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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마 21: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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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좋으면 다 좋다 (마 21:28-32)

시작은 좀 엉성하여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평가가 납니다.
전 두환 대통령을 재판할 때 재판 결론이 재미있습니다.

<성공한 구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구데타는 분명히 반란입니다. 그러나 성공한 구데타는 구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라는 것입니다. 처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4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도 좋고 나중도 좋은 사람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등장부터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끝가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도 나쁘고 나중까지 나쁜 사람입니다. 바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못 살게 굴기 시작하며 등장한 바로는 홍해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 왔다가 홍해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처음은 좋았다가 나중에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솔로몬입니다.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끝에 가서 이방 여자 첩을 1000명을 둡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 우상을 섬깁니다. 나라가 쪼개지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나쁜 짓만 하다가 나중에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 생활 잘 하는 사람들을 잡이 죽이는 것을 시작된 바울은 지구 역사상 가장 업적을 남기는 전도 사도가 되었습니다. 로마에서 장열하게 순교함으로 막을 내립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오늘의 본문은 마지막 주일을 당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 포도원 주인인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포도가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포도가 익으면서 갑자기 폭풍우가 닥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익으면 곧 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년 농사를 다 망치게 됩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오늘> 당장 가서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하였습니다. 긴박성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맏아들은 간다고 하더니 결론은 안 갔고, 둘째 아들은 안 간다고 하더니 결론은 가서 일하였습니다.
맏아들은 긍정하다가 결론은 부정이었고, 둘째 아들은 부정하다가 결론은 긍정이었습니다.

맏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맏아들은 알고 있으나 행함은 없는 사람입니다. 다 알고 있는 데 행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맏아들은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편리하게 대답하여 놓고 후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맏아들은 장소에 따라서 마음이 변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앞에서는 순종하고 싶어서 <예> 하였으나 아버지를 떠나서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거절하여 버렸습니다.
자극을 받을 때에는 결심을 하지만 조금 지나면 변해버리는 사람입니다.
환란을 당할 때에는 기도하고 열심히 하나님께 매달리다가도 환란이 지나고 나면 마음이 변해버리는 사람입니다.
맏아들은 처음은 좋았으나 나중은 나쁜 사람입니다. 처음에 사귈 때에는 싹싹하고 좋은 것 같은 데 점점 지나면서 안 좋아지는 사람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열정적이고 좋았는 데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식어지는 사람입니다.

둘째 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둘째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싫소이다> 해 놓고 나중에 보니 포도원에서 일한 아들입니다.
둘째 아들은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는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는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잠이 안 왔을 것입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둘째 아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는 못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조금만 께름직한 것이 있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깨달은 것은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제적으로 깨닫자 말자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둘째 아들은 세월이 가면서 점점 좋아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가나 혼인잔치의 포도주처럼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끝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제 금년의 결론을 내릴 차례입니다. 어떤  결론이 좋은 결론이고 아름다운 끝일가요?
금년을 어떻게 끝내야 아름다운 끝이 될가요?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입니다. 잘 끝내야 잘 시작하게 됩니다. 어떻게 끝내는 긑이 좋은 끝일가요?

1. 회개로 끝내는 것이 가장 좋은 끝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에 들어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30)

맏아들의 끝은 회개거리를 만드는 것이었숩나다, 그러나 둘째 아들의 끝은 회개였습니다.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싫소이다>하고 다른 곳으로 갔지만 곧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라는 말씀대로 결론은 회개였습니다.
작은 죄라도 다 회개하고 내년을 맞아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는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조선업자가 산같이 거대한 배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엔진이 돌지가 않았습니다. 다시 다 뜯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원인을 보니 엔진에 물을 부을 때에 물속에 죽은 뱀이 들어 있었는 데 그것을 모르고 부어서 죽은 뱀이 엔진을 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아 영적 교통을 막게 됩니다.
천국에는 죄없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회개한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지옥은 죄범한 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은 자가 들어 가는 곳입니다.
사울왕도 죄를 지었고 다윗왕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울왕은 버렸고 다윗왕은 크게 들어 쓰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니까?
사울은 죄를 지었을 때 교만한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죄를 지었을 때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는 크게 회개하였습니다.
끝은 회개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들어 쓰십니다. 죄에 대하여 민감한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쓰십니다.
그러면 진정한 회개란 어떤 것일가요?

(1) 진정한 고백이 있어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1요1;9)

하나님 앞에 진정한 고백이 없이는 진정한 회개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나가 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누구나가 다  하나님앞에 선 단독자로서 고백하여야 합니다.

