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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왜 예수를 잃어버렸는가? (눅 2: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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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를 잃어버렸는가? (눅 2:41~50)

어느덧 2007년이 저무는 마지막 12월 30일 주일이 되었다. 벌써 끝이 왔는데 ‘이 12월 30일이 인생의 종착역이라면 나는 어떤 일을 하였는가?’ 생각해 보았다. 한 주일동안 나를 살펴보니 내 마음 속에는 온통 잃어버린 물건을 찾느라고 골몰하고 있었다. ‘안경을 어디에다 두었을까?’ CM 수련회 하는 날에 땅바닥에 두었다가 잃어버린 것도 같고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인생의 마지막이 왔을 때 잃어버린 것, 물건을 찾느라고 헤매다가 끝이 난다면 정말 웃기는 인생이 될 것 같았다. 안경이야 못 찾으면 그냥 버려두고 또 다시 가서 안경을 맞추면 된다. 그런데 정말 잊어버려서는 안될 신앙, 교회, 하나님, 말씀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성경을 보면 잃어버린 이야기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100마리 양 중 한 마리 양을 잃어버린 비유, 10드라크마의 동전 중 한 개의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비유, 두 아들 중 한 아들을 잃어버린 비유 등 이는 모두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로 찾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이야기가 나온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도 예수를 잃어 버렸다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이다. 양을 잃어버려도, 동전을 잃어버려도, 자녀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아니 더 무지하게 말한다면 다른 것을 다 잃어버려도 예수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이 세상에서 나의 자식도 결코 잃어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더욱 소중한 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다. 예수를 잃어버리면 끝이다. 예수를 잃어버리면 다 잃는 것이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자식을 잃어버리고 예수마저 잃어버리는 분을 봤다. 화가 나서, 실망해서 예수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자식을 잃고 오히려 예수를 붙잡은 분도 봤다. 자식을 잃어 버리고 그 아이의 이름으로 선교사를 돕는 분도 봤다. 교회를 세우고 장학 기금을 드리는 것도 봤다. 저들은 결코 예수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환난이 와도 잃어버릴 수 없다. 시험이 와도, 성공이 와도 예수를 놓칠 수 없다.

어떻게 예수를 잃어버렸는가?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의 부모는 왜 예수를 잃어버렸는가?
 

첫째, 행사를 치르느라 잃어버렸다. (눅2:42~43)

유월절이 오면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예루살렘으로 갔다. 눅2:42을 보면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부모를 따라 12살된 예수도 같이 동행하였다. 눅2:43을 이어서 보면 예수님은 절기의 날이 마쳐졌을 때 예루살렘에 머물러 계셨고 부모들은 다른 가족과 이웃 사람과 어울려 고향으로 향했다. 주님을 잃어버린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래서 예수를 잃어버린 지 3일 후에 성전에서 예수를 다시 찾게 되었는데 그 3일간의 시간이야말로 고통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찾아서 다행이다. 찾았기에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찾지 못했다면 유월절 절기를 지킨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나는 교회 행사를 치르고 나서 예수를 잃어버린 사람이 있지나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성탄절, 당회, 구역회 등 행사를 치르고 예수를 잃어버리는 이들이 있으면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 분명 예수의 부모가 예수를 잃어버린 이유는 절기의 분주함 때문이다. 우리는 분주함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교사, 임원, 성가대, 직분자 등 주어진 행사를 치르느라고 예수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교회의 사역, 회사 업무, 개인 사업 등으로 인해 분주함에 밀려 기도가 생략되고 분주한 행사에 밀려 묵상이 생략되면 예수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분주함을 경계하라.
 

둘째, 무지함 때문에 잃어버렸다. (눅2:43)

눅2:43을 보면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라고 하였다. 부모가 예수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은 예수의 마음을 모르는 관심의 소홀이다. 사람들이 법석대는 절기의 소란스러움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즉 예수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 무지는 예수의 마음에 대한 무관심이 만든 열매이다.

오늘날에도 부모는 아이를 잘 모르는 무지함으로 아이를 잃어버린다. 대부분 그 무지는 지나친 편애나 지나친 무관심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아이의 눈과 귀와 마음의 상태를 알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부모는 똑똑한 것 같아도,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아도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며 아이에 대해 무지한 것이다. 이처럼 교양과 훈계의 무지함도 문제이지만 영적 무지함도 문제다. 예수는 내 뜻과 내 생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복음으로 오신 예수를 알게 되는 것은 성령의 감동과 계시가 있어야 한다. 계시의 영을 구해야 한다. 교회를 오래 다닌 것과 모태 신앙인 것과 세상의 학력, 아이큐, 상식으로 예수를 찾을 수 있다는 자만은 영적 무지이다.

