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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구영신] 불신은 보내고 믿음을 받아들이자 (민 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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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불신은 보내고 믿음을 받아들이자.
본  문  :  민수기20:2-13

2007년을 보내고 대망의 2008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복된 한 해가 되시고, 계획하신 일마다 기대 이상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일마다 때마다 함께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한 해동안 여러 가지 일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사다난하였던 한 해였다고 합니다.  ‘바른사회시민회의’에서 발표한 2007년 10대 뉴스를 선정 발표하였습니다. 1위는 신정아 학력위조 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가 아프칸 탈레반 피랍 사건이었고, 3위가 태안 유조선 기름 유출사건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삼성비자금 의혹파문, BBK 의혹 관련 논란, 제17대 대통령 선거, 남북정상회담 개최, 한미FT 타결,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박태환 김연아 선수의 세계적 활약이 들어갔습니다.  참으로 전 국민의 가슴을 졸이며 마음 아프게 했던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10대 뉴스를 들어보니 지난 2007년이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8년에는 밝고 긍정적인 일들이 10대뉴스에 선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것을 계획하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결심도 매년 되풀이 되고 있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리는 느낌입니다.  새해가 되면 거창하게 신년의 계획을 세워봅니다.  1년의 목표, 월별 계획, 주별 계획, 일별 계획을 세워보지만, 대부분이 작심삼일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습관에 포로가 되었고, 게으름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거창한 목표는 며칠 만에 허물어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결심이 며칠 못 간다고 하여도 새롭게 결심하고 결단해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만이 시간을 계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밤이 되고, 낮이 되는 것으로 하루를 살게 하셨고, 달의 기울기를 보게 하여 한 달을 정하게 하셨고,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는 것을 보면서 한해를 계산하게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남은 날을 계산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계절의 변화와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의 남은 날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해에 꼭 해야 할 일 50가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서울대사회과학대학을 나오시고 대학에서 교수하시는 김이랑교수님의 책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새해에는 전혀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를 위하여 몇 가지 실천방안을 세워보았습니다.  참된 변화는 물질적인 변화나 육체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참된 변화란 사물이나 사건을 보는 시각의 변화, 신념의 변화, 기대의 변화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달라지고, 다른 사람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가 달라지는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 내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달라지기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내 가족들이 달라지고, 내 주변 사람들이 달라지기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달라지면 모든 사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내가 달라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남편이 달라지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달라지면 남편이 달라지고, 아내가 달라집니다.  이것은 사회나 교회나 가정이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새해에 꼭 해야 할 일 50가지”라는 책은 5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 행복한 일하기 2) 건강한 생활 3)지혜로운 돈 관리 4)소중한 사람 5)소소한 일상습관  이렇게 5가지 큰 제목 아래 10가지씩 작은 제목을 달아서 50가지를 쓰고 있습니다.  제1장 ‘행복한 일하기’에서 10가지를 소개합니다.  일의 우선순위 정하기, 오늘 해야 할 일 정리하기, 중간에 꼭 체크하기, 오늘 할일 내일로 미루지 않기, 과중한 업무에서 탈피하기, 책상 정리하기, 일목요연하게 서류 정리하기, 꼼꼼히 메모하기, 전화 친절히 받기, 능력개발에 투자하기  등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알찬 계획으로 2008 한해는 여러분의 생애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생각한 것이 여러분의 운명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무엇을 생각하시고 결단하셨습니까?  곧 그것은 여러분의 인격이요, 여러분의 운명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불신은 보내고 믿음을 받아들이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다가 가데스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온 지 1년이 되었을 때, 이곳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냈는데, 불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지금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다시 가데스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 가데스에 왔을 때에 모세의 누이이신 미리암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본문의 온 회중은 출애굽 제1세대가 거의 다 세상을 떠나고, 제2세대들이었습니다.  제2세대 국민은 출애굽 할 때에 어린 청소년이었거나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백성이 도착한 가데스라는 곳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을 따르고, 밤에는 불기둥을 따라 오다보니 가데스란 곳에 왔는데, 물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아가려고 하면 물이 있어도 남는다고 할 수 없는데, 아예 물이 없었습니다. 

