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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우리는 믿음으로 삽니다 (롬 1:16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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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믿음으로 삽니다 (롬 1:16 ~ 17)

영원한 도시 로마를 여행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소원인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어거스틴파 수도원에 속한 루터는 엘볼트지부를 대표하여 교황의 지시에 의해 로마를 순례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로마여행은 젊은 사제 루터에게 많은 변화를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르네상스의 어떤 예술작품에 흥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역사적인 어떤 유물이나 로마의 문화적 가치를 찾는데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루터가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르네상스의 고색창연(古色蒼然)한 로마가 아니라 성자(聖者)들의 로마였습니다.

그러나 이 로마여행은 당시 27세의 철학교수이자 신학도였던 루터에게 실망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 환멸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참회자들의 이중성과 승려들의 무식함과 무질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 예를 들면 루터가 미사를 한 번 드리는 동안에 그들은 미사문을 6, 7회나 줄줄 암송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복음서 낭독에 이르렀을 때 저들은 벌써 다 마치고 루터에게 "Passa! Passa!"(빨리 해! 빨리 해!)라고 하였습니다.
매일 죽은 사람을 위하여 일정한 수의 미사를 반복하는 것이 그들의 일과였습니다. 루터가 본 영원한 도시 로마는 죄악과 거짓과 위선의 소굴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없고 무지와 미신이 난무하는 곳이었습니다.

루터는 로마에서 빌라도의 계단(Scala Santa)을 올라갈 때 주기도문(Pater Noster)을 암송하면서 계단마다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연옥에서 영혼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계속한 것입니다. 그가 주기도문(Pater Noster)을 암송하며 28계단 마지막에 오르는 순간 '그렇다고 하는 것을 누가 알 수 있나? 즉 빌라도 계단을 기어 올라감으로 연옥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누가 알 것이냐?'는 뜻입니다.
그 순간에 그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이 생각났는지 아니면 그곳에서 회의를 느끼고 돌아와서 생각이 났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이 그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습니다.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는 진리가 그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Ⅰ.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믿는 믿음으 로 삽니다.

본문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의를 구원과 연관 지어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구원의 조건입니다. 구원은 의롭게 됨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의롭게 되는 방편은 무엇인가?
① 펠리기안주의자(pelagians) 들은 도덕적 율법의 실천이라고 합니다.
②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은혜를 따라 실천되는 행위를 주장합니다.
③ 그러나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전가(轉嫁)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배제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인간의 모든 죄를 사유하고 용서하시며 구원하시는 일체의 것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5-26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곧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의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나타났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3장 5절에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왜 인간이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아야만 구원 받은 백성이 되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 관계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 언약관계는 피 있는 제사제도를 통하여 계시되고 구체화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에 나타난 의도 그리스도의 언약적인 죽음에 의해서 택한 백성들에게 제한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가 택자들에게는 은혜와 사랑으로 나타나지만 불택자들에게는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로마서 9장 32-33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6-8절에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Ⅱ. 우리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믿음 으로 삽니다.

본문 1장 17절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by faith from first to last)라는 말입니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이것은 불완전한 믿음으로부터 완전한 믿음에 이르는 신앙적 장성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옳지 않습니다.

찰스 하지(C. Hodge)는 이것을 "역설체(力說體)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만이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의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리델보스(Ridderbos)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것입니다. 이 믿음의 행동화가 바로 의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복음 안에 제시한 대로 그에게 의존적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4-16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한 번 믿으면 그 다음에는 안 믿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을 계속 견지(堅持)해야만 합니다. 한 번 믿으면 평생토록 믿어야만 합니다. 인간은 한 번 믿고 난 후에 연약해져서 다시 죄악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믿어야만 합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에 대한 노여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처음 사랑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선행은 구원의 빙거가 될 수 없고 축복의 조건이 됩니다. 그 어떤 경우에든지 행위로서 구원 얻을 육체는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오늘도 점검해야 합니다. 그 점검하는 방법은 이 믿음이 구원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점검해야 합니까?

첫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계시종교, 타율종교의 특색입니다.

둘째,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셋째,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넷째,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구원을 점검하는 점검수칙의 사이클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는 언제든지 주의 이름을 앞세웁니다. 주의 일을 최우선 추구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주 앞으로(교회) 나오는 데서만 사람 앞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작정된 자는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파해야만 합니다.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Ⅲ. 우리는 구원 얻는 믿음으로 삽니다.

본문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산다』는 말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이 구절은 하박국 2장 4절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한 말씀의 인용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 두 성경은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하박국 2장 4절은 그의 믿음으로(베에무나토)라는 뜻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 보)라는 소유대명사가 있습니다. 이것을 대부분의 역본들이 '나의 믿음'(에크 피스테오스 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의 믿음이든지 나의 믿음이든지 믿음의 주체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여기 『살리라』는 말은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구원 얻는 믿음은 철저히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했습니다.

1) 구원 얻는 믿음은 역사적(歷史的) 믿음과는 구별됩니다.
역사적 신앙이란 도덕적, 영적, 목적 없이 진리를 어떤 역사적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는 인격적인 아무런 감동 없이 순전히 이성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매우 정통적이며 성경적이기는 하지만 심령에 뿌리박지는 못하는 인간적 신앙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마태복음 7장 26절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라고 했습니다.

2) 구원 얻는 믿음은 이적적(異蹟的) 믿음과는 구별됩니다.
이적적 신앙이란 이적이 어떤 사람에 의해 혹은 그를 위해 행사될 때 그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확신입니다. 이 신앙은 구원적 신앙을 수반할 수도 있고 수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적을 통해 구원의 신앙에 이른 예는 성경에 수없이 많습니다(마 9:20-22).
반대로 수많은 이적을 체험하고도 구원적 신앙에 이르지 못하고 예수를 떠난 사람들이 또한 수없이 많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였던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은 절대 다수가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6장 66절에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3) 구원 얻는 믿음은 피상적(皮相的) 믿음과는 구별됩니다.
피상적 신앙이란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앎(지식)'이나 감정으로 믿는 신앙인 바 그것은 일시적인 믿음입니다. 이는 양심의 자극이나 감정적인 감동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중생한 심령에 뿌리박지 못한 종교적 진리들에 대한 확신입니다(마 13:20-21).

구원 얻는 믿음은 결국 구원에 도달하고야 마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救主)로 믿어지고, 그의 십자가의 보혈이 믿어지고, 부활, 승천, 우편에 앉으심, 재림, 천국이 믿어지며 성경의 복음 진리가 믿어지고 그것의 약속과 축복이 믿어짐으로써 자신이 정말 구원 받았음을 확신케 되는 진실한 신뢰가 바로 구원적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에 이른 자는 죽음에 이를지라도 결단코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아니하며 결국 영생에 이르고야 맙니다(요 20: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삽니다'는 2008년도 우리 교회의 표제입니다. 결코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모스 8장 11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기갈이 무엇입니까?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는 것이 기갈입니다. 인간들이 더 좋은 것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의식주는 우리의 영혼과 육의 기갈을 막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언약)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순수한 믿음은 오직 복음(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 복음은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이 믿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구원을 얻는 믿음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7-9절에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우리 모두 2008년도에는 우리 교회의 표제에 신·망·애를 걸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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