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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근심하지 말라 (요 1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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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하지 말라 (요 14:1~14)

  늘 근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도 팔자다”라는 말입니다. 어떤 권사님이 늘 근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과년한 딸이 하나 있는데 이 딸을 결혼을 시켜야 되는데 적당한 사윗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늘 울상을 하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부탁을 합니다. “우리 사윗감을 하나 구해달라고”, “중매 좀 서 달라고”
  교회 안에 여러분들이 힘을 써서 좋은 사윗감을 만나게 됐습니다. 이제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결혼 주례를 하신 목사님도 너무 맘이 기뻐서 주례를 잘 마치고 나서 “권사님, 이제 걱정 근심 없겠어요. 얼굴 좀 펴고 사세요.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라고 했더니 권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결혼시키고 나니까 좋기는 좋네요. 그런데 또 걱정이 있어요.” “아이고, 무슨 걱정이 또 있어요?” “나이가 저렇게 들어서 결혼 시켜놨는데 애나 낳을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걱정도 팔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우라는 말이 있어요. 충북의 어떤 사람은 밤에 잠을 못 잔대요. 왜냐하면 자다가 하늘이 무너지면 거기에 깔려 죽을까봐 불안해서 잠을 못 잔다는 거예요. 결국 신경쇠약에 걸려 살다가 죽었다고 해요. 그런 쓸데없는 염려, 불필요한 걱정. 우린 그것을 기우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의 85%는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라고 합니다. 근심이란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해결되지 않은 일만이 아니라 걱정과 근심. 염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이것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근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근심은 결코 신앙적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근심 대신 믿음으로, 그리고 기도로 그 근심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업하는 장로님이 아주 골프를 좋아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기 친구하고 한번은 골프를 치러갔답니다. 저는 골프를 안쳐서 용어를 잘 모르는데, 그 분 말로는 퍼팅이라고 그럽니다. “와 이렇게 오늘은 퍼팅이 안되노?” 하면서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옆에 있던 교회 안 나가는 친구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여보게! 뭘 그러나. 기도하면 되지” 그러더라는 겁니다. 그게 너무 기특했어요. “아니 자네는 교회도 안 나가는데 어떻게 기도를 다 아나?” 그 친구가 말합니다. “왜 모르노! 너 경부고속도로 타고 한번 지나가다가 우측한번 봐라. 양재동 5층 건물에 이렇게 쓰여 있잖나!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여러분은 혹시 보셨습니까? 이슬비전도학교 규장문화사 빌딩에 그렇게 씌여있습니다.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그렇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근심대신 기도해야 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이리저리 허덕이며 굶주리며 고통당하였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연합군들이 그 고아들을 다 모아서 텐트를 하나 만들고 거기에 수용했습니다. 군의관들이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빵을 풍족히 주어서 마음껏 먹게 했습니다. 또 좋은 침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밤에 잠을 못 자는 겁니다. ‘왜 아이들이 잠을 못 잘까?’ 이게 근심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를 불러서 의뢰를 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왜 배도 부른데, 충분히 환경도 좋은데 왜 잠을 이루지 못할까요?” 심리학자가 와서 연구한 끝에 이런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구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 그 아이들의 손에다가 빵을 한 조각씩 쥐어주십시오. 그러면 잘 잘 겁니다.” 정말 그렇게 해보았습니다. 손에다가 빵을 하나씩 다 쥐어주었더니 그날부터 아이들이 잠을 잘 자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 아이들은 전쟁터에 늘 굶어 살았습니다. 한 끼 먹으면 다음은 또 굶어야 됩니다. 그 아이들은 아직도 그런 근심 속에 있는 겁니다. ‘오늘은 잘 먹고 자지만 내일 아침이 또 있을까? 내일 아침엔 굶지 않을까?’ 그런데 그들 손에 아침 먹을 빵을 딱 손에 쥐고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한 겁니다. 내일 아침 걱정 안 해도 되기에 잠을 잘 잘 수 있더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손에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빵조각을 쥐어주셨습니다. 그게 뭡니까? 오늘 성경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할 것이다. 너희의 필요를 내가 채워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미래 일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일 쓸 것 때문에 오늘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주님이 책임지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4장 19절에 보니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쓸 것을 채우시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쓸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쓸 것을 채우신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6장에도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건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고 염려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채우시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새해를 시작하는 신년 첫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마음속에 근심과 걱정을 가지고 이 예배 자리에 나오신 분 없으십니까? 