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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큰 도움이신 하나님 (시 4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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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 큰 도움이신 하나님
+ 설교본문 : 시편 46편 1-11절

시 46편은 하나님이 우리의 큰 도움이시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큰 도움이 되신다는 사실은 표제에서부터 드러납니다. 표제어에 보면 이 시를 [알라못에 맞춘 노래]라고 하는데 알라못이라는 말은 ‘처녀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처녀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만들어진 배경이 출 14장과 15장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다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따르던 애굽 군대는 물 속에 수장 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들의 큰 도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슴니다. 바다에 길을 내시고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셨습니다. 그 사건 후에 모세가 하나님께 노래로 영광을 돌렸고,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여인들이 소고를 치며 춤을 추며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라”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사건이 배경이 되어 처녀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만들어진 듯합니다. 그들의 찬양의 주제는 큰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이었을 것입니다.

이 시의 배경을 살펴봐도 하나님은 환란 중에 큰 도움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시대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18만 5천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히스기야의 능력으로는 산헤립의 군대를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산헤립의 편지를 들고 성전에 올라가서 편지를 펼쳐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산헤립의 18만 5천의 군대를 하룻밤 사이에 멸망시키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그 때의 사건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당했던 환란의 심각함을 2,3절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고 바닷물이 솟아나고 흔들리는 어려움이었습니다. 한번 상상해 봅시다. 배를 타고 항구를 출발했는데 지진이 일어나면서 땅이 마치 양철판 구겨지듯이 구겨지고 산이 함몰되고 해일이 일어나서 바닷물이 솟아나고 엄청난 파도가 밀려오고 엄청난 파도가 육지를 강타하는 쓰나미가 되고 산까지 흔들리는 상황입니다. 이정도 상황이면 인간적으로는 절망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흔들림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가정을 흔들어 놓고, 교회를 흔들어 놓고, 우리의 경제를 흔들고, 사회를 흔들어 놓는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믿음이 좋든지 좋지 않든지 누구에게나 인생의 흔들림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흔들림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그 흔들림마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꽃들도 /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우리를 흔들어 놓는 모든 흔들림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부흥사 가운데 고충진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은석교회에 ‘산소통 장로’라는 별명을 가진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은석교회 개척초기에 나오셨는데 온몸에 병이 23가지를 가지고 있어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하였습니다.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가고 교회에 와서 병이라도 고칠까 하여 왔다가 두 주 만에 은혜를 받고 새벽기도를 시작하는데 이분이 30만원 헌금을 작정하였답니다. 그 당시 교회가 월세 3만원에 있을 때니 30만원이면 꽤 큰 돈 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이 어떻게 그 돈을 헌금할 수 있을까 혹시 그로 인해 시험이라도 들지 않을까 염려하였는데 이 분이 지하철 공사장에 나가 하루 일당 7천원을 받고 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루는 일하는 도중 위에서 산소통이 그에게 떨어지는 바람에 머리와 몸에 맞아 기절하여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목사님이 달려 가보니 머리가 터지고 갈비뼈가 3대가 부러졌습니다. 부인은 “우리 남편이 예수 믿다가 머리통 깨졌네요.”하고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원 의사가 신앙을 가진 분이어서 그 분의 도움으로 1년 4개월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23가지 병을 모두 고치고 보상금으로 2500만원을 받았습니다. 십일조 250만원하고 감사헌금 50만원하고 담임목사님 50만원 드리고 나머지로 슈퍼마켓을 차렸는데 장사가 너무 잘 되어 십일조를 100만원 200만원 300만원을 드리고 지금은 장로가 되어 교회를 잘 섬기고 물질도 넉넉하여 선교에 앞장서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를 만나 장로님에게 상담하면 그 장로님은 “염려 마! 산소통 한대 맞으면 돼!”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산소통 장로님은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산소통을 맞아도 수지맞는 일이 되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시편 기자가 1,2절에서 그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지고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와도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시고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 되시니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자, 우리는 여기서 시편기자가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피난처요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믿음의 비밀을 살펴봅시다. 그리고 우리도 그와 같은 신앙을 유지하도록 합시다.

