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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관계를 개선하면 행복이 보입니다 (창 1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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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개선하면 행복이 보입니다 (창 13:5-11)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창 13:5-11)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 정복 전쟁에 나서면서 그는 왕궁의 창고를 열어 나라의 재물들을 다 휘하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의 참모였던 퍼디카장군이 "대왕이시어, 왕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이런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희망을 남겨 두었네" 그러자, 퍼티카 장군은 다시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면 저도 대왕의 하사품을 사양하겠습니다. 저도 역시 대왕의 희망에 동참하겠습니다." 알렉산더가 자기의 백성들에게 남기고 싶어 한 것은 자신의 권력도, 넓은 영토도, 재물도, 인기도 아닌,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희망을 품고 새 해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더 행복하고자 하는 희망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보다 더 행복한 미래를 열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행복한 삶을 사는데 있어서 관계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요?  하나님과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친구 관계, 이웃 관계, 교우 관계 등 관계가 중요합니다.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관계가 좋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관계가 깨어지면 불행이 밀려옵니다. 관계가 깨어지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감정도 불쾌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쓸데없는 일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이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이 눈앞으로 다가옵니다.  관계를 소홀히 하고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서 저절로 관계가 좋아지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늘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더 좋은 관계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갈등을 바로 해결해야 합니다.

  좋던 관계도 한순간에 금이 갈 수 있습니다.  건강한 관계를 원한다면 먼저 갈등이 파고 들 틈을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각각 독특하게 지으셨습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기질도 각기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의견도 다양합니다. 방식도 각기 다릅니다. 관점도 서로 다르기 일쑤입니다.  피차 이해가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문제로 서로 다툴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다투고는 서로 미워하며 원망하고  상처를 잘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상대방을 다시는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교인들간에도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갈등관계로 접어들면 예배도 엉망이 됩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의 즐거움도 사라집니다.  어떤 이는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처럼 갈등을 미숙하게 다루면 상처가 남습니다. 후회하기 일쑤입니다.  영육간에 손해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성숙한 사람은 이런 갈등을 바르게 이해하고 슬기롭게 다룹니다. 성숙한 사람이 될 때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감정에 사로잡혀 싸우기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힘씁니다. 내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려고 애씁니다.  갈등해결에 적극적입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완벽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 줍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허물도 아름답게 보여지는 법입니다.  상대방을 억지로 내식대로 고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고 성숙하기 까지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극히 사소한 문제로 심하게 다투고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채 이혼하는 부부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서로 아픈 곳을 찌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갈등이 발생하면 곧바로 슬기롭게 해결해야 합니다.  갈등을 방치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돌이키기 어려울만큼 큰 틈이 벌어지는 이들이 많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족장 아브라함과 롯사이에 일어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친아들처럼 키워주었습니다. 롯을 늘 데리고 다니던 습관으로 인해  약속의 땅까지 데려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와서 지내다보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뿐 아니라 조카 롯까지도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늘 풀이 부족해졌습니다.  물도 크게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느날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 갈등은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친숙한 관계가 완전히 깨어질 수 있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아브라함은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다. 우리 목자들간에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8)'고 제안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좋은 땅을 먼저 고르도록 선택권을 양보했습니다.  어른으로서 먼저 선택할 권리를 주장할수도 있지만 갈등을 피하기 위해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평화를 얻기 위해 손해를 감수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지키기 위해 물질적 손해도 감수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등대신에 평화를 선택했습니다. 물질대신에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감정대신에 참 행복을 택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손해를 채우고도 남을만큼 복을 부어주십니다. 평화를 선택한 아브라함에게 부요함과 존귀와 기도응답과 약속을 모두 내려 주셨습니다.

요셉은 17세부터 30세까지는 밑바닥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구렁텅이와 노예, 감옥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위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과 고난에 처하면 자신의 비참한 위치에 초점을 맞춥니다. 부르짖는 내용도 험악한 곳에서 건져달라는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기도는 간절한데 내용은 위치 변화에 대한 부르짖음입니다. 고난의 상황에서는 너그럽게 봐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편이 나아진 상황에서도 위치에 대한 부르짖음만 있다면 곤란합니다.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위치보다 관계를 점검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창 39:2)고 말씀합니다. 위치는 노예인데 관계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모습입니다.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치는 감옥인데 관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사귀고 관계를 맺는 것은 행복한 삶에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렇지만 맺은 관계를 지켜가고 아름답게 발전시키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다툼의 불씨를 남겨두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입니다. 다툼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길목을 차단합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열과 불화를 피하고 평화와 평안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여러분 가능한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하십시오.  그러나 부득이하여 갈등이 발생했으면 최대한 신속히 그 갈등을 해결하십시오. 갈등해결의 열쇠는 먼저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먼저 화해를 요청하고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먼저 찾아가 웃어주고, 져주고, 양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갈등을 피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일에 적극적이 되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2. 다른 사람의 행복을 도와야 합니다.

