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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 (막 5:21 - 24, 창 19:12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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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막 5 : 21 - 24,  창 19 : 12 - 26
제목 :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 말씀에 보면,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야이로라 하는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병에 걸려서 거의 죽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야이로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을 소유하였기에, 그 딸이 결국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집 전체가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딸이 믿음이 좋아서, 혈루증을 앓는 여인처럼,  예수님의 몸에 손을 데거나, 또는 부탁을 해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소녀의 아버지인 야이로의 믿음을 통해서, 그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 딸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매우 귀한 진리를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한 사람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정 전체가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믿습니까?  이러한 역사는, 성경 여러 곳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창세기에 보세요.  노아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노아 한 사람의 믿음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그때에라도, 하나님은 그 가정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또, 요셉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비록 보디발의 가정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 가정이었지만, 요셉 한 사람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가정이  형통케 되어지는,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할렐루야!!!  이처럼, 한 개인의 믿음을 통하여서, 그 가정이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는 일들이 성경 여러 곳에, 많이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접하면서, 생각해 봐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과연 우리 가정은 구원받은 가정인가?  과연 내 가정은 구원받은 가정인가?  과연 내 가정은 축복받은 가정인가?  이러한 것을, 오늘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축복받은 가정입니까?  온전히 구원받은 가정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자신의 가족들이 예수를 믿지 않음을 안타깝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불신앙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집니다.

“우리 남편, 우리 아들, 예수믿고 구원받아야 될텐데, 우리 남편 예수 믿으면  이 모든 어려움들이 해결되어 질텐데.”  아직까지도 예수를 믿지 않는 그들이, 그렇게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교회에 나오지 않고, 예수를 믿지 않는 모습을 보면, 연민의 감정도 느껴지지만, 때로는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그들을 원망하게 되지요?  자녀들을 향해 원망합니다.
“야, 니가 예수를 믿어야, 우리 집이 잘 되지”  또 남편을 향해 원망합니다. “아니, 당신이 교회에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텐데, 왜 그렇게  고집을 피웁니까?”  다른 집 남편은, 다 예수 잘 믿고 교회도 잘 다니는데,  왜 우리 집은 이렇게 신앙을 가지기가, 이다지도 힘이든 것일까?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가운데도, 분명 이런 문제가 있는 가정들이 있을 줄로 압니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 보지요 .  내 가정에 이런 어려움이 있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여러분의 가정이 아직까지도 온전히 구원받지 못하고, 신앙의 가정, 축복의 가정이 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족들의 마음이 완악해서,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식들이 잘 못되고, 남편들이, 아니 남편이 잘 못 되어서 입니까? 

아니라는 거예요.  그 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은 다른 가족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 예수를 믿고 있는 여러분 자신에게, 다시 말해, 나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하실까요?  “내 집이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나부터 잘 믿어야 된다.” 믿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나부터가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내 신앙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하는가?  내가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이, 우리 가족의 구원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여러분, 아직도 이 질문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우리가 읽은 창세기 19장의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는 겁니다.  창 1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멸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람인 아브라함을 구원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과정에서,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만 구원해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조카인 롯도 구원해 주시고, 심지어는 롯의 가족들까지도 구원해 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창 19 : 12절에 보세요.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 내라.”  아브라함 때문에, 그의 조카인 롯의 가정 까지도 구원해 주시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비하면, 믿음이 형편없는 롯이였지만, 아브라함 때문에, 그의 가정과 그에게 관계된 모든 친척, 그리고 친구들까지도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의 계획입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롯의 가정을 모른 채 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마음을 생각해서, 혹시라도 롯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아니할까 하는 노파심 때문에, 하나님이 롯의 가정에도 이런 긍휼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아브라함의 가정과, 롯의 가정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도 불구하고, 전혀 상반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그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은 반면에, 롯의 가정은 어떠했습니까?  그의 친척은 고사하고, 그의 가족조차도 온전히 구원받지  못하는 지경에 처하고 말았던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파격적인 구원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롯의  가정은, 아브라함의 가정과 달리, 왜 가족 전체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까? 왜 이리 다른 결과를 나타내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까? 
롯이, 그의 가정과 그의 친척들에게 무관심해서, 그들을 구원받게 하지 못한 것입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롯도 그의 가정과, 그의 친척들을 구원시키고자 얼마나 애를 많이 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롯의 가정은 온전히 구원을 받지 못했는가? 

그 이유가, 여러분이 읽은 창 19 : 1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실까요?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무엇으로 여겼더라?  농담으로 여겼더라....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곧 멸망당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 성읍을  피하라는 소리는, 한마디로 복음이었습니다.  생명을 구원할 복음이었습니다.  롯은 그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확신했습니다. 

