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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씨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막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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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막 4:1-9)


오늘은 한해의 마지막 주일일입니다.
우리는 매주일 또는 날마다 많은 말씀을 듣습니다.
올한해에도 많은 설교가 증거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교회는 설교의 위기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종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분나쁘게 말을 하면 “나에게 설교하지마”라고 합니다. 왜 이런 설교의 위기 시대가 왔을까요?
우선적으로 목사님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산 책 중에 “설교와 선동사이에서”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은 교수이면서 목사님이십니다. 이 글에서 한국교회의 목사님의 설교의 문제점을 비평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한국목사님의 설교를 비평하면서 그분이 가장 지적하는 문제점이 한가지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설교자들이 성경 텍스트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성경 텍스트가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본문에 충실하지 않는 목회자들의 설교는 선동에 불과하다는 지적합니다. 이렇게 설교의 위기시대가 된 것은 목회자들의 책임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은 설교를 듣는 평신도 청중들의 책임이 있습니다.
설교자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증거하였는데도 변하지 않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듣는 이의 자세는 설교의 질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은 청중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설교하는데도 변하지 않고 열매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청중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씨뿌리는 비유를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왜 비유로 말씀하실까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제자들에게 주님의 백성들에게는 주시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보지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주님은 말씀의 축복이 임할 자에게 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기 씨를 뿌리는 자는 바로 우리 주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받들어서 말씀을 증거하는 사도들이요 오늘날의 목회자들에 해당이 될 것입니다. 여기 ‘씨’는 바로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소개되는 ‘4종류의 밭’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렸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이 있고 열매를 맺는 밭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4가지 종류의 마음 밭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첫째는 길가의 마음입니다.

4절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라고 합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길가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장소입니다.특히 유대나라의 길가는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여 단단하고 굳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길가에 뿌린 씨는 새가 와서 먹어버리고 맙니다.
길가의 마음을 갖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은 마치 길가의 땅과 같이 마음이 굳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당에 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말씀을 믿지 못하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선적으로 길가의 마음을 갖은 분들은 너무 내 생각이 가득차 있습니다.
나의 이성과 배움과 지식으로 가득차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런 분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머리로 받을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받아야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55:8-9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합니다.

길가의 마음을 갖은 사람들의 가장 문제가 무엇입니까?
문제는 새가 와서 씨를 먹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15절에 이 새를 “사탄”이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이 말씀을 그냥 즉시로 먹어버린다고 합니다.여기서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들 마음에 씨가 떨어졌을 때 새들이 쪼아먹는다는것입니다. 즉 사탄이 와서 말씀을 거두어간다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번연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이 작자는 이 말씀을 받으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교회에 출석하면서 “무신론자”였습니다.그는 고민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오래동안 다녔고 설교도 많이 들었는데 내 마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이 자리에 앉아 있을까” 그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존번연이 마13장을 읽다가 자기의 마음 밭에 떨어지는 말씀의 씨앗을 사탄이 빼앗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내가 말씀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내가 사탄에게 속해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알고 그는 설교시간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결국은 천로역정과 같은 작품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속에서 말씀이 마음에 심기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요?우선 졸립다는 것입니다. 설교시간만 되면 습관적으로 조시는 분들은 어쩌면 길가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물론 때로 교회에서 졸수 있습니다. 피곤하면 우리가 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두번이 아니고 습관적으로 조시는 분들은 분명히 그 마음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권사님은 찬양대에 앉아서 설교시간만 되면 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설교가 끝나면 눈을 뜹니다. 그리고 찬양을 할때면 또 열심히 찬양을 합니다.
마음이 말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 강퍅하고 굳어져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 마음이 길가와 같은 분들이 있다면 개간을 하시기 바랍니다.
굳은 마음,불신의 강퍅한 마음이 있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사용하지 않아서 오래 묵은 밭을 사용하려면 쟁기를 이용하여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래야 씨를 뿌려도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사탄입니다. 말씀들을 때 제대로 듣지 않고 방심하고있으면 결국 사탄에게 말씀빼앗기고 나를 빼앗기게 됩니다.길가의 마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 돌밭의 마음이 있습니다.

