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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어떻게 성탄을 지낼까? (마 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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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성탄을 지낼까? (마 2:10~12)

성탄절이란 말씀이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성육하신 날이다. 요한은 이것을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라고 하였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성탄절, 그 성탄절에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람들은 아기 예수 계신 곳으로 향하지 않는다. 권력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사업이 잘 되는 곳으로 향하고 먹고 즐기고 쾌락이 있는 곳으로 향하지만 아기 예수께로 가지 않는다. 성탄절에 이런 반칙이 또 어디 있겠는가?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인데 그분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성탄절이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평화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금번 성탄절에는 놀러만 다니는 신앙의 반칙을 저지르지 말자.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첫 번 성탄절의 모습은 철저히 아기 예수 계신 곳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으로 오는 모습이 왜 성탄을 지킨 모습인가?

1. 그 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탄생하신 분이다. (마1:16)

마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는 42대다. 이 긴 대수를 이어오는 이야기는 신앙의 혈통 이야기이다. 요셉의 아내 마리아에게서 예수라 칭하는 분이 오셨다는 것은 신앙인이 신앙인을 낳고 약속의 자녀가 약속의 자녀를 낳고 믿음이 믿음으로 이어지는 결과로 되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는 핏덩어리로만 보일지 모르나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약속의 씨다. 뱀의 머리를 밟게 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승리자, 구원자이시다.
 

2.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분이다. (마1:18)

마1:18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성탄은 잉태부터가 상식을 뛰어넘는다. 초자연적인 성령의 창조 능력으로 잉태되고 아기가 복 중에 뛰어놀았다. 성령은 초자연적인 일을 한다. 믿음의 사람, 요셉도 이 놀라운 성령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여 무서워하고 성령 사역의 신비로움을 깊이 생각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이 성령 잉태를 믿는다. 마리아도 자기 몸에 일어난 성령 잉태 사건을 믿는다. 이로써 남자 없이도 아기 예수는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고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탄생하셨다.

오늘의 과학은 유전 공학을 통해 암쥐가 혼자서 새끼를 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유전 공학자들의 방법을 우리는 잘 알 수 없으나 난자에 가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임신이 가능하다. 성령님의 역사로 되어진 아기 예수의 탄생, 그것이 우리에겐 초자연적이면서도 상식으로 수용되는 사건일 뿐이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죄 없으신 아기 예수로 오셔야 하기에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탄생하셨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3. 때가 차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탄생하신 분이다. (갈4:4)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유대 땅 베들레헴 작은 고을에 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다. 아무런 계획 없이 우연히 오신 것이 아니고 결정적인 때, 아들을 보내셔야 할 때, 예언을 이루어야 할 때, 인류가 가장 새로운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때, 복음이 퍼져나가도록 언어가 하나요, 도로가 준비되어 있는 때, 영적으로 어둡고 도덕이 무너진 그 때가 차서 하나님이 아기 예수를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첫 번 성탄절로 돌아가 말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는 단순한 핏덩어리가 아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때가 차기를 기다린 그 시간에 아들을 선물로 보내신 임마누엘 사건이다. 하나님이 최선의 때에 나를 아들로 삼으시려고 자기 아들을 선물로 보낸 이 일은 하나님의 섭리가 일점 일획의 실수 없이 진행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놀라우신 예수, 우리와 임마누엘하러 오신 예수가 성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 기묘하신 예수님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엎드리는 것 밖에 없다.

보라. 본문에서도 어떻게 성탄을 지켰는가?

첫째,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였다. (마2:11中)

마2:11中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라고 적고 있다. 여기 경배하는 사람들은 동방 박사들이었다. 그들은 인생의 연륜을 쌓은 학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아기 예수를 핏덩어리로 보지 않는다. 예수가 왕이시기에 그들은 허리를 굽혔다. 아기께 엎드려 경배한다는 것은 겸손의 마음이다. 지금도 베들레헴 교회를 가면 예수님 탄생 교회가 있다. 그 교회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작다. 어느 누구가 순례하러 오든지 서서는 들어갈 수 없다. 반드시 허리를 굽혀야만 된다. 왜 그럴까? 아기 예수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왕이시기에 겸손해야 한다. 겸손히 예배해야 한다.

둘째, 예물을 드리며 아기께 경배하였다. (마2:11下)

마2:11下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하였다.

