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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작은 씨의 비유 (막 4: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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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더듬어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독교의 시작은 너무도 초라하고 미미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시작 예수님은 작은 씨와 같습니다. 그분은 유대나라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3년간 복음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택한 제자들은 무식하고 가난하고 낮은 신분의 12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고난의 역사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소개한 것처럼 희롱과 채찍과 결박과 옥에 갇힌 것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로 죽는 것과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습니다. 아마도 기독교처럼 역사상 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한 종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해온 것입니다.물론 이런 고난 가운데서 핍박받던 그 복음의 역사가 지금 이렇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될 것을 처음에 사람들은 아마도 바라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도 요한도 스데반도 저는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바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분 아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역사가 이루게 될 그 열매, 그 결과를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소개되는 비유의 말씀은 복음의 생명력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이땅에서 이루게 될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소개합니다.예수님은 작은씨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발전 교회의 성장에 관하여 과정과 결과를 말씀하십니다.
특히 본문에 소개되는 작은씨인 겨자씨는 우리나라 좁쌀보다도 약간 작습니다.지름이 약1-2미리미터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크기입니다..그러나 이 겨자씨를 땅에 뿌리면 일년만에 3~4미터까지 성장을 하여 심지어 새들이 거기에 것들일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라납니다.이것은 교회성장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성장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2.비유의 배경

  주님께서는 왜 이런 비유의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 비유를 말씀하신 배경을 보면 거기에는 제자들의 낙담,실망,좌절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천국운동을 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아주 영광스럽고 장엄하게,아주 크고 멋지게 성장할 줄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물론 저들이 전도를 할 때에 귀신도 쫓겨나고 병도 고침을 받는 여러 가지 역사가 나타났지만 그러나 전체적인 면에서 볼 때에 도무지 성장을 하지 않았어요.그래서 실망하여 낙담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겨자씨나무를 알지? 처음에는 미미하고 보잘것 없고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러나 나중을 보아라! 그것이 3~4미터나 성장을 해서 거기에 새들이 와서 깃들이고 살지 않느냐?

주님의 이 말씀의 약속은 이미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의 역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이 하늘로 승천하시고 나서 예루살렘에 모여서 기도하였던 사람들은 120명입니다. 이미 사복음서의 12명의 제자가 10배가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120명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였을 때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 말을 받고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사도행전 2장에 이미 3천명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수만 채우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은 사도들들의 가르침을 받아 순종하였습니다. 서로 교제하였습니다. 서로 떡을 떼며 예배드리고 기도하였습니다. 자기의 집의 물건을 팔아서 내어주고 섬겼습니다. 날마나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찬미하였습니다. 그래서 온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수가 행4장에 가서는 남자의 수만 5천명이 됩니다.

