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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또 다른 쓴 물 (출 15: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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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쓴 물(출 15: 22-27)

우리는 교회에 속하여 있는 성도입니다. 교회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에클레시아입니다. “~로부터 부름 받았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선택하시고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이곳 교회로 모으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과거로부터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꿈과 희망을 갖고 함께 신앙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대강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한 해를 보내는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올 해가 저물기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신앙여정을 어떤 자세로 걸어야 할까? 여러분과 함께 한번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방황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급으로부터 불러내셨습니다.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애급 종살이 청산한 이스라엘은 지금 수르라고 불리는 광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부푼 가슴으로 이 광야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쾌적함과 풍성함이 확보된 것도 아닙니다. 만만치 않은 광야의 여정 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척박하고 건조한 광야 길에서 생명유지에 치명적인 것은 물입니다. 이스라엘은 물을 아껴 마셔야 합니다. 하지만 사흘 길 지나자, 물주머니 바닥이 드러나고 맙니다. 사람과 가축 모두 목말라 입은 타오르고 숨은 헐떡입니다. 사람들은 “물! 물!” 갈증을 호소하며 기진맥진해갑니다. 노약자는 힘없이 쓰러집니다.

그 때입니다. 너무나 반갑게 한 마을을 발견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손짓하는 것 같은 우물가로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서둘러 물을 길어 올립니다. 벌컥 벌컥 들이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마신 물을 도로 뱉어내야 합니다. 구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실 수 없는 쓴 물입니다. 인내하며 차례 기다리던 사람들도 그만 실망하고 포기해버립니다. 

“물이 있어도 마실 수 없다니!” 물이 아예 없을 때보다 더 맥 빠집니다. 탈진해버린 이스라엘은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편안할 때에야 남에게 너그러울 수 있지요. 그렇지만 힘겹고 지칠 때는 쉽게 짜증내고 속상해합니다. 이 고생 도대체 누구 때문인지 따지게 됩니다. 급기야 지도자 모세에게 집단적 원망을 분출합니다. 24절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여기서 “원망하여”라는 히브리말에는 “이로누”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로누”라는 단어는 원래 “밤새워 머물다” 혹은 “고집 세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모세를 향해 밤새 따지며 농성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지도자가 외롭고 힘든 것은 이처럼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며칠 전, 홍해 갈라지는 것 목격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 분명히 체험했습니다. 기적 베푸신 하나님 찬양했습니다. 소고 치며 노래 불렀습니다. 너무 기뻐 덩실- 덩실- 춤까지 췄습니다.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그들은 감사했고, 감격했으며, 흥분했습니다. 쓰임 받고 있는 지도자 모세를 존경하고 신뢰하였습니다. 불과 사흘 전 일입니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진 겁니다. 물이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해갈시켜 주리라 기대했던 마라의 물! 그러나 그 물이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감사와 찬양 사라졌습니다. 지도자 모세 향해서도 불평과 원망의 화살 쏘았습니다. 기뻐하다 금방 불평하고, 감사하다 금방 원망하는 것 오늘 우리와 흡사합니다. 

집단적 원성 앞에서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사실 모세라고 마시지 못할 물이 기다리고 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저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함 받다보니 이 마을에 당도한 것 아니었습니까? 모세도 자기 방어를 위해 해명할 수 있었고, 책임지는 것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단지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 바라볼 뿐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십니다. 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홍해를 가르시고 난후 또 한 번의 초자연적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은 목을 실컷 축였을 것이고 다음 여정을 재촉했을 겁니다. 그리고 27절 마침내 물 좋고 나무 많은 엘림에서 여장을 풀게 됩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어차피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고, 결국에는 물 좋은 엘림에서 단물 실컷 마시게 해주셨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엘림에서 마시게 될 단물을 미리 앞당겨 마라에서 주실 수는 없으셨을까?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봅니다. 마라 같은 인생의 쓴 경험을 미리 피하게 하고 막아주실 수는 없었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병 주고 약주는 것 같이 하실까?