첫 번째 성탄절의 모습은 단순한 그림이지만 믿음이 묻어나는 풍경이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예배하기 위해 빈 손으로 오지 않았다. “물질이냐, 마음이냐?”라고 묻는다면 물론 예배자는 마음을 드려야 한다. 그러나 예수께 내 마음을 드릴 때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물질이다. 주님도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고 하셨다. 주께 드린 황금, 유향, 몰약 그것은 어느 한 가지도 마음이 담기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마음의 믿음이 담긴 귀중하고 귀중한 것이다.

황금은 아기 예수가 왕이 되신다는 믿음을 담은 예물이다.
유향은 아기 예수가 제사장이 되신다는 믿음을 담은 예물이다.
몰약은 아기 예수가 선지자가 되신다는 믿음을 담은 예물이다.

아기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믿는 믿음, 아기 예수의 구원자 됨에 걸맞는 예물을 마련하여 드리는 믿음, 동방 박사들의 성탄절 모습은 감동이 된다. 최선의 예물을 드리며 아기께 경배함이 우리에게 도전이 된다.
 
셋째, 미리 준비된 예배로 아기께 경배하였다. (마2:1)

마2:1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은 동방에서부터 아기 예수 계신 곳까지 여행을 떠났다. 예수께 경배하려고 출발했고 출발 때부터 세 가지 예물을 준비하였다. 동방 박사들의 예배는 베들레헴에서 급조된 것이 아니다. 자기의 고국을 떠날 때부터, 집에서 떠나는 그 시간부터 이미 준비된 예배로 예배한 것이다.

그렇다. 진정한 예배는 집에서 준비되어야 한다. 예수님 계신 곳, 경배 받으실 교회로 출발하기 전부터 옷, 가방, 자동차, 헌물, 사모하는 마음, 모두가 준비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예수님답게 높여드릴 수 있는 준비된 예배로 출발해야 한다. 거기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축복이 약속된다. 첫 번째 성탄절,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제일 먼저 행해진 행사, 그것은 첫째도 경배, 둘째도 경배, 셋째도 경배였다. 오직 예배가 있고 예물이 드려졌고 준비된 마음과 몸이 드려졌다.

그러면 예배를 드린 후 어떻게 되었는가?

마2: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하였다.

여기서 예배는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을 허락해 줏니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말씀하시고 인도하신다. 동방 박사들에게 하나님은 꿈을 주셨다. 헤롯에게 가지 말라는 강력한 지시를 내려주셨다. 그래서 그 인도하심을 받은 저들은 고국에 돌아가는 길을 다른 길로 선택했다.

인생의 길은 많다. 넓은 길, 좁은 길, 다양한 길이 많다. 그러나 위험을 피하는 길,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길, 고국에 안전히 돌아가는 길, 그 길을 걷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하다. 사람이 보기에는 의의 길이어도 필경 사망의 길이 있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금번 12월 25일 성탄절에 교회로 나와서 예배하고 돌아가라. 괴로워도 힘들어도 예배하라. 시험 성적이 나쁘거나 사업에 부도가 났어도 예배하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에게 새롭고 안전한 길, 지금까지 계획하고 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다. 길을 지시하시는 하나님께 예배하며 인생을 맡기는 것은 형통하고 형통하고 형통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

하이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업이 잘되어 돈을 많이 벌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예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려움이 닥쳐와 1~2년이 지나 몰락하고 말았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천 만원의 돈을 숨겨두고 자기가 감옥으로 가면 가족 생계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기도하고 싶고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교회로 나아가 지난 날 축복해 주신 것을 감사하며 회개하였다. ‘좀더 열심히 예배 생활을 할 것’하며 후회하며 천 만원을 예물로 드리고 싶어서 감사 헌금을 드렸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천 만원을 헌금으로 드린 사연을 들은 교회에서 빚쟁이들을 만나 하이네를 기다려 달라고 간청하게 되었다. 그를 감옥에 넣지 말고 재기하도록 돕자고 하였다. 그리고 하이네는 다시 기회를 얻어 교회에서 모아 준 성금을 기초로 작은 사업을 시작했고 그는 마침내 세계적인 대재벌로 회복되었다.

망하는 길에서 잘 되는 길, 그 새롭고 다른 길은 예배로부터 제공된다. 그 길을 하나님이 지시하심을 믿고 성탄에 나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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