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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회헌신예배] 세상을 다 팔아 보화를 사자 (마 13: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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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 팔아 보화를 사자 (마 13:44-50)

오늘은 당회헌신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당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로님을 최초로 선출할 때에는 세례교인 30명이 있어야 장로님을 선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회가 구성되려고 하면 담임목사와 장로 2인 이상이 있어야 당회가 조직될 수 있습니다.  목사님 1분에, 장로님 1분이면 당회가 구성되지 못합니다.  당회는 반드시 목사와 2인의 장로님이 계셔야 당회가 구성됩니다.  그러면 60명이 되면 다시 한 명의 장로님을 더 청원하고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90명이 넘어야 세 번째 장로님을 선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역시 세례교인 30인에 한 명의 장로님을 청원할 수 있고, 세울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최초에는 2인 이상으로 조직교회가 되라는 의미로 세례교인 30명만 있어도 2인을 선출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철저하게 세례교인 30인이 넘어야 한분의 장로를 선출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장로님은 세례교인 30인의 대표요, 30명 몫을 감당해야한다는 말이요, 30명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암시가 들어있습니다. 

당회 헌신예배가 모든 헌신예배 중에 가장 먼저 드리는 것은 당회원들이 하나님 앞에서 초심으로 돌아가서 처음 부르심에 충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먼저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노회시에 목사안수식에 참석하거나 어느 교회의 임직식에 초청을 받을 때에는 임직 받으시는 분들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그들의 진지한 표정, 주님을 위하여 감격 속에 임직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습니다.  나도 저런 감격 속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는 그 때의 감격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있습니다.

우리 목사들과 장로님들은 하나님이 불러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감격을 가지고 일하기를 원합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오면서 습관에 젖어 마지못한 봉사가 아니라, 언제나 긴장하면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여야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을 잊어버릴 때에 갈등이 생기고 분열이 생기는 법입니다.

정말 우리 시대에 본이 될 만한 장로님들이 우리 교회에서 나와야 하고, 일당 백을 하시는 장로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60:22에는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작은 자가 천 명을 감당하고, 그 약한 자도 강국을 이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하여도 우리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많으신 장중에 사로잡혀 크게 쓰임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세상을 다 팔아 보화를 사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진주의 비유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천국의 비밀을 전해들은 사람의 삶의 자세를 말하는데, 곧 전심으로 응답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하루 품삯을 받고 고용된 일꾼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후에 얼른 덮어두고 가서 자기의 전 재산을 처분하여 그 밭을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밭이거나 몇 년간 빌려서 농사짓는 소작인이라도 되었으면 그렇게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옛날 유대나라에서는 누가 언제 밭에 보물을 숨겨두고 죽었는지 모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수없는 전쟁과 재난을 겪다보니 잠시 피난 갔다가 돌아온다고 묻어둔 것인데, 몇 세기를 지난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루 품삯을 받고 일하는 일용직 농사꾼이 어느 밭에서 일하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 좀 더 밭을 파게 되었는데,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어디 한 군데 파서 꺼낼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금은보화가 밭에 감추어져 있는데,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머리가 빨리 돌아갑니다.  얼른 앞뒤를 계산해봅니다.  지금 그것을 파내다가는 주인에게 다 넘겨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밭에서 나온 것이니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자기에게 얼마나 인심 쓰고 떼어줄지도 모릅니다.  그는 결단하였습니다.  보물은 발견한 사람이 차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누가 볼 새라 얼른 흙으로 덮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그의 전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사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윤리적인 것을 교훈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를 알고 나서 그것을 소유하려는 자세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횡재하는 일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 것입니까?  세계제1차 대전과 2차대전 당시에 군자금으로 금화와 은화를 싣고 가던 배가 폭격당하여 침몰하였는데, 어쩌다가 그런 배들이 발견되어 엄청난 보화를 건져 올리기도 합니다.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금괴와 은괴 수백 톤을 싣고 가던 수송선이 미군의 폭격으로 침몰하였는데, 후에 그 배를 건져 올리면서 100억대의 수익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안앞바다에서 청자 백자를 건져 올렸습니다.  중국 송나라에서 수많은 청자와 백자를 싣고 일본으로 가던 배가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하였습니다.  1976년에 침몰한 배를 확인하고 1983년까지 무려 8년 동안 도자기 15650점, 쇠붙이제품 5176점 돌로 만든 물건 25점, 그 밖의 것이 477점 도합 1만7728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동전이 자그마치 17t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니 온 세계의 눈과 귀가 신안 앞바다로 쏠렸습니다.