5-6절에 나옵니다.
돌밭의 문제는 흙이 얇습니다. 깊지 않는 흙 때문에 해가 돋은후에 싹이 타서 말라지는 경우입니다.
16-17해석에 보면 이 사람의 마음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말씀의 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미 구원도 받고 하나님의 말씀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말씀의 깊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환난이나 핍박 앞에서 곧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돌밭과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설교시간에 은혜도 받습니다. 또 은혜를 나눌수도 있습니다.그리고 공부시간에 깨달음도 있습니다. 최소한 그 시간만큼은 그래도 집중합니다.이런 분들은 부흥회시간이면 눈물도 흘리고 감격해서 그 심령이 뜨겁기도합니다. 그러나 얼마를 견기지 못합니다.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주일날은 생기가 돌다가 벌써 월요일 오후가 되면 벌써 말씀의 기운이 떨어져버립니다.

마음이 돌짝밭같은 사람들의 가장 문제는 무엇입니까?
말씀으로 인하여 오는 환난과 고난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분들은 육신에 고통이 오면 이 사람들은 육신 때문에 말씀을 포기하는 사람들입니다.
길가의 사람들에게 제일 문제가 마귀라면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일 문제는 ‘육신’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편한 것을 추구합니다. 내 육신을 고생스럽게 하는 것,힘들게 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쉽게 편안하게 안락하게 사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성경에서는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핍박과 환난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말씀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말씀 때문에 축복이 오기 이전에 먼저 말씀 때문에 핍박이 옵니다. 그 핍박이 지나고 나면 말씀으로 인한 축복이 옵니다.

그래서 위기가 와보면 우리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잇습니다.
말씀의 뿌리가 있는 믿음의 사람은 위기가 기회가 되어집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두운 고난의 위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다” 말씀을 앞에 세우고 그 빛에 인도를 받아서 그 위기를 통과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으로 나의 육신을 쳐서 복종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삶을 이겨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캄캄한 밤에 있어도 밝은 빛과 함께 있으면 통과할 수 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달과 별도 없는 칠흙같은 어둠일지라도 밝은 불만 있으면 길을 가는데 불편함은 잇었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의 뿌리가 있는 사람은 주의 말씀을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으로 삼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에 욥이란 사람을 보십시오.
고난이 올때 욥은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
욥23:10“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그래서 욥은 욥23:12“내가 그이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고난의 위기는 내가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 연단의 기회입니다.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의 기간입니다. 그 코스를 통과하면 나에게 큰 위로와 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환난과 고난 속에서 약한 자들을 인간적으로 무조건 위로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동정하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의 편에서 무조건 이해하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뜻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왜 그 고난을 주셨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고비를 탈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연약한 신앙,어린아이의 신앙이 거듭날 수있도록 말씀을 붙잡을 수 있도록 말씀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의 기독교와 고난의 기독교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 진리를 위해서는 수맣은 고난이 있을 수 있고 핍박을 당할 수 있습니다 .
지금 내 삶에 환난이 있고 고난이 있습니까?
말씀을 붙들고 그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깊은 말씀의 뿌리를 내리는 경험을 갖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 반복적으로 그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어지는 축복의 시간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가시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7절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이것에 대하여 18-19절에 이렇게 주님은 해석합니다.“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자요”라고 합니다.

가시밭의 마음은 가장 문제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염려가 많은 마음,재리의 유혹을 받는 마음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게 원인이 세상입니다. 길가는 마귀,돌짝밭은 육신이라면 가시밭은 세상입니다. 세상에 대한 자랑,세상에 대한 영광,그것은 바로 물질과 연관이 있습니다.