1. 임마누엘 신앙입니다(4,5,711절).

시인은 하나님이 산헤립의 18만 5천의 군대로 인하여 환난을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에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5절에서 “하나님이 그 성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7절에서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고 고백합니다. 11절에서도 역시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믿음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 전쟁에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민 13,14장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들의 보고가 나옵니다. 10명의 사람들은 그 땅의 장대한 아낙 자손들을 보고 두려워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10명과 반대로 긍정적이고 믿음의 보고를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보고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게 담대한 보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민 14:9에 보면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했어도 두려워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바라보며 환난 중에도 평안 중에 거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지 못하여 환난으로 인하여 두려워 떨게 되는 것입니다.

한 젊은 수도사가 나이 많은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어디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벌써 많은 시간 명상도 하고, 고행도 하고, 수도도 하고, 기도도 했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쳐다보던 노스승께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바로 네 옆에 계시는구나” 젊은 수도사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다가 또 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그분을 못 뵈옵는 것입니까?” 스승은 뜬금없이 술 취한 사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네는 술 취한 사람이 왜 자기 집을 못 찾고 헤매는지 아는가? 왜 술 취한 사람이 사람을 똑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비틀거리는지 아는가?” 대답이 없었습니다. 스승은 다시 말했습니다. “무엇이 너를 취하게 만들었는지 알아내어라.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취해있지 아니하여야 하느니라. 취한 것으로부터 깨어야 하느니라. 그래야 하나님을 볼 수 있느니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보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믿어지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지 않다면 무엇엔가 취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돈이나 쾌락이나 기타 다른 어떤 것에 취해있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하나님이 환난 중에 큰 도움이 되십니다.


2. 새벽기도입니다(5절)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여 새벽에 전화를 해서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 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어떤 사람은 새벽잠을 깨웠다고 화가 나서 도울 일도 돕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새벽에 도와주시겠다고 5절에서 약속하십니다.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18만 5천의 군대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산헤립의 군대를 다 죽여버리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적들이 죽어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감격해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새벽에 도우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이 가장 인정하시는 왕 둘을 꼽으라면 다윗과 히스기야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새벽의 사람입니다. 그들은 새벽기도의 비밀을 알아서 새벽에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본시는 히스기야가 쓴 시인데 그는 이 시에서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 57편을 위험 중에 썼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아둘람 동굴 속에 숨어있을 때 고백한 시입니다. 사울이 3천명의 정예 부대를 풀고 어떻게 해서든지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 그를 찾아다닐 때 아굴람 동굴 속에서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하나님의 구원이 새벽에 나타날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시 5편에 보면 다윗은 가슴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울분이 있고 마음에 맺힌 한이 있었지만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해결하여 주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시 5:3에 “여호와여 새벽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새벽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시 88:13에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새벽에 나의 기도가 주 앞에 달하리이다”고 하였고,
시 119:147에서는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깊은 신앙심과 영력은 새벽에 하나님과 만나 깊은 영적교제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비결은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간절한 기도가 어떤 기도입니까? 간절한 기도는 새벽기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새벽형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잠 8:17, 18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간절히’라는 말의 각주를 보면 ‘새벽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새벽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간절한 기도를 하는 사람이고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만나 주실 것이고,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며,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부귀와 장구한 재물과 공의를 허락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 중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은 조건부적인 약속입니다. 개역개정 욥 8:5에 보면 첫 번째 조건이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면”이라고 되어 있는데, 개역성경에는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면”이라고 되어 있고, 표준 새번역에는 “네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이라고 되어 있는데 박윤선 박사님은 새벽에 구하라는 뜻이라고 주석했습니다. 다시 설명하면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이 심히 창대케 되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새벽에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고백을 하는데 지금 이 시대에 죽도록 충성하는 방법이 뭡니까? 새벽기도도 일종의 죽도록 충성하는 방법입니다. 미국 사람들 생각에는 새벽기도하는 사람들은 목숨 걸고 믿는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필재 목사님이 텍사스 휴스턴에서 미국 교회를 빌려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목회를 시작할 때 새벽기도를 하려고 그 교회 담임 목사님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새벽기도를 하는데 새벽 5시에 이 교회 건물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 큰 교회를 당신들은 아무도 안 쓰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교실 하나만 주면 우리가 잘 쓰고 잘 정리하고 갈 테니 새벽 5시에 쓰게 해주십시오.” 그랬더니 미국교회 목사님이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하시는 말씀이 “당신이 지금 새벽 5시라고 말했습니까, 오후 5시라고 말했습니까?” “새벽 5시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새벽 5시에 나오셔서 설교하실 겁니까?” “그렇습니다.” “매일 나올 겁니까?” “매일 하겠습니다.” 미국교회 담임목사님이 놀라며 이필재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그러다 죽으면 어떡하시려고 그럽니까?” 그래서 이필재 목사님이 “안 죽습니다. 걱정 마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일 새벽기도하는 것이 목숨 거는 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로젠뮐러(Rosenmueller)는 ‘새벽에’라는 말을 ‘빨리’란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즉 고난 중에 새벽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빨리 응답해주신다. 기도 응답이 빨라진다는 말입니다.