그 해답의 실마리가 26절 마지막에 엿보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애급을 떠나온 이스라엘에게 고침 받아야 할 것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치유 받고 무엇이 회복되어야 하는 겁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밀어닥친 좋지 못한 광야의 여건이나 환경일 수 있습니다. 또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걸리게 될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의 대상은 바로 이스라엘 자신입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이 여호와 라파! 지금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사람이 의사를 필요로 한다고 말씀하신 적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강림하신 예수님께서도 사실은 우리를 고치고 회복시키는 영적 의사이십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광야생활을 치유의 관점에서 풀이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애급을 떠나온 이스라엘에게는 400년 종살이 경험이 누적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예였습니다. 권리 주장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자유마저 누릴 수 있었을까요? 아프다고 고된 부역에서 면제될 수 있던가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모 자식이 생이별할 수 있었습니다. 한 때 사내아기는 일제히 죽임 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주변 환경은 언제나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누구를 믿으며 무엇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나일강 유역의 창궐한 애급 문명을 가능케 한 애급 신과 비교해 볼 때, 어렴풋이 전해져 온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은 정말 초라하고 무기력하게만 보였습니다. 불평, 불신, 원망, 분노, 좌절, 그리고 탄식은 이스라엘의 고질적인 마음의 병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생 광야 길을 걷고 계신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그리 쉽지 않은 세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마음을 잘 가꾸어 성숙한 신앙 인격을 보여주시는 분은 참 귀합니다. 하지만 격한 세월을 살다보니 워낙 많은 피해와 상처를 받은 분도 계십니다. 여러 번 배신당하면서 결국 자기만이 자기를 지켜낼 수 있다는 냉혹한 세상 현실에 익숙해졌습니다. 용서받고 천국 가기 위해서야 예수님 믿지만 그래도 이 땅의 문제는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결국 자기를 지켜내려다 보니 남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 내면 깊이 뿌리내려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보다 앞서 계획 세우고, 용의주도하게 그 계획을 주장하고 관철해갑니다. 자기의가 강하여 다른 사람 의견은 경청하지 않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미리부터 능력과 세를 과시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아예 두터운 정서적 벽을 쌓아 놓은 분도 계십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편안하기 때문이겠지요. 어떤 분은 남을 인정하는 것에 인색합니다. 남을 세워주면 상대적으로 내 위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400년 종살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게 남겨진 불평과 원망, 그리고 불신이라는 고질병도 애급을 떠나올 때 함께 따라왔습니다. 위기를 만나면 쉽게 원망하고 때로 좌절합니다. 이 고질병 치유되지 않으면 조금만 어려워도 무엇을 먹을까 염려할 겁니다. 무엇을 입을까 불안해 할 겁니다. 이런 모습은 전능하신 만군의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뿐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드리지 못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는 믿음의 체질이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내면이 고침 받아야 했습니다. 때문에 이 광야생활 벽두에 치료자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 라파! 라는 이름이 계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의사는 환자의 병 고치기에 앞서 환자 상태를 진단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마음을 진단하기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25절 하반절에는 시험한다고 표현됩니다. 정확한 상태를 알기 위해 Test한다는 의미입니다. 상태를 알아야 바른 처방 내리지 않겠습니까? 26절 말씀에 그 test 내용이 등장합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하나님과 언약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지 test하신다는 겁니다.

마음의 병은 만사가 편할 때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도 못 느끼고 남도 눈치 채지 못합니다. 다 너그럽고 선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기를 만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숨겨진 우리의 속마음 다 드러납니다. 그 때 우리의 마음 상태도 정확히 진단 받습니다.

오늘 마라의 위기 앞에서 이스라엘은 감사치 못했고 인내하지 못했습니다.  불신과 원망이라는 노예근성과 노예 체질이 드러납니다. 마라의 쓴물이 그들 마음의 쓴물을 불러낸 겁니다. 마시지 못할 정도로 쓴 것은 마라의 물만 아니었습니다. 불신과 원망이라는 이스라엘의 마음 샘물도 참 썼습니다. 뱉어버릴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마라의 쓴물 위기는 이스라엘의 쓴 마음을 드러내고 치유하기 시작하는 하나님의 첫 번째 무대 설정입니다. 쓴 마음 드러내는 하나님의 진단 작업은 광야생활동안 계속됩니다. 출 16장에는 떡과 고기 없는 신 광야가 펼쳐집니다. 출 17장에는 또 한 번 물을 찾을 수없는 상황이 르비딤에서 벌어집니다. 숱한 상황이 이스라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민 13장에서는 가나안 땅에 대한 겁먹은 정탐보고가 전달됩니다. 그 때마다 이스라엘의 마음은 Test 받아갑니다. 이 때문에 광야생활을 다 마친 이스라엘에게 주님께서는 신명기 8:2을 통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Test 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치유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쓴 마음을 드러낸 후에는, 치유해가십니다. 우선 그들의 필요를 초자연적으로 채우십니다. 전능하신 그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위기 앞에서도 원망할 필요 없고 주님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할 것을 반복적으로 교육하십니다. 지금 마라의 쓴 물도 기적같이 단물로 바꾸셨지요. 원망하지 않고 조금만 더 인내하며 기다렸다면 곧장 만나게 될 엘림에서 단물 마실 수 있음도 보이셨지요. 배고플 때 만나를 내려 주셨지요. 메추라기도 보내셨지요. 목마를 때 반석에서조차 물을 내셨지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감사로 가득 찬 이스라엘로 준비해 가시는 우리의 여호와 라파! 

지금 여러분의 마라는 무엇입니까? 개인의 삶이나, 직장생활에서, 사업전선에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쓴맛을 느끼고 계신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그 괴로운 순간에도 감사로 충만하시다면 더 바랄 것 없습니다. 그러나 쉽게 불평하고, 혈기로 원망하며, 조급히 낙심하고, 경솔히 불신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 마라는 아직도 치유와 성숙이 필요한 것을 알려주시는 주님의 상황 설정입니다. 드러난 자신의 쓴 마음을 놓고 이해와 감사가 충만한 단물, 신뢰와 용서가 넘쳐나는 단물, 사랑과 헌신으로 가득한 단물로 바꿔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이제는 불평과 원망, 비판과 정죄, 불신과 낙심의 쓴 물이 나로부터 뿜어나가서는 안되겠습니다. 오히려 달디 단 생수가 흘러나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이 대강절 기간에 우리 각자에게, 우리가 일하는 터전에, 우리 나라가운데, 그리고 우리 교회 가운데 여호와 라파 하나님께서 치유와 회복의 영으로 임하시기를 대망합니다. 
(이장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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