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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전도와 헌신 (고후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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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와 헌신 (고후 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고후 12:15)

  사도 바울은 무익하나마 자신이 주의 환상과 계시를 부득불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본 주의 환상과 계시는 분명히 초자연적인 역사였습니다. 바울은 십사 년 전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매우 조심스럽게 언급하였습니다. 그가 셋째 하늘에 올라간 사건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그 곳에 이르게 되었을 뿐이며, 이 같은 신비는 현대 과학으로도 도저히 풀 수가 없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때에 자신이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잠깐 언급한 후에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본 주의 환상과 계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많이 받은 바울이 너무 자고하지 않도록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육체적 질병으로 생각됩니다. 육체의 가시는 사도 바울로 하여금 일생 동안 고통을 겪게 했습니다. 질병은 사람의 교만을 방지하는 좋은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마음이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 간구 하였습니다. 바울의 기도에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준 목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떠나지 않는 가시 즉 그의 몸을 괴롭히는 질병이 하나님의 특별한 뜻에 의하여 그의 몸에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을 기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간증하고 나서 곧 그의 간증이 자칫 자랑으로 여겨질 것을 염려하며 스스로 어리석은 자라고 자처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도구로만 쓰여지기를 원할 뿐 추앙 받는 대상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강하게 반증해 줍니다.

사도 바울은 위엄과 권위로 교회 위에 군림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낮은 곳, 낮은 자리에서 성도들을 돌보고 말씀을 증거하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구하는 것은 성도들의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에 비유하였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돌보고 사랑하는 것처럼, 자신이 교회를 돌보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긍휼이 있는 지도자는 성도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의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지도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고 구원시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소유물을 허비하는 것과 자신의 온몸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각오도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각오는 실로 위대한 사역자의 모습을 반증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역자들의 거룩한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이 땅에 실현됩니다.

사도 바울은 욕을 먹고 모욕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억울한 소리를 들을 때 참고 견디며 전도하며 헌신합니다.
(고후 12:12)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주의 일을 하다 보면 오해를 받습니다. 왜냐 하면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부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나와 결혼 하기 전에 선을 열두번도 더 봤다며?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나를 선택했어? 내가 어디가 매력적이었던 것야?” 그러자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어 그거야 나와 결혼하자고 말한 사람이 당신 말고 또 있어야지”

돈 한 푼이 아쉽기만 하던 신혼 시절에 아침을 먹으면서 아애에게 용돈을 탈 생각으로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당신이 나한테 10만원 짜리 수표를 주더라구... 그 꿈은 현실로 이루어 지지 않을까 해서 몹시 기대가 되는데 ...” 가 맣이 떨어지자 말자 아내가 이렇게 대꾸합니다. “그래요 어젯밤 내가 당신에게 주긴 했지. 그런데 꿈에서 깨고 나니 그게 부도 수표던데” 

그런데  오해 받을 때 견디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잘 이겨나가야 됩니다.

  사도 바울같이 귀한 인물의 앞길에도 고통과 고난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험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잘 달렸습니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앞길이 순적하기를 원하지만, 때로는 앞길에 원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전도하며 헌신 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이 한 여인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이 가난하고 귀먹었다고 그 여인이 베토벤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대개 여자들은 상황이 바뀌면 마음도 바뀝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목숨을 바쳐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하던 여자도 더 좋은 남자가 생기면 그 마음이 변하고, 또 남자가 약해져도 마음이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토벤의 애인도 베토벤이 병들고 어려워지니 떠나가 버렸습니다. 남자가 받는 상처 중 가장 큰 상처는 애인에게 버림 받는 일일 것입니다. 베토벤도 사랑하는 애인에게 버림을 받고 나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또 친구들의 모임에 가도 귀가 어두운 그는 대화가 잘 되지 않아 상처를 받았습니다. 병들고 가난한 베토벤을 친구들도 은근히 멸시했습니다.

그는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귀한 성직자 한 분을 찾아갔습니다. 그 성직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직자가 상자 하나를 갖고 와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이 상자 안에는 열 개의 구슬이 들어 있네. 여기에서 하나를 꺼내어 보게.” 베토벤이 상자에서 구슬을 꺼내어 보니, 검은 구슬이었습니다. “또 하나를 꺼내어 보게.” 또 검은 구슬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검은 구슬이 여덟 개, 흰 구슬이 두 개 들어 있다네. 지금 자네가 두 개의 검은 구슬을 꺼냈는데, 앞으로 계속 꺼내면 결국 흰 구슬도 나오게 되네. 이 상자에서 구슬을 꺼내다 보면 흰 구슬을 먼저 꺼내는 사람도 있고 자네처럼 검은 구슬을 계속 꺼내다 마지막에 흰 구슬을 꺼내는 사람도 있다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은 하나의 과정이라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검은 구슬도 있고 흰 구슬도 있는데 인내하고 잘 달려가면 흰 구슬을 만나게 된다네.” 그때 베토벤은 힘을 얻었습니다.

‘귀는 멀고 가난하여 애인도 떠나가고 친구도 떠나갔지만 사노라면 흰 구슬을 뽑을 날도 오리라.’ 그리고 기도하며 다시 용기를 내어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그가 역사에 길이 빛나는, 귀한 음악의 대가가 된 줄로 믿습니다.