  스티븐 코비의 오늘 내 인생 최고의 날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남태평양 키니와타 섬에 자니 링고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링고가 갑자기 사람들로부터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링고는 최근에 결혼했는데, 장인에게 암소 8마리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섬에서는 결혼할 때, 남자가 여자의 아버지에게 암소로 대가를 치르는데 예쁘게 생긴 여자라면 암소 4마리, 조금 매력이 떨어지면 암소 3마리를 줍니다. 기도 없이는 도저히 살기 힘든 여자라면 암소 1마리를 줄 수도 있습니다. 이곳은 뚱뚱한 여자가 인기인데 링고의 아내 사리타는 마른데다 어깨가 구부정한 빈약한 모습인데도 암소 8마리를 주었으니 주변의 비웃음을 살 만했습니다.

  선교사가 링고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선교사는 링고의 아내 사리타를 보는 순간 놀랐습니다. 소문과 달리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의 여인이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턱이 아름다웠고, 빛나는 눈동자를 지니고 있는 당당한 걸음의 멋진 여인이었습니다. 선교사는 링고에게 물었습니다. "아내의 모습이 왜 소문과 이토록 다르죠?" 링고는 말했습니다. "결혼 전에 여자들끼리 모여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 여자가 나는 암소 4마리에 시집왔다고 말하면, 다른 여자는 자기는 암소 5마리에 시집왔다고 자랑합니다. 암소 1마리에 시집온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습니다. 나는 아내 사리타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부심을 가지라고 암소 8마리를 주고 결혼한 것입니다."

  링고는 암소 8마리의 가치를 지닌 아내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장인에게 암소 8마리를 준 것입니다. 그랬더니 부족해 보이던 아내 사리타가 암소 8마리에 걸맞은 멋진 여인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합니다. 특히 자기를 가치있게 여기고, 기대하는 환경에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암소 4마리쯤 되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를 암소 2마리 정도의 수준으로 대해 주면 분노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상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줍니다. 암소 4마리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암소 6마리의 존재로 대우해 주면 그는 감격합니다. 그리고 그 기대와 평가에 걸맞은 존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가치있게 봐주는 눈, 넉넉하게 평가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을 스스로 잘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행복이 멀리 도망갑니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한 젊은 철학도에게 어느 날 참된 지식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당신이 이제까지 섬겨왔던 그 모든 스승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까?"  철학도는 지금까지 자기가 진정으로 배울 만한 철학자나 시인을 만나 보지 못했으나 드디어 플라톤을 만났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후에 플라톤이 이 젊은 철학도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참된 지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지식은 참된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식뿐아니라 성공도, 성취도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습니다. 전도의 열매를 맺는 일도, 효과적으로 제자를 삼는 일도 먼저 사랑의 관계로 발전시키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관계적인 리더'들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미숙할 때 우리의 리더십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따르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행복하게 하고자 성공하게 하고자 섬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람을 보내신 것은 그들이 성공하고 행복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도우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해도 믿어주어야 합니다. 허물이 있어도 감싸주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더 발전하도록 기회있을때마다 칭찬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만남으로 성공의 문이 열린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만남으로 행복의 문이 활짝 열린 사람이 있습니까?  그가 가족이어도 좋습니다.  그가 제자이어도 좋습니다. 그가 교인이어도 좋습니다. 친구여도 좋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괜찮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가리키며 "나는 저분을 만난 것이 큰 축복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분때문에 성장했고 그분의 도움으로 변화되고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 존귀한 삶을 산 사람이요, 하나님께 칭찬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긍정의 힘을 쓴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아버지가 주님곁으로 가신 후에 바로 그 교회에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처음 강단에 섰을 때 얼마나 긴장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성도들이 설교하러 올라가는 오스틴 목사님을 향하여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러자 자신감이 솟아오르더랍니다. '이 사람들이 나의 잠재력을 믿어주고 있구나!' 그래서 최선을 다하여 목회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아버지보다 훨씬 더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오스틴 목사님도 훌륭하지만 그 교인들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왜요?  오스틴목사님은 그 교회에서 어릴때부터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자라나는 과정의 많은 허물과 실수를 알고 있었겠지만 가능성을 믿고 격려와 신뢰로  훌륭한 목사님으로 만들었으니까요.

  여러분 행복하고 싶습니까?  성공하고 싶습니까?  관계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갈등을 그대로 놔둔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먼저 손을 내미세요.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먼저 용서해달라고 그리고 용서한다고 말하세요. 먼저 고맙다고, 잘했다고 말해보세요. 인생이 달라집니다. 운명이 달라집니다. 행복한 미래가 보입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해지기를 축원합니다. 더 행복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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