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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십자가를 버리지 말라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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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버리지 말라 (마 4:1-11)

I. 말씀을 향하여

한 시골 고등학교 한 남학생이 버스를 탔습니다. 앞자리는 다 차고 뒷자리가 비어있길래 가운데쯤 앉았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여학생들이 새까맣게 타더니 좌우에 앉았습니다. 굽이굽이 시골길을 돌아가는데 휙 몸이 여학생에게 기대어 졌습니다.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 안이쁜 여학생이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시험에 들게하지 마시옵소서. 그다음 구비를 도는데 반대쪽에 있는 여학생에게 기대어집니다. 살펴보니 이쁘기 짝이없습니다. 이번에는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쪽으로 기대어지면 시험에 들게 하지 하시옵소서. 이쪽으로 기대어지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 아이 철이 들고 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과 시험에 들고 시험을 이기는 삶이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시험입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시험입니다. 예수님도 시험당했습니다. 모든 인간도 시험 당할 수 있습니다.

신년 첫주일이 되면 소망이 넘치는 축복의 말씀을 교인들에게 전해야 되는데 금년에 저희교회에 신년말씀이 참 희안합니다. 송년말씀 하나님께서 회개하라 하시더니 송구영신예배 때에 세례를 새롭게 갱신하고 살아라. 세례갱신이란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신년 첫 번째 주일 「십자가 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4장 1절 -11절 말씀에 의지해서 「십자가 버리지 말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 놀이 공원 같은 데 갈 일이 없습니다만 우리집 아이들이 어릴 때 어디에 있는 대공원에 가 본적이 있습니다. 이곳 저곳 다니다 "괴물의 집"이란 곳 앞에 왔습니다. 아이들이 세 살, 다섯 살쯤 되었을 때이니까 작은 아이는 제 엄마가 안고 있고, 큰 놈에게 "여기 들어가면 무지 재미있다." 달래서 데리고 들어갔지요. 정말 재미있는 줄 알고 들어갔다가 아이가 하얗게 죽어서 나왔습니다. 그후 2년, 다시 그곳에 갔을 때 큰 놈은 아예 안들어 가겠다고 하는데 작은 놈이 들어가 보겠다는 겁니다. "여기 들어가면 무지 무서워. 귀신같은것도 나오고 만들어 놓은 뱀도 떨어지고 그래!" 그래도 들어가겠다는 겁니다. 두 주먹을 꽉 움켜 쥐고 날 따라 나섰습니다. 단단히 준비하고 들어가 보니 별거 아니거든요. 모두가 장난감입니다. 빙글빙글 웃으며 밖으로 뺘져나왔습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인생에 재미있는 일들만 생각하고 살다가 어려움과 시험을 만나면 꽈당하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인생엔 고난도 있고 시험도 있을 수 있다." 두 주먹 움켜쥐고 준비하고 살아가면 피할 길도 있고 승리의 길도 있음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시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코로 숨쉬고 사는 사람 가운데 시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별히 올바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겐 오히려 시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에는 반드시 승리의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문제엔 푸는 방법이 있습니다. 시험엔 해결의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원리입니다.

문제는 연약한 우리가 시험당한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시험당했다 하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죄 없으신데 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이었습니까? 죄 지으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죄인의 몸을 입으시지 않으셨는데 예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그분은 당신과 나를 동일시 하셔서 죄인의 대표자로 세례를 받으셨듯이 우리를 대표하여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 너희가 세상 살아가다 시험 만날 수 있고 고난과 시련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시험을 이기었노라. 우리에게 승리를 확증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 예수님 시험을 당하신 것입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 사단의 왕국을 정복하고 이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이 한해동안 주님과 함께 어떤 시험과 고난과 시련이 있다 할지라도 승리하는 한해가 되실 줄로 믿습니다.

가난하게 살며 고생하던 맹생원이 죽어 염라대왕 앞에 섰습니다. 염라대왕이 "이보게 맹생원, 이 다리를 건너 저 세상에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네. 마지막 소원이 없겠는가?" "이놈 못나 너무나도 고생만 하다가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니 제게 문전옥답 넉넉하게 주시고, 양귀비같은 색시 얻어서, 말 잘 듣고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들 몇 놈 낳게 해 주시고, 힘 쎄고 순종 잘하는 머슴 몇 거느리고 아무 걱정 근심없이 저 세상에 얼마간 살다가 왔으면 합니다." 그랬더니 염라대왕이 배꼽 잡고 껄걸 웃더니 "야 이놈아 인간세상사에 그런 T/O 있으면 내가 내려가지 널 내려보내겠냐?" 그러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난과 시험을 당할 때 자기 혼자만 당하는 것인양 고난을 과대평가 하곤 하는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II. 시험을 만난 상황:

본문을 살펴보십시다. 언제 시험을 만났습니까?