새벽기도로 축복 받은 김응선이라는 장로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분이 장로 임직을 받고 주일예배 때 공중기도를 하기 위해 단 위에 올라가는데 정장을 입질 못했습니다. 장로님은 농사지어 9남매를 가르치느라 넥타이와 양복은 엄두도 못 냈던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이 장로님을 말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장을 입으신 분이 기도를 해주세요.” 정장을 못한 장로님은 강단에서 내려와 맨 뒷자리에 앉아 눈물을 쏟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크게 시험이 들었을 텐데 김응선 장로님은 시험에 들지 않고 어렵게 정장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장을 입고 예배에 참석을 하셨고 심지어 새벽기도회도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드렸습니다. 장로님의 기도 제목은 “하나님, 내 자식들에게만은 이 가난을 물려주지 않게 하소서.”였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장로님의 9남매를 통해 104명의 예수 잘 믿는 후손이 탄생했습니다. 그 자녀들이 축복을 받아서 장남은 매산고등학교 교장을 지냈고, 둘째는 육군 대령으로 전역했고, 셋째는 대기업 사장이 되었고, 넷째는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지냈고, 다섯째는 장관을 지냈고, 4명의 딸과 사위도 교회 중직자들입니다. 김응선 장로님은 정성을 다하는 새벽기도로 9남매를 키워 신앙의 명가를 이룩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입니다(6절)

6절에 보면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열방들이 파도처럼 요동하고 흔들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용어들은 어떤 군대가 한 나를 쳐들어가고, 침입을 받은 나라가 그것을 막기 위해 충돌하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사용되는 용어들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앗수르가 유다를 침공하고 유다가 앗수르의 공격으로 요동하고 있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6절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말씀을 보면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라고 말합니다. 앗수르가 유다를 공격하는데 그 때 하나님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에 땅이 녹았다는 것은 그 요동하고 흔들리던 당시 상황이 종료 되었다는 말입니다. 8절에 보면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산헤립의 18만 5천의 군대를 처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이 ‘하나님의 소리’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46편은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가장 애송하고 사랑했던 시입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절망에 빠졌을 때 이 시46편에서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루터는 어느 날 찰스 황제로부터 보름스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라는 소환장을 받았습니다. 보름스에서 루터는 황제와 로마 교황청의 대표들로부터 종교개혁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루터는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주장한 어떠한 것도 철회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고 말하며, 하나님께 “제가 여기 섰사오니 오 하나님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했는데 그 때 역시 시46편에서 큰 힘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 시에서 힘을 얻어서 찬송가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를 작사 작곡했습니다. 루터의 개인적 역사에 이 찬송을 만든 동기가 있습니다. 그가 1529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갔을 때 그 나라는 국가적 위기가 닥쳤습니다. 터키군의 침략을 받아 비엔나는 완전히 포위가 되었고 이제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마치 히스기야 시대의상황과 비슷합니다. 터키군과 오스트리아군은 마치 독수리와 참새로 비교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국가의 비극적 운명이 닥쳤을 때 비엔나 시민들은 교회로 모여서 하나님께 급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터키 군이 깨끗이 물러갔습니다. 이유는 본국에서 비엔나를 함락시키지 말고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그 현장을 목격하고 ‘이런 것이 기적이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힘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적군이 못 들어오게 하는 성이며 하나님이 성이 되어 지켜주심을 노래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붙잡는 자에게 큰 도움이 되십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잡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 나무꾼이 깊은 산길을 걸어가다가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팔을 뻗어서 겨우 한 나무 가지를 붙들었습니다. 깊은 산중에 사람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큰 소리로 외쳤지요.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거기 누구 없소?”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다시 소리 질렀습니다. “하나님 ~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 그런데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얘야, 내가 너를 살려 주지.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네가 붙든 그 나무 가지를 놓아라. 그러면 내가 너를 저 아래서 받아주겠다” 나무꾼이 밑을 내려다 봤더니 아찔한 벼랑이었습니다. 다시 나뭇꾼이 하늘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거기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 없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요단강을 밟으라고 하면 밟았고, 여리고를 돌라고 하시면 돌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은 말씀대로 역사하셔서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셨습니다. 


