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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바른 출발은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대하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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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출발은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대하 21:1-7)

어릴 때 옷을 입을 때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때가 있었습니다. 첫단추를 잘 끼워야 옷을 제대로 입을 수가 있습니다. 처음 활시위를 떠나는 화살이 출발할 때는 작은 차이지만 조그마한 각도만 빗나가도 과녁에서는 많은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운동장에서 걸어보면 시작할 때는 조그만한 차이지만 끝은 전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봅니다. 시작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말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유다 5대왕 여호람은 첫단추를 잘 못 끼운 사람입니다. 시작을 잘못한 사람입니다. 인생을 사는데 첫 단추를 잘 끼어야 할 세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부모와 아내, 형제를 만나는 가정입니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냐 어떤 배우자와 처음 가정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과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둘째는 직업입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 어떤 직장을 만나느냐? 첫 단추가 어떤 직업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평생 사역, 일에 대한 문제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느냐? 영적인 문제입니다. 이것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영원이 결정됩니다. 부모와 배우자와의 만남, 직업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 첫 번 어떤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집니다.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나오는 여호람은 한 가지만 첫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삶에 가장 영향력을 주는 세 가지 면에서 첫 단추를 다 잘 못끼웠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이 인생이 희극이 아니라 비극으로 끝났고 좋은 것받아 시궁창에 빠져 버린 불행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오늘 32세에 유다왕이 되었다가 8년 동안 왕으로 통치하고 40살에 비참하게 죽은 여호람을 통해 우리가 새해 어떻게 출발해야 할까를 교훈받고자 합니다. 바른 출발을 해야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우리가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출발해야 할까요?

1.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바르게 시작해야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여호람은 유다의 5대 왕입니다. 할아버지가 종교개혁을 단행한 아사 왕이고 아버지가 유다의 3대 성군 중의 하나였던 여호사밧 왕입니다. 그의 형제는 7명이었습니다. 그 중에 장남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미래를 대비하여 여호람의 동생들에게 은금과 보물 그리고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호람은 장자였기 때문에 왕위를 물려 주었습니다. 대단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나라가 평안할 때입니다. 성대한 왕위 즉위식이 거행되었을 것입니다. 대단한 힘을 받았습니다. 입법, 사법, 행정권을 한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힘을 가지고 왕이 되자 마자 무엇을 합니까?

오늘 성경이 말씀해 주시는 의미를 잘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장자인고로 왕위를 주었더니... 그 부친의 위에 올라 세력을 얻은 후에" 무엇을 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 모든 아우들을 죽여 버립니다. 이스라엘 방백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습니다. 권력을 오용하고 권력을 남용하여 정적을 제거합니다. 주어진 직책을 바르게 시작하지 못한 것입니다. 평화를 받아 피비린내를 뿌렸습니다. 주어진 행복을 불행으로 더 많은 것을 얻겠다는 욕심 때문에 파괴해 버렸습니다. 주어진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합니다. 주어진 달란트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합니다. 주어진 것 바로 관리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은혜로 직장에서 사장으로, 부장으로, 이사로... 직책을 줍니다. 교회에서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직분을 줍니다. 그러면 그것을 처음부터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바르게 시작하는 것은 맡긴 사람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셨고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선왕의 유지에 맞게 사용해야 하겠다고 다짐하고 처음부터 출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바르지 못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올 새해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오병이어의 역사가 나타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 것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첫째가 달란트입니다. 재능입니다. 예수 믿든 안 믿든 누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통로는 부모를 통한 유전과 환경입니다.
둘째는 은사입니다. 기프트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십니다. 그 통로는 기도를 통해 은혜로 주십니다.