오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의 근심을 말끔하게 씻어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근심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근심을 끊어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리하는 한해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배경은 크게 복잡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인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에게 붙들려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내가 잠시 너희와 떨어져 있을 것이다.” 자 이런 말씀들을 제자들은 잘 이해를 못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씀일까? 아마 예수님이 우리를 남겨두고 어디 멀리 가시는가 보다. 예수님이 아마 우리와 잠시 떨어져 계시는가 보다’ 뭐 이런 저런 추측이 난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뭔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거운 그런 육중한 어떤 근심이 그 제자들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한번 따라해 보시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다 아시겠죠. 옆에 분들에게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 해 주세요. 자 시작!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고 또 나를 믿으라!” 여러분 근심을 이기는 비결은 믿음입니다. 믿음! 믿음만 있으면 근심 따위는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근심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믿음의 부족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성가대 반주자 우리 박집사님! 집사님 믿음이 있으시죠? 예! 믿음이 있으세요. 그런데 이렇게 물으면 믿음이 있다고 담대하게 대답을 못합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믿음인데 뭐, 나 같은 믿음도 뭐 믿음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먼저 믿음은 지적인 동의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내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는 겁니다. 그리고 그 분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것이 믿음, 지적인 동의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지식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동의로 끝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 내 삶을 전적으로 맡길 수 있어야됩니다. 내 생명도, 내 인생도, 내 재물도 주님께 맡길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거기 문제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쉽게 말하면 제가 아까 2부 때 그런 예화를 드리니까 어떤 권사님이 웃으시던데,  내게 예쁜 아내가 있는데 내가 외국에 한 2년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누군가 아내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어서 자기 친한 친구에게 아내를 맡겼습니다. “여보게, 내 아내를 2년만 좀 잘 돌보아주게. 내가 2년 후에 갔다 올게!” 자 여러분! 아내를 맡겨두고 돌아서면 걱정이 될 까요? 안 될까요? 걱정이 되면 친구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겁니다. 믿음이 있다면 걱정이 안 돼야 합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친구는 내 아내를 잘 돌보아 줄거야.” 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뭔가 맡겼습니다. 돌아서도 걱정이 안 돼야 합니다. ‘그래, 하나님 책임지실 텐데 뭐’ 근데 돌아서면 걱정이 됩니다. 말씀 들을 때는 그런 것 같았는데, 기도 할 땐 그런 것 같았는데, 돌아서니까 아닌 것 같습니다. 불안해집니다. 그건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 말하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 전적인 순종, 전적인 충성, 전적인 위탁, 그걸 의미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근심을 해결하는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죽음 후에 천국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보세요. 죽음 후에 천국이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 2절, 3절에 보면 예수님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함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있게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죽음 후에 들어갈 영원한 천국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의 삶이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우리가 어떻게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까? 누구 때문에 들어갑니까?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영원한 천국이 준비되어 있으면 이 땅의 삶에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천국이 얼마나 좋습니까? 성경에 표현하는 천국의 모습은 황금길이고, 12개의 진주문이고, 상아탑이 있고, 뭐 정말 수정 같은 생명의 물이 흐르고 상상할 수 없습니다. 거기는 근심도 걱정도 이별도 아픔도 애통도 곡하는 것도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원한 영광에도 동참해서 예수님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천국에 그 아름다운 처소를 준비해놨다면 이 땅이 부럽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어떤 분이 밖에 나갔더니 친구가 남편이 사줬다나 10만원짜리 가짜 다이아몬드를 하나 차고 와 가지고 자랑을 하는데 “이게 진짜같지?”합니다. 그러나 그걸 부러워하진 않습니다. 우리집에 가면 우리 남편이 사준 진짜 1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가 있는데 그까짓 가짜 10만원짜리가 뭐 부럽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겐 아름다운 천국이 준비되어 있는데 이 땅의 삶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땅에서 조금 이득을 보았다고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이 땅에서 조금 손해를 보았다고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더 아름다운 천국이 예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 여러분들이 천국에 소망을 가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는 최고의 영광을 맛볼 겁니다. 