가시밭의 마음의 사람에게 가장 문제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그 마음에 가득차 있어서 염려하고 돈에 대하여 집착을 합니다.
이런 분들은 나름대로 믿음도 있어 보입니다. 때로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충성도 합니다.
나름대로 교육과 훈련도 받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주인은 주님이 아시고 세상입니다.
마음의 주인이 돈입니다. 이 분들은 마귀도 통과하고 핍박도 통과했는데 돈에서 걸리고 맙니다.

주님은 돈에 대해서 굉장한 강조를 합니다.주님과 동격으로 돈의 위력을 강조합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고 합니다.오늘 당신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물론 교회에 와서는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찬송도 부릅니다. 그러나 세상에 가서 돈에 마음을 빼앗기고 무릎을 꿇지 않습니까?

어떤 부자청년관원이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청년이었습니다. 관원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어린 나이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구도자로서 진지하게 주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그러나 그는 구도자의 목마름을 가지고 나왔지만 좋은 결실을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말을 합니다. “네게 있는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고 나를 좇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심히 근심하고 예수님을 떠나갔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재물을 갖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재물을 다스릴 줄 알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재물의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돈 때문에 멸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보면 나름대로 믿음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가련 구약에 아간이 그 예입니다. 신약에 가롯유다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초대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렇습니다. 데마가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제2의 아간과 가롯유다,아나니아 삽비라같은 성도가 없기를 바랍니다.

크리스챤이 고민하는 돈문제를 명쾌하게 쓴 “깨끗한 부자”즉 “청부”라는 책이 있습니다.
높은뜻 숭의교회 김동호 목사님이 쓴 책입니다.그분은 “진리가 밥 먹여준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예수님믿으면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합니다. 진리대로 살고 믿음대로 살면 밥을 먹을 없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진리대로 살면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이 밥을 먹여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나의 마음이 가시밭은 아닙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구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할때 하나님께서 청부 즉 의로운 부자가 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돈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유혹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냐 돈이냐! 분명하게 믿음으로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얻고자 하는 잃을 것이요 잃고나 포기할 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네 번째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8절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배나 육십배나 백배가 되었느니라”고 합니다.
20절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배나 육십배나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병행구인 누가복음 8장 15절에서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합니다. 누가 옥토의 마음을 갖은 자입니까? 말씀을 듣고 깨달아 인내로서 지키는 자입니다. 말씀을 내 삶에 그대로 적용하여 실천하는 자가 옥토와 같은 자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말씀을 적용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보면 분명히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작은 것이라도 내 삶에 적용하면 적용한 것만큼 나는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나는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같은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새로운 교회에 부임을 하셨습니다.
첫 설교를 하는데 모든 교회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우리가 목사님을 정말 잘 모셔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주일날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지난 주와 같은 설교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이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이 지난 주일에 한 설교를 잊어버렸는가?” 그냥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세 번째 주일이 되었는데 또 목사님이 같은 설교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설교를 3번 듣고 나서 교인들은 술렁거렸습니다. ‘아니 우리를 무시하는 것인가’‘ ’우리가 목사님을 잘 못 모셔 온 것 아닌가‘ 말도 나왓습니다.
드디어 용감한 한 성도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새로운 설교를 하지 않는 것입니까?“그러자 목사님이 말씀했습니다. ” 여러분이 이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할 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할 것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물론 이 예화는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워낙 말씀을 적용하지는 못하면서 새로운 말씀을 구하는 한국교회를 빗대어서 나온 이야길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나의 삶에 먼저 적용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문제는 적용입니다. 나의 삶에 먼저 적용하여야 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이 말씀은 아무개가 들어야 할 말씀이야’ ‘ 이 말씀은 아무개 집사에게 아무개 권사에게 주는 말씀이야’ 남에게 적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내가 적용해야 할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의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로 그러한가 하여 내 삶 속에서 시험하여 보십시오.
여러분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실천되어지는 곳에 진실로 열매가 30배 60배 100배 맺어지는줄 믿습니다.

결론))

좋은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께 드려지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마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를 듣고 잘 깨닫는 마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삶에 적용하여 열매를 30,60,100배를 맺으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더할수록 많은 열매를 맺으시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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