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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신실하신 하나님 (왕하 8: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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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하신 하나님 (왕하 8:16~27)

오늘 본문은 24절에서 보듯이 남왕국 유다의 왕 여호람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 사실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읽는 것은 구약성경의 역사서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눈에 익숙한 문구들이지만 본문의 전후를 살펴보면 이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의 왕정시대 전체에서 가장 어둡고 피비린내 나는 시대였음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연발한 무섭고 끔찍한 사건들의 중심에 님시의 아들 예후라는 자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후는 아합의 아들 요람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으며 아람 군대와 맞서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선지자 엘리사가 자기 제자 중 하나를 보내 비밀리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운 자입니다(왕하9:1-4). 이렇게 엘리사에 의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예후는 요람을 배반하고 그의 가문을 멸절시키는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즉각 착수합니다. 그는 먼저 요람이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입은 부상을 치료하려고 돌아와 있었고 유다 왕 아하시야도 병문안 차 요람을 보러 내려와 있던 이스르엘로 병거를 몰고 갔습니다(왕하9:14-16). 요람과 아하시야는 각각 병거를 타고 나아가 예후를 맞았지만 그와의 대면 순간 그가 반역했음을 알아채고는 돌이켜 도망치기 시작했으나 요람은 예후가 쏜 화살이 심장을 관통하는 바람에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고 말았습니다(왕하9:21-24). 이를 본 아하시야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그 또한 죽이라는 예후의 엄명을 받은 부하들의 추격을 받아 므깃도에서 죽고 말았습니다(왕하9:27). 한 날에 이스라엘과 유다의 두 왕이 다 예후의 손에 죽고 만 것입니다.

  이스르엘에서 돌아온 예후는 아합의 아내였던 이세벨 또한 왕궁을 지키던 내시들로 하여금 창밖으로 그녀를 내던지게 함으로써 처참한 죽음을 맞게 하고는 그 피가 사방에 튄 그녀의 시체를 밟았습니다(왕하9:30-33). 예후의 아합 가문 멸문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에 있던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을 위협하는 편지를 써 보내서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자 칠십 명을 붙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베어 광주리에 담아 자기에게로 보내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후는 아합의 집에 속한 모든 자와 그의 귀족들과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여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않았습니다(왕하10:1-11, 17).

특히 그는 속임수를 써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진멸하는 일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뭇 백성을 모으고 말하기를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며 바알을 위하는 거룩한 대회를 열 것을 공포했습니다(왕하10:18-20).

이에 따라 온 이스라엘에서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모여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 신당을 가득 채우자 예후도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무리가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신당 밖으로 나와 대기시킨 팔십 명의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엄히 명하기를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고는 제사가 끝나자 그들을 들여보내 바알의 제사장들이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다 칼로 죽여 밖에 던지게 했던 것입니다(왕하10:21-25).

  예후는 이스라엘의 왕족만 진멸시킨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는 이스라엘 왕 요람처럼 유다의 왕 아하시야도 병거를 탄 채 도망치다 죽게 했지만 그만이 아니라 그의 형제들까지 모조리 죽이는 일을 자행했습니다. 이스르엘에 머물며 사마리아에 있던 70명의 왕자들과 귀족들과 왕자들을 교육하던 자들을 다 진멸하게 한 그는 사마리아로 가는 도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죽은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예후는 그들에게 “너희는 누구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하자 예후는 부하들로 하여금 그들을 사로잡게 하고 사십이 명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이게 했던 것입니다(왕하10:12-14). 예후는 분명 아하시야를 죽게 한 자기의 행위에 대한 유다왕가의 복수를 염려하여 그 뿌리를 잘라버리려는 의도에서 그랬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스라엘의 왕가를 멸문시켰을 뿐 아니라 유다의 다윗 왕가마저 문을 닫을 뻔 한 도륙을 자행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다윗의 왕가가 실제로 멸문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풍전등화 같았던 상황에서 어떻게 다윗의 왕손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계속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스라엘 왕 요람의 병문안 차 이스르엘로 갔다가 요람을 배반하고 죽인 예후의 추격을 받아 병거를 타고 므깃도까지 도망치다가 그 또한 죽고 말았음은 이미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의 죽음을 본 그의 어미 아달랴는 다윗왕가의 몰락위험을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남은 왕손들을 모두 멸절시키고 스스로 왕권을 찬탈하는 역적행위를 감행했습니다(왕하11:1-3). 유다 왕조를 아예 이스라엘의 아합왕조로 바꾸어놓는 엄청난 국가변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때 아합 왕의 손녀이고 요람 왕의 딸로서 죽은 왕 아하시야의 사촌누이인 여호세바가 조카뻘 되는 간난아이 요아스를 그 할머니 아달랴가 왕자들을 다 죽이는 가운데서 빼내어 유모의 침실에 숨겼다가 다시 하나님의 성전에서 숨겨 키움으로써 아달랴가 유다를 통치하는 기간 살아남게 했던 것입니다(왕하11:2-3). 칠년 후 제사장 여호야다의 주도면밀한 거사로 아달랴는 권좌에서 쫓겨나 죽고 일곱 살 난 요아스가 왕이 됨으로써 유다 왕가의 명맥은 끊어지지 않고 간신히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왕하11:4-16, 21).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 피로 물든 도륙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당신의 명령과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백성이 지키지 않을 때 무서운 징벌을 동반하는 명령이든 백성이 잘 지킬 때 복 주시겠다는 약속이든 그 모든 말씀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담겨진 메시지를 바로 깨닫기 위해서 멀리 거슬러 올라가 다윗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과 엘리야에게 주어졌던 예언을 상기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먼저 다윗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온 후 하나님의 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삼하7:1-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전 짓는 일은 그에게 허락하지 않으시는 대신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삼하7:9) 하시며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삼하7:12-16을 봅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다윗의 자손이 끊어지지 않고 왕위를 차지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에 신실하셨던 것입니다.