복음의 능력이 12명이 120명이 되고 다시 3천명이 되고 다시 5천명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인생을 헌신하게 합니다.자기의 집을 내어놓게 합니다. 자기 목숨을 내어놓게 합니다. 그 무엇도 이 복음의 능력을 제한할 수 없었습니다.여러분 복음이 역사하고 성령이 역사하면 우리의 계산을 뛰어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앞에 때로 미미한 교회의 현실 복음의 현재로 인하여 안되는 일로 인하여 기죽지 말아야 합니다.여전히 그 복음의 능력은 살아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역사하심에 대하여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교회 속에 이루어질 복음의 계절과 하나님의 나라의 부흥을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3. 이 두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작은 것의 가치를 강조하십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입니다.
우리는 작다를 말할 때 비유로 눈꼽을 예로 듭니다. 작은 것을 가리킬 때 “눈꼽만큼 작다”고 합니다. 그런데 겨자씨가 바로 눈꼽정도로 큽니다. 제가 성지순례가서 겨자씨를 보았습니다. 분명히 작은 씨인 것은 분명합니다. 에수님은 작은 것을 강조할때에 겨자씨를 종종 비유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씨가 심기워서 겨자나무를 이루어서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큽니다. 비록 작은 씨이지만 농부의 손에 들려서 땅에 심기워지면 엄청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작은 씨가 심기워져서 열매를 맺으면 30배 60배 100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작은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께 드려질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과부의 엽전 두푼은 아무 것도 아닌 작은 것입니다.그러나 주님은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이 여인의 헌금을 가장큰 것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사람도 작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크게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작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크게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 보면 문벌좋고 학식이 많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기독교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줍니다. 고전1:28-29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조차도 이 세상에 오실 때 작은 자로 오셨습니다 탄생장소가 베들레헴이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중에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십니다.인간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교회 속에서 우리가 무엇보다도 함께 한해동안 집중해야 할 것은 작은 것에 먼저 집중해야 합니다. 작은 것이 무엇일까요? 교회 속에서 사람으로 볼때 가장 작은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가 바로 주일학교입니다. 어른에 비교하면 아이들은 마치 겨자씨처럼 작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복음을 심으면 복음의 열매를 분명하게 맺을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복음을 심고 말씀을 심는 과정도 바라보면 너무 작고 미미한 일처럼 쉽게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잇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살았고 분명히 생명력이 있기에 비록 처음은 작고 미미하지만 결국은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특별히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씨되는 복음과 말씀을 심을때에 농부처럼 반드시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심고거둠의 법칙대로 사역하시기 바랍니다. 농부가 이른 봄에 나아가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 때가 되어 가을이 되면 반드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그 생명의 역사 열매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꿈을 갖고 귀한 사역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있습니다.

제가 주일학교 선생님이 된 것도 그 분의 영향이고 그선생님이 초보 교사시절 보여주신 본이 저의 신앙생활에 좋은 본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든 노처녀선생님이었던 그분은 항상 주일 아침이면 아이들을 끌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아이들을 몰고 교회로 왔습니다. 교회에 오면 괘도 앞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열심히 찬송를 가르쳤습니다. 주일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을 일일이 집에가지 바래다 주고 주중에는 전화심방을 하고 불러내어서 맛있는 간식을 사주곤 했습니다. 그때에는 수요일저녁에도 아이들 예배가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이 학교에 가고 없었던 때에는 직접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때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서 시청각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아이들을 섬기고 가르치면서 얼마나 주일학교가 부흥이 되는지 참 좋았습니다. 그렇게 옆에서 따라보면서 저도 보조선생님을 하고 점점 교사로 섬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작은 교회 작은 교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작은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섬기던 그 아이들이 자라서 지금 보면 큰 어른이 되고 좋은 교회 일꾼들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적용하기 원하는 것은 나 한사람의 작은 헌신이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시작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어떤 교회에서 5살된 한 소년이 지정헌금을 했습니다.헌금시간에 헌금을 하는데 1페니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헌금으로 성경을 사서 인도에 보내달라고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보태어서 작은 신약성경 한권을 사서 소년이 싸인을 해서 그 책을 인도에 보내었습니다.그리고 그 일을 소년도 잊었고 목사님도 잊고 있었습니다.

20년이 지난 후에 이 목사님이 인도에 들러 어떤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참 진지하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이 마을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까?”