“이 말이 참 되도다.  지금 내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필시 멸망당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그의 가족과 사위들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롯의 가족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롯이 전한 그 생명의 복음을 듣고도, 하찮은 농담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이미 복음을 받은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지옥 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영생복락의 천국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생명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오늘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고, 그 은혜로 인하여, 오늘까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오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것도 많이 있겠지만, 먼저는 우리 가정이, 온전히 구원을 받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예수를 믿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아가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소망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많은 성도들의 가정이, 그 가족들이, 다 예수를 믿지 않는 불완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아내만 나옵니다.  또 어떤 가정은 남편만 나옵니다.
부모만 나오는 가정이 있고,  또 어떤 가정은 자녀들만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애를 썼지만, 가족들이 아직까지도 예수를 다 영접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롯의 사위들과 같이, 여러분이 전한 그 복음의 내용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낱 농담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롯의 가정, 사위들뿐만 아니라 딸들도, 롯의 아내조차도, 사실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러 모습 볼 때에, 롯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롯의 말을 듣고도 그들이 자꾸만 머뭇거리자, 다급해진 하나님의 사자는  그들을 억지로 이끌고 나갑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사위들은 결국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본문 15절, 16절에 보세요.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여러분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그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기 때문에, 천사가 재촉하는데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위들은, 그 멸망당할 성에 남겨두고, 자신의 가족들만 성을 빠져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6절 말씀을 보세요.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하나님의 사자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구원에 이르는,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듣기는 들었지만, 그 말을 온전히 믿지 않았던 롯의 아내는, 결국 뒤를 돌아보다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머물고 있던 불신앙의 사람들과 같이, 유황불을 맞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천사의 손에 이끌리어 육신이 성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마음으로는 천사가 전해준 그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뒤를 돌아보아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이 아직까지도, 소돔과 고모라 성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죽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왜 롯의 가정은 이렇게 어렵게, 간신히 구원을 받게 되었을까?  아직까지도 롯의 가족들이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물론 표면적으로는, 롯의 가족들이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그러나 깊은 내면의 이유를 찾아보면, 롯의 가정이 온전히 구원받지 못한  이유는, 다름 아닌 롯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위들이 멸망당한 것도 롯의 탓이었고, 그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것도 롯의  탓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롯에게 전부 책임을 지우는 것은, 너무 과한 것 아니냐?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롯이 평소에 아브라함과 같이 신앙생활을 잘 했더라면,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앞에 신실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잘 했더라면, 그 사위들이 그가 전한 복음을 농담으로 여겼겠습니까?  결코 농담으로 여기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또 그 딸들이, 그렇게 머뭇거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 아내가 그렇게 소금 기둥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가족들에게 본이 되어지고, 인도자가 될 만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기에,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족들을 권면하고, 복음을 증거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딤전 5 : 8절에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참으로 충격적인 말씀이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강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은,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생활입니까?  아니면 롯과 같은 신앙생활입니까?  여러분의 신앙이 어떠하냐?  물어본 것 아닙니다. 
신앙은 다 좋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적인 신앙을 살펴보면,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도 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깨달음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 가지고, 정말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나타내고 있는, 신앙생활의 모습이,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 자식들에게 감동을 주고, 도전을 주는 영향력을 미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여러분의 가정도 자칫 잘못하면, 롯의 가정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겁을 주는 겁니까?
실제로 이런 가정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남편이 아내로 인해 신앙생활을 거부합니다.  아내가 남편으로 인해 신앙생활을 거부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로 인해, 신앙생활을 거부합니다.  부모들이 자녀들로 인해 신앙생활을 거부합니다. 

행 16 : 31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지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 
이것은 우리 성도들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구원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먼저 가진 사람들이, 신앙이 앞선 사람들이, 신앙의 본을 보이지 못하고, 신앙생활에 대해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그 가족들은, 신앙에 대한 매력도 느끼질 못하고, 신앙생활에 대한 불신감만  커져가면서, 교회와 멀어지고, 어떤 경우는 교회를 아예 떠나버리게 되는 경우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성도들의 가정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평소의 생활 속에서도, 신실한 믿음으로, 매일같이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의 가정을 구원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축복된 가정으로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내 가정이 구원을 받으려면 나부터 잘 믿어야 합니다. 내가 확실하게 믿을 때, 내 가정에 축복의 역사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신앙이 인정받을 때에, 그 신앙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나의 가족의 심령이 살아나고, 온 집으로 더불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이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여러분의 가정에 온전히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렇다면, 이런 구원받는 가정, 더 나아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신앙의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내 신앙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 
이러한 것을, 이제 주보에 나온 본문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주 본문인, 마가복음에 보면, 회당장 아이로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러면 이 회당장 야이로가, 어떻게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기에, 그렇게 큰 은혜를 입게 되었는가?  그 이유 몇 가지를, 이 시간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회당장 야이로, 그는 과연 어떤 신앙을 가졌는가? 두 가지의 신앙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야이로는, 예수님만 바라보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게 되게 되면,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라는 말씀이 있지요. 