셋째는 직책과 직분입니다. 세상 직장에서 직책을 주고 교회에서 직분을 주십니다. 통로는 무엇입니까? 사람을 통해 세워 주십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임명한 자의 뜻을 받들어 임명자가 원하는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벼슬이 아닙니다. 그것이 교만의 도구가 아닙니다. 바른 사용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여호람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교회를 세우고 우리를 온전케 만들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에게 주신 것 처음부터 바르게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축복의 도구가 되시길 바랍니다. 여호람은 처음부터 잘못 사용하였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이유를 13절에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동생들이 선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의 정책에 대하여 비판했을 것입니다. 선왕 여호사밧 밑에서 대신으로 있었던 사람들이 비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정적을 없애 버린 것입니다. 왕위를 넘보는 세력을 완전히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주신 분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주신 분의 뜻을 따르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알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주변사람들을 경쟁자로 봅니다. 동생이 경쟁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하들이 경쟁자가 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자신에게 왕을 주었는지 그 직분 의식을 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왕위를 주었는데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은 방법으로 왕권을 시행한 것입니다. 왜 목회자가 되었는지 왜 장로와 권사 집사가 되었는지 사명의식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왜 사장이 되었는지 부장 과장이 되었는지 그 직책의식을 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14절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하여 경고해 주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들려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경고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자녀와 아내들과 모든 재물에 재앙을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창자에 중병을 준다고 했습니다. 직책과 직분을 잘 못 사용하면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재능이 많으면 많을수록, 은사가 많으면 많은 수록, 직분과 직책의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파괴력은 엄청난 것입니다. 피해의 반경은 더욱 넓어지고 깊이는 깊어지는 것입니다. 집사에게 시험받는 사람보다 권사나, 장로 목사에게 시험받으면 더욱 깊이 마음에 상처로 남는 것입니다. 목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평생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도 생기는 것입니다. 장로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전도의 문이 막혀 버립니다. 직분을 갖지 않을 때는 별문제 되지 않을 것도 직분을 가지면 큰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장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고 실족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주어진 직책과 직위는 처음부터 바르게 사용해야 자신도 유익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여호람 왕을 주어진 왕이라는 직책을 잘못 사용하여 엘리야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너가 뭔데, 목사가 뭔데, 내 인생 내가 사는데 누가 참견하느냐는 것입니다." "감히 왕에게"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학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재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권력과 명예가 있으면 있을수록 이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번 거두어 가면 끝이 나는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블레셋 족속이 쳐들어옵니다. 아버지 때 조공했던 사람들입니다. 구스와 인접해 있는 아라비아 사람들이 쳐들어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힘이 영원한 것 같고 자신의 힘을 넘보지 못하도록 다 제거했는데 하나님께서 뜻하지 않은 사람들을 일으켜 그 힘을 제거해 버립니다. 하나님이 제거해 버립니다. 주신 것 거두어 가버립니다. 하나님이 거두어 가면 무섭습니다.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사울 왕도 거두어 가니까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그 직책이 아무 쓸모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적들은 단번에 유다 전역으로 뚫고 들어와 온 백성을 치고 약탈하고 왕궁의 재산을 모조리 탈취해 가버렸습니다. 마땅히 왕직으로 백성들을 보호해야 할텐데 그것을 남용하고 오용하니까 위기 가운데 그 직책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을 무참히 죽였던 그의 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의사도 치료할 수 없는 병으로 징계했습니다. 시간적이 여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18절이 "이 모든 일 후에"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은 것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하느냐 회개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었는데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날개가 다 짤라졌는데 아직도 왕인 줄 착각하고 있고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9절 보십시오. 그 병으로 죽었습니다. 2년 동안 무서운 고통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새해 2째 주일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직책, 직분 시작부터 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집사의 직분, 권사의 직분, 교사의 직분, 구역장의 직분, 교구장의 직분, 마을 교회 목자의 직분, 교역자의 직분, 장로의 직분, 권찰의 직분, 제직 여러 부서의 부서장의 직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고 처음부터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직장에서의 직책, 사회에서의 지위 시작부터 바르게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 우리에게 주신 은사 시작부터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나에게 복이 되고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가정을 바르게 시작해야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여호람은 아버지는 잘 만났습니다. 처음 태어날 때 아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앙이 좋고 왕이라는 권력이 있지요.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왕의 첫아들로 이 땅에 축복받으며 태어났습니다. 인간은 세 가지 큰 만남이 즉 부모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그의 첫만남 부모와의 만남은 아주 복받은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배우자와의 만남이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습니다. 인생의 2/3를 같이할 배우자를 잘 못 만난 것입니다. 나의 독립적인 가정의 처음 출발인 결혼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는 누구와 결혼을 하였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아달랴라는 여인입니다. 아합이 누구입니까? 북쪽 이스라엘의 가장 악명 높은 이스라엘의 7대 왕입니다. 당시 아람 나라의 침략을 막고자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정략 결혼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장모인 이세벨이 교활한 바알 숭배자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끝까지 찾았던 여인입니다. 궁중에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합숙 훈련시키면서 전국토를 우상화시킨 부부입니다.