그러므로 엡1:17에서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며...”라고 하였다.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을 알고 소망을 알고 영광을 알고 능력의 크심을 안다. 예수 아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적 무지를 버리기 위해 계시의 영을 받자. 예수를 잃어버리는 것은 영적 무지 때문이다.

 
셋째, 착각 때문에 잃어버렸다. (눅2:44)

눅2: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착각이 문제다.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아는 생각은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예수가 함께 하지 않는데도 동행하는 줄 아는 생각, 왜 이런 착각을 할까?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다. 그것은 안일함 때문이다.

당시의 순례객들은 여행을 할 때 먼저 가는 팀이 있고 늦게 가는 팀이 있었다. 먼저 가는 팀은 여자들이고 남자들은 뒤처리를 하고 늦게 출발하였다. 그래야 시간도 아끼고 여행의 속도가 조절되어 중간쯤에서 합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행하는 줄 착각한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깨어있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12살 난 남자이니까 마리아는 뒤에 오는 줄 생각했을이지 모르고 요셉은 어머니를 따라 먼저 출발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착각은 조심하지 않는데서 온다.

우리는 안일함에서 일어나 예수와 함께 동행하며 내 삶 속에 예수가 거하고 계신 지를 찾아야 하겠다.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이런 저런 일에 참석하고 있다고 해서 곧 예수를 모시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집사, 권사의 직분이 있기 때문에 예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항상 점검해야 한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내 삶의 한 가운데 예수님이 같이 걷고 계신지 유의하여야 한다. 주님의 발자국 소리, 주님의 숨소리, 주님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나와 동행하시는 것이 아니다.


넷째, 잘못된 곳에서 찾기에 잃어버렸다. (눅2:44~45)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찾지 못한 부모는 눅2:45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눅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났다. 예수를 잃어버린 부모님, 그들은 사흘이나 찾았어도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이었을까? 그 이유는 잘못된 곳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성전에 계신다. 그런데 예수를 길거리에서 찾았다. 사거리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는 예수를 세상 길거리 문화에서 찾으려 한다. TV, 라디오, 신문 등 매스컴이 전해주는 이야기 속에서 예수를 만나려 한다. 절대 예수는 그 속에 계시지 않는다. 예수는 말씀 속에 누워 있다. 또 예수는 언제나 아버지 집에 머물러 계신다. 예수를 만나 “어찌하여 나를 금심하게 하며 찾게 하였는가?”라고 묻는 부모에게 예수는 눅2:48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그렇다. 예수를 찾는 지름길은 주님의 생각을 아는 데 있다. 주님의 생각은 내가 아버지 집에 머문다는 선포이다. 예수가 내 삶에서 실종되었다면 오늘 예수를 다시 찾자. 예수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예수가 계시는 아버지 집으로 나오라. 학생이 학교에 가면 공부만해도 우등생은 못되도 졸업장은 준다. 직장인이 회사에 나가면 일을 아주 못해도 월급을 준다. 아버지 집으로 나와 아침이고 저녁이고 교회로 나오라. 그러면 반드시 예수를 찾고 만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갈 때 교회에 들렀다. 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 교회에 들렀다. 교회에 들러 기도하고 주님을 부르고 간 그 흔적들이 돌이켜 보면 그것이 예수를 만나고 찾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로 오라. 한 번이라도 더 오라. 아버지 집에 주님은 계신다.

영락교회 오제도 장로, 그분은 영락교회 50주년 행사에서 소개되길 50년간 교회를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바쁜 검사 생활을 하면서도 주일에 교회 나오는 일을 늦거나 빠지지 않았다. 우리도 그렇게 예수를 만나려 하고 예수님 마음을 알려 하고 찾아야 한다. 

2008년에는 예수님 없이 걷는 길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가 없으면 슬픔이다. 예수가 없으면 근심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예수 없이 걷는 그 길이 절망이고 걷는 그 길이 허무이다. 예수와 동행해야 한다. 오늘 이 아침 예수를 찾자. 그분이 계신 곳, 교회에서 주님을 만나 동행하는 새해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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