“예수를 보고” 라고 했는데, 여러분 이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이 말은, 곧 예수님께 나왔다는 말인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 회당장 야이로는, 다른 것 바라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님께로 달려가 그 예수님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야이로가 예수만을 바라보며 나아 왔기에, 딸이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경 바디메오도 마찬가지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치며,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기에, 그가 눈을 뜨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도 구원의 은혜, 축복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먼저 예수 앞으로 나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몸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온전히 예수 앞에 나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여러분의 인생의 모든 문제들도, 다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야이로는, 예수 앞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예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주님이 계신 이 성전에 나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되시며 주인 되시기에, 오늘도 우리는 교회에 나온 줄로  믿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교회에만 계신 것은 아니지요.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교회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 여러분,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됩니까?  우리가 교회에 나옴으로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또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당하는 여러 가지 인생의 문제들 또한, 교회에서 우리가 기도함으로 해결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 여러분의 신앙이, 이 성천 교회를 통해서 온전히 성장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문제들이, 이 성천 제단에 엎드려 기도하는 가운데, 온전히 해결되어지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가 섬기고 있는 몸 된 교회를 통해, 언제나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너무 기도원 좋아하지 마세요.  기도원에 가지 말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기도원 좋아하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 교회를 우습게 생각을 합니다.  화끈함이 없다는 거지요. “불로 불로 불로 불로” 해야 속이 시원하겠는데, 교회는 너무 조용하고, 속된 말로 메가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도원에 가면, 뜨끈뜨끈하지요.  또 속 시원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원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나중에는 기도원조차도  마음에 차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 밥 먹는 것이 때로는 지겹게 느껴지지요?  그래서 때로는 외식을 하지 않습니까?  외식을 하면, 가정에서 먹을 수 없었던 맛난 것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툭하면 외식을 하고 집에서 밥 먹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다면, 그 사람은 결국 외식을 해도 별 맛이 없고, 집에서 밥을 먹어도 별 맛을 못 느끼는, 한마디로 식욕을 잃어버린 채, 메말라 가는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 가정에, 누가 교회를 정착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교회를 사랑하며, 누가 교회를 향해 그 마음을 열겠습니까?  오히려 나로 인해 내 가족들,은 교회와 멀어지게 되고, 교회에 계신 주님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에서 떠도는, 탕자와 같이 유리방황하게 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담대히 예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으로, 결국 딸도 살려내어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가족 전체를 예수 중심의 구원받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야이로와 같은 이러한 신앙의 자세를, 우리 모두가 본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 가족들이 있습니까?  아직도 인생에 어려움을 당하는 가족들이 있습니까?  먼저 여러분들이 그들을 위해 예수 앞에, 교회에 나와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이로가 딸을 위해,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그 분 앞으로 나왔던 것과 같이, 오늘 여러분들도 우리 성천 교회를 신뢰하시고, 이 성전을 중심으로, 말씀 듣고, 예배하며, 기도하며, 더욱 더 신앙생활을 잘 해 나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야이로는, 어떤 신앙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까?
그에게는 주님을 진실 되게 믿는 믿음과, 겸손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 23절 말씀을 보세요.  “회당장 중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시고,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여러분, 이 말씀 가운데는, 회당장 야이로의 두 가지 신앙이 깃들여져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만이 그 딸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의 표현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상황을 한번, 머리 속에 그려 보십시오. 
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의원은 불러오지 않고, 예수를 찾아가 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라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회당장 야이로는, 그 상황에서는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의 딸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에, 주님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의술로도 고칠 수 있는 병인데도 불구하고, 광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찾아 간 것이 아니라, 의술로는 이미 고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예수를 향한 믿음을 가지고, 그 분을 찾아가 엎드리며,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  여러분, 야이로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회당장이었습니다.  그 당시 회당장의 신분으로, 주님 앞에 선뜻 나오기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체면보다는, 딸의 생명이 우선이기에, 또한 의원들은 못 고치는 질병이라도, 주님만은 고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그에게 있었기에,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딸의 살고 죽는 것도, 주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신앙의 고백이었다는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그 고백을 통해서, 이미 그 딸의 목숨을 주님께 맡겨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그 딸을 살려주시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지만, 죽더라도 결코 원망하지 않고,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의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중에,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 촌각을 다투는 그 상황에서,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들 같으면 아마 미치고 팔짝 뛰었을 것입니다.
지금 빨리 가야 되는데,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야이로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잠잠히 있었다는 겁니다.
주님을 재촉할 수도 있었습니다.  회당장의 권위로, 천한 혈루증 걸린 여인을  물리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혈루증에 걸린 여인을 치료하시고,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일 또한, 주님의 권한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는 잠잠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과 집을 향해 가는 도중에, 그가 어떤 소식을 듣습니까? 
비보를 전해 듣습니다.  그 딸이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소용이 없으니 피곤하게 하지 말고, 돌려보내라고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그때 주님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흐트러진, 야이로의 믿음을 탓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주님을 향한 그 믿음이 흐트러지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딸의 죽음 앞에 슬픈 감정은, 아비로서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야이로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딸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그 마음을, 위로하시기 위한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그와 처음 대면했을 때, 딸의 생사가 주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그 때 이미, 딸을 살려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그 말씀은, 야이로의 믿음이 떨어졌음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딸을 살려 주시겠다는, 주님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 보여주는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이 얼마나 대단한 믿음입니까? 얼마나 멋진 믿음입니까?  정말 우리들도 이러한 야이로의 믿음을 본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야이로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체면 불구하고, 예수 앞에 나아와 그 발 앞에 엎드리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 예수를 믿지 않는 가정이 있습니까?  그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위해서 여러분 기도하세요. 
여러분의 자녀가 예수를 믿지 않고 그 심령이 날마다 죽어가고 있는데, 어찌  그렇게 배짱 좋게 혼자서만 지내고 있습니까?
보통의 사람들은, 자녀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밝히기를 싫어합니다.  내가 남들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 있나?  집이 못 사나, 학력이  부족하나, 다만 아이들이 교회를 잘 안나온다는 것 외에 부족한 것이 뭐가 있다고 맨 날 교회에 나가서 기도해야 하나?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 남편, 내 아내가 예수를 믿지 않는 것  외에는, 부족한 것이 없는데, 뭐 그렇게 유별스럽게 기도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신앙이 무엇인지도 조차 모르는 사람입니다.

