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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쟁취할 수 없는 축복 (창 27: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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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취할 수 없는 축복 (창 27:1-46)
 
창세기 27장부터 50장까지는 야곱에 대한 기록입니다. 요셉 사건도 자세히 보면 야곱 이야기의 부록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백성 야곱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을 인간의 노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아주 드라마틱합니다. 축복을 쟁탈하기 위한 아버지와 어머니와 쌍둥이 형제 사이에 벌어지는 음모와 기만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함께 진행됩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의 가정이 어찌 이 모양일까 싶을 정도입니다. 보통 자녀의 출산은 행복을 증진시키기도 하지만 갈등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자녀는 신앙적으로 성숙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그들을 양육하는 과정 중에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부모의 미성숙한 본성이 적나라하게 들통 나기 때문이지요. 아브라함의 가정도 자녀문제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겪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삭의 가정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삭의 가족은 장점이 많았습니다. 이삭은 늙은 아버지가 자기를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순종했습니다. 불신자들의 터무니없는 트집으로 애써 파놓은 우물을 빼앗아 갈 때, 대범하게 양보하여 결국에는 선으로 악을 이긴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언약의 내용을 더 깊이 깨달아서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29)라는 좀 더 업그레이드 된 형태의 축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들은 즉석에서 이삭의 아내가 되기로 결정할 만큼 결단력이 있었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을 따라 먼 이국땅에 갈 만큼 대담하고 모험심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남의 사정을 잘 헤아리고 열정적으로 섬길 줄 아는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좋아하는 터프 가이로서 훗날 축복을 가로챈 동생을 대범하게 용서했던 사나이였습니다. 야곱은 영적인 축복을 귀히 여기고 사모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들의 이러한 장점들이 언약 공동체를 파괴하는데 사용됩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1a),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23). 이삭은 노년에 육신의 시력이 나빠지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택한 야곱 대신에 에서를 축복하려 할 만큼 영적인 분별력도 함께 나빠졌습니다(25:23).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좋아하고”(25:28a)라는 말씀을 보면, 특정 자식에 대한 ‘편애’하는 마음이 분별력을 흐리게 만든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리브가는 쌍둥이가 태중에 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 어린 자를 선택하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었으므로 야곱으로 축복을 받게 하려 했습니다. 이 생각 자체는 정당했습니다. 문제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 ‘부정한 수단’을 용납했다는데 있습니다. 그녀의 은사라고 할 수 있었던 과감한 결단력과 대담한 모험심 그리고 남의 사정을 잘 헤아리는 태도와 열정적인 섬김 등이 남편과 장남을 속이려는 부정한 계략에 총동원되었습니다(5-10). 그녀는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13)라고 격려합니다. 복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저주도 불사하는 비뚤어진 모성애의 전형 혹은 무서운 치맛바람의 원조를 보는 듯합니다.

