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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흔적 (요일 2: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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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요일2:15~17)

  언젠가 제가 남해안에 잠시 머물던 때의 일입니다. 높은 산 위에 올라가 먼 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멀리 배 한척이 달리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한참 바다를 가르면서 열심히 달리는데, 배 뒤쪽에서 하얀 거품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 거품이 마치 굵은 선을 그리듯 바다에 긴 흔적을 남깁니다. 그런데 잠시 후 하얀 거품이 그려놓은 흔적이 점점 사라지더니 언제 배가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잔잔한 바다가 되고 맙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우리 인생이 바로 저런 것이로구나!” 한참 열심히 달리듯 살아갈 때는 뭔가를 하는 것 같은데, 잠시 후에 보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덧 송년주일입니다.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훌쩍 지나갔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해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무엇을 남기셨습니까? 무언가 마음이 뿌듯할 정도로 남긴 것이 있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혹시 무엇 하나 딱히 남긴 것 없이 연말을 맞이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마치 배가 열심히 달리면서 내뿜은 거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한 해가 지나가는 건 아닙니까? 만약 이런 식으로 한 해 한 해 지나간다면 마지막 인생의 종점에서 우리의 심정이 과연 어떨까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인생이요, 단 한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말입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때입니다. 냉정하게 지난 한 해, 아니 지난 인생을 반성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인생의 흔적을 남겼는지 ... ? 부디 오늘 말씀을 함께 상고하면서 우리의 다가오는 새해에, 그리고 우리의 남은 생애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인생 : 세상에 집착하는 인생

  참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그런 인생은 바로 세상에 집착하는 인생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15절 이하를 봅니다.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 하니” 여기서 세상이란 말에 대해 조금 설명해 드립니다.

  성경에서 세상이란 말은 크게 두 가지 용례로 사용됩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가리킵니다. 우주만물 모두를 가리킵니다. 좁은 의미로는 그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하실 때는 바로 이런 용례로 사용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마귀의 영향 아래 있는 죄악 세상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은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지만, 마귀가 최후의 심판 때까지 한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죄악이 관영한 곳입니다. 세상이 악하다는 표현을 할 때가 바로 그런 용례입니다. 본문에서는 당연히 죄악 세상을 의미합니다. 

  다음 16절을 보시죠.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죄악 세상에 있는 것들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욕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그 욕망이 세 가지로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무엇, 무엇, 무엇인가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첫째로, 육신의 정욕이란 무엇입니까? 육신의 정욕은 육체의 죄성을 좇아 일으키는 욕망입니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초과하는 욕망이죠. 정도를 벗어나는 식욕, 성욕, 그 밖에 술 취함과 방탕 등 각종 세상 향락을  가리킵니다. 두번째로, 안목의 정욕이란 무엇입니까?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는데서 비롯되는 욕망입니다.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소유하고 즐기려는 과도한 욕망을 가리킵니다. 세 번째로, 이생의 자랑이란 무엇입니까? 이생의 자랑은 세상의 헛된 것을 과시하려는 욕망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허영심이죠.

  이 모든 욕망들, 세상에 속한 것들은 잠시 잠깐은 화려해 보이고, 좋아 보이고, 즐거워 보이지만 잠시 후에는 다 사라져버립니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뭐라고 표현합니까? 17절 보십시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pass away) ... ” 얼마나 헛된지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pass away’ 즉 휙~ 하고 사라져 버린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한번 알아 맞춰보세요. 성경 인물 가운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세상의 욕망을 가장 많이 추구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 솔로몬입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입니다. 그는 왕궁에 은이 없을 정도로 재산이 엄청났고, 처첩이 1천명이었고, 세상의 온갖 향락을 다 즐겨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경험해 본 후 회한에 싸여 인생무상을 고백합니다. 그게 바로 전도서 아닙니까? 전1:8 “ ...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 하도다” 눈에 보기에 좋은 것, 귀로 듣기에 좋은 것을 다 경험해 보았지만 그 때뿐이고, 참 만족이 없었다는 겁니다. 전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물에 집착하고 긁어모아 봤지만 그것으로도 참 만족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세상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인생을 가리켜 뭐라고 말씀합니까?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육체’는 인간을 가리킵니다. 모든 인간이 풀과 같이 쉬이 쇠한다는 겁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아닙니까? 그리고 인간의 영광 즉 부귀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꽃은 풀보다 먼저 떨어집니다. 그만큼 신속히 사라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말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 꽃이 아무리 붉고 화려해도 10일을 못 가고, 권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10년을 못 간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인생무상입니다. 별 생각 없이 그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세상에 집착해서 살다 보면 인생이 이렇게 쉬이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야고보 선생은 아주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인생무상을 표현합니다.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 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안개는 자욱하다가도 금세 사라집니다. 인생이 그런다는 겁니다.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이런 실화가 있습니다. 1923년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 당시  미국 최고의 부호 9명이 모였습니다. 당시 신문들은 그들을 가리켜 일제히 ‘20세기의 신화’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들은 대기업의 회장들이고, 학벌도 좋고 명성도 가진, 이른 바 최고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25년이 지난 1948년 그들의 모습을 추적해 보니까 너무 비참했습니다. 1명은 정신이상자가 되었고, 3명은 파산해서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다 사망했고, 2명은 출옥해서 자살 직전에 있었고, 3명은 자살했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염연한 실화로 세상의 부귀영화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여실히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는 삶은 이렇게 허망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누리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한 육체를 가진 인간인지라 세상의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본욕구를 넘어 과욕이 되고 심지어 집착의 수준이 되면 그것은 헛되고 헛된 삶으로 끝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삶은 한 마디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인생입니다. 결코 따라가서는 안 될 인생의 유형입니다.