  더욱 헌신하기로 다짐 합니다.

(고후 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합니다.
‘허비’는 낭비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물질도 인생도 허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자로서의 자신의 목표를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목표는 재물에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영혼 구원에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재물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내어줄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전도자 바울은 이기적 욕심을 위하여 일하지 아니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이타적으로 헌신하였습니다.
프랑스 북쪽에 있는 조그만 도시, 칼레에는 로댕이 만든 <칼레의 시민들>이라는 조각이 세워져 있다합니다. 이 청동 조각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백년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영국 왕이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로 쳐들어 왔다. 영국 왕은 끈질긴 칼레 사람들의 저항에 대한 전술로써 몇 달 동안 성을 포위하고 식량 줄을 차단했습니다. 결국 성 안의 사람들은 지치고 굶주려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칼레 시민 대표가 영국군 진지로 가서 항복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영국 왕은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항복을 받아 주겠다. 그 대신 시민들 중에서 여섯 명을 뽑아 처형하겠다.'  그 말에 칼레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생피에르라는 청년이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  청년의 그 한 마디에 사람들은 용기를 얻고 서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두 사람이 나서는 바람에 일곱 명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제비를 뽑자고 했으나 생피에르는 반대했습니다. '제비를 뽑는 순간 '내가 살았으면' 하는 생각에 용기가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이 빠지기로 합시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여섯 명이 다 모였으나 생피에르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의 집에 가보았는데,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칼레 시민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란 영국 왕은 생피에르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 이야기에 감동하여 시민들을 모두 성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사도 바울의 이런 희생적인 마음으로 사역했기 때문에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교회가 일어나고 열매가 풍성히 맺힌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희생과 헌신은 바로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한 영혼의 구원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막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싸움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 젊은 왕이 있어, 이웃 나라의 나이 많은 왕에게 잠시도 마음 편히 쉴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웃 나라의 나이 많은 왕은 부하들에게 그 호전적인 젊은 왕을 잡아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결국 잡혀온 젊은 왕은 나이 많은 왕에게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왕은 젊은 왕에게 '물항아리를 가득 채워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이 길 끝에서 저 끝까지 옮기되, 만약 한 방울이라고 흘리면 죽게 될 것이다'라고 했고, 다음날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이 많은 왕은 길 한 쪽에 모여든 구경꾼들에게는 그 젊은 왕을 야유하고 다른 한 쪽에 서 있는 구경꾼들에게는 응원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젊은 왕은 그 일을 잘 해냈습니다. 그는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나이 많은 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야유를 던지기도하고 격려도 했는데 너는 그들에게 무어라고 대답했느나?'

그러자 젊은 왕은 대답했습니다. '그들과 제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들의 격려가 제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물항아리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왕은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들려 주며 그 젊은 왕을 석방했습니다. '네게는 귀중한 영혼이 맡겨저 있는데, 너는 그것을 완전하게, 아주 흠없이 깨끗하게 주님께 되돌려 드려야 한다. 그것만이 중요한 일이다. 그 일에 성공하지 못하면 너는 죽는다. 값싼 승리로 사람들의 갈채를 받으려 하지 말아라. 사람들이 너를 놀리더라도 걱정하지 말아라. 네 영혼만 돌보아라.'

나아가서 자신의 영혼뿐만 아니라 타인의 영혼의 소중함도 알고 사랑하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자 D L 무디는 소년이었을 때 구둣방에서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무디가 교회의 성경교실에 등록한지 2주일 후 성경교사인 킴볼이 구둣방에 들러서 말했습니다. '나는 깊은 관심을 갖고 네 영혼을 걱정한다.' 그 순간 뜨거운 감동이 소년의 내면을 뒤흔들었습니다. '이상한 일이다. 나를 2주전에 안 사람이 내 영혼을 걱정한다고?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을 걱정할 때다.' 무디는 바로 지하실로 내려가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쳤고 후에 위대한 전도자가 됐습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육체의 가시를 오히려 기뻐하고 더욱 하나님께 겸손한 자세로 전도하며 헌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약한 것들에 불평하지 말고 그것을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활용하며 전도하며 헌신하는 성도들이 될 때 더욱 풍성한 은혜와 복도 함께 합니다.

몸도 좋지않고 학벌도 좋지 않고 어느 모로 봐도 자랑할 것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축복 속에 살고 있는 한 성도가 가만히 자신이 왜 축복을 받고 사는지 생각하다가 갑자기 자기의 머리에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옛날 시골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기도하러 교회를 가는데 비가 오고 벼락 치는 소리가 나고 천둥이 치는데 이왕 나온 김에 잠간이라 들러서 가자 하고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벼락 치는 소리가 나며 천장의 기와 이은 진흙덩이가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그는 갑자기 하나님의 교회가 이렇게 더럽혀져서야 되겠는가 하고 떨어지는 진흙을 등으로 받아 계속 교회 밖으로 내다버리기를 수없이 하였고 그는 거기에서 교회를 사랑하는 깊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기에서 아무도 나를 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나를 보신다는 확신을 나름대로 가지고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된 그는 늘 "나는 자격이 없진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만큼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곤 하였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준비하는 송년 주일, 사도 바울처럼 고난을 참고 영혼을 위하여 모든 것을 허비하며 전도하며 헌신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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