1. 본문을 시작하는 말씀 4장 1절에 "그때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같은 내용을 다룬 마가복음 1장 12절에서는 "곧"이란 단어를 사용했고, 누가복음 4장 1절에서는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세례받고 요단강에서 돌아온" 바로 그 시점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목수생활로 책상 다리를 맞추던 때가 아니라 세례받고 대관식을 거행하시고 이제 막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시고자 했던 바로 그 때에 시험이 왔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약해져 있을 때가 아니라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려주던 바로 그때에 시험이 왔단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에게 시험이 왔다.」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사명자라는 뜻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긍지를 가지십시오.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외려 갈등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탄의 공격대상은 하나님의 일군이었습니다. 벤치워머들 - 일주일에 한번씩 의자나 뎁히는 사람들, 영향력 없는 종교인을 사단은 공격하지 않습니다. 자기 왕국을 위협하는 하나님의 사명자들, 주의 제자들을 사단은 공격합니다. 전쟁터에서도 죽은 적군을 향해 총을 쏘지는 않습니다. 마귀도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은 이미 자기편이기 때문에 공격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왜요? 시험은 곧 내가 하나님의 일군이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으세요. 우리 하나님은 온천하의 귀신을 다스리시고 승리하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시험자리에 하나님께서 나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1절부터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작하는 1절에 보면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러 가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12절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시험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지요.

2. 시험을 만난 장소는 광야였습니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온통 먼지뿐인 사막 한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이 서 있었습니다. 이때는 예수께서 40일 금식을 마친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금식에서 대단히 귀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아 굶으면 배고프구나! 길가에 돌멩이만 보아도 "야 빵이구나" 할만큼 먹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찬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마귀가 찾아온 것입니다. "야, 굶주린 하나님의 아들아!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 광야에 서 있느냐? 먹을 떡, 마실 물, 너를 보호해줄 수풀이 어디 있느냐? 그래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야. 네 손으로 낙원을 건설해. 돌로 떡을 만들어 보란 말이야."

여러분, 이것이 바로 마귀의 시험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속입니다. 「우선 먹고 살 것부터 찾아야지.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먼저 네 배부터 채워. 돈이 있어야 사람 대접 받는다구.」 그래서 예배, 기도, 성경읽기, 목장모임 등 - 신앙생활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밀리게 됩니다.

병이 들어서 수단 방법 가릴 것 없이 꼭 낫고 봐야겠다는 절박한 위기를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갑자기 목돈이 필요하여 눈앞이 캄캄해진 위기의식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절박한 현실! 이 순간은 당신이 기도해야 할 순간입니다.

뭔가 일이 잘 안될 때, 뭔가 부족할 때, 심신이 약해졌을 때, 이 순간은 더욱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할 때입니다. 사탄은 이 순간 당신의 판단력을 혼란시키기 위해 시험보따리를 들고 당신을 찾아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사탄은 당신의 영혼을 노리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인생광야는 시험의 장소입니다.

3. 한 걸음 더 나아가, 시험은 배고픈 광야에서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5절에 보면 거룩한 성, 성전 꼭대기에서도 마귀는 예수를 시험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넘어졌으며, 사가랴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천사의 예언을 불신하는 죄를 범했습니다.(눅1:8-20)

여러분, 먹을 것이 없어 오는 시험도 있지만 배 부를 때에 오는 시험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병들었을 때에 오는 시험도 있지만 건강할 때 오는 유혹이 더 많습니다. 평안할 때 오는 시험, 만사가 형통할 때 오는 시험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시험이 세상 한복판에 술집, 나이트 클럽에서만 시험이 오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가장 거룩한 일을 하다가 앞장서 주님을 섬기는 사역에서도 얼마든지 시험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예배드리는 이 순간에 성령의 임재를 강력히 느끼는 이 순간에, 찬송하고 설교 듣고 설교하면서도 시험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만큼 갑자기 일이 잘되면 시험이 옵니다. 그래서 그럴때는 더욱 감사하고 더욱 진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시험은 성전꼭대기에서도 옵니다.

