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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막 9: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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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막 9 : 14 - 29
제 목 :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여러분, 올인(all-in)이라는 말, 아십니까?  포커 판에서 자신이 가진 칩을 한 판에 모두 건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어떤 일에 대해 승부를 건다는 의미로 사용되면서, 도박판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도 많은 부분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에 올인 한다.” 는 말은, “내가 그것을 100% 확신한다.” 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인생사에서 있어 과연 100%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어떤 일에, 내가 올인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러한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인생은 도박판과 같다.” 라고 말을 하면서, “인생, 그냥 한 방에 끝내자” 외칩니다만, 그것은 순전히 자기 이야기지, 그렇게 살다간 어떻게 됩니까?  쪽박 차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 대박 꿈꾸며 한방에 어찌 해 보려고 하지만,  결국 쪽박 차는 인생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일에 올인 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생각할 것은, 단 한 가지의 예외는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에서는, 이처럼 올인 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위험한 일이고, 또 무모한 일이겠지만,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인생에서는 이 올인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성경에도 보면, 이 올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아니 성경에 그런 내용이 어디에 있나?  마 13장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마 13 : 44절 보세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올인 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을 때, 거기서 얻는 보화가 훨씬 더 값어치가 있는 것이기에, 이처럼 올인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만약에 그만한 가치가 되지 못한다고 여겼다면, 이렇게 자신의 전부를 투자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확신하였기에, 이처럼 전부를 올인 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 11 :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근간이  무엇입니까?  믿음 아닙니까?  누구를 향한 믿음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이 믿음이 우리의 신앙에 근간인 줄 믿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지만,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수도 없고, 따라 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가야, 내 인생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있고, 내 장래에 대한 소망이 온전히 이루어 질 수가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를 않다는 겁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올인 하지를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이유는 한 가지지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어요.  또,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고, 또 잘 인용하고 있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과연 이 말씀을, 여러분이 얼마나 붙들고 살아갑니까?  여러분이 바라는 것들을, 실제 신앙 안에서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것을 실제로 이룬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증거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다면, 여러분은 진짜 믿음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여러분은 믿음이 없는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올 한 해에도, 소망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소망들을 어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세상에서 열심히 수고해서 일하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가진 재능, 내가 가진 경험, 내가 가진 물질, 이 모든 동원해서 여러분의 소망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 가지고 여러분의 인생에 올인 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올인 하다가 인생 쪽박 찬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 경험, 내 지식, 내가 가진 재능이나 물질, 권세, 이러한 것 가지고서는, 여러분의 소망을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소망, 다 이루어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에 올인 하는 것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는데, 그 뒤에 이어지는 2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까?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할렐루야!!! 
이렇게 신앙생활에 올인 한 사람들이 성경에 많이 나타나 있는데, 그 분들의  인생을 보면, 한결같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 다 크게 성공한 것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성도들도 이와 같은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100%  확신하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에 인생의 모든 것을 올인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확신 있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참으로 귀한 교훈을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뭡니까?  한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습니다.  18절 말씀을 보세요.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지금 이 귀신들인 아이의 아버지는, 그 아이를 고치기 위해서 주님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때 어디에 계셨습니까?  흔히 말하는 변화 산에 오르셨습니다.  거기서 주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까? 그 때 이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주님이 안 계시면, 제자들에게라도 부탁을 해서 귀신을 쫓아내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이 무엇을 했겠습니까?  제자들은 주님이 평소에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셨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그대로 따라 했을 줄로 압니다. 그런데 주님이 귀신을 쫓아내었을 때, 무엇을 통해 그 일을 이루셨습니까?  기도를 통해서인 줄 믿습니다.  기도의 권능으로서 귀신을 쫓아내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자들이 주님이 하신 대로 기도하며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그들은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는데 실패하고 말았을까요? 
그 이유를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변화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서는,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행한 일들을 듣게 됩니다.  이 일에 관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신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을 하십니까?
여러분 19절 말씀을 보세요.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제자들에게 무엇을 책망하셨습니까?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아서 책망 받은 것 아닙니다. 
주님과 같이 기도하며 귀신을 내어 쫓으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기도  했겠습니까?  제가 상상하기로는, 정말 사력을 다해 기도했을 것 같습니다.  귀신들인 아이를 데리고 왔을 때, 이 아버지는 주님을 먼저 찾았습니다. 
사실 제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 줄 압니다.  아직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도 않은 때였고, 또 그만한 능력도 나타내지를 못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태권도 초단이 제일 까분다고, 이제 막 주님을 따라다니며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모습을 본 제자들로서는, 자신들도 주님과 같이 기도하면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자신들이 한번 고쳐보겠노라고, 큰소리치며 맡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왠 걸, 해 보니까 어떻습니까?  잘 안되지요?  큰소리치며 시작을 했는데, 못하면 속된 말로 얼마나 쪽팔리는 일입니까?  그러니까 사력을 다해 기도하며 귀신을 내어 쫓으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실패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기도를 하지 않아서, 주님에게 책망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책망을 들을 것입니까?  기도를 했지만, 그 속에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책망을 들었다는 겁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주님에게 그 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 때 주님이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여러분 29절 말씀을 보세요.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는 기돈데 어떤 기도입니까?  “믿음의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믿습니까?  무조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 중에 범할 수 있는 오류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본질은 망각한 채 현상만 좇고 있습니다. 
모양은 있는데 그 중심은 없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말세를 살아가는 현대의 성도들에게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는 말씀입니다. 
껍데기만 있는 신앙생활에서, 모양만 있고 흉내만 내는 신앙생활에서 이제는  돌아 서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 상태로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뇌관이 없는 폭탄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낱 쇳덩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입술로는 말을 하지만, 실상은 그 신앙생활 속에 믿음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축원 드립니다.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의 능력 주 하나님,  의심 말라 하시고, 물결 위를 걸으라 하시네,  할 수 있다 하신 주, 할 수 있다 하신 주,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100% 신뢰하며, 우리의 인생에 모든 것을 신앙생활에 올인 하기 위해서는,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걸 수가 없습니다. 
불안한데 어찌 내 인생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자꾸만 세상을 향해 고개를 기웃거리게 되는 겁니다.  신앙과 세상에  양다리 걸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신앙으로서는 결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있습니다.  양 다리 걸치면 어떻게 됩니까?  다리가 찢어지게 됩니다.  세상에 속하여 사는 인생보다,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맛보며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올 한 해는 믿음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향해 올인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모두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의심 버리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성공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분이심을 확신하면서 믿고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렐루야!!!

