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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예수 - 임마누엘 (사 7:10-17, 롬 1:1-7, 마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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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 임마누엘 (사 7:10-17, 롬 1:1-7, 마 1:18-25)

1.2007년 성탄절을 앞둔 대림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성탄절의 신비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는 임마누엘에 있습니다.

  어떤 곳에 농부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신앙을 금지한 법에 의하여 당국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닷가에 세워진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비참하고 쓸쓸하게 순교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절박한 순간에도 아무런 기적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바라본 목사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하나님은 지금 어디계십니까?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십니까?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이토록 침묵하실 수가 있습니까?” 나중에 하나님이 들려주신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아들아,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너희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즉 임마누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는 뜻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구약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민족 말살의 위협아래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호렙산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그 이름을 여쭸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왜 하나님의 이름을 여쭸겠습니까? 조상들로부터 듣기로는 천지의 창조주요 전능하신 이가 그들의 하나님이시라고 했는데 자기 백성이 이렇게 말살의 위기에 처했는데도 어떻게 그냥 보고만 계실 수 있느냐는 항의성 질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그 이름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의 뜻은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무능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있느니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그들을 건져내고....그 땅에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출애굽이라는 놀라운 역사를 통하여 그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출애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예표가 된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구원하신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먹이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여기 불기둥 구름기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원주민을 쫓아내시고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그들을 심으셨습니다.

  2007년도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가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것이 다름 아니라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우리 가정에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민족과도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요한복음 1:을 보면 참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즉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거한다.”고 하는 말은 이럴 테면 구중궁궐을 버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험한 들판에 천막을 치고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을 빌립보서2:에서는 “근본 하나님과 동등이신(예수께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포기하시고, 사람이 되시고 종으로 태어나시고 십자가를 지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방식이 이러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무나 우리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주로서의 조건은 사람이 타고나거나 세상의 어떤 권위가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과연 누가 우리를 구원할 구주가 되실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려면 죄인인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주는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며 빛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다리역할을 할 분이 필요했습니다. 그 일을 감당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그래서 딤전2:5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오늘 로마서에서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부활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고 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단지 한 인간뿐이시라면 예수님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구주는 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신 성탄을 두고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성인” 칭호를 듣는 사람들을 더러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몰로카이 섬의 나환자들을 위하여 자신이 나환자가 되면서까지 그들과 같이 된 성 다미엔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 성한 몸으로 찾아가서 “나환자 여러분!”이라고 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그는 자신도 나환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자신이 나환자가 되고나서 “형제자매 여러분!”이라고 불렀을 때 그들의 마음은 녹아내렸습니다.

   우리나라에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 애양원에서 나환자들의 피고름을 빨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용준 목사님이라는 분이 손양원 목사님의 전기를 썼는데 그 제목을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데려다가 아들로 삼은 유명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현대 가톨릭에서 성인칭호가 내려진 분으로 인도 켈컷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가 있습니다. 버림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데려다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한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준, 체구는 작으나 위대한 여성입니다. 이런 분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좋은 조건들을 버리고 병들고, 버림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자리에서 섬긴 분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신데 그 영광된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오시지 아니하고는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와 같이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2007년도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도 역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이 놀라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새롭게 맛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운명적으로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나셨습니다. 이 사랑이 여러분을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사람이셔야 했습니다.

  a. 텔레비전을 보면 가끔 동물들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하여 그 동물과 똑같은 허울을 뒤집어쓰고 그들과 함께 뒹굴면서 연구하는 학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거기서 당하게 되는 위험과 고통, 불편함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정을 친히 체휼하시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히4:16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은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목이 마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목마른 우리 사정을 너무 잘 아십니다. 40일이나 금식하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주린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끊임없이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우리 주님은 결국 승리하셨지만 오늘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세상에서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신 주님이 집 한 칸 없는 우리 사정을 모르시겠습니까? 가장 흉악한 죄인으로 정죄 당하시고, 멸시 천대 다 받으시며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님이 나의 억울한 사정, 죄로 인하여 우는 내 모습, 다른 사람들로부터 멸시천대 당하는 형편을 왜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지 담대하게 주님께 나아가 내 사정을 이실직고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의 모든 요청에 가장 적절한 구원과 도움을 주시는 주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b. 예로부터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 이럴 테면 제사장, 선지자, 왕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됨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서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배고픈 사람을 먹여주시고,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진리를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단지 어떤 사상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인격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알되 단지 지식적으로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만나고 교제하게 됩니다.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하는데 여기 바로 내 곁에 계시면서 도우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내가 부르면 주님은 대답하시고, 내가 구하면 응답해 주시고, 도움을 요청하면 그 능력의 손으로 도와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성탄절이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보다 더 큰 은총과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c. 무엇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많은 사람을 위한 화목제물이 되기 위하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일찍이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위하여 제물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위하여 양을 잡고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바쳤는데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담의 제물을 받으신 것은 그 이유가 어떤 제물이냐에 있습니다. 가인의 제사에는 피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물은 피 흘린 제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요구하시는 속죄의 피를 예수께서 흘리셨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와 문 인방에 발랐더니 죽음의 천사가 그 피를 보고 넘어갔습니다. 피 있는 집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이 사람이셔야 하고,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3. 그러므로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 복음을 확실하게 선포하는 축일입니다.

  구약시대를 일컬어 “하나님이 우리 위에 계신 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심으로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시대” 즉 임마누엘 은총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사실 옛 이스라엘 백성들의 궁극적인 소원은 바로 이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들이 죄를 짓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외면하셨을 때 그들은 그냥 망했습니다. 전쟁이나 전염병, 가뭄이나 외국의 침략 등등 숱한 형벌과 고난이 임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는 풍년이 들고, 전염병이나 외국의 침략 같은 환난이 없고, 국태민안 했습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이것이 샬롬의 실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눅4:의 메시야 취임사에서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은혜의 해는 희년을 말하는데 자유가 선포되는 해입니다. 빚이 탕감되고, 팔았던 땅을 되찾고, 종이 풀려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모든 얽매인 데서 자유케 하시고 해방시켜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말합니다. 그 위에 성령을 주셔서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의 확실한 실현입니다. 그리고 이후 하나님 나라에서 그 완전한 실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주신 임마누엘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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