이제 결론은 자명해졌습니다. "잘못될 때도 시험은 있고 만사가 잘 될 때도 시험은 있을 수 있다. 광야에 부딪혀도 시험이 있습니다. 성전에서도 사역터에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거룩한 자리에서도 우리는 시험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 그것은 끊임없는 시험의 연속입니다."


III. 시험하는 목적

마귀가 예수를 그리고 우리를 시험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목적은 3절 말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하는 말씀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6절에도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군 아니냐. 네겐 얼마든지 능력도 있고 방법도 있고 권세도 있지 않느냐. 네 경험이 얼마나 많으냐. 공부 많이 하지 않았느냐. 너는 가진 것도 많아. 재주도 많지 않느냐. 뭘 촌스럽게 십자가 지면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니? 십자가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돈벌고 출세해. 그래야 사람들이 널 인정한다고. 교회 가봐. 있는 사람을 인정 한다구. 그래야 네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너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십자가 지지 마 촌스럽게. 이게 사단의 유혹이라는 것이지요.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영광을 받아야 될 것 아니냐?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길은 영웅이 되고, 영광을 받는 길이지, 십자가 지고 고생하는 길이 아니라고 시험한 것입니다.

소명과 사명, 십자가를 버리게 하는 것 그것이 유혹이요 시험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모세가 지팡이를 버리면 나를 무는 뱀이 되고 그것을 손에 쥐면 지팡이가 되고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가르는 능력이 됩니다. 십자가를 버리면 죽음이요 걸머지면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하는 거기에 마귀의 궁극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마귀의 이 집념이 얼마나 끈질긴가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십자가지지 말라고 유혹을 했던 마귀는 예수께서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신 그 순간까지도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27:40)고 외칩니다. 이 말은 공생애를 시작하는 이 순간부터 사역을 마치시는 십자가 위에서까지 끈질기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유혹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생을 시작하는 그 시간부터, 생을 마치는 시간까지 마귀는 나를 시험합니다. 십자가지지 말고 편히 살라는 거지요.

둘째, 시험만 해도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고 천사가 와서 발을 붙들었다면 일약 영웅이 되었을 텐데 왜 예수님께서 거절하셨을까요? 그러나 사실 그만한 영광과 영웅이야 역사상에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기를 얻고 영웅이 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그 정도의 영웅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정치에서 Sensationalism이란게 있습니다. 인기주의라는 것이지요. 정치원리나 철학도 없이 어떤 줏대로 없이 사람들 군중들 움직이는 대로 인기를 따라서 연합하는 사람들 Sensationalism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예수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높이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조건을 자랑하는 사람들 이게 신앙에서 Sensationalism입니다.

우리에게는 복음이 살아있어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주님을 높여, 예수님을 닮아, 주님의 복음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우리교회는 성도들이 많이 모여, 예배당이 얼마나 큰데, 예산이 얼마인데 이것이 바로 Sensationalism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기적을 자칫하면 자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기적을 숨겨야 됩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숨겼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서 기도할 때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때 우리가 무엇이 잘못되었나? 자칫하다보면 나는 순수하게 기도합니다. 우리는 아무런 의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인간적인면 조건 능력을 마치 그것이 내 것인양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느날 나도 모르게 Sensationalism 인기주의에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런 세상 영광에 눈이 어두워져서 소명을 망각하고 십자가를 거절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광을 거부하고 오히려 십자가를 선택하시므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소명자의 길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히11:24-25)

오늘도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영웅이 되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돈으로 자기를 과시하고 영광을 자랑하고 꽃을 피우는데 행복이 있다고 속이고 있습니다. 목사가 되고 나면 꽃이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회 장로님들이 되시고 나면 교회의 꽃이 되려고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앞장서서 다른 사람들보다 눈에 보이는 곳에서 사역을 하다보면 꽃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꽃은 좋은 의미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열매가 되라고 합니다.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헌신하는 것입니다. 향기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게 사역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꽃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요. 사람들의 눈에 꽃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요. 앞장서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기뻐하지 마십시요. 인생은 꽃이 아닙니다.

어느 대중가요 가수의 노래처럼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입니다.