그러므로 여러분, 신앙생활에 올인 하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세요.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주님을 향해 뭐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24절을 보세요.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것이 오늘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한 해, 이러한 기도의 제목으로 여러분의 믿음의 충만을 먼저 이루시고,  그 믿음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기도 외에는, 여러분의 소망을 이룰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사업하는 사람이, 사업 때문에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기도합니다.
그런데도 그 사업이 더 나아질 기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몇 달 열심히 새벽기도 하다가 그만 둡니다.  또 어떤 분은 가정의 문제를 놓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합니다.  몇 달을 두고 기도 했는데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분도 새벽기도회를 그만 두었습니다.

이 분들이 하나같이 이야기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나 안 하나 똑같다는 겁니다.  “기도해도 소용없더라.”
여러분 믿음은 끝까지 신뢰하는 겁니다.  아멘!!!  속담에도 있잖아요?
“가다가 중단하면, 아니 간만 못하니라.”  기도를 하되, 중단 없는 기도를  하시길 바랍니다.  중단하는 것은 올인이 아닙니다.  여지를 남겨 두는 겁니다. 여차하면 세상으로 튀어 나갈 궁리를 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전적으로 도와  주시겠습니까?  그 마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있지를 않는데, 하나님이 뭐가 이뻐서 전적인 도움을 베푸시겠습니까? 