2절 말씀을 봅니다. “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그리고 회중을 위한 물이 결코 있지 않았다.”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를 보면 하야라는 동사는 “있다”는 말인데, 그 앞에 강하고 지속적인 부정을 나타내는 “로”라는 말을 붙여 “로하야”라고 하면 “그것이 결코 있지 않았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물의 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의 물이라도 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는 말입니다.  물이 없다는 말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생명의 위협이란 말은 좋게 말하는 것이요, 한 마디로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게 된 마당이고 보니 그동안의 불만을 일시에 솥아 내었습니다.

출애굽 1세대들이 마라에서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했던 것처럼 지금 출애굽 2세대들도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40년간 광야에서 연단하였고, 수많은 이적과 은혜를 체험하였는데도 여전히 원망과 불평을 달고 다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만큼 체험하였는데도,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들어 다투어 말하였습니다.  3절입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라고 외쳤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는 말은 노년이 되어 자연적으로 죽었다는 말이요,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출애굽 2세대들,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1세대의 부모들이 원망하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부형들은 “우리가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에 죽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훌륭한 신앙을 이어받아야만 좋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원망하고 불평하고 대적하는 것을 보고 자라는 것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무엇을 보고 자랐습니까?  보고 들은 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불리한 환경이 주어진다고 하여 삶의 의지를 저버리거나, 신념을 바꾸는 것은 자신에게도 좋지 않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더욱 자식들에게 좋지 않습니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온 회중은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대적하고, 따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고 아예 대놓고 욕하고 달려들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하심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좋은 방안을 제시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격다짐으로 문제를 복잡하게만 만들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어찌하여”라는 말은 “어쩌자고”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누구에게 “어쩌자고”하는 말은 대적하여 싸우자는 말입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모세와 아론은 해결하려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회중 앞을 떠났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대적하는 무리와 함께 하지 않고, 두 사람이 합심하여 하나님의 장막, 회막 문에 나아가 그 몸을 엎드렸습니다.  엎드린다는 말은 굴복한다는 말인데, 간구한다, 항복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얼굴이 땅에 닿도록 엎드렸다고 하는 말이 없습니다.  엎드렸다는 말은 얼굴이 땅에 닿도록 엎드렸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두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를 가지고 가면서,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령을 내려 물을 내라고 하면 반석은 물을 내어준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반석 앞에 서서 크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하시려는 일을 선언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지팡이를 잡고 백성에게 나아갔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백성들을 보는 순간 정말 답답하고 책망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면서 모세가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므리바의 사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결코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주의 종이라는 하여도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는 영광을 종들에게 내주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헌신하고 충성한 모세와 아론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거나,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축복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확정하여 선고하십니다.  지팡이는 다만 가지고 가는 것이고, 반석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하셨지, 누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씩이나 치라고 하신 것입니까?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하여도 혈기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라고 하면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대적한다고 하여 같이 혈기를 내거나, 하나님이 약속하여 주셨다고 하여 권위의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은 하나님의 종이 할 일이 아닙니다.  언어의 폭력이 있습니다.  “반역한 너희여” 이 말은 예전 성경에는 “패역한 너희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상당한 격한 말입니다.  백성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격한 언사는 반드시 격한 행동을 가져옵니다.  언어를 순화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데스라는 지명인데,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과 다투었으므로 그곳을 ‘므리바’라고 하였는데, 그 뜻이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도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106:33에서는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입술로 범죄하였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마치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모세의 말은 망령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두 번씩이나 친 것은 교만이요, 혈기를 부린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물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반석에게 명령합니다.  반석은 하나님의 명을 들어라.  반석아 우리 하나님은 물을 내라신다.”라고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그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어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받으셔야 하는 찬송을 우상에게 넘기지 않습니다.  사42:8에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영광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모세의 위신은 세워주었지만, 반드시 그 책임을 묻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받으실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사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었고, 들어갈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무엇을 요구하여도 다 들어주셨습니다.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여 멸망할 지경에 이르렀어도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기도라도 들어주지 않으신 것이 있습니다.  신명기 3:25-26에 보면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나로 요단강을 건너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아름다운 땅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불신을 몰아내고,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일생 주님을 위하여 일한다고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믿음을 잃어버리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대적하거나 혈기부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지 못한다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책망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불신을 떠나보내고, 믿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서 안 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는 불신과 원망은 다 내다버리고, 나는 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하게 하신다,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세상 환경이 어려워지고, 불신 세력이 강하다고 하는 것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시는데, 세상의 그 어떤 세력을 다 합해놓은 것보다 크시고, 위대하시고, 무엇이든지 다 이기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니, 대저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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