당신의 인생을 화류계 인생으로 전락시키지 마십시오. 이는 인생도,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자신의 인생꽃을 피우기 위해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즉 세상 영광을 위해 소명을 버려서는 안된단 말입니다. 내가 가진 소명 때문에 시간과 물질과 명예에 손해를 볼 수도 있을 겝니다. 억울해도 참고 힘들어도 견디고 고난의 자리 찾아가야 할 때가 있지요.

때로 예수님 때문에 지는 십자가를 기쁨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남처럼 돈을 많이 못 벌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성공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포기해야 될 때가 있지요. 예수 바로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고생을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시험입니다. 그 길은 곧 사탄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천하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십자가를 지므로서 오는 길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십자가 질 것까지 뭐 있어. 나한테 절을 하면 당장 그 권세를 줄텐데"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가야할 길이 있고 먹어야 할 음식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풀무불속에 들어가도 해서는 안될 일이 있는 것이며, 사자굴 속에 들어가도 해야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별하고 살아야 됩니다.

'예수 잘 믿었더니 아파트 한 채 공짜로 굴러 들어왔다.' 이것은 축복이고, '예수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눈먼 아파트 굴러 들어오는데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저주더란 얘기입니까?

'예수 잘 믿었더니 승진이 빨리되고 장관 자리 하나 얻었다.' 이것은 축복이고, '타협할 줄 모르기 때문에, 정의와 정도를 걸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한걸음 뒤늦게 승진해야 했고, 굴러 들어온 자리를 거절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저주더란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사단아 물러가라"는 말씀을 꼭 두 번하셨는데 한번은 오늘 본문이고 두 번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 지는 일을 가로막았던 베드로에게 "사단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번의 사건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방해할 때 예수님께서는 가차없이 "사단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시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십자가를 거부하고 돌로 떡을 만드는 세상, 사탄에게 절하여 권세를 얻는 세상 - 이 모두는 타락입니다. 사탄의 장난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정도가 아닌 편법으로 복을 도적질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보십시오.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는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십자가 지지 마라」 「사명 감당한다고 고생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하나님 일 해라. 그런데 희생하지 말고 헌신하지 말고 손해보지 말고 자존심 지켜가며 일하라는 것입니다. 사명과 소명이 없는 사람의 지상 목표가 편안히 살고 부담없이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편안이 곧 평안은 아닙니다. 소명자에겐 거룩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이 거룩한 부담감이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면류관을 만들어 냅니다. 인물을 만들어 냅니다. 거룩한 부담감이 말입니다.


IV. 시험을 이기는 방법

언제나 문제속에는 푸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을까요?

1.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사단의 시험을 물리칠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만" 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이 떡 문제, 경제문제를 무시한 종교가 아닙니다. 세계 어디를 보아도 예수 잘 믿는 나라가 부자로 잘 삽니다. 성경 구석구석에서도 우리에게 넉넉한 땅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말은 떡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물질만능주의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려면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수믿는 사람치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지" "말씀대로 살아야지" "은혜 갚아야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돈 좀 벌어 놓고, 아이 좀 키워 놓고, 우선 바쁜일부터 정리해 놓고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 나라 가치관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바쁜 내 일 먼저 감당하고 내일 하나님 일 해야지? 그런 사람은 평생 하나님 일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80평생을 살아도 80년 동안에 단 하루도 내일이 오늘보다 앞서는 날은 없습니다. 내일은 영원히 내일일 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순서를 바꾸는 것이 시험입니다. 순서를 바꾸면 하나님의 일은 끝까지 못합니다.

"성경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눈 좋을 때 딴 것 다 보고 눈이 나빠져서 평생 성경 한 구절 못 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일 좀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건강할 때 딴일 다하고 다리 힘 빠져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을 시작도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욕심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겐 영광스런 사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권사님 가운데 한 분 입으로 예배당 열 번 더 지은 분이 계세요. 전도사 시절에 류 전도사 단독 목회할때 얘기해 내가 예배당 지어줄게. 개척교회 열 곳도 더 세운 분이세요. 언젠가 개척교회 세울게. 선교사 100명도 더 보냈습니다. 선교사 갈 사람들 얘기해. 언제 내가 선교사 보낼게. 아들 셋이서 그 재산 다 날렸습니다. 마지막 돌아가실 때 빈털터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옳습니다. 욕심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사람이 추해지지 않습니다. 신령해집니다.

2. 두 번째로 사단의 시험을 이기려면 하나님의 말씀앞에 진실해야 합니다.

