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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감사와 더불어 믿음이 필요한 시간 (수 4: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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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여호수아 4:19~5:9
제  목 : 감사와 더불어 믿음이 필요한 시간

1. 2007년 한 해를 보내는 자리

다사다난했던 2007년도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속절없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올 해의 수많은 뉴스 가운데서 <조선일보>가 굵은 뉴스 10개를 선정했습니다. 1. 이명박 대통령 당선 2. 한미 FTA 타결 3. 제2차 남북정상회담 4. 펀드 열풍이 전국을 휩쓸어 총 규모 300조원 돌파 5. 변양균․신정아 사건을 비롯한 잇단 권력형 비리 6. 대구 육상, 인천 아시안 게임, 여수 엑스포 유치 성공 7. ‘기자실 대못질’과 기자들의 저항 8. 단기선교팀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9. 태안 유조선 기름 유출 그리고 10째는 수능 등급제와 내신 반영률 대란을 꼽았습니다. 그 외에도 김연아 박태환 전도연이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있었던 사건과 사고들을 종합해서, 그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이 될까요? 대학 교수들이 <대학교수신문>에 올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를 설문을 통해 조사를 했는데요. 그 결과 “자기기인(自欺欺人)”이 가장 많은 비율로 선정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자기기인”은 주자(朱子, 1130~1200)의 어록을 집대성한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나오는 말입니다. <주자어류>에서 주자는 “자신을 속이지 말라(무자기, 毋自欺)”는 <대학(大學)>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남을 속이는 것은 곧 자신을 속이는 것인데, 이는 자신을 속이는 짓이 심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서적인 <법원주림(法苑珠林)>에도 “망언하는 자는 자신을 속이고 또한 남을 속인다“라는 대목이 나온다고 합니다.

안대회 성균관대(한문학) 교수는 "자기기인은 분수를 모르는 인간의 탐욕이 도에 넘칠 때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안 교수는 "지난 1년간 신정아를 비롯한 유명 인사의 학력 위조, 대학 총장과 교수의 논문 표절, 유력 정치인과 대기업의 도덕적 불감증 같은 ‘자기기인’에 들어맞는 사건을 너무 많이 접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히면서, 의혹의 장본인이 도리어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손주경 고려대(불문학) 교수는 "신정아 사건이나 대통령 선거가 보여주듯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스스로 언행에 정직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정리해 볼 때 올 한 해는 어느 해보다 “거짓”이 판을 친 한 해였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튼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끝자락에 섰습니다. 그 끝에서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올 한 해의 다사다난했던 뉴스를 다시 들을 필요도 없고, 아님 또 다른 누군가가 들려주는 세상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습니다. 한 해를 매듭짓는 시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여기까지 인도하심에 감사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도 한 시대를 마감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4장 19절부터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을 향해 오던 중, 요단강을 만났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 모세는 마지막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한 후에,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12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내어 그 땅과 주민들의 상황을 미리 살피게 했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지 3일이 지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을 따라 요단강으로 나아갔습니다(수3:4). 그런데 그들이 나아갔던 요단강은 지금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지형과 기후의 작용으로 실개천만도 못하게 되었지만, 당시는 말 그대로 강이었고, 또 그때가 봄철의 우기였기 때문에 물이 꽤 불어있었습니다. 여호수아 3장 15절에 보면, “요단이 모맥을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고 하는데, 바로 그때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려고 할 때였습니다. 이른 바, “늦은 비의 계절”인 봄철의 요단강은 물이 상당히 불어 있어 홍수 단계에 이르곤 했었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이 요단강을 건너야만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나, 물이 불어나 강뚝을 넘쳐흐르는 요단강은 과히 위협적이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독려하여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기적적인 역사로 응답하셨습니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그 발을 요단강에 집어넣자마자 위로부터 흐르던 물이 갑자기 멈추어 섰습니다. 그러고는 먼저 발을 내디뎠던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매고 이미 말라버린 강 한 복판에 서 있었고, 그 사이에 백성들은 신속히 그 강을 건넜습니다. 백성들이 다 건너기까지 강물은 흐르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들의 조상들이 출애굽 할 때 홍해가 갈라지고 그 홍해를 마른땅처럼 건너 건너편 시내반도 지역으로 옮겨갈 수 있었던 것처럼, 그와 똑같은 기적의 역사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그 첫 걸음에 생긴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각 지파의 대표로 하여금 강 가운데 바닥의 돌을 하나씩 취하게 했고, 그것으로 요단강을 건넌 일을 기념하여 탑을 쌓으라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것은 첫째 달 10일이었고, 그 후 여리고 동쪽 경계에 있는 길갈에 진을 쳤습니다. 거기서 여호수아는 요단강 바닥에서 가지고 나온 12개의 돌들을 길갈에 쌓으라고 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紅海)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能)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 4:22~24).”

