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탄절] 온 백성에게 미칠 복음 (눅 2:8-14)

  • 잡초 잡초
  • 221
  • 0

첨부 1


온 백성에게 미칠 복음 (눅 2:8-14)

  저는 지난 주간으로 목회를 시작한지 만 25년이 지났습니다.
목회를 하기 전에는, 결혼을 하면 아이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보니까, 아이를 갖고 싶어도 생기지 않아서
안타까워하는 가정이 그렇게 많이 있는 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공수정을 하거나,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봤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를 낳는 가정들도 제법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 안 되는 가정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원하지도 않았고, 전혀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아이가 생겨서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어떤 집은 아들 낳기를 원하는데, 딸만 낳는 일로 안타까운 가정도 있습니다.
제 친구 목사는 맏아들인데, 그렇게 아들 낳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첫째는 딸을 낳았습니다. 둘째로 아들을 보자마자 제게 전화를 했어요.
“야, 우리 아들 낳았다.”
그래서 제가 “그래, 축하한다. 산모도 건강하고?” 그렇게 물었더니
대답이 뭔 줄 아십니까? “나도 몰라” ㅎ ㅎ 세상에…
아들이 그렇게 좋을까요?

  제가 예전에 배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우리 교회에 딸을 여럿 둔 부목사님이 있었는데
그 사모님이 그렇게 아들을 낳고 싶어 했답니다.
그러다가 셋째인지 넷째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또 아이를 갖게 되었고,
힘들게 출산을 했습니다.

사모님이 힘없이 간호사에게 묻습니다.
“뭐예요?”
“아들입니다. 축하합니다.”
그러자 이 사모님, 어디서 힘이 났는지, 손을 높이 들고 큰 소리로 외치더랍니다.
“나도 아들 낳을 수 있단 말이야.” 그리고 기절해 버렸대요. ㅎ ㅎ
얼마나 아들을 기다렸으면 그랬겠습니까?

  지금 유대 베들레헴 땅에 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천사가 양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10절-12절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한 집안에 아들이 태어나도 난리 법석인데
예수님의 탄생은 단순히 요셉 집안의 한 아들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시는 만왕의 왕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Good News 즉 복음’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소식이 없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몇몇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기쁜 소식도 없습니다.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이렇게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갑자기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전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요, 온 땅에 평화를 불러오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하늘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작 이를 알아보고 기뻐하며 경배하는 자들은 목자들 몇 명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관심도, 환영도 받지 못한 채 태어났습니다.

  이 광경을 묵상해 봅시다.
만삭이 된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묵을 집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먼저 방을 차지했다고 산모를 밖으로 내 몰로 있는 인정사정없는 사람들의 모습들
이 추위에 산모가 어디에 가서 몸을 풀 수 있단 말입니까?
인간적인 동정심을 발휘하는 가정이 한 가정만 있었더라도,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가정도, 어느 한 사람도
그들을 위해 방을 비워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생각 밖에는, 남 생각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를 마구간으로 내모는 실제적인 이유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산모를 위해 양보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극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휘황찬란한 성탄의 장식은 점점 더 화려해 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캐롤이 낭만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성탄절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들의 마음속에 성탄의 주인공인 아기 예수께서 계신가요?
그분이 자리 잡을 수 있는 마음의 빈방을 준비하고 있는가요?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크리스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는 어느 날, 이 학교에서는 성탄을 맞이하여
크리스마스 특별 드라마를 준비하기 위해 연극에 등장할 배우들을 모집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는 Ralph라는 4학년 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연극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연극에 출연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고,
생각도 민첩하지 못한 일종의 정서 장애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장애는 심했지만 그래도 Ralph는 연극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Ralph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배역을 하나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선생님은 Ralph에게 가장 적합한 배역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Action이 별로 없고, 대사도 가장 적은 배역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관 주인의 역할이었습니다.
Ralph가 맡은 역할은 요셉이 아기를 밴 마리아와 함께 여관 문을 두드렸을 때,
한마디 말만하면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방이 없어요’  이 말을 세 번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대사 정도는 Ralph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매일 Ralph에게 연극 연습을 시켰습니다.
Ralph도 ‘방이 없어요’라는 한마디니까 또박또박 발음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드디어 연극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침내 요셉이 마리아를 데리고 여관 앞에 도착하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마리아를 부축하며 요셉은 다급히 여관 문을 두드립니다.

드디어 여관 주인이 나왔습니다.
Ralph는 나와서 또박또박 연습한대로 말을 했습니다. “방이 없어요.”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가지 않고 여관 주인에게 한 번 더 매달렸습니다.
“그럼, 큰 일 났는데요. 제 아내가 곧 아기를 낳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에게 방을 줄 수 없나요?” “방이 없어요.”
Ralph는 아주 또박또박 맡은 배역을 잘 해나갔습니다.
요셉이 마지막으로 사정합니다. “이렇게 사정하겠습니다.

이 추운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곧 아기가 나올 것 같은데요. 부탁드립니다.
저희에게 방을 좀 주세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Ralph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요. 제 방으로 오세요.”
Ralph는 연극의 약속을 깼고 그 이후의 내용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러나 Ralph의 그 말 뒤에 숙연한 감동이 물밀 듯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면요. 제 방으로 오세요.”

  오늘 우리에게는 Ralph와 같은 마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런 마음이 없기에 주님은 오늘도 말구유에 나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너나 할 것 없이 따뜻한 안방은 다 내가 차지하고 있으니
주님이 나실 방은 차가운 마구간 밖에 없지 않습니까?
누가 내 방을 내어 드릴 것입니까?

  주님을 모실 빈방, 그것은 비어있는 방이 아니라 내가 쓰는 방이어야 합니다.
내가 쓰고 남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소중한 방이어야 합니다.
이 방은 장소만 아닙니다. 시간도 되고, 물질도 됩니다.
나를 위해 시간을 다 쓰고 난 다음에
남는 시간이 있으면 주님께 드리는 것 아닙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 그 시간이 바로 주님께 드려야 할 시간입니다.
물질도 마찬가지. 주님께 드릴 물질은 내가 쓰고 남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질, 그것이 바로 가장 소중한 주님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주님을 마구간 말구유로 몰아내서는 안 됩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자리, 나의 가장 소중한 시간, 거기에 모셔야 합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배합을 열어서 그분께 드려야 합니다.
그분을 최고의 귀빈으로 모셔 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탄생은 바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