에서는 장남이라는 육체적 조건이 축복을 저절로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하며 ‘안일’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장차 하나님께서 저주하실 헷 족속 여인들을 아내로 삼는 바람에 이삭과 리브가에게 큰 근심을 주었습니다(46, 26:34-35). 그 결혼을 부모가 기뻐하지 않음을 깨닫고 행한 행동이 이스마엘의 딸들 중에서 다시 아내를 취한 것이었는데(28:9), 이는 그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무지하며 세속적인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가 이삭에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36)라고 한 말속에는 야곱에 대한 중상모략이 섞여 있는데, 장자의 명분은 팥죽 한 그릇 값으로 그 자신이 야곱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어수룩한 형에 비해서 머리가 잘 돌아갔습니다. 스스로 장자권을 빼앗을 수 없었던 그는 어머니가 밀어주겠다고 하자 그 부정한 방법에 적극적으로 동조합니다.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11-12)라는 말에서,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거짓말이 들통 나는 것입니다. 이삭이 의심스러워서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라고 물을 때, 야곱은 양심이 찔렸겠지만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라고 대답합니다(19).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라고 다시 물었을 때에도 뻔뻔스럽게 “그러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24). ‘실리’를 위해서라면 진리를 감출 수 있는 마음, 현실적인 이득을 위해서라면 양심의 소리를 억누를 수 있는 교활한 마음이 염소 털을 뒤집어쓴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단란해 보였던 그 공동체가 계승자의 선택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자 감추어져있던 그들의 죄악 된 본성들을 적나라하게 노출했습니다. 원조 콩가루 집안, 이것이 초기 언약 가정인 이삭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 언약을 계승하고 있는 지교회 공동체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공동체 안에 분열과 갈등이 일어날 때면 동일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흐려진 지도자들, 목적을 위해서라면 부정한 수단을 정당화하는 조력자들, 세속적인 삶을 즐기는 영적으로 안일한 사람들, 영적인 소원이라는 미명아래 실리를 쟁취하려는 사람들, 또한 그들의 편애와 야심과 중상모략과 양심의 찔림을 고의적으로 억누르는 거짓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인간의 온갖 노력들이 과연 하나님의 복을 쟁취했는가?’를 살펴봅시다. 이삭은 분별력 없는 지도력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에게 계속 속으며 농락당했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41)고 결심할 만큼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에서의 계획을 감지한 리브가는 야곱을 800km정도 떨어진 하란에 사는 그녀의 오라버니 라반에게 보내어 “몇 날 동안”만 피신 시켜놓으려고 했습니다(42-44). 하지만 그 후로 리브가는 야곱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야곱은 축복기도 자체를 빼앗긴 했으나, 평생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47:9). 하나님의 복을 쟁취하기는커녕 그 가정과 개개인의 삶이 고통과 환난에 빠져들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들의 허물을 가려주시고 믿음의 조상들로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진 않았습니다. 그들이 뿌린 대로 거두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당한 환난들은 그들의 죄에 대해 재판관의 ‘형벌’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징계’하는 회초리와 같은 의미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과정 속에서 참으로 공의롭게 역사하셨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계승자로 선택해 두셨습니다. 리브가와 야곱이 축복기도를 빼앗았기 때문에 야곱이 언약의 계승자가 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에서도 이 때 축복기도를 빼앗겼기 때문에 언약의 계승자에서 배제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은 인간의 모략으로 빼앗거나 빼앗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선택받은 자로 하여금 자기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게끔 하며, 선택되지 못한 자로 하여금 변명할 수 없게 만듭니다. 선택된 자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게 하며, 버림받은 자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인정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모든 입이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 앞에 입을 다물고 다만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언약 공동체를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도덕성이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본문을 통해 다시 한 번 분명해집니다. 온갖 인간 군상들의 혐오스러운 죄악 속에서도 은혜로 역사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어놓으시는 하나님의 기묘하신 섭리가 없다면, 이 땅에 언약 공동체는 전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든 가정이든 개인의 내면이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철저히 비춰본다면, 우리 역시 이삭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헌신과 노력 때문이 아닙니다. 많은 감사 제목들을 찾으면서 기뻐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공과를 따지자면 이삭의 가정이 상 받을 일보다 매 맞을 일이 많았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그나마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조차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참으로 시인하면서 모든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좀 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숙해 질 수 있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이삭처럼 편애하는 마음, 혹은 좋아하는 별식 때문에 분별력을 잃어버리는 태도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쳐서 복종시킬 필요가 있겠지요. 리브가처럼 바른 목적을 핑계로 바르지 않은 수단을 사용하려는 일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에 지도자가 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긴급한 상황에서는 인간적인 꾀를 사용하기보다 더욱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그분만을 의지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지요. 야곱같이 축복을 쟁취하려는 야심으로 안달하면서 욕심내고 있다면 하나님의 때까지 충분히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에서처럼 영적 안일과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무지 속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여 근본적으로 회개하는 일이 있도록 함께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복을 쟁취하라고 가르치기 위한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처럼 문제 많은 야곱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길러 가시는 지를 보여주기 위한 서론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노력한 대가로 얻거나 쟁취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참으로 은혜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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