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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 (계 20:11-15, 눅 16: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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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에 기록된 이름 (계 20:11-15, 눅 16:19-26)

    오늘 요한계시록에는 두 개의 책에 대한 말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책들'로서 복수로 되어져 있습니다. 이 책들에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20:12

인생의 삶의 괘적들과 흔적들이 기록된 책이 '책들'입니다. 이 책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살아버리면 잊혀지는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억치 못하면 사라지는 삶의 괘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삶의 행위들은 이 책들에 기록되어 하나님 보좌 앞에 놓여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말씀드리듯이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인생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버리면 그만인 인생이 아닙니다. 잘 살아야하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 인생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자기 생각과 욕심과 욕망을 따라 살수 있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가서 자신의 삶을 계산해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좌 앞에는 또 다른 책이 있습니다. '생명책'입니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믿는 사람은 그 이름이 이 '생명책'에 올라갑니다. 누구든지 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책들'에 기록된 행위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5:24). 생명책에 오른 사람들의 행위들은 하나님께서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징벌하시기는 합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판을 받지는 않지만 책임은 물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 마지막 주일에 본문으로 택한 성경구절들은 모두 마지막 때 심판에 대한 구절들입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서 얼마 남지 않은 이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 자신의 믿음과 삶을 점검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무슨 자격증을 따거나 무슨 특별한 일을 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고백은 있어야 합니다. 그 고백은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첫째는 인간은 영혼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게 있을 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불확실하면 불확실한 믿음이요, 불확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고백과,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과, 우리의 모든 교회의 일들의 기초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음을 알고 믿는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다 심리적이요, 문화적이요, 인간적인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것이요, 영혼의 존재를 못 믿는 사람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는 의미가 없는 것이요, 영혼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죄사함의 은혜란 아무 가치를 느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이름이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명책에 기록되는 이름이 있고, 그 행위가 책들에 기록되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예를 오늘 누가복음 말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누가복음말씀에는 한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사치스럽고 즐겁게 지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식탁 가득히 차려놓은 좋은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고, 모자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가 단 하나 갖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름입니다. 그저 부자라고만 나와있지 그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세상사람들은 그 이름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은 존재가 없었습니다. 그 삶이 하나님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위해서는 이름도, 호의 호식도 있었으나 영혼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돈과 재물이 자신만을 위해 사치하고, 먹고 마시는 데만 사용된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는 삶인 것입니다. 그 육체적인 삶이 어떠하였던지, 그 영혼은 굶주리고, 헐벗고, 가련하고, 하나님 앞에서 존재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또 다른 주인공이 하나 나옵니다. '나사로'라는 거지입니다. 이 거지는 헐벗고 병들었습니다. 그는 남의 집 문간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먹으며 연명하는 보잘것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갈 곳 없는 노숙자입니다. 세상에 머리 둘 곳은 물론, 의지할 데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단 한가지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름입니다.

    "나사로"--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입니다. 나사로는 그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비록 남의 집 쓰레기통을 뒤지고 헌데를 앓아서 개들이 와서 핥는 신세이지만 그의 하루하루의 삶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감사하는 삶이었습니다.

