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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영존하시는 주 (사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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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존하시는 주 (사 9:6)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어떤 젊은이들이 결혼하여 보금자리를 꾸몄습니다. 두 사람은 소문난 잉꼬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30년 동안을 함께 살면서 자기들의 말대로라면 단 한 번도 서로를 미워할만 한 부부 싸움은 한 일이 없었다는 그런 부부였습니다. 아들 하나에 딸 하나를 낳아 곱게 잘 길렀습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주위에서 전도할 때면 부부가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 예수가 끼어들면 재수 없다면서 거절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늘 입버릇처럼 우린 한 날 한 시에 함께 죽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31년째 되던 어느 늦가을 오후 심장 마비로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을 남겨둔 채 남편이 먼저 간 것입니다. 그토록 믿고 의지했고 사랑했던 그녀의 반석이 무너진 것입니다. 남편의 장례식을 마치고 그녀는 충격과 슬픔으로 자리에 몸져 눕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준비해 두었던 수면제를 먹고 남편 곁으로 간다는 유서를 남긴 채 두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가족들에게 발견이 되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눈물을 흘리며 영원한 반석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31년 동안 믿고 의지했던 그녀의 반석이었던 남편은 그를 떠나갔지만 그 대신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님이 그녀 곁으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위로와 화평과 평안함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에 관해서 예언하시면서 한 이름을 '영존하시는 아버지라.합니다.
' '영존함'은 신성에서 유래합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란 그가 성부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존하심은 '아버지'와 관계됩니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본체이시기에 영존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합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출 3:14,15)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합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예흐웨 아쉐르 예흐웨)란 하나님의  자존성(自存性)을 강조합니다. 시작과 끝이 없으신, 언제나 존재하는 자존자(自存者)란 뜻으로 피조된 존재들과는 달리 능동적으로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는 분(I am who I am)이심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사도요한을 통하여 (계 1:8)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합니다.

이는 절대 완전하고, 독립적이시며 우주 안의 모든 인과 법칙을 초월한, 모든 존재의 근거와 기반이 되시는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 말입니다.
더욱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은 존재에 있어서 변함없으시며 그 말씀하신 바를 온전히 성취하신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히 1:10-12)에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히 1: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히 1:12)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합니다.
지극히 비천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본래는 얼마나 존귀하신 분이었는가를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는 우주가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자존하신 하나님과 함께 영광 가운데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요 17:5)에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제자로 자처한 사도 요한은 그가 기록한 복음서의 서두를 이러한 신앙의 신비를 밝히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사도 요한의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같은 위격을 지니신 분임을 함축적으로 설명해 주는 증거입니다.
'말씀'은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이며 하나님의 본질이며 실제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예수라는 유대 청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그 이전에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창세전부터 계셨습니다.

창세전부터 누리시던 영광 가운데 아버지와 함께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까지도 이기신 승리의 왕이며 그 권세와 영광이 무궁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합니다.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의 본체(휘포스타세오스)는 사물의 아래에 있으면서 그 사물을 존재하게하는 실체를 가리키는 말로 하나님 자신을 나타냅니다.
형상(카라크테르)은 '긁어 표시하다'(카랏소)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말로 문자적으로 '표식'이나 '인장'(seal) 혹은 '같은 모양의 복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본체의 본질' 즉 하나님의 본질이 그리스도 안에 그대로 나타나 있어서 그리스도를 볼 때 성부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음을 의미합니다.

(요 14:8-10)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성경의 증거야말로 모든 존재의 기원을 알려 주는 가장 정확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야이심을 분명히 알려 주는 말씀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알려 주시는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존하심은 사역의 영원성에 나타납니다.

(히 5:7-10)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대속적인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셨으며 그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씻어 백성들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히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구속을 힘입어 뒤따라 하나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는 확증이 됩니다(Hewitt).
이러한 그리스도의 희생의 사역이 영원 하시다고 합니다.

(히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을 인하여 제사장직을 감당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였던 반면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므로 뒤를 이을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습니그리스도를 뒤이을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행하신 사역의 완전성과 영원성을 나타냅니다.
영원히는 제사장이 그의 의무를 계속한다는 의미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일시성과는 달리 그의 제사장직이 영구적임과 동시에 최종적임을 말씀합니다.

온전히(에이스 토 판텔레스)는 완전히 '절대적으로'라는 의미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으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구원의 완전성을 뜻합니다.
구원하실(소제인)은 구원'이 미래에 있을 종말론적인 유업이며(히1:14;5:9;9:28)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 그리고 승천으로 말미암아 현재에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구원'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옛 언약의 제사의식의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 새 언약인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자에게 현재 구원에 참여케 하며 동시에 종말론적 구원에의 참여를 보증하십니다. 그래서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간구하심이니라(엔튕카네인)는 '중재하다'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시어 사람들이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할 때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하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요 1:12)십니다.
그의 사역은 일반 선지자들처럼 일회적으로 그치지 않고 영원한 사역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존하심은 사랑에 나타납니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히브리식 사고에서 아버지는 아들과 상관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부양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후원자 보호자 등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 22:21,22)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집의 아비가 될 것이며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욥 29:15-17)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비도 되며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하여 주었으며 불의한 자의 어금니를 꺾고 그 잇사이에서 겁탈한 물건을 빼어 내었었느니라

(시 103:13-14)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따라서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신 메시야는 백성들, 더 넓게는 피조물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을 드러내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고 아껴 주듯이 우리를 위해 사역하십니다.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아버지와 함께 영원하시고 구원하시는 사역이 영원하시며 사랑하심이 영원하신 그리스도는 영존하시는 메시야이심을 확신하고 섬기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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