하나님께서 길갈에서 요단강을 건넌 일을 기념하게 하신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그 첫째는 땅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넌 일이 알려지면, 아모리 사람을 비롯한 가나안의 모든 왕들의 마음이 녹을 것이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5:1).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껏해야 애굽의 노예 출신에 불과하며, 정착할 자기 땅이 없어서 사십년 동안 광야를 정처없이 떠돈 힘없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작 그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힘없고 질그릇 같은 민족인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전능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그 왕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었던 것이죠. 따라서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신 첫 번째 이유는 가나안인들이 이 기념비를 바라보면서 여호와와 그의 사랑받는 백성을 두려워하게 만드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라하신 두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을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로 자신들과 함께 계시는 여호와를 바로 알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강대국인 이집트에서 잃기보다는 빼앗고 얻어 해방되었고, 넘실되는 홍해 바다를 건넜으며, 광야 생활 40년 동안 백성들의 의복이 해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으며(신 8:4), 하늘 양식인 만나를 먹었고, 반석에서 물이 나와 먹었던 것, 그리고 이제 거기에 하나 더 보태서 많은 비로 인하여 넘실대는 홍해를 가르사 그 백성을 건너게 하신 그 하나님을 잊지 않고 영원토록 경외하는 것, 바로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서 첫 발을 디딘 곳인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의 무능함과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나 위대한 백성이 되는지를 알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고, 그렇게 만들어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라고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라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우리는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못해도 잊는 것은 너무나 잘 하지 않습니까? 지난 한 해도 셀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았는데, 분명 많이 받았고 누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길갈의 기념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기념비를 세우는 시간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즉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도 기념비를 세우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게 하고, 또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을 지키시고 보호하신 하나님, 능력과 권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사람의 복과 일의 복을 주신 하나님, 나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복을 주신 하나님, 그리고 작고 부족한 우리를 크고 강하게 만드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시간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마음에 기념비를 세우십시오. 감사의 기념비, 여호와를 경외하는 기념비! 아멘!

3. 내일에 대한 믿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에서 한 일은 기념비를 세운 일 외에 세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그 첫째는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은 유월절을 지킨 일이었습니다(5:10). 이스라엘은 시내산 이후, 단 한 번도 유월절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약속의 땅에 도착했으며,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았으므로, 절기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서 지정된 날 곧 니산월의 14일에 유월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길갈에서 있었던 세 번째 일은 하늘에서 내리던 만나가 멈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여행의 첫 해부터 기적적인 식량을 제공해주셨습니다(출16:14~22). 이것이 거의 40년 동안 계속되었으나, 이제 약속의 땅으로 들어온 이상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땅에서는 그 “땅의 수확”을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길갈에서 행한 할례의식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라고 합니다. 길갈은 요단강을 건넌 지역으로 여리고 동편 3키로 지점에 있습니다. 즉 지금 이스라엘은 적들로 우글대는 가나안 지역으로 들어왔고, 또 우리가 라합을 통해서 보았듯이 여리고 성 사람들을 비롯하여 가나안의 모든 원주민들이 긴장하고서 전쟁을 벌일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서 이스라엘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도무지 인간의 이성이나 인간의 경험이나 인간의 논리나 지혜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사방의 적들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장 앞에 있는 여리고성 사람들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즉 이스라엘로서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본격적으로 준비하여, 당장이라도 전쟁을 치룰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자기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례를 행하면, 싸움에 임해야 할 모든 남자 장정들은 거의 움직일 수 없고, 게다가 회복을 위해서는 일정 기간이 필요했고, 그 기간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완전히 무력한 상태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적들이 먼저 전쟁을 걸어온다면 그대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앞으로 해야 할 그 중대한 일에 아무 관심도 없는 듯, 오히려 그 사명을 성취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는 할례를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무리들에게 바라신 것은 무엇일까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눈에 보이는 위험한 상황과 적들의 견고한 성읍과 그들의 무기와 덩치에 눌려 두려움과 불안에 떨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하고 절대적인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적들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바로 그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자 할례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믿음이란 인간의 감각이나, 생각이나, 방법이나, 논리나, 이성이나, 경험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지금 형편과 처지와 상관없이, 혹시 여러분이 지금 어렵고 위험한 형편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설사 여러분의 경험과 논리와 다를지라도, 또 하나님의 명령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그 하나님께 순종하시겠습니까? 우리 시대는 여러분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과 계산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가나안으로 진군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하나님께서 전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을 요구하셨듯이, 내년을 바라보는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즉 내년도를 위한 가장 우선적인 준비물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죠. 내년도의 경제 사회 정치 그리고 지역에 관한 상세한 정보와 전망을 아는 것도 좋습니다. 내년에 대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보고, 새롭게 하고픈 일들을 정리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2008년도에도 너는 나를 믿겠느냐?” “2008년도에도 흔들림없이 오직 믿음으로 살겠느냐?” “내년을 위한 가장 우선적인 준비물은 바로 너의 믿음이라는 것을 알겠느냐?” 바로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길갈의 의미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침공했을 때, 프랑스 군의 한 부대가 오스트리아의 국경 도시인 펠드리히를 포위했습니다. 펠드리히 시는 비상의회를 소집하고 사태를 논의했습니다. ‘미리 항복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한 교회 지도자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우리의 힘을 의지한다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부활절인 오늘의 예정대로 교회 종을 치고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나머지 문제는 모두 하나님께 맡겨버립시다.” 그 분의 말에 시의회 의원들은 모두 찬성하였고 펠드리히 시에는 우렁찬 종소리가 울리고 기쁨에 찬 찬송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그런데 이 소리를 들은 프랑스군 진영에서는 오스트리아의 구원병이 온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여 군대를 돌려 다른 곳으로 퇴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펠드리히 시민들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막강한 나폴레옹의 군대를 맞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은 이런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낸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 저와 함께 결단합시다. 오는 2008년도를 오직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일도, 되어지는 상황도, 사람도, 돈도, 건강도, 주를 믿는 믿음보다는 앞서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4. 감사와 믿음이 필요한 시간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07년도를 정리하고 2008년도를 맞을 준비를 하는 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 여러분의 “길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그리고 그 첫 관문인 여리고로 나아가기 전, 길갈이 바로 오늘인 셈입니다. 이 길갈에서 여러분이 하실 일은 두 가지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지나온 여정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념비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것을 바라시고 그것을 기뻐하셨던 것처럼 오늘 여러분에게 그것을 바라고 그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앞을 바라보면서 믿음을 확인하십시오. 여러분의 앞날을 위한 최고의 준비물은 바로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이와 같이 감사와 믿음으로 올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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