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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브솔 시냇가 (삼상 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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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솔 시냇가 (삼상 30:1-17)

  언젠가 어떤 여성이 강아지 한 마리를 끌고 산책하는 걸 보았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 한 마리를 질질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끔찍하게 더운 날이었는데, 강아지는 다리가 굳어 버리기라도 한 듯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곧 지글거리는 포장도로 옆에 있는 잔디밭으로 훌쩍 뛰어 들어가더니, 아예 배를 깔고 엎드려 버렸습니다. 주인은 줄을 거칠게 당겨 댔습니다. 얼마나 승강이를 하던지 마치 무슨 트레일러라도 끄는 것 같았습니다. 더위에 지친 강아지는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한번 주저앉고 나니 일어날 기력도 없었습니다. 어디 강아지뿐이겠습니까? 누구나 ‘바닥’에 주저앉는 순간이 있습니다.
“한 건만 더 처리하고 가게나.” 상사가 지시합니다.
“하루 더 야근할 거야.” 남편이 통보합니다.
“심부름 할게 하나 더 있는데.” 엄마가 말합니다.
“한 번만 봐주라.” 친구가 애원합니다.

딱 한 번인데, 그냥 들어주면 되지 그까짓 게 뭐 대수냐고 생각하십니까? 여태까지 줄곧 처리하고, 참고, 해치우고, 용서하고, 봐주었던 까닭에 더 이상 ‘한 번만’이 안 통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친 강아지마냥 주저앉고 만 것입니다. 이웃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무얼 원하시든 이젠 알 바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금년 한 해 동안에도 얼마나 힘들게 살았습니까? 사람이나 물질에 질질 끌려 다니지는 않았습니까? 수없이 주저앉았고, 주저앉고 싶을 때는 없었습니까? 좌절하고 포기하고 고통스러울 때도 얼마나 많았습니까? 어느 누구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은 결코 쉽거나 만만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비틀거리고 컥컥하고 있습니다. 포기하고 쓰러지기 직전입니다. 어느 누구를 붙들고 “당신은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아픔과 한숨과 눈물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불쌍한 것입니다. 알고 보면 모두가 측은합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은 천성을 향하여 달려가는 영적 투사의 길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 과정에서 패배와 좌절, 도약과 승리를 맛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패배에서 승리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600명의 용사들이 블레셋 전선에서 돌아오자마자 말할 수 없이 참혹한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아말렉 침략자들이 온 마을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성은 불탔고 아내와 자녀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다윗과 용사들은 울 기력도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 어려운 순간에 다윗이 어떻게 하여 위기에서 승리를 쟁취하였는지 말씀을 통해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본문 6절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한 것은 재난의 책임이 전적으로 다윗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의 말을 좇아 시글락을 비워 둔 채 군사들을 모두 북쪽으로 이동시키는 등, 백성들의 보호자 혹은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본 것입니다.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군급이란 답답하고 곤란하다는 의미입니다.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했을 때 느끼는 답답한 감정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난관에 대처하는 다윗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휘하 군사들을 회유하는 설득이나 구구한 변명 대신에 하나님께 그 어려운 문제를 맡기고 그분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바라는 신앙인의 모습을 지켰습니다. 다윗은 결코 당황하거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더욱 하나님께 집중했고 의지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환난을 당할 때 사람보다 먼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해야 합니다. 신앙인이 불신자보다 월등한 점은 고난에 처했을 때 환경과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그 상황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만 소망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위로를 제공하십니다. 하나님이 힘이요 용기가 되십니다.

  미국 어느 가구점에 존이라는 청년이 취직을 했습니다. 주인은 술집에도 잘 다니고 나이트  클럽에도 잘 다니는 아주 사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존은 그런 곳은 가지 않고 교회만 열심히 다녔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그를 불러서 남자란 술도 먹고, 춤도 추고, 그렇게 세상을 즐기며 살아야 하는 거라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존은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그런 생활은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2년이 지난 후 주인이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다. 그의 부인이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자고 했더니 주인이 목사님 대신 존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존은 주인에게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 받고, 구원함을 받고, 참 기쁨을 얻는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주인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존에게도 잘못했던 일을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노후에 살려고 마련했던 별장을 존에게 주고, 그 동안 경영하던 가구점도 맡아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존은 하나님의 은혜를 잘 관리함으로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고, 여러 가지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중심으로 살고, 교회 생활 잘하면 평생 사는 날 동안 우리의 자유를 빼앗을 자가 없고, 우리의 축복을 가져갈 자가 없습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거룩한 집입니다. 소나 양에게 우리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교회라는 우리가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평안을 누리고, 쉼을 얻고, 힘을 얻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품입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나오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술 먹고, 가정이 파괴되어 불행한 삶을 살던 분들도 교회만 나오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도 우리의 영원하고 참된 힘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8편 1절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힘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여호와께 물어 보았습니다

