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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냐 (마 20:1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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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냐 (마 20:1 ~ 16)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에 천국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을 불러들이는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포도원에 흔히 있는 일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포도원 주인은 많은 종들과 품꾼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품꾼들에게 줄 무한한 데나리온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의 포도철은 9월 말경입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곧 장마가 오기 때문에 이 기간에 포도원은 1년 중 가장 바쁜 때입니다. 따라서 이 기간에는 일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집주인과 청지기 그리고 품꾼은 각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 수종드는 종들은 이 지상교회 운동에 사역하는 청지기들입니다. 그리고 초청받은 일꾼들은 구원받기로 작정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비유의 핵심적 사상은 하나님 주권 사상입니다.
로마서 8장 29-30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8절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Ⅰ. 주인이 장터(세상)에서 포도원(교회)으로 일꾼(성도)을 부르심이 주권적입니다.

본문 20장 1-3절에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생산력이 있고 풍성한 수확이 있는 포도원을 천국 혹은 교회에 비유했습니다. 여기 장터( )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장터는 각 지방의 특산물이 모여서 활발한 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특별히 여기는 고용을 원하는 실업자들의 인력시장이기도 했습니다. 여기 시장에는 남, 여, 노, 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는 장소입니다. 시끄럽고 분주하고 무엇인가 초조하고 긴장된 곳입니다. 아무런 생의 의미나 목적이 없이 서성이고 있는 유희의 광장입니다. 방탕과 부정과 호색이 난무하는 실로 살풍경한 곳입니다. 여기가 바로 하나님이 없는 불신자의 세상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포도원에 일꾼으로 보내시고 계십니다. 포도원은 바쁜 곳입니다. 포도 농사는 때를 따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지체하면 포도 농사를 망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쁜 포도원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소망이 있는 곳이요 풍성한 결실이 있는 행복한 농장입니다. 여기에 『품군』은 이 비유의 수신자였던 12사도를 가리키지만 오늘날 모든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야 합니다. 오늘의 성도는 죽음의 지옥에서 영생의 천국으로 초청받은 자들입니다.

포도원에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 생활입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에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곧 생명의 떡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포도원에서 하는 일은 자기가 받은 이 땅의 달란트를 가지고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 즉, 교회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7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아들을 믿어 구원 얻을 자는 어쩔 수 없이 오늘의 포도원인 교회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Ⅱ. 주인(예수)이 포도원(교회)으로 일꾼(성 도)을 부르시는 시기가 주권적입니다.

주인이 아침부터 장터에 나가서 일꾼을 불렀습니다. 당시에 제 삼시는 오늘날 시간으로는 오전 9시가 됩니다. 주인은 제 육시(12시), 제 구시(오후 3시), 제 십일 시(오후 5시)가 될 때까지 온 종일 불렀습니다.

1) 창세 이후로 예수 재림시기까지일 수도 있습니다.
인류의 시작부터 이 세상 끝 날까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오실 예수에게로 초청받았습니다. 신약의 사람들은 오신 예수에게로 초청받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이나 신약의 사람들이나 다 같이 예수에 의해서만 포도원(교회)으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포도원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주인의 허락 없이는 포도원(교회)출입이 불가능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행 4:12).
사도행전 13장 48절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2)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구원의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아침 일찍이 주인과 한 데나리온의 삯을 받기로 약속하고 들어간 일꾼들은 유대인 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이라고 하는 이유 때문에 항상 복음의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먼저 온 자들입니다(마 20:8-16). 그러나 포도원에는 장터에서 각각 제 삼시, 제 육시, 제 구시, 제 십일시에 들어온 자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데나리온씩의 품값에 나중에 포도원으로 들어온 자들입니다. 이것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제외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방인들의 구원의 때를 의미합니다. 종족적인 구원과 시기적으로 각각 다르게 임하는 구원의 때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나중 온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6절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1장 25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충만』(플레류마, )은 완전을 가리킵니다.

①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의 수를 말합니다. 그 시기는 예수 재림의 때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②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는 로마서 11장 26절에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온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유대인의 충만한 수를 말합니다. 즉 선택된 유대인 전체의 수와 모든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수 전체를 말합니다.

3) 한 개인이 예수를 영접하는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1) 이른 아침에 초대받은 교인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축복받은 모태 교인입니다. 이들은 장터에서 놀다가 초청받은 자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신자가 된 자들입니다. 이를테면 개인의 이성작용과 판단이 있기 전에 모태에서부터 신자가 된 유아세례 교인의 경우입니다.

