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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생명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자 (사 61:1-3, 요일 5:11-12, 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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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자 (사 61:1-3, 요일 5:11-12, 요 7:16-18)

2008년(戊子年)이 시작되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2008년 한해가 여러분에게 생명을 추구하며 복된 생활을 누리는 한해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 영국의 런던 타임즈가 행복의 무게를 재어 보고, 사람들이 느끼는 큰 행복 세 가지를 실었다.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바닷가에 놀러가서 모래성을 다 쌓은 다음에 너무 좋아서 웃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이라고 대답했단다. 두 번째는 아이를 다 씻기고 크림을 발라주고 나서 너무 좋아서 웃는 엄마의 사랑스러운 얼굴이다. 세 번째는 불치병 환자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뻐서 웃는 의사의 얼굴이다. 이 세 가지가 런던 사람들이 그리는 행복의 무게이다.

아주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행복의 삶 같았다. 세 주제가 모두 다 생명의 아름다움, 생명의 우아함, 생명의 축복이다.

2008년에 여러분은 어떤 무게를 가진 행복을 꿈꾸고 싶습니까?
어떤 얼굴로,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께 대답도 주시고, 서로 행복한 얼굴을 나누고 싶으신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하나님이 관리하셔서 우리에게 복된 삶을 영유케 하시는 것이라고 성경에 쓰여 있다. 그런데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재능, 연구, 생산이 생명의 축복을 주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한 해 동안 저는 너무나 많은 희망과 절망, 최고와 최하를 경험하는 극도의 혼란 속에 살았다. 제가 다른 나라 이야기를 한번 드리려고 한다. 1909년 독일의 화학자 프릿츠 하버라는 사람이 공기에서 질소, 암모니아를 분리하는 발견을 했고, 8년이 지난 1917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의 발원이었다. 이 분은 공기에서 암모니아를 빼내서 평화 시에는 비료를 만들어 농사를 짓게 하고, 전쟁 시에는 화약을 만들어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분은 평소에 과학만이 아니라 어떻게 인류에 공헌할까를 고민했고 학자이지만 독일정부에 들어가서 열심히 애국적인 일을 했다. 일을 하면서 “평화 시에는 인류를 위하여, 전쟁 시에는 조국을 위하여”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이때에는 히틀러가 나치당을 만들어서 정권을 잡을 시기였다. 결국 1933년부터 나치통치가 시작되면서 유태인들을 색출해 유럽전체 600만 정도를 잡아다가 아우슈비츠 등을 비롯한 여러 포로수용소에서 샤워방에 넣고 독가스샤워를 통해서 몰살시킨 결과를 낳았다.

과학의 위대한 발견이 선한 손이 아닌 악인의 손에 들어가면서 ‘인류를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가 아닌 ‘반 인류를 위하여 조국의 비 양심을 위하여’ 매우 악한 목적으로 쓰여 졌던 것이다. 프릿츠 하버는 1933년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자 자기가 속해 있는 국제과학연맹에서 추방당하고 겨우 자기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 건너가 있다가 그 다음해 무슨 이유인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창세기의 말씀이다.

오늘 성경말씀들을 보아도 인간은 못한다가 아니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나 성경은 할 수 있다고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무한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무한대의 가능성을 있는 대로 전부 써버려야 하는 의무는 가지고 있지 않다. 훌륭한 과학이 만들어내는 발견도 중요하지만, 발견된 것을 어떻게 하나님의 목적으로 선하게 쓰도록 우리가 노력할 것인가? 하는 것이 생명의 윤리, 생명의 신앙이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과학의 순수성이나 진실성 못지않게 과학의 선한 활용이 중요하다는 것이 우리가 그동안 배운 교훈이다,

제가 목회자로서 병문안도 가고 위로하러 가기도 하는데, 제일 안타까운 것은 죽음을 앞에 둔 환자가 너무 아프고, 견디기 힘들어서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아픔, 분노, 좌절, 희망, 절망을 모두 담고 있는 절규하는 모습이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저를 데려갈 때가 되면 고통 없이 그냥 데려가십시오. 라고 기도했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인간적인 기도이다. 부르시면 가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비규환 같은 절규 없이 내가 고통 없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소박하지만 인간적인 욕구이다. 그러나 한편 고통이나 아픔은 왜 생기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유전자가 고통이 있는 것은 아닐 거다. 그러나 신경, 감각, 느낌 소위 파토스를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는 그것이 미생물이라 할지라도 고통과 아픔을 느낀다.