[2]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인생 :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 

  그러면 과연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요? 한번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이기에 흔적을 남기는 인생, 그러나 나쁜 흔적이 아니라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말 기억나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죄송하지만, 공중 화장실에 붙어있는 글귀입니다. 용변을 본 후 잘 처리하라는 홍보 문구입니다. 이 글귀를 보고 피식 웃었지만, 돌아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리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입니다. 사실은 사람마다 흔적을 남깁니다. 앞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인생이란 말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아름다운 흔적, 그리고 영원한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흔적을 남기되 나쁜 흔적을 남깁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 하면 무슨 생각이 납니까? 인생을 가장 못되게 살았던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역사에 흔적을 남겼지만, 아주 나쁜 흔적을 남긴 겁니다.

  우리는 나쁜 흔적은 말고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여러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상의 제정 유래를 잘 아시죠?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Alfred Nobel)이 말년에 신문을 읽다 깜짝 놀랐다. “다이너마이트의 왕, 파괴의 발명가 노벨 사망”이라고 대서특필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의 형이 죽었는데 오보한 것입니다. 노벨은 이 일을 계기로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정한 게 바로 노벨상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를 다이너마이트 발명가라고 기억하지 않고, 노벨상 제정자로 기억합니다. 그는 나쁜 흔적으로 아름다운 흔적으로 바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라도 우리에게 나쁜 흔적이 있다며 그것을 빨리 지워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되돌아보면 너무 추하고 부끄러워 지워버리고 싶은 장면이 있지 않습니까? 감사하게도 십자가 보혈로 그것을 다 씻어주신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죄 사함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를 씻은 인생에 아름다운 흔적을 많이 남겨야 합니다.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되, 오래도록 남는 흔적, 더 나아가 영원히 남아 있는 흔적을 남기면 좋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남길 수 있는 흔적은 세 방면으로 새겨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역사 속에, 그리고 하나님 앞에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흔적을 남깁니다. 내가 떠나고 난 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절망 그렇죠. 우리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미 떠난 사람이지만, 헤어진 사람이지만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기억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흔적을 남긴 인생입니다. 우리도 이런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역사에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세계 역사에, 국가의 역사에, 교회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예해방을 이룩한 링컨 대통령 같은 분은 세계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인생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흔적은 특별한 사람들만 남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기는 흔적이나 역사에 남기는 흔적은 오래 남는다 해도 영원히 남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흔적은 오직 하나님 앞에 남기는 흔적뿐입니다. 또 이것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도,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17절을 다시 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pass away)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사라져버리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거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영생한다는 말도 되지만, 하나님이 영원히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잘 연구해 보면, 우리 각자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기억 장치가 여러 가지 소개되어 있습니다. 말3:16 “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나님 앞에 ‘기념책’, 다시 말하면 ‘기념앨범’이 있다는 겁니다. 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천국에서 영원히 빛나는 스타로 기억될 인생들이 있다는 겁니다. 눅10:20 보면 가장 중요한 게 나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하늘에 기록된 것은 ‘생명책’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할 사람의 리스트가 수록된 책입니다. 가장 중요하죠. 아무리 세상에서 대단한 일을 해도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도여행을 갔다가 대단한 성과를 올리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제일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아름답고도 영원한 흔적을 남길 수 있겠습니까? 17절에서 뭐라고 했나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입니까?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과 행위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게 진짜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처럼 산다는 게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 한 가지 원칙만 지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 원칙은 바로 이겁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입니다. 이 말은 영문으로 “What would Jesus do?”입니다.  W.W.J.D. 운동이 있는데, 이 말의 네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것입니다. 각 분야에서 예수님처럼 살아보자는 겁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실현할 수 있을 겁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닮은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성령께서 우리의 인격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점점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사랑 실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소한 경우라도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위대한 사랑만 있을 뿐 위대한 일은 없다”고 말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예수님처럼 사랑하면 그 자체가 이미 위대한 일이라는 겁니다. 반대로 아무리 생색나는 큰일을 해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준다 해도, 외로운 자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를 건넨데 해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세째는, 예수님의 복음 전파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명령 ‘지상명령’입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줄곧 하셨던 일이고, 승천하시고 성령을 주신 것도 교회와 성도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예수님처럼 사는 중요한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런 일들이 어떻습니까? 꼭 세상에 대단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만 가능한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가능한 것들입니다. 자신의 삶속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재미교포 사회에서 ‘깡통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이주영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여러 해 전 신문에서 본 일이 있는데, 그분은 LA에 거주하던 아주 평범한 분입니다.(소개 당시 87세) 노인 아파트에서 소박하게 살면서 깡통을 주워 한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한인학교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분이었습니다. 한국에 땅이 좀 있던 것마저 구세군에 헌납해서 국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도록 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었습니다. 그분은 정말 소박하지만 예수님처럼 사신 분입니다. 그분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한 귀퉁이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흔적을 남긴 분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 교회 안에도 이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이미 하늘나라에 가신 분도 있고, 오늘도 묵묵히 아름다운 흔적을 만들어 가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또 한 해가 갑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난 한 해 어떻게 살았습니까? 무언가 열심히 한다고 동분서주했는데, 어떤 흔적을 남기셨나요? 혹시 쉬이 사라져버리는 세상의 흔적만을 위해 살지는 않았나요? 오래 남는, 영원히 남는 아름다운 흔적을 위해 살았나요? 스스로 평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지난 한 해 어떤 모습으로 살았든지 다시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하심에 감사하고, 아직 이 세상에 생존하도록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면서, 아름다운 흔적 영원한 흔적을 남기리라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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