(2) 제 삼시 즉 오전 9시에 초청받은 교인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나그네 년 수를 70, 혹은 80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교인은 주일학교에서 S.F.C.(중,고,대)까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를 이른바 사춘기(思春期)라고 합니다. 이때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초청받은 성도는 자기의 생의 뿌리를 가장 바람직한 곳에 탁근시킨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옛 사람들은 이 시기를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나는 열 다섯 살에 배움을 두었다"는 말입니다.

(3) 제 육시 즉 12시에 초청받은 교인이 있습니다.
이 시기는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방향 감각을 잘못하면 놓치기 쉬운 변화무쌍한 시기입니다. 30대와 40대의 인생일 수 있습니다. 취직과 결혼과 이 세상의 삶을 가장 자신 있게 설계할 때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도 함께 하는 시기입니다. 가끔 삶의 고독을 씹으면서 자기의 야심을 품고 끝없는 도전의 세계를 동경할 시기입니다. 인생의 가장 완숙한 성년시기를 주님 앞에 드리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옛 사람들은 이 시기에 三十而立(삼십이립) "서른 살에 뜻을 세우고",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 "마흔 살에 미혹되어 흔들림이 없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4) 제 구시 즉 오후 3시에 초청받은 교인입니다.
이 시기는 인생의 황혼기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모든 것들이 자신들로부터 멀어지는 자각증상에 몸부림치는 시기입니다.
지난 세월의 덧없음에 눈물지으며 살다가 포도원으로 초청되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옛 사람들은 이 시기에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 "쉰 살이 되면 하늘의 명을 알고",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 "예순에 귀가 거슬림이 없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5) 제 십일시 즉 오후 5시에 초청받은 교인입니다.
이 시기는 인생말년에 나그네 년 수의 마지막 코스에서 초청받은 성도일 것입니다. 참으로 오랜 세월동안 장터에서 살았습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영혼의 빈궁함도 잊은 채 장터에서 못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할 수 없는 죄인을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만난 소망입니다. 인생 마지막에 만난 행복입니다.
옛 사람들은 이 시기에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일흔 살에 내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어야 된다"라고 했습니다.


Ⅲ. 주인이 일꾼들에게 품값을 지불하는 것도 주권적입니다.

품삯을 지불한다는 말은 곧 구원을 말함입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청지기에게 품꾼들을 불러서 나중 온 자들로부터 삯을 주라고 했습니다. 맨 마지막 십 일시에 온 사람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습니다. 이때 먼저 온 자들은 자기들은 더 많이 받을 줄 알고 기대에 차 있었는데 나중 온 자들과 똑같이 받게 되자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수고와 더위를 종일 견딘 우리와 어떻게 품삯이 같을 수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본문 20장 13-14절에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허락하심도 주권적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포도원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동일한 구원의 효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비유에서 나타난 전체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값없이 품꾼들에게 주시고자 했던 구원 자체를 상징합니다.

품꾼의 입장에서 보면 먼저 온 자들과 한 데나리온씩 약속했다고 하더라도 공평하지 못하게 나중 온 자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먼저 지불했다면 상식적으로 볼 때 불합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반드시 차등으로 품삯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 정당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품꾼과 주인의 특수한 노동계약의 조건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지불되는 품삯은 화폐단위가 아니라 주인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것은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포도원에 들어온 자들 모두에게 주는 한 달란트 즉 구원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주님의 것입니다. 구원은 주님의 주권적 영역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감받은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생각은 인생들의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인생들의 생각보다 높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했습니다.
인생들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양식을 구하는 일에 참예하도록 이 시간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3-4절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추수 때에 추수할 일꾼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으면 구원을 선물로 받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주권을 마치 폭군처럼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이 주권은 파괴적으로 사용하는 주권이 아닙니다. 품꾼들을 착취하거나 괴롭히는 주권이 아닙니다. 여러 품꾼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일에 사용되는 주권입니다. 이 같은 구원의 은혜는 모든 택한 자들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2절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주인과 품꾼간에 약속된 계약입니다. 그러나 상급은 다릅니다. 상급은 행함으로 각각 다르게 얻어지는 것입니다.

포도원에 들어와서 어떻게 일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해야 합니다. 일하지 않는 일꾼은 일꾼이 아닙니다. 포도원에 들어온 우리 모두는 이제 일하는 일꾼이 되어서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립시다.
잠언 25장 13절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0장 26절에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학개 2장 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는 말씀은 주인의 말씀이지 품꾼의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는 주인이 할 말과 행동을 품꾼이 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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