  본문 8절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 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다윗이 하나님께 질문한 것은 구체적으로 포로된 가족들을 구출할 수 있는가 입니다. ‘미치겠나이까’는 상대를 공격하여 그들의 소유물까지 자신의 것으로 삼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난감한 상황에서 과연 아말렉을 추격하여 그들의 가족을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사실 이런 비극이 다윗과 그의 백성에게 발생하게 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보다 자신의 판단을 믿고 행동할 때 언제나 실수와 재앙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이 승리를 향한 지름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비록 늦었어도, 실패했어도, 고난이 있어도 지체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다윗의 질문에 하나님께서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니라”고 분명하게 응답하셨습니다. 새롭게 신임을 얻은 다윗은 병사들의 분노가 적을 향하도록 방향을 다시 설정했습니다. 일행은 아말렉 군사들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용사들은 원정길에서 뒤집어쓴 먼지를 털어버리지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다윗에 대한 노여움이 완전하게 가신 것도 아닙니다. 아말렉 군대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식구들이 잡혀 가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포기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육백 명 가운데 이백 명은 뒤에 처지고 말았습니다. 브솔 시냇가에 도착한 일행은 말에서 내려 걸어서 물을 건넙니다. 피곤한 몸으로 진창을 걷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간신히 맞은편 풀밭에 오르자 다시 전진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이백 명은 움직일 줄 모릅니다. “더는 못 가겠어. 자네들끼리 가시게.” 가족을 구하러 가는 일마저 포기했을 정도니 얼마나 피곤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몇 시간 전만해도 용사들의 각오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피로에 짓눌러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4대 비극 중에 ‘맥베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주인공 맥베스 장군은 출세, 영광, 성공에 집착하다가 결국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는 손에 묻은 피를 보고 “지워져라, 이 피야. 내 손은 아직 피비린내에 젖어 있다.” 라고 애절하게 말합니다. 맥베스도 급기야는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습니다. 맥베스가 시의에게 “그대는 나의 병을 시원하게 고칠 수 없는가? 내 마음의 고민을 이 기억에서 뽑고 내 가슴에 가득 찬 공포를 뿌리 뽑을 수 없는가?”라고 절규합니다. 그때 시의가 “그것은 병자 자신이 고쳐야 합니다. 나 같은 의사는 고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병을 고칠 이는 하나님분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더 올라가려는 생각, 남을 죽이고라도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타락한 인간이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해 동안 무엇을 얻으려고 방황하셨습니까?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더러운 것은 다 씻어내고 깨끗한 심령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능력의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힘 있게 믿고 나아가는 복된 발걸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울왕이 버림받고 죽게 된 이유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엔돌의 무당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울과 세 아들이 함께 죽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묻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응답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랑 받고 응답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본문 15절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에게로 인도하겠느냐 그가 가로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붙이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으로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이 군대에게로 인도하리이다"

  아울러 브솔 시냇가에 주저앉은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태도를 결정해야 합니다. 호되게 꾸짖어야 할까요? 창피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일단 휴식을 허락하되 시간제한을 두어야 할까요? 다윗이 한 대로 하는 건 어떨까요? 다윗은 지친 병사들을 쉬게 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병사 사백 명을 데리고 다시 추격에 나섰습니다. 일행은 황량한 벌판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모래언덕 하나를 지날 때마다 실망이 차츰 커져만 갑니다. 아말렉 군대는 훨씬 전에 지나갔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윗은 결정적인 전기를 맞습니다.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우고”(삼상 30:11)

  이 이집트인은 어느 아말렉 사람의 하인이었습니다. 병들어 몸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자, 주인이 굶어죽든 말든 알아서 하라며 광야에다 버리고 간 것입니다. 다윗 일행은 종에게 무화과와 건포도 같은 음식을 먹이고 잘 돌봐서 기운을 추스르게 한 뒤에, 이전에 섬기던 무리에게 안내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인은 기꺼이 앞장섰습니다. 다윗과 용사들은 매가 쥐를 낚아채듯 삽시간에 적진을 휩쓸었습니다. 이스라엘 여인과 아이들도 모두 구출했습니다. 무수한 아말렉 군사들이 전사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군사들은 노략질한 값진 물건들을 내버리고 냅다 도망쳤습니다. 다윗은 희생양에서 영웅이 되었습니다. 온 백성이 다윗의 이름을 연호하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속이 씁쓸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 사람의 처자만 주어서 데리고 떠나게 하라”(삼상 30:22). 구조된 아내들은 화가 잔뜩 났습니다. 구조대원들의 마음은 원망으로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쉬고 있던 이백 명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제 다윗이 어떻게 좌중을 진정시키는지 봅시다.

  “내 형제들아, 그렇지 않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셔서 우리를 치러 온 군대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너희가 하는 말을 누가 듣겠느냐? 싸움에 나갔던 사람의 몫이 있듯이 남아서 물건을 지키던 사람도 그 몫이 있는 것이니 모두가 똑같이 나눠야 한다(삼상30:23-24)”

  다윗이 무어라 표현했습니까? “남아서 물건을 지키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백 명 가운데 누구도 남아서 물건을 지키겠다고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쉬고 싶어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뒤에 처진 이들이 쉰 게 아니라 일을 한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브솔 시냇가에 머물렀던 지친 병사들의 입장을 존중해 준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브솔 시냇가에 머물고 있습니까? 그럼 알아 둬야 할 게 있습니다. 쉬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원형입니다. 우리가 피곤해서 싸우지 못할 때, 그분이 대신 싸우십니다. 갈 수 없는 곳에 대신 가십니다. 우리가 두 손 놓고 앉아 있어도 화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막6:31)하고 말씀하십니다.

브솔은 안식을 줍니다. 더불어 브솔 시내는 교만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다윗은 스스로 잘나서 승리를 얻은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만난 이집트인이 앞장서 길을 안내해 준 덕분이었습니다.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닙니다. 승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가 아니라 선물이었습니다. 그런 처지인데, 어떻게 지쳐서 주저앉은 이들을 비난하겠습니까? 누구도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결코 누구도 멸시해서도 안 됩니다. 겸손하고 남을 더욱 높이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이고 성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해 동안 믿고 봉사하시느냐고 수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시고 축복하십니다. 여호와를 힘입읍시다. 여호와께 물읍시다. 승리합시다. 브솔 시냇가의 교회와 인생이 되어 함께 위로하고, 나누고, 섬기고, 사랑하는 넉넉한 생애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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