(2) 진정한 애통이 있어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죄에 대하여 애통한다는 말은 죄를 미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죄를 증오한다는 뜻입니다. 죄를 짓게 하는 원수 마귀와 대적하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진정한 애통이 있는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그를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3) 진정한 돌아섬이 있어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개는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는 닦아 놓으면 다시 딩구는 동물입니다. 회개하고 다시 그 죄에 빠지는 것은 진전한 회개가 아닙니다. 주님을 세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던 베드로는 회개의 눈물을 뜨겁게 흘린 후에는 순교하기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한 죄에는 다시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어떤 사람이 회개하고 술을 끊었습니다. 그 후 친구들이 술 한 잔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그러면 이야기나 하게 술죄석에 가서 안주만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따라 갔습니다. 술이 친구들 사이에서 오고 갈 때 그는 정말 안주만 먹었습니다. 그러나 분위기가 무르익었습니다. 꼭 한 잔만 하라고 하였습니다. 딱 한 잔만 마시겠다고 받아 먹은 것은 두 잔 으로 세 잔으로 이어졌습니다. 결심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4) 진정한 보상이 따라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세례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보상입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는 철저한 보상이 따랐습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고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은 4배나 갚았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진정한 보상이 따라야 합니다.

(5) 성령까지 받아야 완전한 회개입니다.
결심만으로 달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로케트를 타야 합니다. 결심만으로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 의지하여야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만으로 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죄를 짓고 나서 회개할 때에 죄를 철저히 통회하면서 말했습니다.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본문에서 둘째 아들은 세리와 창녀들이라고 3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과정은 남의 것을 토색하는 세리요, 음란의 표상인 창녀라 하더라도 끝에는 포도원으로 들어 왔다고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예수믿기 싫다고 거절하던 그들이 결론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결론은 회개여야 합니다.

2. 충성으로 끝내는 것이 좋은 끝입니다
맏아들은 순종에서 시작하여 불순종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불순종에서 시작하여 순종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맏아들은 충성을 약속하고 나가서 불충성으로 끝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불충성으로 도망가는 듯 다더니 충성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동안 불충성하였다 하더라도 결론은 충성으로 금년을 마치도록 하여야 합니다.
어느 왕이 죽으면서 자기에게 일생 충성스럽게 지낸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나에게 충성을 다 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제 다시는 오지 못 할 세상으로 간다. 너는 나보자 먼저 가서 내 갈 곳을 준비하여 놓아라.>
이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신하는 알아 차렸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자리에서 칼을 심장에 찔러 죽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길을 예비할 정도로 충성하였습니다.
놀라운 충성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불후의 명작 <피에타>를 완성한 후 너무나 기뻐서 후대의 사람들이 자기를 잊지 않도록 자기의 이름을 싸인하였습니다. 그것도 마리아의 가슴에 두른 띠에 한 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하나님이 만드신 장엄한 자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작품을 만들고도 싸인하나 남기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모습에 감탄을 또 하였습니다. 그는 보잘 것없는 작품을 하나 만들고도 싸인을 한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 그는 어떤 작품에도 자기의 싸인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영광 오직 하나님의 작품을 만드는 일에만 충성을 하였습니다.
과정은 잘못 갈 적이 있다고 할 지라도 끝은 충성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였는 가를 보시지 않고 얼마나 충성하였는 가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두 천사에게 임무를 맡겼다고 합시다. 한 천사에게는 천하에서 제일 큰 왕국을 다스리라는 임무를 주셨습니다. 다른 한 천사에게는 땅위에서 가장 지저분한 마을을 청소하라는 명령을 하였습니다. 둘 다 맡은 일을 잘 해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더 칭찬하시겠습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둘다 똑같이 칭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보다도 얼마나 충성하였는가를 보실 것입니다. 집사로서 충성한 사람이나 목사로서 충성한 사람이나 이 다음에 하나님의 상급은 같을 것입니다. 과정은 좀 불충성스러웠다고 할 지라도 끝은 충성스런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맏아들은 충성의 대답을 하고 불충성하였고, 둘째 아들은 불충성의 대답을 하고 충성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결론은 충성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구세군 자선 냄비가 들어 온 것이 1928년입니다. 박 준섭 목사님이 제일 먼저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80년 만에 처음으로 목표액에 미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며칠 더 연장하겠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섬짓하였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염증일가요? 구제열이 식어진 것일가요?
우리 교회는 이제 까페를 개설하였습니다. 2008년도 12345 지침을 정하였습니다.

