠으니 일하고, 졸리니 자고, 늙으니 죽고 하는 이런 이야기는 창조적인 인간답지 못한 것들입니다. 그 때가 언제이든지 간에 나는 왜 존재하느냐 하는 것을 아는 그때부터가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 전의 삶은 철없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30대에 철드는 사람도 있고, 혹은 40대에, 심지어는 60이 넘어서 그런 깨달음이 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은 그때부터가 철든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둘째는 그 생의 목적과 일치한 삶을 오늘 살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알기 쉽게 다시 말하면 추상적인 하나의 목적이 있는데 그것에 따르는 구체적인 생을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추상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서, 내년으로 미루면서 살아갑니다. 자기 존재의 목적을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 찾지 않은 채 추상적인 목적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잘못 된 것이지요. 셋째는 한 번 정한 목적에 너무 자주 궤도수정하지는 않습니까? 목적을 세울 때는 신중하고도 분명하게 세워야 됩니다. 그리고 올바른 목적이라면 한번 정하면 끝까지 가야합니다. 우회전 좌회전을 너무 수시로 합니다. 학교도 바꿔보고, 전공도 바꿔보고 직업도 이리 저리 바꾸어 보다보니 아직도 잡힌 것은 없는데 세월은 흘러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것입니까? 목적을 이미 알고 그 분명한 목적을 향하여 직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요, 그야말로 성공적인 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흔히 "외길 인생"이라는 말을 합니다. 어떻게 들으면 이 말이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긍정적인 한편으로 생각하면 참 좋은 말입니다. 일찍이 뜻을 정했고 그 뜻을 위해 수시로 궤도수정을 하는 흔들림 없이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곧장 달려왔다는 의미일 때는 이 말이 정말 좋은 말입니다. 넷째의 질문은 생의 목적을 알고 그 목적과 일치한 삶을 살고 변하지 않게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가면 여기에 주어지는 플러스 알파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는 모르고 선택했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고 나는 모르고 살아왔으나 하나님은 아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나를 주장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앞으로의 운명도 하나님께 맡기는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 이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45절입니다."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기에는 분명한 자기 목적이 있습니다. 살다가 이러저러해서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이 뒤바뀌어 섬기는 자가 되었고 그 결과로 십자가에서 죽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섬기러 오셨고 애초에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왔다는 말씀입니다. 본래적이고 원천적이며 근본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섬김이 무엇이며, 십자가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배워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같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오늘 본문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다른 의미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지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신앙의 삶의 목적은 섬기는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고 살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라는 의미입니다.

자, 이걸 기억하며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니다. 44절입니다."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으뜸이 되고자하는 마음이 지나치고, 남은 높여 줄 생각조차도 없는데 스스로 높아지고자 안달하고, 섬김을 받을 만한 언행은 없으면서 섬김을 받으려고 억지를 부리는 그 마음을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낮추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섬기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섬김을 받는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까? 잘 모르시겠다면 이렇게 생각을 해봅시다. 섬기는 자가 누리는 행복은 자유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섬김을 받는 자의 행복은 자유하지 못합니다. 늘 바라는 바가 있고 기대치가 있기에 거기에 못 미치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하겠습니까? 이게 엄청난 차이입니다. 누구든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자유이고 행복입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는 데는 사랑이 없지만 섬김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적이 중요합니다.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고, 출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이 문제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는 더욱 중요합니다. 아직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모른 채 살고 있다면 오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합니다."섬기는 것이 내 삶의 이유다."이제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에 충실하게 살다가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기를 원한다면 이 땅에서의 섬김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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