뜻밖에도 한 선교사가 이 마을을 찾아와서 작은 신약성경 한권을 건넨 것이 그 마을의 복음화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떨어지고 남루한 신약성경 표지에는 20년전 자기교회의 5살된 어떤 소년의 싸인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나 한사람의 작은 헌신,작은 봉사 그것이 결국은 창대하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이루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나 한 사람의 무관심”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나 한사람쯤이야”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아프리카 한 족장이 아들의 생일을 맞아서 생일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는 손님들을 시험해보기로 하고 자기집의 가장 좋은 포도주를 조금씩 자져오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문앞에 작은 항아리를 놓고는 손님들이 가져온 포도주를 조금씩 담아와서 부었습니다. 초대를 받은 손님들은 꾀를 냈습니다.“만약 내가 포도주 대신을 물을 담아서 붓는다면 아무도 모르겟지”그는 포도주대신 물을 담아가서 항아리에 가득 부었습니다. 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족장이 항아리의 포도주를 손님들의 잔에 일일이 따라주었습니다.손님들은 포도주의 잔을 들어 건배를 했습니다.사람들은 포도주 맛이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마셔보니까 그건 포도주가 아니라 온통 물이었습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의 헌신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 사람의 작은 봉사,헌신이 부흥을 이루고 됩니다. 나 한사람은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통하여서 일하시는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도구로 쓰임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하나님 나라의 성장 능력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씨가 어떻게 성장됩니까?
특히 겨자씨가 어떻게 성장이 됩니까?
31-32절에 보십시오.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라고 합니다.
겨자씨가 자라서 큰 가지를 내는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이 나무는 약4미터까지 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길옆에 나무 숲을 이루어서 새들이 와서 쉴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실 복음이 뿌려질 때 그것은 너무 작고 미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이 나무가 자라듯이 자라나서 복음을 통해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을 보십시오.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을 이미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이미 주님은 복음으로 세계가 정복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능력을 통한 성장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합니다. 베드로가 한번 설교하자 단번에 3000명,5000명이나 될 정도입니다.그런데 이런 성경의 역사가 오늘 나와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수 잇슴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아무리 생명의 씨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저절로 자라거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농부가 땅에 심어야 합니다. 그런데 봄에 농부가 씨를 뿌리는 작업 씨가 자라는 과정을 보십시오. 정말 작고 미미한 일입니다. 씨를 뿌릴때에 흙에 심기어진 그 씨는 아무 일도 없는 것같이 죽은 것같이 눈에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서 밭에 새싹을 내고 잎을 내는 과정을 보면 정말 작고 미미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장하고 그것이 자라서 결국 열매를 맺으면 이른 봄에 뿌렸던 작은 씨의 성장은 수십배 수백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농사를 짓는 분들을 만나보면 이런 생명의 원리 생명의 역사를 알기에 그들은 성실하게 인내하면서 그 일을 합니다. 결코 땅은 속이는 법이 없습니다. 콩심는데 콩나고 팥심는데 팥이 납니다. 심을 때가 있고 자라서 거두는 때가 있음을 알기에 농부들을 보면 열심히 때를 따라 김을 매고 풀을 뽑으면서 농사의 일을 합니다.

제가 처음 면소재지 시골교회에 부임을 했을때일입니다.
교회 옆에 50여평의 작은 텃밭이 있었습니다. 교회 장로님이 봄이 되자 밭을 갈고 거기에 상치 고추 토마토 오이등의 채소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전도사님 풀이 나올때에 조금만 수고해주시면 집에서 먹는 열매는 충분할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조그마한 밭에서 나오는 상치 고추 오이 토마토가 우리 집 뿐만 아니라 온교회가 먹을 수 있을정도로 열매가 푸짐하였습니다. 작고 미미한 씨가 뿌려져 열매를 맺을때에는 너무나 크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밭의 풀도 얼마나 자라는지 결국 이 풀 때문에 두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때 밭의 농사의 현장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 농부의 믿음만큼 농사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큰 농사는 큰 농부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농부의 마음은 작은 농사밖에는 지을 수 없습니다.