돈이 많으면 축복입니까?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남편이 승진을 하고 해야 축복입니까?  예수를 믿지 않고 이루어지는 모든 잘 됨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요? 예수를 잃어버리고, 신앙을 잃어버리면, 전부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먼저입니다.  영혼이 먼저 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사랑하십니까?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세상의 잘 됨보다, 그 영혼이 먼저 잘 되기를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체면 불구하시고, 아직까지 예수를 믿지 않는 식구들이 있다면, 예수를 믿어도 신앙생활 게을리 하는 식구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한 기도를 최우선 기도  제목으로 삼고, 주님 앞에 나아와 간절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조건 내가 잘 되는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도, 이제는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의 죽음까지도, 주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딸의 죽음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면, 딸의 죽음도 감당하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녀가 속히 돌이키지 못하고  세상 속에서 헤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자녀를 반드시 이끌어  주시리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를 돌이키게 하기 위해, 때로는 힘든 고난의 상황을 연출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자녀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때로는, 자녀들을 죽음과 같은 고난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정말 자녀를 주님께 맡겼다면,  그런 때에라도 세상적인 방법으로 도우려고 하지 마시고, 더욱 기도함으로  그 자녀들을 도우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반드시 그 자녀 하나님께서 돌이키시고, 그 고난을 멈추게 하시고, 축복과 은혜의 자리로 자녀들을 이끌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와 같은 믿음과 신앙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남편을 돌아오게 만드시고, 또 아내가 예수를 믿게되어 온전한 구원의 가정이 되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로 돌이킨 자녀들은, 여러분의 신앙을 본받아, 여러분이 복을 받은 것처럼, 그 자녀들도 복 받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로 돌이킨 남편, 아내, 여러분과 같이 신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정이, 이와 같이 복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복음을 받고, 먼저 신앙을 가진 여러분들이,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신앙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멀지 않은 시간에, 그들의 귀에 복음이 농담이 아닌 진실 된 말씀으로 들려지게 되고, 여러분이 이끄는 손길에 그들의 몸만 아닌, 그들의 심령이 주 앞으로  인도되어져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축복된 가정, 모두가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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