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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세상의 주, 예수 (마 2: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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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 예수 (마 2:13~23)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하신 일을 기록한 책이 복음서입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을 펼치면 복음서가 네 권씩이나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세 권은 공관복음서라고 부르는데 그 내용에 있어서 별로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비슷한 내용의 복음서를 세 권씩이나 정경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입니까? 괜히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복음서를 읽을 대상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목적 때문 아닙니까? 때문에 복음서를 읽을 대상에 따라서 같은 사건이라도 표현 방식과 강조점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은 누구를 대상으로 기록했습니까? 이 마태복음은 유대인이 유대인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기록한 복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의 모든 예언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에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알려 주기 위한 책이 바로 마태복음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을 봐도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아기 예수가 애굽으로 피한 것과 헤롯이 어린 아이들을 학살한 것, 그리고 요셉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갈릴리 나사렛에 정착한 것과 같은 사건들이 모두 다 구약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라고 마태복음 기자는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13절 이하의 말씀을 봅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고 돌아간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뭐라고 말했습니까?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과연 요셉은 그 말에 순종하여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도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가지고 마태복음 기자는 호세아 11장 1절의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15절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상당히 자유롭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애굽으로부터 불러내기 위해서 애굽으로 도망치라고 하셨다는 것이 좀 억지 주장 같지 않습니까? 과연 마태복음 기자가 말하려는 것이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까? 뭔가 다른 뜻이 숨겨져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심판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지으신 분이 누구십니까? 그들을 택하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그 하나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죄를 범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지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그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다시금 회복시키기 위해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이 선지자 호세아의 예언의 핵심 내용입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피했다가 돌아오는 아기 예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마태복음 기자는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죄의 길로 나아갔던 인간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구하시려고 아기 예수를 메시아로 이 땅에 보내 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 마태복음 기자는 호세아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6절 이하의 말씀에서 마태복음 기자는 이번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라헬이 누구입니까?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입니다. 그런데 그 라헬은 야곱의 다른 아내들이 아들을 열 명씩이나 낳는 동안 아들을 한 명도 낳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들이 요셉과 베냐민입니다. 라헬은 분명히 자식이 없어서 통곡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기자는 헤롯이 화가 나서 베들레헴에 있는 사내 아이들을 학살한 것 때문에 슬퍼하고 크게 통곡한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상당히 무리한 주장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마태복음 기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라헬이라는 한 여인의 슬픔과 고통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이란 악의 권세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고 슬픔과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로 받기를 거절하고 있는 라헬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울음 소리와 눈물을 멈추라고 말씀하십니다.(렘 31:16 참조) 무슨 말입니까? 인간이 비록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어코 그들을 돌이켜 회개하도록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아무 죄도 짓지 않았을 것 같은 어린 아이들마저 비참하게 죽어가는 그 상황 자체가 모든 인간은 죄 아래서 태어나 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참으로 무기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비참한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친히 닦아 주시며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할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런 일을 하도록 아기 예수를 이 땅에 메시아로 보내 주셨다는 것이 마태복음 기자의 주장인 것입니다.

  그리고 1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헤롯 왕이 죽은 후 요셉이 아기 예수와 함께 돌아오는데 고향인 베들레헴이 아니라 갈릴리 나사렛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그것도 또한 선지자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심한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구약 성경의 선지서 어디를 봐도 예수를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11장 1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나사렛 사람이란 단어를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히브리어로 ‘가지’를 의미하는 ‘Nezer’가 ‘나사렛 사람(Nazarene)’과 발음이 흡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기자가 실수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의도적으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한 것 같다는 말입니다. 나사렛은 매우 후미진 마을입니다. 요한복음 1장 46절 말씀에서 나다나엘은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로 나사렛은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마태복음 기자가 '나사렛 사람'을 강조한 것은 예수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정치적, 군사적 이미지의 왕이나 투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려고 한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대접받을 만한 모양이 하나도 없는 고난 받는 종, 섬기는 종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낮은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선지자 이사야가 아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2절, 3절 말씀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 인간의 세속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기자가 나사렛 예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 예수로 말미암아 가장 근본적인 죄의 문제에서 참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주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이 숫자상으로는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예수를 제대로 알고 따르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우리는 주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해서 오늘 마태복음 기자는 분명히 대답합니다.

  먼저, 예수는 우리 인간의 불순종과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밝히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는 아무 죄도 없는 순진한 아이들까지 잔인하게 살해하는 악의 권세 앞에서 슬픔과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찾아가 그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끝으로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시고 참 자유와 해방을 선물로 주시는 온 인류의 구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주님이 우리의 믿음의 반석이 되십니다. 이 주님이 우리가 바라는 모든 소망의 닻이 되십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 바르게 알고 온전히 믿고 신뢰하며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따르는 가운데 우리 주님의 크고 놀라운 능력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늘 싸워 이기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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