1. 1 포 - 이제 한 달에 한 가정에서 쌀 한 포씩을 드려야 합니다. 130 독거 노인을 우리 교회에서 맡아 달라고 동장님이 요청하였기 때문입니다.
2. 2 명 - 한 달에 두 명씩 전도하는 운동이 펼쳐져야 합니다.
3. 3 번 - 한달에 3끼 이상 금식하며 기도하여야 경건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4. 4 바퀴 - 한 달에 우리 동네를 네 바퀴 돌면서 <땅 밟기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5. 5 권 책읽기 -2008년도 우리 교회 표어는 <성장과 성숙>입니다. 영적 성숙을 위하여 양서를 자꾸만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충성스럽게 한 해를 마무리하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불충성하였어도 마지막 한번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늘 나라가 끝내는 것이 좋은 끝입니다
이 비유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늘나라였습니다.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느냐는 데 있었습니다. 맏아들은 간다고 하다가 안 갔습니다. 둘째 아들은 안 간다고 하다가 갔습니다. 그 후 주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시고 계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리라.>

그들은 안 믿는다고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모두 회개하고 주님앞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생명이 우선입니다. 구원이 결론입니다.
3년씩이나 주님을 고생스럽게 따라다니다가도 결론은 지옥인 유다가 있습니다. 반대로 일생 강도짓하다가도 결론은 하늘나라에 간 강도도 있습니다.

몇 년전에 부흥회하던 어떤 교회 장로님이 생각납니다. 아멘 장로라는 별명을 가진 장로가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아멘을 잘 하는 지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구두를 꼬매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 1,000여명 모이는 교회였는 데 그 중에 3분의 1이 그가 전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을 때에는 하나님이 자기를 아프게 만들었다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욕하고 죽었습니다. 기껏 고생스럽게 하나님을 믿고 지옥으로 간 장로입니다.
생명이란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1972년 10월 12일 적설로 뒤덮인 안네스 산정에서 우루과이 럭비팀 16명이 탑승한 비행기 추락사고가 있었습니다. 비행기도 행발 불명이었고 사람들도 행방불명으로 생사를 알 수가 없어서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런데 70일 후에 한 사람의 생존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우루과이 온 나라가 그 뉴스로 덮였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동료들의 눈위에 있기에 썩지 않는 시신을 뜯어 먹고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연실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오직 고깃덩어리다. 저들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 있다. 땅에 남아 있는 것은 단순한 시체로 우리들이 집에서 먹고 있는 소고기와  다를 바 없다. 이것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이 다음에 수많은 사람들중에 천국에서 생명을 보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가요? 대단한 뉴스거리가 될 것입니다.
또 심리학에서는 구사일생을 의미하는 용어로 생피에리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생긴 유래가 있습니다.
1902년 5월 서인도 열도에서 화산이 폭팔하여 3만명의 주님이 사는 생피에르시를 용암으로 덮어버렸습니다. 당시 그 섬은 섭씨 800도의 수증기속에 있었기에 생물이라고는 풀 한포기 살 수 없었고 조그만 미생 곤충이라도 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하 감옥에 갇혀서 교수형을 기다리던 살인범 오귀스트 시파리라는 흑인이었습니다.
이 기적으로 그는 사면을 받고 <생피에르의 죄수>라는 영화에 출연함으로서 유명하여 졌습니다. 그리고 1929년에 죽을 때까지 생피에르의 감옥속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았다고 들어 앉아 직접 방문객들에게 보여줌으로서 큰 돈을 벌었습니다.
구사일생이 아닌 만사일생으로 알려졌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될 당시의 인구는 일만명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만사일생으로 롯의 가정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1930년 10월 길이 240M나 되는 호화 비행선 R101호가 관광객 54명을 태우고 공중을 날다가 폭팔하였습니다. 160만 제곱 M의 수소가 폭팔하여 불기둥은 수 백미터나 솟았습니다.그 중에도 6명이 살아남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이 다음 천국에서 구원받은 이들은 수만명중에 한 명으로 마지막 구원을 받고 올라온 이들로 대단한 뉴스거리가 될 것입니다. 결론은 구원을 받고 보아야 합니다. 끝은 하늘나라에서 만나야 합니다.

막 설교 준비를 하는 데 조선 일보가 왔습니다. 큰 글자만 보다가 섬짓 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지난 성탄절에 WBO 복싱 챔피언 최 요삼이 복싱경기를 하였습니다. 바로 우리 광진구 구민 체육관에서 인도네시아 헤리아몰 도전을 받았습니다.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최요삼은 경기전에 말했습니다.
<한국 복싱 인기를 되살리기 위하여 상대방을 KO 시키고 이기고 싶다.>
마지막 12 라운드까지 우세하게 잘 싸우다가 강펀치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비틀거리며 경기를 끝냈습니다. 판정승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회생 불능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 생명을 잃으면 무엇합니까?
결론은 구원이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끝이 중요합니다.
결론이 중요합니다.
회개로 끝내야 합니다.
충성으로 끝내야 합니다.
하늘 나라로 끝내야 좋은 끝이 됩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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