우리는 최고의 행복을 천국에서 경험할 겁니다. 그 믿음이 있다면 이 땅에서 사사로운 일로 염려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맹인으로 일생을 살아간 화니 크로스비라는 유명한 찬송가 작시자가 있습니다. 그가 쓴 많은 찬송시 가운데 231장이 있습니다.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그 아침을 당할 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쁨으로 주의 얼굴 뵈오리. 예수님 만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겁니다. 그는 맹인입니다. 이제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될것이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는 그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근심하는 것은 천국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들이 옆집에 놀러갔는데 오질 않습니다. 엄마가 찾으러 가보니까 얘가 안 오겠다는 겁니다. 친구집에 그냥 살겠다는 겁니다. 여기가 너무 좋다고 합니다. 엄마가 뭐라고 말 할까요? 속으로 ‘얘 이 바보 같은 놈아! 남의 좋은면 얼마나 좋겠니? 아무리 좋은들 자기 집보다 하겠어? 너가 하루는 좋다고 하지만 이틀 삼일 지나봐라 눈칫밥 먹으며 사는게 뭐가 좋겠냐 이놈아!’ 엄마는 그렇게 말할 겁니다. 여러분! 이 땅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어찌 우리의 집보다 좋을 수가 있겠습니까?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그 천국의 실재를 확신하는 사람, 그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 이 땅의 일로 근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천국의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죽어도 살아도 주를 위해 산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근심을 해결하는 믿음은 우리가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보세요. “우리가 큰일을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좀 건너 뛰어서 12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십니다. 12절입니다. 같이 읽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하시던 일을 하고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그 생애 동안에 팔레스타인 안에 갇혀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배를 타고 해외에 나가신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주로 이스라엘 땅에서 살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천 명에게 복음을 전하셨지만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떡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다가 나중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니까 대부분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한 500여명 정도만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감화되어서 예수님을 따랐다고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자 여러분! 그러나 보세요! 제자들을 보세요! 사도바울은 배를 타고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 받은 베드로가 한번 복음을 전했더니 삼천 명이 동시에 회개하고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집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보다 더 큰일을 감당하고 있는 겁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한국에 와서 여의도에 집회 할 때 100만명의 인구가 모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말씀이 맞죠? “너희가 네가 했던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얘기는 주님보다 더 많은 능력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우리는 불가능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보니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보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음안에서.

  자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경계할 게 있습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공격의 속삭임이 뭔지 아십니까? “야!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돈도 없잖아. 넌 뭐 배운게 있냐? 넌 집안이 뭐 번듯하냐? 너가 뭐 내세울게 있냐? 너가 무슨 봉사를 하고 무슨 충성을 해? 다 거짓말이야!” 그렇습니다. 사단은 오늘도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사람들은 또 그렇게 동의합니다. “맞아, 사단 너말이 맞아. 내가 무슨 돈이 있냐? 배경이 있냐? 학벌이 있냐? 내가 무슨 봉사를 하고 충성을 하고 큰일을 해.” 사단은 우리 마음 속에 열등감을 심어줍니다. 자기 비하감을 갖게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쉽게 낙심하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이것을 뛰어넘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사단의 속삭임임을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여기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힘이 없어. 우리 교회는 능력이 없어. 우린 큰일을 할 수 없어.” 이런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 돈 때문이라면,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돈이 없어 주님의 일을 못한다고 한다면 그건 신앙이 없는 겁니다. 물질의 주인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왕이십니다. 모든 권세와 영광과 모든 물질이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너희가 장관이나 사장이 되어야 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적어도 50평 이상의 아파트에 살아야지 나보다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거짓된 메시지에 속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깨달으셔야 합니다.