특별히 인간은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든지 감각도 있고 파토스도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던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하면서 살아간다. 고통, 아픔이 있다는 말 자체가 살아있다는 말과 같다. 죽은 자가 어떻게 고통을 알겠습니까? 그 고통은 생명을 만들어내는 고통이다. 생명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반드시 고통이라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어렵지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이다.

오늘 이사야서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상한 마음 있는 사람은 싸매어 줌을, 포로 된 아픔에는 자유라는 부활을, 갇힌 자에게는 석방을, 슬퍼하는 자에게는 위로를, 슬픔대신에 기쁨의 마음을, 괴로운 마음대신에 기쁨의 찬송을 주는 새로운 생명의 창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명, 우리와 함께 사는 생명 관계를 맺고 사는 생명, 새로운 기쁨의 생명을 창출하는 기쁨은 이렇게 아픔을 통해서 나온다.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의 아픔을 통해서 생겨났다. 그 십자가는 아픔이 아니고, 부활을 만들어 내는 당연한 과정이다.
이 당연한 과정 속에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부활을 십자가라는 그릇에 담았다.

부활이 생명이라고 하면 그 생명은 십자가라는 아픔, 좌절, 고뇌와 죽음이라는 그릇에 담겨서 우리에게 왔다. 생명을 창출하고 생명이 창출하는 기쁨 속에 찬양을 부를 수 있는 일, 이것이 하나님의 진실이자 인간의 진실이다.

오늘 이사야서는 아주 재미있는 은유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대들의 생명은 하나님이 스스로 택해서 땅에 나무를 심고, 그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고 잎사귀가 자라고 열매를 맺게 한다. 생명은 기적처럼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무를 심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고 하나님이 생명주심을 감사하게 하는 것이다.

저는 ‘인간은 왜 태어나면서 그냥 열매를 맺어버리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긴 세월을 지나는가?’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나님의 기적은 봄, 여름, 가을 지나고 뿌리만 겨우 유지하는 추운 겨울의 고통을 감내해야 다시 봄을 주시지만 겨울 없이는 봄을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무에서 그냥 열매를 맺는 기적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과정을 통해서만 마지막 열매를 주신다. 오늘 성경에서는 그 열매를 하나님의 의의 열매라 한다.
그 의란 하나님께는 영광, 모든 인간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생명이다. 아프지만 반가운 생명이고 힘들지만 위로받는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가 이 생명을 살 수 있습니까? 성경말씀은 살 수 없다고 하신다.

이사야서 55장 1절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먹되 돈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라.”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말로 해석해 보자. 우리는 침대를 돈 주고 살 수 있다. 그러나 잠을 살 수는 없다. 책을 사서 읽을 수는 있으나, 책 속에 담긴 지혜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약은 살 수 있으나, 건강은 못 산다. 집은 사서 아름답게 꾸밀 수 있지만, 가정은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음식은 사서 먹을 수 있으나, 맛은 돈 주고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은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잠이요, 지혜요, 건강이요, 가정이요, 맛이요, 멋이다. 이것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 하면 돈도 지불하지 않고, 값도 지불하지 않고, 포도주와 젖을 살 수 있다. 즉 생명을 살 수 있다.

올 한 해, 하나님이 심어 주신 나무에서 생명을 맺어가는, 확대해 가는, 진보하고 발전해 가는 행복을 만들어 가자.
오늘 주시는 생명의 말씀은 이렇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고 신실하시다. 그 분의 약속은 진실하시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단다. 단,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불의를 일삼는 인간에게는 임마누엘 하지 않으시겠단다. 부도덕한 인간에게 도덕적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사랑의 하나님이 미움이라는 그릇 속에 담길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임마누엘은 변치 않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담을 수 있는 우리 인간그릇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과 일치가 되어야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임마누엘은 열려 있다.

열려 있는 임마누엘의 빛을 그릇된 우리가 함께 행복하여 받을 수 있으면 그것이 금년의 축복이다. 진실된 축복을 받고 싶으면 하나님의 임마누엘의 뜻을, 그분의 구원의 뜻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바꾸어 보자. 하나님 뜻을 담을 수 있도록 우리를 바꾸자.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조건이요, 축복의 은총이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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