요즈음 말로 말하면 적당히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핍박하는 가정의 사람입니다. 아무리 부정해도 힘이 없으면 별거 아닌데 힘까지 주어진 사람입니다. 예수 믿으면 기업 안 물려 주고, 예수 믿으면 차 안사주겠다고 할 정도로 힘이 있는 장모입니다. 그런데 이 집안의 딸과 결혼을 했으니 그 가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그 스스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여호사밧은 훌륭한 왕이었지만 아들 결혼시키는데 가장 큰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18장 1절을 보십시오. 유다 나라가 솔로몬 이후 가장 부귀와 영광을 누렸는데 그 때 자기 자식을 아합의 딸과 정략 결혼을 시켜 버린 것입니다. 남북이 분열된 상태에서 북쪽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나라의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정략결혼을 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정이 행복해졌습니까? 나라가 든든해지기 위해 사돈을 맺었는데 나라가 든든해졌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립나도 배반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는 저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도 빼앗겨 버립니다. 16절 이하를 보십시오.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쳐들어와 나라를 초토화시켜 버렸습니다. 나라가 안전하게 번영하기 위해 정략 결혼을 시켰는데 출발이 잘못되자 결과는 비참한 국가적 초토화로 나타났습니다.가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이 경고합니다. "여호와가 네 백성과 네 자녀와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리라" 이 말씀을 들었으며 회개해야 하지요. 돌이키지 않습니다. 돌이키는데는 늦은 시간이 없습니다. 돌아온 탕자처럼 언제든 돌이키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면 살 길이 있습니다. 행복할 수 있는 길, 번영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놓기까지 사랑하였습니다. 무엇을 아까워하겠습니까? 현재 어떤 처지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깨달으면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자존심 접는 것입니다. 잘못을 깨달았으면 눈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람은 그것을 못합니다. 간단한 것같지만 참 어렵습니다. 왕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배우지 않았다면, 가진 것이 적었다면 쉬울 텐데 배운 것이 많고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욱 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여호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아들들과 아내들이 다 포로로 잡혀가 버립니다. 막내 한 아이만 남았습니다. 가정이 풍지 박살나 버렸습니다. 2006년도 둘째 주일입니다. 우리 가정이 바르게 시작되어야 하겠습니다. 시작부터 올 해 하나님의 사랑받는 가정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출발하시길 바랍니다. 유행가 대신 찬송이 흘러나오는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큰 소리보다는 웃음이 퍼저나는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욕심부리면 꾸이는 가정이 아니라 베풀므로 풍성한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텔레비전 앞에서 타락한 세상 문화에 단을 쌓으면 텔레비전을 목자로 삼고 텔레비전을 통해 위로 받지 말고 여호와께 단을 쌓고 여호와로 목자 삼고 여호와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참된 위로와 소망, 기쁨을 누리는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말씀 중심, 예배 중심, 교회 중심의 가정으로 회복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출발해야 합니다. 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가정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가정의 문화가 바꾸어야 타락한 시대의 문화가 새로워집니다. 자녀들의 배필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건강과 자녀들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여호수아의 결단이 올 한해 우리의 결단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시작해야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여호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첫 단추를 잘못 끼웠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왕이 되자 마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복의 근원인 것을 알고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종교 개혁을 단행하며 시작하였습니다. 바알 신전을 부수어 버리고 아세라 신상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산당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여호람은 달랐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왕으로 첫 출발부터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보십시오. 열조의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자기만 우상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처갓집이 우상을 섬기는 온상이고 처가 어릴 때부터 우상 종교에 젖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왕이 되기 전부터 우상에 물든 사람입니다. 왕이 되어 힘이 주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본격적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백성들도 우상을 숭배하게 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유다의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웁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우상을 숭배하도록 합니다. 