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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로마에서의 바울 (행 28: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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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의 바울 (행 28:16~31)

어느덧 연말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들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언제 벌써 연말이냐 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이제 겨우 연말이 되었다고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보고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나 말씀으로 함께 사역하기 시작한지 벌써 6년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누가복음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고 계속해서 사도행전을 통해 은혜를 나누어 왔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사도행전의 마지막을 통해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마지막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한 분 하나님께는 마지막이란 없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이요 마지막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자신은 영원무궁하신 분입니다. 그 주님의 은혜 아래 있는 우리들 역시 주님 안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에게는 언제나 마지막이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따라서 우리들에겐 마지막이란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 있을 뿐입니다. 2007년이 하루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2008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여정이 우리의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선을 향해 우리는 모든 준비의 끝에 서 있는 것이요 이를 향한 또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리라고 하셨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드디어 바울은 로마까지 무사히 도착을 하게 됩니다. 이 로마에서의 바울의 사역을 누가는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로마에서의 바울의 사역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는 한 치의 차질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실 적에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너무도 잘 아는 바울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에게는 또 다른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왕이면 자기의 민족이 먼저 예수님을 믿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먼저 구원을 받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하며 바울은 하나님께 따지고 듭니다. 하지만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유대인들을 찾아 그들의 회당에서 예수를 전할 때마다 그의 말을 받아들여 예수를 믿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그런 바울을 사기꾼으로 몰아붙이고 배신자로 몰아붙이며 죽이려고 덤벼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뻔한 일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하며 맹세한 사람들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토록 대제사장들과 유대의 지도자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할 때마다 오히려 이방인들 가운데서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가더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세워 이방인의 사도로 삼겠다고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다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바울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미련은 남습니다. 어쩌면 바울처럼 고집쟁이도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내 백성들을 구원해야 하겠다는 그 마음을 하나님이신들 왜 모르시겠습니까? 물론 바울의 그런 노력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된 유대인들도 없지 않습니다마는 그러나 반발하고 대드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바울은 죽음의 위험을 피해 황제 앞에서 재판받기를 청했고 그 결과 로마 군대의 호위 아래 바울을 죽이려고 작정한 유대인들의 손길에서 벗어나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겨가며 결국 로마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도록 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또다시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생각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한 치도 벗어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그렇지만 우리들에게는 부딪치는 현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살아가는 현실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갈 수 있느냐 하는 그 방법론에서는 서로 다를 수가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발안에서 서울을 가고자 할 때 버스로 가느냐 자가용으로 가느냐 아니면 전철로 가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생각대로 정해서 자기 편한 대로 그리고 자기의 형편대로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만이 옳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고집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을 간다고 하는 본질에서 벗어난다면 그건 아닌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 그저 나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요 내 이름을 내고 나를 내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되 그 방법에서는 서로 다른 뜻을 어떻게 조화시키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갈 수 있을지를 항상 생각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상대방의 뜻을 잘 받아들여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저 나 좋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 준다면 그건 아무리 뜻이 좋아도 아니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 가운데 제일은 생명을 건져 구원하는 일이요 이를 위해서 우리가 힘써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 그들에게 주님을 전하기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의 빛이요 향기라는 사실을 기억해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로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 사람이 저렇게 행복하게 저렇게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한 나머지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소 해서 우리를 따라 나설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살펴봅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을 했을 때 바울은 그를 지키는 군인 한 사람과 함께 혼자 지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그랬을 때 바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렇게 힘들게 길을 왔으니 잠시 좀 쉬면서 몸도 추스르고 한 다음에 무얼 해도 할 것 같은데 바울은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하루가 급했습니다. 그래 무엇보다 먼저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모이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동포 여러분, 나는 우리 백성이나 우리 조상들의 관습을 거스르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로마 사람들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로마 사람들이 나를 심문했으나 내게는 사형을 당할 만한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를 풀어 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의 유대인들이 반대해서 나는 로마에 와서 황제에게 상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백성을 고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여러분을 뵙고 말씀드리고자 오시라고 했던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사슬에 매인 것은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아직 유대로부터 당신에 관한 어떤 편지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또 유대로부터 온 우리 형제들 중에서 당신에 관한 나쁜 소문을 전하거나 당신을 나쁘게 말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당신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어디를 가도 당신 종파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과 다시 만날 약속을 합니다. 
여기서 먼저 로마에 유대인 지도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또한 그들에게 아직 바울에 관해서 나쁘게 말하는 편지를 전하거나 나쁘게 말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인데 뻔히 바울이 로마로 압송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니요? 여기서 바울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토록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소원했던 바울로 하여금 마지막 목숨이 다하기 전에 원 없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물론 아무런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것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기 마련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간에 포기합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요. 하지만 뜻을 세웠으면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않으면 이윽고 길은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세운 길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어느 경우든지 나로 하여금 그 뜻을 세우도록 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험한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해도 누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더군다나 우리가 생명을 건져 구원하기 위해서 뜻을 세웠다고 할 때 그 길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사탄이 그 길을 방해하고 못살게 굴어도 결국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느 경우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특히 기도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그 기도의 힘이야말로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시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보십시오. 바울의 길을 막으려고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지도자들이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그런데 결국 그 길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험한 풍랑도 그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맹세를 했던 사람들도 그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독사도 그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바울이 로마에 들어와 그곳에 있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들이 바울이 전하는 말을 들어보아야 되겠다고 약속까지 잡지를 않았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이 하나님의 역사와 도우심이 날마다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결단은 내 자신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그 뜻을 우리가 어떻게 이룰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떻게 결단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이 드디어 로마의 유대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설명하게 되었을 때 더 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이 지내고 있는 곳으로 모입니다. 그래 바울은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선포합니다. 또 모세와 예언자들의 글을 예로 들어서 그들이 예수에 관한 것을 믿게 하여 애썼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말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의견이 갈린 채 헤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마디 말을 남겼습니다. “성령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여러분의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은 진리입니다.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여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졌고, 귀로는 듣지 못하며 눈은 감겼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내게 돌아와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들을 것입니다.”

결국 성령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믿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들 가운데 마음이 열려 그 말씀을 받아들여 믿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곧 그들이 믿기로 결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몫은 각자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모든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약속대로 우리가 누리는 자가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은 우리들의 결단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기로 작정하고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리고 그 말씀대로 준행하면 그 길은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안 되느냐고 하겠습니까? 먼저 나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고 있는가, 그 약속의 말씀대로 따르고 있는가를 말입니다.

바울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죽음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을 때에 조차도 그 약속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결국 그는 로마에까지 와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요 그 결과 많은 사라들을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한 위대한 전도자로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흔들리게 하는 험한 풍파가 마치 오늘의 날씨처럼 그렇게 몰아치고 있습니까? 그럴수록 더욱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주님만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도우시는 역사가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 안에 굳센 용사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자기 셋집에서 꼬박 이 년을 지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다 맞이하였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그리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쳤습니다. 죽음이 그 앞길을 멈추게 한 그 날까지 바울은 이렇게 복음을 전하기를 계속했습니다. 어디서 언제 바울이 이렇게 마음 편히 복음을 전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단연코 없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이래 이렇게 편안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는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세월이 흐르면서 복음이 전해져 결국 우리들까지 예수님을 알고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전도자 바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까?

이제 우리 자신이 바로 바울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때는 모든 것의 마지막을 향해 달음질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아주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을 향한 도전도 그만큼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비 거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비아냥대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삶에 지쳐 있을 수도 있고 많이 피곤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도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그러기에 더욱 모이기에 더욱 힘쓰십시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밝은 태양처럼 다 빛나는 면류관을 받아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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