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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가서 제자 삼으라 (마 2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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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제자 삼으라 (마 28:19~20)

2008년이 밝았습니다. 모두들 새로운 해를 시작하면서 올해는 이렇게 살아보리라는 다짐들을 했을 줄로 압니다. 새로운 것은 항상 즐겁습니다.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마음도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따지고 보면 시간의 연속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굳이 해를 따지고 달을 따지고 날을 따지는 것은 그를 통해서 우리의 몸도 마음도 모두가 다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다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기에 변함없는 하루가 계속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짜를 구분해서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오직 말씀대로”라는 표어아래 살아왔습니다. 결국 우리네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대로 살아가는 생활에 대해서는 더 강조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말씀을 따라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줄 압니다. 그래서 새해의 표어는 주님께서 마지막 주셨던 그 말씀을 따라 “가서 제자 삼으라.”고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가서 제자 삼으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한 생명 한 생명을 주님 앞에 이끌어야 됨을 말씀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온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아니 온 천하를 다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한 생명이 귀중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악한 자라고 해도 그를 우리가 무시하거나 그런 사람은 없어져야 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생각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죄인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그 죄 값으로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으며 더 나아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다음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했으니 우리 가운데 심판 받고 지옥 불 속으로 떨어지지 않을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직접 자신이 대속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죽어 주심으로 우리가 용서 받고 구원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으니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나만 용서 받고 나만 구원받고 나만 천국 가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주님의 말씀처럼 땅 끝까지 이르도록 주님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생명들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 가운데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주셨던 마지막 말씀 중 하나입니다. 오늘의 본문과 같은 뜻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은 권능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이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들어도 믿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방해하는 힘을 막으려면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권능으로만 이 방해하는 힘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권능을 받아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족이나 이웃을 예수 믿게 만들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들에게 가서 예수를 전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지금까지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자가 더 이상 방해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물리쳐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이란 바로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능력이기 때문에 먼저 능력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능력을 받은 것으로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능력이 제대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내가 능력 받은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깨어 기도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직 깨어 기도하는 사람만이 그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 날마다 엎드려 기도하는 것은 내게 주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한 연습과도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내 손에 칼이 있다고 해도 그 칼을 사용할 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칼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그걸 가르쳐 줄 수 있습니까? 칼을 사용할 줄 알거나 만든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성령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능력이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능력이기에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 성령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실 때 우리는 말씀도 바로 전할 수 있고 또 지혜롭게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분들도 계십니다. 내 안에 오셔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깨우쳐 주셔서 우리 입을 열어 “예수님이 바로 저의 구세주이십니다.” 라고 고백하게 하셨던 성령께서 또한 우리 입을 열어 그 예수님을 전하도록 하시는데 우리가 기도하고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하며 나아가게 될 때 나는 단순히 입을 여는 것 같아도 내 말 안에 주님의 능력이 담겨서 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그 사람이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하는 말씀이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해 주셔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도움을 바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요 또한 이 기도를 통해서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을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 능력은 또한 말씀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곧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또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이 내 안에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해 삼일 예배를 성경 통독 기도회로 바꿔서 드리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므로 2008년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그 말씀의 능력으로 무장하고 또한 날마다 중보하며 기도함으로 성령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 우리가 그렇게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를 소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 앞에 서게 되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우리가 단순히 다른 사람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제자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먼저 가르칠 수 있도록 배워야 하고 내가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먼저 배우지 않고서는 가르칠 수가 없고 또한 내가 그렇게 살지를 못하고서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나처럼 되어야 한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지키라고 주신 모든 말씀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로 복된 삶을 살도록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른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겪어 보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하려고 하기에 어려운 것이지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주님의 도움의 손길을 힘입어서 살아가게 된다면 결코 어려운 것만도 아닙니다. 