잘 믿던 사람도 자신에게 무엇이간 조금 주어지면 그것으로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떠나버립니다. 왕이 되었으면 아버지가 그렇게도 섬겼던 하나님을 더 잘 섬겨야 하지요. 자신에게 힘이 주어지니까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하나님까지 대항을 합니다. 그 권력을 사용하는데 방해 요소, 거추장 거리로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힘을 사용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로 하여금 경고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상을 숭배를 거두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상 숭배를 계속하여 재앙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재물은 잃은 것이고 가족은 고통을 당하고 왕은 병들어 죽을 것을 말씀합니다. 그 말이 들려 오겠습니까? 권력이 하나님의 말씀을 막고 부가 실력이 명예가 인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막아 버립니다.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크게 울려옵니다. 선지자의 말을 목회자의 말을 개짓는 소리로 듣게 됩니다. 말씀이 아니라 소리와 소음으로 듣게 됩니다.
그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돌이키지 않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예언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가 죽자 아무도 분향하지 않습니다. 지금 말하면 조문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의 권력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백성들은 그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권력 앞에 비굴하게 굽실거렸을 따름입니다. 그 힘 앞에 어쩔 수 없이 맹종했을 뿐입니다. 사장이나까, 과장이니까 어쩔 수 없이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아끼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울어 주는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죽어서도 수치를 당합니다. 선조들이 들어가는 열왕의 묘실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라고 했습니다.
40년 동안 권세와 부귀, 지혜, 쾌락을 마음껏 누렸던 솔로몬의 마지마 고백을 보십시오. 전도서를 통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 12:13)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14)"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넘어진 자리에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비굴한 자리에서 넘어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자에게 새힘을 주십니다.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무능한 자에게, 본디 무능한 자는 아니었으나 때에 따라 피곤해 진 자에게(단10:16-19) 피곤해지지 않았더라도 어려움을 당할 때에(행9:21-22, 살전2:1-2, 삼상30:1-6) 새힘을 주십니다. 엘리야를 일으켰던 하나님 에스겔과 다니엘, 요한을 일으켰던 우리 하나님이 올 한해 우리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앙망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시 145:19)" 올 한해 우리의 소원은 주를 앙망함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우리는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상이 아닙니다. 백화점 사업의 대성공자인 페니는 나이 40대 수백만 장자가 되었습니다.

러나 1929년 경제 공황으로 무일푼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파산하였습니다. 실망과 패배감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입원비도 없습니다. 치료비도 없습니다. 밤을 못 넘기고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부인과 자녀에게 고별의 편지를 쓰고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다음날 눈을 떠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병원 저 끝 복도에서 찬송이 흘러왔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너를 지키리" 예배실 뒷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주님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사정을 돌아 보아 주십시오" 그는 나중에 고백하기를 이 기도 이후에 자기의 마음을 누르던 무거운 짐이 다 떠나 버렸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사를 하나님과 상의하였습니다. 그는 회복되었습니다. 사업은 제기 하였습니다. 파산 전에 소유하지 못한 영생을 소유하게되었습니다. 장수하게 되었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 여호와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시 145:20)"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진정 복받는 길입니다. 육신의 복 뿐만 아니라 영혼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들,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것들이 다 우상입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보장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새해 첫 주일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합니다. 바른 출발은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바르게 시작하여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는 가정으로 시작해야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시작하여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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