  다음 엘리야에게 주어졌던 예언은 어떤 것입니까?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을 다 죽이고 그들의 후견자였던 왕비 이세벨의 복수가 두려워 호렙산으로 도망가 굴속에 숨어있을 때 하나님께서 불러내시어 그에게 듣게 하신 예언과 사명이 무엇입니까? 왕상19:15-18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이 예언을 통해서 엘리야에게 주어진 사명은 “죽이는 사명”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일 사람들을 기름 부어 세워 그들로 하여금 죽이게 하는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 엘리야를 잔혹한 살인자로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 죽임의 대상이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남기지 않고 진멸하려 하신 자들이 바알에게 무릎 꿇고 입 맞춘 자들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보전하는 데 가장 위협이 되는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상숭배를 하게 만든 자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세우신 선지자가 엘리야였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의 제자이며 후계자인 엘리사에게 그 하나님의 뜻을 잘 전수했으며 엘리사는 그 사명을 잘 수행하여 하사엘이란 자로 하여금 병든 아람 왕 벤하닷을 이불을 물에 적시어 얼굴에 덮어 죽게 하고 그 대신 왕이 되게 했습니다(왕하8:7-15). 하사엘은 그렇게 아람 왕이 된 후 항상 이스라엘을 쳐들어와 괴롭히는 자가 되었습니다(왕하13:22).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는 이스라엘을 징치하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왕하13:2-4). 엘리사는 또 예후를 세워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악하고 우상숭배를 가장 크게 확산시킨 왕 아합의 가문을 멸절시킬 뿐 만 아니라 유다의 왕으로서 아합 가문과 혼인하여 유다백성에게 우상숭배를 끌어들인 여호람과 아하시야를 징치하시어 다윗가문이 아합 가문처럼 거의 멸문을 당하는 화를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내리신 징벌의 경고에 대해서도 신실하심을 우리는 또한 보아야 합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우선 17-19절을 다시 봅니다: “여호람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여기서 우리는 먼저 유다 왕 여호람이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이함으로써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악을 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20절에서는 각각 여호람 때에 에돔이 유다의 손에서 배반하여 자기 위에 왕을 세웠다고 쓰고 있으며 22절에서는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왕국의 국력이 약화되고 영토가 줄어들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라가 기우는 우환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에 와서는 국가존망의 위기가 극에 달합니다. 이미 보았듯이 예후에 의해 아하시야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형제 사십이 명이 몰살을 당하며, 그의 어미 아달랴는 그 기회에 자신의 자손들이기도 한 유다의 왕자들을 다 죽이는 대참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원인을 본문은 뭐라고 밝히고 있습니까?

26-27절을 봅니다: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아달랴는 오므리의 손녀라 했는데 오므리는 아합의 아버지입니다. 아달랴는 아합의 아내 이세벨 못지않게 악독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 또한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다 했습니다. 여호람과 아하시야 부자가 대대로 아합 집안의 여자들과 혼인하여 우상숭배를 들여오고 악을 행함으로써 그 끔찍한 가문의 화와 왕국전체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하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위하여, 다시 말하면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서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유다의 가문을 멸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간난아이 요아스 하나를 왕족전멸의 상황에서 구출하심으로 다윗왕가의 명맥을 이어주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의 요지입니다.

  오늘 이 어두웠던 이스라엘 민족의 한 시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새삼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고 입 맞추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친해지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징치하십니다. 그런 행위는 개인에게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게 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녀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고 남겨줘야 하는 최고의 선물이며 유산은 다윗이 가졌던 것과 같은 믿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믿음보다 더 자녀손들을 위해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자녀손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보호를 확보하는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가졌던 믿음으로 후대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릴 수 있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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