물론 처음부터 우리가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주님의 도움을 바라고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잘 따라가는데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으면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이젠 나도 잘 하는데 나 혼자서 해 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뭐라고 하십니까? “선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날마다 읽어나가다 보면 뭐 이런 것까지 하라고 하시나 싶은 것도 있고 이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성경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믿는 자들의 본보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신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은 곧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으로 우리가 믿어야 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배우는 것은 결국 그들이 어떻게 성공했고 어떻게 실패했는지 그들의 삶의 역사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실패자가 아닌 성공하는 자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과서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는 구약 성경을 통해서도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변함없이 주어진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 사랑은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의 핵심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일에 우리 온 마음을 다 쏟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 성수를 말하는 것이며 또 구역 예배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온전히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다 바치기 위한 시간으로 삼는 것이요 구역 예배를 통해서는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며 또한 함께 교제하는 시간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일조는 왜 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감격해서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십일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는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을 이 예물에 담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또한 내게 주신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우리 스스로 다시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생명도 하나님이 주셨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하는 신앙고백이 바로 십일조를 통해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의 진정한 의미는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또한 가서 제자 삼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담긴 뜻은 진짜 사랑은 그 생명을 구원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제일 좋은 것으로 주고 싶은 것이 우리네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온 천하를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생명이라고 했으니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그 생명을 전해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올해 한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을 주님의 품에 안겨드리도록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이웃 사랑의 실천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의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100명을 인해서 기뻐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된다고 했으니 곧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하나님 사랑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서 제자 삼으라.” 다시 말해서 전도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는 거기에 따르는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복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처럼 살 수 있도록 가서 가르쳐서 지키도록 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보람된 일이요 가장 복된 일입니다. 이를 위해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며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 제자가 되도록 이끌어 나가는 이 일에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 모두가 이런 복된 삶을 다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고하는 일에 주님은 어떻게 우리를 도우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를 세상에 내 보내놓고 “나는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팔짱만 끼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은 마치 어린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세상에 나가 다 죽게 되고 말 것이 아닙니까? 아니죠.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목자가 항상 양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리 떼로부터 양들을 지켜주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능력을 받아야 된다고도 하신 것입니다. 그 말은 그 능력을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줄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안 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도무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도록 능력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자로부터 또 우리를 보호해주기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주님께서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이유는 단지 우리가 바로 살 때만 함께 있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때로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질 때조차도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나를 도와주시고 나를 지켜주시며 넘어질 때는 붙잡아 주시고 잘못되었을 때는 바로 세워주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잘못되었을 때도 그것을 깨닫는 순간 다시 주님의 품 안에 안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사나운 짐승이라도 덤벼들 것 같으면 엄마야 하고 그 어머니 품으로 안겨드는 것처럼 우리가 언제든지 주님만 찾으면 주님은 우리를 그 품에 안아주시고 우리를 다독거려주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때로는 내가 잘 해 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엉망이 될 때도 있지를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한 번도 “너 왜 그랬니?” 하고 야단하시지 않고 오히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염려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마.” 하고 우리 손을 잡아 주신단 말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너무도 두려워서 단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주저할 때 괜찮아 하며 내 손을 잡고 함께 걸음을 내딛도록 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내 스스로 걷지 못할 때는 나를 둘러메고 가시는 주님입니다. 그 주님만 바라보면 되고 언제나 그 주님의 손을 붙잡고 걸으면 됩니다. 이왕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주님의 손을 잡고 걸으면 더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역시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내 문제 나 혼자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때 주님을 부르세요. 주님을 찾으세요. 주님 나를 도와주세요. 내 손좀 잡아주세요 하고 손을 내밀면 주님은 언제나 다정하게 내 손을 잡아주시더란 말입니다. 때로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만하면 나도 꽤 괜찮은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냐 나는 틀렸어” 하고 주저앉을 때 그럴 때조차도 나를 주님이 붙잡아 다시 일으켜주십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머리를 싸매는 순간 주님이 나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아냐 그만만 해도 잘 한 거야” 하고 말입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그 주님과 함께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기대합니다. 올 한해가 얼마나 멋질까 하고 말입니다. 사실 그렇게 되리라고 분명히 확신합니다. 왜요? 여러분만큼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으며 여러분 만큼 주의 종을 사랑하는 분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처럼 헌신적으로 교회를 위하고 충성하는 분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나타나는 모습은 다 다르다고 해도 여전히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을 주님도 잘 알고 계십니다. 누구보다도 은혜를 사모하고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분들이 바로 여러분들 아니겠습니까? 그 뜨거운 사랑이 귀한 열매를 맺어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마치 초대교회로 돌아간 것과 같은 아름다운 교제가 날마다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 모든 복을 다 누리시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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