두 번째 시험을 할 때 마귀는 시편 91편의 말씀을 그럴듯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오용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은 벼랑에 서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때나 이 말씀을 인용한다고 해서 천사가 와서 우리의 발을 받들어 준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빼기도 하고 붙이기도 하며 비위와 입맛에 맞는 말씀만 골라 먹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기독교를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아담이 실패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귀가 와서 말씀을 빼먹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더하기 하는 것입니다. 이 선악과를 먹지를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더냐? (+) 플러스 했습니다. 언제 만지지 말라고 그랬어요.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죽을까 하노라. 말씀을 뺏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는데 이미 실패가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불행 한국교회의 시험이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앞에 진실해야 시험에 들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믿고 그대로 사십시다. 성경 대로 믿고 성경 대로 살다가 피를 흘리고 죽는 사람이 좀 나와야 세상이 바뀝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약속과 능력과 축복을 그대로 믿고 받으십시오. 생에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3. 세 번째 - 언제나 시험을 이기려면 시험의 크기나 높이보다 믿음의 고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구름 끼고 비오는 날에도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면 거긴 맑은 하늘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물이 깊어서 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수영을 못해서 빠져 죽는 것이지요. 문제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그것을 풀 수 있는 실력이 없으니 문제인 게지요. 거친 파도에 휩쓸려 죽는 사람도 있고 거친 파도를 타고 써핑과 카약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십시오. 햇빛에 쵸코렛은 녹지만 진흙은 오히려 굳어집니다. 죽은 나무는 마르지만 산 나무는 더욱 싱싱해 집니다.

시험을 만나도 믿음의 고도를 높이면 이제 맑은 날을 볼 수 있습니다. 거친 시험을 써핑하듯 즐길 수 있고 신앙이 더욱 단단해 지고 싱싱해 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4. 네 번째 -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할을 해 가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시험을 우리도 꼭같이 당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수없이 당합니다. 그때마다 그 시험을 이기셨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시험을 이기는 마지막 방법입니다.

아프리카에 명마를 훈련시키는 성인이 있었습니다. 명마를 고르기 위한 마지막 코스가 있습니다. 말들을 묶어 놓고 몇날 몇일 물을 주지 않고 잔뜩 목이 마르게 한다음 말을 풀어 놓습니다. 말들은 강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말들이 강가에 도착했을 때 피리를 불어 STOP 명령을 내립니다. 이때 주인을 바라보고 또 다른 명령을 기다리는 말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말들은 물을 마시느라 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 훈련가는 칼을 뽑아 사정없이 물을 마시는 말들의 목을 쳐 강물에 흘려 보냈다고 합니다.

명견을 훈련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닥에 고깃덩어리를 갖다 놓고 주인의 허락이 없이 고기를 물때에는 사정없이 매를 가합니다. 몇 번의 훈련을 반복시킨 다음 다시 고깃덩어리를 떨어뜨립니다. 그때 개는 고깃덩어리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바라봅니다.

여러분, 고깃덩어리 쳐다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 보십시오. 조금 목이 말라도 유혹의 물을 마시기 전에 주님의 명령을 들어 보십시오. 세상의 썩은 고깃덩어리만 쳐다보고 살지 말고 하늘을 좀 보고 살란 말입니다.


맺는 말씀

여러분, 한뼘도 안되는 이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위협과 갈등과 시험을 당합니다. 당신의 싸움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드는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시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겼습니다. 승리했습니다. 당신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푸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안에 있을 때, 말씀안에 있을 때, 예수를 바라볼 때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습니다. 이제 마귀는 당신 곁을 떠나고 천사가 당신의 수종을 들게 될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고 일어선 소명자, 사역자에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 천사가 수종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시험이긴 소명자의 멋입니다. 영광입니다. 축복입니다.

오늘도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 지지 말고 편안히 살라고 유혹합니다. 그것이 시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유혹이 시험인 줄 모릅니다.
큰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을 큰 그릇으로 삼으셨다는 약속입니다.
십자가는 심판입니다. 기쁨으로 지고 감당하면 구원과 승리는 이미 보장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짓밟고 지나가면 실패요 멸망입니다.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모든 가족들에게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십자가 버리지 말아라! 십자가가 네 인생의 날개가 될 것이고 축복이 될 것이다. 네 삶을 빛나게 해 줄 것이다. 얘들아 십자가 버리지 말아라.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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