중단 없는 기도를 드리시되, 믿음이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끝까지 인내하시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러분의 소망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축복하심 가운데, 여러분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꿈의 크기를, 지금보다 더 넓혀 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현재 가진 소망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소망보다 훨씬 더 큰 소망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이런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라고 하는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믿으라는 의미가 포함되어져 있는 줄로 믿습니다.
단순히 현재 나타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믿음의 기도는  이보다 훨씬 더 큰 능력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교훈하시기 위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마 17장에 보면, 오늘 본문과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말씀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오늘 본문보다 더 분명하게 교훈하시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마 17 : 20절에서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할렐루야!!!!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어떤 역사가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산을 옳기는 역사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까?  주님이십니까?  아니지요?  믿음을 가진 제자들이, 또한 믿음을 가진 오늘날 성도들이, 우리 벧엘 교회 성도들이 이런 역사를 일으키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가지고도 산을 옮기는 역사를 일으키는데, 더 큰 믿음 소유하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역사를 우리의 삶 속에서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조엘 오스틴이라는 목사님이 쓴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긍정의 힘”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되어 소개가 되었는데요, 그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유명한 골프선수가 사우디아라비아 왕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왕은 자신의 전용 비행기를 미국까지 보내 그를 데려왔습니다.
둘은 며칠 동안 골프를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골프선수가  돌아갈 때가 되자, 왕은 비행기에 오르려는 그를 세워놓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귀중한 시간을 내서 저를 찾아주셨으니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그 골퍼는 “아닙니다. 이렇게 환대해  주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제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꼭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야 선생님이 이 여행을 평생 기억하실 테니까요.”  골프선수는 왕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 가기 소원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다면 골프채가 좋겠습니다.”  그저 평범한 소원이었습니다. 
왕도 더 이상 이야기 할 수가 없어서, 그 소원을 듣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국으로 돌아가는 내내 이 골퍼는 궁금했습니다.
“왕이 도대체 어떤 골프채를 보낼까”  “내 이름을 새긴 순금 골프채?”
“아니면 다이아몬드 보석이 여기저기 박힌 골프채?” 
세계 최고 갑부인 사우디아라비아 왕이 보내는 선물이니 그냥 보통의 골프채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 대단한 골프채를 선물하겠거니 생각하며 돌아가는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온 그 골퍼는 날마다 우편함을 확인을 합니다.  하지만 골프채는 좀처럼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몇 주 뒤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이 서명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를 받아 든 이 골퍼는 조금 실망이 되었습니다.  “아니, 기대하던 골프채는 어디가고 달랑 편지 한 장이라니!” 그는 실망된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 보았습니다.
여러분 그 편지 봉투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그 봉투 안에는 미국에 있는 커다란 골프코스를 선물로 주는 기증서가 들어있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하면서, 조엘 오스틴 목사님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왕의 생각은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왕 중의 왕이시다.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섬긴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꿈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크고 넓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큰 꿈을 그렇게 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런 크기의 꿈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이 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는 어떻  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자기의 수준에서 믿고 있습니다.

내 수준에서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은 골프채입니다.  거기에 금으로 내 이름이 새겨있다면, 혹은 다이아본드 보석이 여기저기 박혀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며칠 함께 골프 친 것에 대한 선물이 이 정도라면 이것만해도 굉장한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그렇습니다.
고작해야 이정도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수준이 겨자씨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겨자씨가 뭡니까?  겨자씨보다 더 작은 씨가 뭐지요?
겨자씨보다 더 작은 씨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  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보이지도 않는 믿음이라는 겁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믿음, 있다고 하는데, 없는 것과 같은 믿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니, 우리에게는 역사가 일어나질 않는 겁니다.  믿음은 내 눈으로 장래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현재의 내 수준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수준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홍해 앞에 섰다고 생각해 봅시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바로의 군인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 기도하겠지요. 뭐라고 기도했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 배를 보내 주세요. 기왕이면 큰 배” “하나님, 저 바로 군대들이 우리에게 못 오도록 막아주세요.”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계획하고 계셨습니까?  홍해를 가르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어떻게 바다를 가르고 건넌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누구는  그것을 알았습니까?  모세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지팡이를 바다를 향해 내 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지팡이를 홍해를 향해 내어 밀었을 때, 그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이런 역사, 저와 여러분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불가능 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불가능 한 것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실패하고 좌절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힘으로는 무엇이든  성공하고 일어서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올 한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귀한  선물을 예비하시고, 허락해 주시고자 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금으로 이름 새긴 골프채도 대단한 겁니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골프채도 대단한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보다 더 큰 골프장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적어도 큰 골프장 하나는 주어야, 선물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항상 내 소원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길  원하십니다.  내가 가진 소망보다, 더 크게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계획한 장래보다, 더 좋은 장래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이예요.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할렐루야!!!!!

지난 날, 여러분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난 날, 여러분이 어떤 실패를 경험했는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오늘입니다.  현재입니다. 
내가 오늘 하나님을  붙잡고 있느냐?  내가 오늘 하나님의 확신하고 있느냐?  내가 오늘 하나님을 향해 올인 하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직도 망설여지십니까?  아직도 의심이 드십니까?  아직도 세상 붙들고 있습니까?  주저하지 마시고,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 붙드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주변의 모든 것 끊고 하나님께만 올인 하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의 인생을 거십시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믿음대로 될지어다.” 할렐루야!!!!!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믿음을 가지고 올 한해도 살아가시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중단 없는 기도를 드리시고, 지금보다 더 큰 소망 가지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경험하시고, 큰 능력 행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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