마25장에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소개됩니다.
주인은 각각 종들에게 1달란트 2달란트 5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2달란트 맡은 사람은 2달란트를 남겼습니다. 5달란트를 맡은 사람은 5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는 그냥 1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같은 달란트인데 누구의 손에 들어갔을 때 성장이 있었습니까? 그 사람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나중에 주인이 그 종을 책망할 때 2가지를 책망합니다. “악하고 게으르다”라고 책망합니다. 1달란트 받은 종의 무엇이 악한 것이었습니까? 주인에 대해서 악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받은 한달란트의 가치와 성장에 대해서 그는 작은 것이라고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결국 그런 악한 생각은 게으름 속에 달란트의 성장 열매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가끔 시찰회나 교역자회에 가면 목사님들과 말을 하면서 안타까움을 갖습니다.
열심히 충성하는 목사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보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시골이어서 안되”“우리 동네는 가난해서 안되” 모든 것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될 수밖에 없습니다. 작으면 작은 되로 충성하면 그 속에서 열매가 일어납니다.
교회 속에서도 종종 그런 일꾼들이 있습니다.
성장의 미래 가능성의 장래에 대해서 꿈을 갖지 못하고 지금 여기에 작은씨와 같은 현실을 보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사이십니까? 지금 내가 맡은 반이 1명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한명 속에 장차 이루어질 성장과 변화를 믿으시기 바랍니다.목장의 목자이십니까? 번식하고 성장할 목장의 열매를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되고 안되고”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우리는 수고해야 합니다.
특히 한해동안 우리가 정말 포기하지 말고 미미할지라도 계속하고 힘을 내어야 할 일이 전도와 선교입니다. 농부의 심정으로 우리는 심고 물을 주고 거두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아버지께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나라의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겨자씨가 자란 후에 모든 풀보다 커집니다. 그리고 가지를 내고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여러분 “다 자란 나무”는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새들은 그 나무에 깃들여서 쉬고놀고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잘 자란 나무에는 새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잘 성장한 그리스도인들은 잘 자란 나무와 같습니다.
잘 성장한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타인에게 도움을 줍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만나고 싶고 만나면 도움이 되고 만나면 더 만나고 싶은 이런 신비한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한번 만나고 나서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고 가까이 하기 싫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영성,믿음,성숙을 어떻게 보면 알 수있습니까?
그 사람의 인간관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잘 다져신 인격의 사람,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은 만날수록 더 만나고 싶고 그 만남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성도님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은 영성이 아주 잘 조화롭게 발달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분들은 존경을 하게 됩니다.그리고 귀하게 여겨집니다.

제가 만나는 분들 중에 보면 나이가 드신 목사님 나이가 드신 장로님 나이가 드신 성도님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을 보면 정말 만나고 싶고 만나면 에너지를 얻고 지혜를얻고 유익이 되는 좋은 분들이 있습니다. 속으로 그런마음이 듭니다. ‘아 나도 나이가 들어서 저렇게 늙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나이가 들어서 우리에게 배어나오는 성숙한 영성은 이웃들에게 힘을 주고 안식을 주고 기쁨을 줍니다.
물론 이런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씨가 큰 나무가 되기까지는 많은 고난도 이겨내야 합니다. 나무가 되기까지 많은 인내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인내와 고난을 겪고 나서 이런 아름다운 인격의 모습으로 굳게 서있게 되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런데 왜 주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까? 왜 우리가 주님에게 축복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단지 내가 그 축복을 혼자 누리려고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바로 우리의 이웃들에게 축복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이유 때문에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나에게 물질을 주시는 이유가 이웃을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나에게 좋은 기술을 주신 이유가 이웃을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건강을 주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이웃을 돕는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축복하셨고 지금도 나를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나무에는 어떤 열매가 맺어지고 있습니까?
내인생의 나무는 얼마나 울창한 그늘과 쉼터를 제공할 수 있습니까?
내가 오래 믿었고 많이 알고 나름대로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많은 것으로 인해서 나는 얼마나 우리의 이웃들에게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있습니까? 나는 그들에게 안식을 제공하고 기쁨을 제공하고 있습니까? 나의 자녀들에게 이웃들에게 성도들에게 나누어줄 열매가 나에게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축복하여 줄 수 있는 축복의 사람으로 반드시 복을 주시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교회도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를 섬기면서 느낀 것이 교회가 주는 교회가 복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잘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단지 교회가 잘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에게 나누어줄 수 있기 위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기쁨이 되기 위해서 교회는 더 부흥하고 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 나라는 내적이든 외적이든 성장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소망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우리 속에서 우리 교회 속에서 이 겨자씨의 역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우리는 지금도 이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의 주인공이 되고 잇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비밀과 능력을 나타내는 산증인들로 늘 승리하는 도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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