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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넘치는 복을 주옵소서 (창 2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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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창 26 : 12 - 22
제 목 : 넘치는 복을 주옵소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말씀입니다.
12절, 13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두 가지의 생각을 하게 되지요.
첫째는, 참 부럽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요?  백배의 축복, 여러분 말이 백배지, 백배의 축복, 쉽게 상상이 되십니까?  이런 축복을 받은 이삭에 대해 참 부러운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은, 어떤 생각입니까? 

과연 내가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림의 떡처럼 생각된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감히 어떻게 이삭과 비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신앙이,  이삭과 자신을 비교해 보았을 때,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일견 옳은 생각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과연 이런 생각이 옳은 생각일까요?
과연 이런 생각이 신앙적인 생각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삭의 축복을 이렇게 성경에 기록해 놓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바라보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삭의 축복을 보고, 부러워하라고 기록해 놓으 셨습니까?  아니면 이삭의 축복을, 우리도 받게 하시려고 기록해 놓으셨겠습니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기록해 놓으신 것이겠습니까?  분명 후자의 이유, 이삭의 축복을 우리도 받게 하시려고 기록해 놓으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약 5 : 17, 18절을 보세요.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이와 같은 역사가, 지금도 우리 가운데 나타날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그리고 하신 말씀에 대해, 일점일획도 변개함이 없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삼상 15 : 29절 말씀을 보세요.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삭을 보여 주시고, 엘리야를 보여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두 사람만 아니라,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이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분들이 하나님 앞에, 축복과 능력을 받기까지의 신앙생활을 본받으며, 오늘 우리 성도들도 그 분들과 같은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 신실하게 신앙생활 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이로되,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나 우리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삭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의 삶을 성경을 통해 쭉 살펴보세요.  특이한 점이 무엇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창세기를 쭉 살펴보세요. 창세기는 주된 등장인물이 누구누구입니까?  세 사람입니다.  누구누구지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입니다.  아니 이삭은 어디 갔느냐? 
여러분 창세기를 가만히 살펴보세요.  이삭에 대한 내용은, 이 창세기 26장이 전무합니다.  본인에 대한 하나님의 소개가 나타난 장은, 이 26장이 유일합니다. 