  서울시내에 어느 교회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30년 전 포항제철에 입사를 했습니다. 신입 사원들 중에 몇몇 믿음 있는 분들이 모여 기도모임을 가졌답니다. 기도모임을 하면서 기도제목이 뭔지 아세요? ‘이 철강신화를 이룬 박태준 사장이 예수 믿게 해 주세요.’ 그들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여러분 어디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그 몇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금방 들으시겠어요? 그들이 아마 어떤 생각을 하고 기도를 드렸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박태준 사장님 예수 믿게 해 주세요.’ 그런데 여러분 그 기도가 삼십년 후에 이루어진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박태준 사장은 누구보다 뜨겁게 예수님을 믿고 있어요. 여러분 신입사원 몇 명의 기도, 그 불가능의 기도예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기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큰 일을 해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억하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일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로 하는 겁니다. 우리 믿음으로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그런 믿음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돈에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돈에 꼼짝 못합니다. 마귀가 주는 속삭임에 꼼짝 못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때에 돈 때문에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목사가 어떤 일을 하려는데 “아이고! 목사님, 우린 돈이 없어요. 우리 교회는 그만한 능력이 없어요.”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이제 기도를 바꾸십시오. “하나님! 우리 목사님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우리 교회가 할 수 있게 주의 사업을 축복해 주세요. 제 사업의 복을 주세요. 제가 그만한 돈을 헌금할 수 있는 능력을 주세요.” 기도를 바꾸십시오. 그럼 여러분의 인생이 바꾸어 질 수 있습니다. 앉아가지고 맨 날 그냥, 그 돈 얼마 안 되는 가지고 계산하면서,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우린 할 게 아무것도 없네.” 하나님이 보시면 얼마나 안타까워 하시겠습니까. 기도를 바꾸십시오. “제게 복을 주세요. 제 사업을 축복해 주세요. 우리교회가 할 수 있는 일, 다 할 수 있는 그런 헌금을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인물 되게 해 주세요.” 우리가 큰일을 할 수 있음을 믿을 때, 우리는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근심을 해결하는 믿음은 예수 이름으로 구할 때 응답받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받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게 가장 큰 믿음입니다. 우리 13~14절 말씀 건너뛰어서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적인 말씀입니다. 여러분 따라해보세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할 것이다. 이건 이영무 목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왜 이 말씀을 안 믿으십니까. 여러분 예수 이름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은 영광된 이름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받게 하시는 그 능력의 이름, 예수의 권세를 가지고 우리는 기도하시고 명령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하면 또 무엇이든지 제한이 없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한 것이나 다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여러분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듣기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우리교회가 건축을 하고 좀 부채가 남아있는데 한 40억 정도 됩니다. 저는 그것 때문에 한 번도 걱정해 본적은 없습니다. 뭐 다른 분이 자꾸 걱정하니까 저도 어떨 때는 걱정이 좀 되는 거 같이 느껴지다가도, 기도하면 걱정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그까짓 40억이 문제입니까? 4000억은 왜 못 주시겠습니까! 그것이 이영무 목사가 도박을 하다가 40억을 날렸다면 그건 하나님이 채워주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짓는데 쓰여진 돈이라면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나아가고 충성하고 선교하고 봉사하고 기도하면 됩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나님의 해결해 주실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됩니다. “그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응답받을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2절에 보니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 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구하십시오. 하나님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가 이제 미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되어서 툭하면 열방대학 얘기를 많이 합니다만 아마 한동안은 자주 할 겁니다. 좀 이해해 주십시오. 제가 3개월동안 여러분께 말씀드렸듯이 새벽마다 2시간씩 workduty라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내려서 공급하는 그런 일을 제가 했습니다. 여러분 커피 기계 대략 아실겁니다. 기계가 꽤 큽니다. 그분들이 말하는 건 커피가루가 아니고 커피열매를 가리킵니다. 빈이라고 하는데, 콩알처럼 커피열매가 있습니다. 커피나무가 빨간데, 그 빨간 열매를 따서 말리고 해서 커피빈을 만드는데 그 커피를 집어넣고 그걸 갑니다. 갈면 밀가루처럼 가루가 됩니다. 그럼 그것을 이제 위에다가 끼우고 스위치를 누르면 뜨거운 물이 내려와서 커피가 내려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내려먹는 커피입니다. 어느 날 커피를 준비하는데 그날따라 사람들이 아침 먹으로 많이 왔습니다. 커피가 떨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갈려고 스위치를 눌렀더니 기계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공회전만 되고 기계가 안 돌아갑니다. 기계가 안 돌아가니 갈아지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했습니다. 저는 껐다가 다시 켰다가 몇 번을 다시 했습니다. 근데 계속 갈아지지 않는 겁니다. 저는 그 때 너무나 당황했습니다. 밖에는 커피 먹으려고 기다리고 서있는데. 미국 사람들은 커피 없으면 아침을 못 먹지 않습니까. 빵하고 커피를 먹으니까. 제가 당황했습니다. ‘이거 어떡하나.’ 여러분 다급할 때 생각나는 게 뭡니까?  기도죠! 기도! 제가 어떻게 기도했는지 아십니까? 제가 커피 기계 앞에다가 손을 얻고 안수기도를 했습니다. 급하니까 방법이 그것밖에 없습니다. 당장 기술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고칩니까. 제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커피 기계 망가졌는데 이거 큰일났어요. 짐 커피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하나님 좀 도와주세요.' 제가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커피 기계는 고쳐질지어다." 여러분이 믿든지 말든지 저는 기도했습니다. 믿져야 본전이죠 뭐! 누가 보든 안 보든 저는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스위치를 눌렀을 때 기계가 돌아갔을까요? 안 돌아갔을까요?