    이러므로 영혼의 눈을 떠서 영혼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보이는 대로가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영혼의 눈으로 영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첫 관문이 사람에게 영혼이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영혼이 있음을 알 때, 영혼을 어떻게 가꾸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부요한 삶 자체가 죄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그 편안한 생활 속에서 영혼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육체에 즐거움에 빠지게 됨으로 영혼의 존재를 잊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부자의 삶이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비록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세상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무명한 사람이요, 존재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가난이 물론 죄가 아니듯이 또한 가난이 축복도 아닙니다. 그러나 없는 중에 작은 것에도 감사를 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다면 거기에 행복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사로는 비록 거지였지만 그 삶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는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세상에서는 별 볼일이 없어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아시고,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 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 이름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는 다 영적으로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은 다 영적으로 부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극적인 대비를 한 것뿐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부요해도 영으로 보면 가난한 사람이 있고, 아무리 겉으로 가난하여도 영으로 보면 부요한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풍성하면서 영혼도 부요한 사람들이 왜 없겠습니까. 겉으로도 가난하면서 영혼도 메마른 사람이 허다합니다. 인간의 삶을 영으로 보면 겉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고통스런 삶을 끝내고 죽어 하나님 나라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그 부자도 얼마 후 죽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 부자가 죽었을 때에 그가 살았을 때 이상으로 호화로운 장례가 치루어졌을 것입니다. 최고급 수의에다 최고급 향, 최고급 관에다가 굉장한 상여하며, 제일 좋은 명당자리 묘지에 대리석 비석이 세워졌을 것입니다. 아마 어마어마한 조객들이 모여와서 그 죽음을 애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 최고급과 대단한 칭송과 애도가 진행되는 동안 실제로 그 부자는 어떻게 되고 있었습니까?

  그 영혼이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갔습니다. 그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에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그 호화롭고 장엄하고 최고급의 장례식과 무덤과 치장한 대리석이 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부자가 고통 속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거기에는 아브라함의 품속에 나사로가 안겨있었습니다. 나사로가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 거지가 죽었을 때, 장례 지내줄 사람은 커녕 묻어줄 사람조차도 없어서 내다버린 그 나사로가 거룩하고 영원한 천국에 이른 것입니다.

    그때 그 부자가 외쳤습니다.'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사 나사로를 시켜서 내 바짝 마른 혀에 물 한 방울만 찍어 주소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너는 세상에서 좋은 것으로 누렸으니 그로서 족하다. 그뿐 아니라 이곳과 그곳은 오갈 수 없도록 분리된 곳이어서 이곳에서 그곳으로 갈 수도 없고, 그곳에서 이곳으로 올 수도 없느니라.'  다시 말해서 기회를 놓친 후에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인생은 단 한 번의 인생이지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의 인생을 믿음을 가지고 값있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다시 간구를 합니다. '세상에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나사로를 보내서 저희에게 이렇게 지옥이 있음을 말해주어서 그들은 이곳에 오지 않게 해 주소서.'

    이 부자는 자기 상에서 기름지게 먹고 마실 때, 그 친구들이나 형제들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죽으면 그만이지 천국, 지옥이 어디 있나! 사는 동안에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러나 이 부자는 이제 지옥에 떨어져서 그 다섯 형제들에게 지옥이 있음을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세상에는 선지자들도 있고 말씀에도 분명하게 믿어야 산다고 증거하고 있는데 안 믿고 있지 않느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내가 천국과 지옥을 보았다고 증거하면 저들이 믿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세상에서 증거자들의 증거를 믿지 못하는 자들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증거한다 하여도 믿지 못할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 가운데도 천국,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그저 마음에 위로 받으려고 믿고, 수양 삼아 믿고, 고상하게 살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께서 분명히 증거하기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린도전서15:19)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사람에게 영혼이 있음을 진실로 믿는다면, 답은 분명한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는 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나라의 시민 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오늘이 마침 이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내일은 이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 날이라고 했지만, 사실 마지막이 아닌 날들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내일 12월 31일만 마지막 날이요, 다시 오지 않을 날이요, 그래서 아쉬운 날인 듯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간 마지막이 아닌 시간이 없었으며, 어느 날 마지막 날이 아닌 날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을 항상 마지막을 살 듯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마지막 시간을 살았고, 언제나 새시간을 맞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일은 한 해의 마지막이기에 다른 때와 달리 의미를 갖게 합니다.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은 언젠가 우리 모두도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에 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 부자나 나사로 처럼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한 해의 끝에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듯이 이 해의 마지막 주일에 나의 믿음의 행로를 되돌아보면서 다시 새롭게 주어지는 은혜의 시간들을 믿음으로 다짐하는 주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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