지난해의 일입니다.  중국 광동성 앞바다에서는 중국 남송 시대의 무역선이 840년 만에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중국정부에서는 지난 1987년에 영국과 합작으로 광동 앞바다에서 침몰한 배를 발견하였습니다.  영국은 엄청난 금괴를 실은 동인도회사의 침몰한 배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발견된 것은 동인도회사의 배가 아니라, 송나라의 무역선이었습니다. 송나라 시대의 무역선을 20년 만에 선체 그대로 인양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보물선에 실린 보물의 값어치가 무려 1천억 달러 100조원에 이른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이 나서서 인양해주겠다고 했지만, 중국은 거절하고 중국의 자체 기술이 축적될 때를 기다려 인양하였는데, 무역선이 가라앉은 바다 속에 철제 상자와 같은 배를 만들어 보물선이 하나도 망가지지 않게 들어 올렸습니다.  송나라 시대의 배에서 개흙을 제거하고 모래를 빼어난 후에 영구보존한다고 합니다.  그 배 값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가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동안 1년 동안 인양작업에 들어간 돈만 해도 우리 돈으로 37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무역선에서 6-8만점에 이른 도자기와 금은 장식 등 각종 유물들이 실려 있어 그 가치는 1천억 달러, 100조에 이른다고 합니다.

보물선을 찾아 일확천금을 노려볼만 합니다.  중국에는 중국근해에 침몰된 배들은 10만 여 척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다에서 보물선을 올리려고 하면 그것은 눈에 띄게 마련이고, 개인이 건져 올리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밭에 감추인 보화는 개인이 얼마든지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가치를 알아볼  줄 알아야 자기의 전부를 걸 수 있습니다. 

자기 집에 허름한 그림인 줄 알고 공동품 수집상에게 떠맡기다시피 하여 종이 값 정도 받고서 그림을 넘겨주었는데, 나중에 그 그림이 전시되는데, 유명한 화백의 그림으로 정말 값나가는 그림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림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면 종이 값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어쩌다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공동품 가계에서 액자 값에 사왔는데, 그 그림이 엄청난 가치가 있어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보화보다도 더 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것을 다 팔아 사들여야 하는 그런 가치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다하고 목숨을 걸어 섬겨야 하고, 주님을 사들여야 하는 그런 자세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의 죄악을 대신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런 분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의 것을 다 합한 것보다, 더 존귀하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구속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는 전혀 없습니다. 

44-45절의 말씀에는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비유도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같은 내용입니다.  강조하려는 것도 같습니다.  그 상인은 그동안 진주를 잘 다루고 있던 진주 상인이었습니다.  그는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소매상이 아니라, 부유한 수집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경험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전심으로 응답하고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뒤를 따르고, 주님을 소유한 것으로 만족하고 감격하면서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의 그물 비유는 앞의 두 비유와는 좀 다른 비유입니다.  47-48절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바다에 그물을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그물은 저인망 그물로 두 배에서 그물을 잡고 고기를 몰아서 잡는 것으로 아주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 비유의 특징은 고기를 잡는데 있지 않고, 잡은 고기들을 분류하는데 있습니다.  좋은 고기는 가져가기 위하여 따로 구별하고 좋지 않은 고기들 먹지 못할 고기, 아직 어린 고기, 그리고 혹 죽은 고기들은 버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종말, 천국에 들어갈 때에는 천국을 위하여 응답한 자와 응답하지 않는 자 사이에는 분명한 구별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뒤섞여 있지만, 세상 끝 날에는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해를 살면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분명히 나쁜 것인 줄 알면서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좋은 것마저 물들어버리고,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에 예수님을 잘 믿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천국의 가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야만 합니다.  우리 주님을 놓칠 수 없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는 말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밭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다시는 말날 수 없는 진주와 같은 보화를 찾았습니다.  우리의 일생에는 가장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은 버려야겠습니다.  마지막 주님 앞에 갔을 때에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어떤 청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슈퍼마켓에 들어오더니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가지고 밖에 나가 그늘진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며, 행복하게 먹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청춘 남녀가 멋진 자동차를 타고 오더니 아가씨가 차에서 내려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시원한 자동차 안에서 남자 친구와 나누어 먹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 그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청년이었다고 하면 어떤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까?  그 청년은 아마도,  부러운 눈초리로 승용차에 앉아 있는 청년을 바라보면서 “저 친구는 누군데, 저런 왕자 같은 대접을 받는가?  나도 저렇게 시원한 자동차 안에서 여자 친구가 사다주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아이스크림의 맛이 사라지고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알지 못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자동차 안에 있는 청년은 걷지 못하는 소아마비 장애인이었습니다.  이제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그늘을 찾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 청년과 자동차 안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아이스크림을 받아먹는 청년 중에 누가 더 행복합니까?  행복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안에 나를 구원하여 주신 세상에 없는 보화이신 주님을 모시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입니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가치를 아는 것, 무엇이 참된 진리이며, 생명인 것을 알고 그것을 누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이며,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시는 여러 장로님들은 정말 귀하신 분들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 나를 불러주신 주님이 계시다는 것, 그 주님은 나의 억만 죄악을 다 사하여 주신 구주이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우리 주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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