물론 다른데도 이삭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브라함 이야기 때도 나오고, 야곱의 이야기 때도 나옵니다.  그러나 그때 나오는 이삭의 이름은, 하나의 들러립니다.  다시 말해, 주인공으로서의 소개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삭의 이름이 등장하고, 야곱의 인생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삭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창 26장도 가만히 보세요.
무슨 특색이 있습니까?  기껏 보여주는 것이,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이 자신의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여,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첩으로 준 일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다른 좋은 이야기가 분명 있었을 텐데, 왜 이런 좋지 못한 일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그의 신앙의 발자취 속에서는,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요셉과 같은,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이런 별 볼일 없는 신앙인생을 살아갔던 이삭입니다.  우리와 비교해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이삭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삭이, 오늘 성경에 나타난 것과 같은, 백배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고, 또 거부가 되어지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던 것일까? 
그 비밀이, 바로 오늘 이 26장 전체를 통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별 볼일 없는, 지극히 평범한 신앙 같은데, 왜 아브라함을 능가하고, 야곱을 능가하는 축복을 받았던 것일까?  왜입니까? 
이삭의 평범한 삶 속에, 신앙의 비범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추어진 그 신앙이 비범이 무엇일까?  그 내용을 세 가지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이삭이 쉽게 절망하지 않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26 : 1절을 보세요.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라고 했습니다.  이삭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흉년의 고난이 닥쳤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삭이 경험한 이 흉년은, 보통 흉년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이후에 처음으로 겪는 대 흉년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약 100년 만에 처음 찾아온 흉년이었다고, 신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흉년을 맞이했을 때, 이삭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절망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던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2절 말씀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왜 나타나셨겠습니까?  그냥 뜬금없이 나타나신 겁니까?  그 극심한 흉년 가운데서도, 이삭이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기 때문에 나타나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때나 이제나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들을 먼저 찾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삭은 인생에 찾아온 절망 가운데서,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쉽게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살길을 찾기 위해 기도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시고, 그 인생을 친히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자, 그러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런 이삭의 신앙이 대단한 신앙입니까?  물론 대단한 신앙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감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신앙입니까?  그건 분명 아닌 줄 압니다.  오늘 우리들도 충분히 이러한 신앙은 나타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절망할 때, 절망하고, 남 쓰러질 때, 다 쓰러질 것 같으면, 그게 무슨 신앙입니까?  그건 신앙도 믿음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제까지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인생의 문제들을 경험하며 살아가지만, 그 고비 고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이겨나갔던 적이, 다 있었기 때문 아닙니까?  비록 지금은 좌절하고 낙심하고 있다 할지라도, 과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던 경험들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당하는 인생의 고난도,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나타낸 이 신앙도, 우리와 견주어 그리 대단한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충분히 우리도 나타낼 수 있는 신앙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도, 이삭과 같이 인생의 흉년을 당할 때, 절망부터 하지 말고, 뭐부터 하라?  기도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과거에 도우셨던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도우십니다.  아멘!!  오늘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 내일도 미래도, 주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 나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지요?  언제 나를 도와주십니까?  기도할 때, 기도 할 때....
하나님을 찾아 엎드려 기도할 때, 그 때 나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기도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하나님이 그 극심한 흉년 중에 이삭을 만나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당하는 고난 가운데서도 나를 만나주시고, 하나님이 이삭에게 갈 길을 가르쳐 주시고, 친히 그 인생을 인도해 주셨던 것처럼, 오늘 나에게도 갈 길을 가르쳐 주시고, 내 인생을 친히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나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어려운 일 다 당합니다. 나만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누구나가  다 당하는 고난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볼 때는, 그 고난의 크기가 크고 작음이 있겠지만,  실제 당사자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냥 다 죽을 지경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예요.  다 똑같습니다.  다를 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지금 이 시간에 기도하는 성도들인 줄 믿습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직장에, 또는 사업에 어려운 일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욥과 같이 그냥 모든 것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또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겨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라도,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삭과 같이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만날 수 있고, 하나님 만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고, 하나님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따라갈 때, 다시금 인생에 회복되어지고, 갑절의 축복, 나아가 백배의 축복을 받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3절과 4절 말씀을 보세요.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할렐루야!!!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삭과 같이 인생의 절망 중에서도 다른 방법 찾지 않고, 무조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기도하는 신앙을 통해, 이런 귀한 백 배의 축복 다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두 번째 이삭이 이런 넘치는 축복, 놀라운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을 향해 언제나 예배하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25절 말씀을 보세요.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삭이 뭐했다고 했습니까?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배하는 사람이었다.

별로 드러나는 것이 없어 보이는 신앙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제단 쌓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했던 사람이 바로 이삭이었다는 겁니다. 
이 제단 쌓는 신앙이 어디서 기인 된 것일까?  바로 아버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가는 곳곳마다, 그의 발걸음이 머무르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도 그 신앙을 본받아서, 가는 곳곳마다 제단을 쌓았던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에게, 다른 특별하게 기억될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받지 못했던 백 배의 축복을 받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앞에 제단 쌓아 예배하는 이 신앙이, 결국 이삭으로 하여금 그런 엄청난 축복을 받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생각해 봅시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 이겠습니까?  기도하는 일입니까?  예,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예배하는 일입니다.  믿습니까?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예배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신앙의 모습을 보면 어떻습니까? 
거꾸로 되어 있어요.  기도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예배는 두 번째 일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 신앙 중심이, 아직도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받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드리는 것이  주 목적이지요.  그러니 신앙에 무엇을 우선으로 합니까?  받기 위한 기도를 우선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분명 잘못된 신앙입니다.  신앙의 수순이 잘못되어져 있습니다. 