  안 돌아갔으면 얘기 안하죠! 기계가 “윙”하고 돌아가면서 갈아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아! 이렇게도 하나님 역사하시는구나.’ 제가 몇 번을 눌렀지만 되지 않았던 기계였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눌렀더니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한번 그런 일 경험했으면 어쩌다 실수였겠지 하고 얘기 안 했을 겁니다. 제가 그런 일을 또 한 번 경험했습니다. 제가 그래서 여러분께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겁니다. 물론 그 때에 기술자가 옆에 있든지, 급하지 않았으면 제가 기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기술자보고 고치라고 그랬을 겁니다. 다른 커피를 줬을 겁니다. 그러나 해결하지 못하는 다급한 상황 속에서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응답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좀 여러 가지로 무리했었던 거 같습니다. 오고 그 다음날부터 설교하고 성탄절, 뭐 이렇게 쭉, 새벽기도 이어가면서 목이 좀 상했습니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안수기도하고 나니까 많이 상했습니다. ‘좀 쉬어야 되겠다.’ 그런데 기도원에 갔더니 거기서 또 안수기도한다고 해서, 안 할 수가 있어야 말입니다. 할까말까 하다가 ‘그래 하자! ’했더니 목이 아주 많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 심야기도를 여기서 인도하는데 목소리가 전혀 안 나왔습니다. 개미 소리 밖에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겨우 겨우 심야기도를 인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저희 교우들이 기도 많이 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끝나고도 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런데 토요일 되어도 목소리가 회복이 안 되었습니다. 한마디도 못 할 상황이었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내일은 신년 첫 주일이고, 성찬식도 있고, 제직수련회도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그래서 부목사님께 설교를 부탁할까도 생각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야! 주일날은 걱정 없이 설교 할 수 있을거야! 라고 제게 말씀해주셧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도 마음에 안심이 안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교우들이 금요일 저녁에 너무나 열심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제가 어려운 거였습니다. 한마디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개미 소리 밖에 안나왔습니다. 제가 또 제 아내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제 아내가 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제 아내가 전화를 주면서 그랬습니다. ”제가 기도했는데 목사님께서 주일날 충분히 설교할 수 있다고 하나님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 약속을 믿어야만 했습니다. 제가 설교 못할 것 같으면 미리 설교 준비 할 것도 없습니다. 부목사님께 준비하라고 맡기고 저는 어디 가서 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약속을 믿고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새벽 딱 3시에 일어나서 제가 목소리부터 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목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들을 때는 답답하지만 저는 이 목소리도 어제는 낼 수 없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제가 신년 첫주일에 설교 할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이와 같은 겁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역사하는 겁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내가 시행할 것이다.“ 이 믿음이 근심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믿음을 갇는겁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겁니다.

  여러분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여러분의 한해를 믿음으로 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나아가서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한 주간 동안 새벽집회 여러분 한번 열심히 나와 보십시오. 이제는 근심과 염려의 삶이 아니라 확신과 믿음의 삶을 가지고 나아오셔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할 때 여러분의 인생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는 축복의 새 아침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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