4. 헛된 노력을 멈추는 것입니다(10절).

본문10절에 보면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은 ‘그만 두다’, ‘멈추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너의 노력을 멈추어라’는 뜻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되어 스스로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힘으로 살기보다는 내 힘으로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을 빼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감동 주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할 때 상대가 지쳐서 죽기 일보직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물에 빠진 사람이 힘이 있으면 구조자을 붙잡고 놓지 않기 때문에 구조자마저 물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에 빠진 사람이 구조자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온 몸에 힘을 빼야 합니다. 구조자 앞에서 물에 빠진 사람이 할 것은 아무 것 도 없습니다. 그저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이와 비슷한 말을 모세가 했습니다. 그는 홍해 앞에서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고 당당히 말 했습니다. 모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는 아들을 낳으면 죽여야 했습니다. 모세의 가족들은 모세를 키울 수가 없어서 갈대상장에 넣어서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모세의 장래를 하나님의 손에 맞기고 나일 강가 갈대밭 사이에 띄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아이를 바로의 딸 공주가 건지게 하여 공주의 아들이 되게 하시고 친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자랄 수 있도록 신기하게 섭리해 주셨습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한 일이란 자기가 기를 수 있는 한계까지 최선을 다해 기르다가 할 수 없으니까 갈 상자에 담아 강에 띄우고는 가만히 서서 지켜 본 것뿐이었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두 손놓고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를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치밀하게 일하시기 시작하셔서 모세를 애굽의 왕자처럼 길러지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가만히 서있는다는 말은 주님을 믿고 그분에게 나를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맡기는 것을 사해바다에서 물위에 몸이 뜨는 것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도 사해 바다에서는 할 수 있습니다. 염분 농도가 보통 바다의 염분 농도보다 무려 10배가 넘는 거의 33 %의 소금물입니다. 그래서 물의 부력이 매우 높아 사람이 물에 들어가 누우면 몸의 절반  가량이 저절로 물 위에 뜨는 정도입니다. 사해 바다에 누워 책 읽는 사진을 보신 적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사해 바다라고 저절로 다 뜨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바다에 몸을 절대로 의지하고 두 팔과 두 다리를 쫙 펴고 몸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만이 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몸을 맡기지 못하고 몸부림을 치면 눈에 물이 들어가는데 그 때의 고통은 장난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에게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때 세상 바다에서 침몰하지 않고 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큰 도움이 되시는 것입니다.

제가 달나라에 가는 우주선을 탔다고 생각해봅시다. 거기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우주선에 맡겨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주어진 임무를 완성하는 것은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달나라에 가는 일은 우주선이 할 일입니다. 나는 우주선에 몸을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달 쪽으로 몸을 날려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할일이 있다면 주어진 임무, 명하신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실 부분에 대해서는 조급하거나 안달할 필요 없이 믿음으로 맡기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면 됩니다.

2008년은 하나님의 큰 도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신앙을 가지십시오. 새벽기도에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순종합시다. 헛된 노력을 버리고 믿음으로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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