제단 쌓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인 줄, 믿으시기길 바랍니다. 
봉사를 많이 해도, 헌금을 많이 해도, 기도를 많이 해도,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을 소홀이 여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사를 보세요.  철저하게 성수주일 하는 민족과,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예배하는 일을, 삶의 최 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민족과 나라가, 반드시 복을 받은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갈 때에, 메이플라워라고 하는 배를 타고 건너갔습니다.
추위와 파도와 흑암의 고통과 싸우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플리머스에 처음 상륙하였던 1620년에, 그들이 제일 처음에 했던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해에 농사를 지어 제일 먼저 교회를 건축하고, 그 다음에 학교를 짓고,  그 후에야 자기들이 살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한결 같이 인디언들의 습격을 받으면서도 지켰던 것은, 제단을 쌓는 일! 즉 예배하는 일이었다는 겁니다.  그 결과로, 오늘날 미국이 부강한 나라로 넘치는 복을 받아서, 세계 여러 나라들을 살리는 나라와 민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도, 이삭과 같이, 남은 생애 오직 예배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성수주일 바로 하면서, 하나님 허락하신 넘치는 축복, 남은 인생에 충만히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미국 백화점의 창안자이고, 백화점 왕이라고 불렸던 죤 워너 메이커씨가, 뉴욕 백화점에 1854년 날짜로 써 붙였던 고시 문이 최근 발견되었습니다.
이분은 주일에는 틀림없이 자기가 섬기는 시골교회로 내려가고 거기서 주일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을 허락 받고야, 체신부장관이 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메이커, 메이커”라고 하는 메이커 상표의 창시자요, 백화점의 쇼케이스 등, 진열장도 이분이 고안한 아이디어입니다.

이분이 백화점을 운영할 때에 그 사원들에게 공고한 내용입니다.
“전 사원에게 알림/ 안식일(주일)에는 여하한 일이 있어도 출근해서는 안 됨! 스페인 시가(여송연)를 피우거나, 이발소에서 면도하거나, 댄스홀 및 기타 유흥업소에 가려면 회사에 그 이유서를 제출할 것.
본사 사원은 교회에 가서 연간 5불 이상의 헌금을 바칠 것. 또한 매주일  주일학교에 출석하여 성경을 배울 것” 등을 공고한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넘치도록 복을 받은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못 할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게 하셨습니다.  아론의 마른 막대기에서 싹이 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기적이, 이런 놀라운 축복이 어디서 나옵니까?  예배하는 신앙에서 나오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이삭이 이런 놀라운 축복, 엄청난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삼전 사기하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이삭은 그랄에 가서 우물을 여러 차례 팠습니다.  그런데 우물을 얻으면 시비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그 우물을 빼앗깁니다.  또 우물을 팠는데 뺏으러 옵니다.
그러면 또 빼앗깁니다.  이렇게 하기를 몇 번을 합니까?  세 번을 반복해서  했다는 것입니다.  참 짜증이 날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냥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이삭은 달랐다는 겁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빼앗기면 또 파고, 빼앗기면 또 파고, 불굴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오늘 18절 이하의 말씀이 그러한 내용들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이 있다면, 결코 망하지 않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22절 말씀을 보세요.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할렐루야!!!!

참고 또 참으면, 이런 축복의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환경에 굴하지 않고, 참고, 또 참으면, 우리 또한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지경을 넓혀 주시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내하는 신앙, 오늘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삭과 같이 우리가 세 번만 인내하고 참으면서, 또 다시 도전하는 신앙이 되어질 때, 오늘 우리도 이런 귀한 축복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실패했습니까?  여러분 소유를 빼앗겼습니까?  그러면 다시 시작하십시오.  처음부터, 아예 바닥을 치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또 실패했습니까?  세상에 빼앗겼습니까?  그러면 또 다시  해 보는 겁니다.  주저앉지 말고 다시 일어나 시작하는 겁니다. 아멘!! 
여러분, 26 - 28절 말씀을 다같이 한번 읽어 봅니다.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 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렇게 괴롭게 하던 그랄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 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지요.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노라...” 할렐루야!!!
이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아무리 방해가 있어도, 시비가 있어도, 주님 뜻대로 행하고 범죄치 아니하고, 삼전 사기의 도전 정신으로 포기하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에, 이런 역사를 일으켜 주시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도 이런 신앙 소유하게 될 때, 이런 축복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갚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역전의 축복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이삭의 신앙을 우리 모두가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삭의 신앙, 그리 대단한 신앙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충분히 따라갈 수 있고, 본받을 수 있는 신앙입니다.  우리도 흉년 중에서라도 절망하지 않고, 정신  차리고 기도하게 되면, 이런 복 받을 수 있고, 또 이삭과 같이 예배하기를  힘쓴다면 이런 복 받을 수 있고, 또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또 다시 일어서며 도전하는 이삭과 같은 신앙이 있다면, 우리도 모든 것 회복하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런 귀한 신앙 소유하시고, 이런 귀한 축복, 우리의 남은 생애에 다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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