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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원대로 먹고도 남았더라 (요 6: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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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로 먹고도 남았더라 (요 6:5-13)

하나님께 기도하고 난후 그 기도가 아주 정확히 딱 맞아야 가장 좋은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남아도 안되고 더 모자라도 안되고 딱 맞아야만 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저희 교회 도서관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교회 도서관을 보고 도대체 오천권의 만화책을 비롯하여 만 오천권이나 되는 책을 어디서 가져왔나 하고 의문을 가집니다. 약 7년 전 저희가 이 교회 건물을 구입했을 때에 지금 교회 도서관으로 쓰이던 곳은 당시 전 주인인 앵글리칸 교회에서 운영하는 Thrift Shop이었습니다.

우리가 7년 전 이 교회 건물을 구입했을 당시에 캘거리에 ‘문화사랑’이라는 책방이 있었습니다. 그 책방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문을 닫으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책과 책장을 기부할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우리가 교회 건물을 구입하고 보니까 그 많은 책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그 책과 책장을 나르면서 참으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느꼈습니다. 모든 책장들의 사이즈가 자로 잰 듯이 딱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책장의 사이즈가 커도 안되고 작아도 안됩니다. 아주 딱 맞아야 됩니다.

그리고 집을 새로 장만하여 이사를 가서 가구를 구입할 때에도 그 가구의 사이즈가 남아도 안되고 모자라도 안됩니다. 창문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맞추었는데 사이즈가 모자라거나 남으면 보기가 싫습니다. 그리고 가구도 사이즈가 크거나 작으면 보기가 싫습니다. 딱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집을 구입할 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구 사이즈와 집의 구조를 맞춰가면서 집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발이나 옷의 경우도 발과 몸의 사이즈가 딱 맞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아주 딱 맞는 것보다 좀더 여유로워야 하고, 더 나아가 풍성하고 남아야 좋은 경우가 있습니다. 저희 집 사람이 토요일에 교회에 와서 주일날 성도님들이 다 함께 식사할 쌀을 미리 전기밥솥에 담아 놓습니다. 이때에는 밥이 남을지언정 모자라면 안됩니다. 그리고 성찬 준비를 할 때에도 항상 여유롭게 준비를 합니다. 성찬이 모자라서 참석을 못하시는 분이 생겨 자칫 시험이 들까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실 때에 넘치도록 풍요롭게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초기에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어부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고기들을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빈털터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잠시 베드로의 배를 빌어서 해안에 있는 군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베드로에게 말씀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한 번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갈릴리 바닷가 깊은 곳에다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옆에 있는 동료의 배에까지 만선의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넘치는 축복으로 순식간에 삶이 펴진 것입니다. 슬픔과 근심이 온데간데없어지고 얼굴에 기쁨이 돌았습니다. 올해 우리는 이러한 넘치는 축복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얼굴에 근심의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기쁨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 또 다시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해 몇몇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의기소침하여 다시 본업인 어부로 돌아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합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이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을 들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잡은 고기를 해변에 나와서 세어보니 153마리가 되었습니다. 153마리는 풍성한 축복의 숫자입니다. 이러한 풍성한 축복이 올해 우리 교회에 임하고, 또한 모든 성도님들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이야기입니다. 교회에 몇 년간 다녀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제목은 ‘오병이어의 기적’이지요.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어른만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은혜를 받습니다. 다름 아닌 예수님은 우리의 먹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과 정신만 잘되시기를 원하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의 일도 잘되시기를 원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의 법칙은 영혼이 먼저 잘되어야 육신도 잘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도 잘되고 육신도 다 함께 잘되기를 원합니다. 저와 같이 50살 정도나 그 이상 되는 한국 사람들의 세대는 배고픔을 아는 세대입니다. 집에 쌀이 떨어져 밀가루 수제비를 먹으며 꽤 오랫동안 지내도 보았습니다. 쌀과 밀가루가 떨어져 옆집에서 조금 빌려왔는데 와서 보니 그것을 요리할 연탄불이 없습니다. 그래서 산에 가서 나뭇가지를 주워서 불을 땝니다. 그리고 연기를 맡으며 콜록콜록 거리며 애써서 밥을 해먹습니다. 물론 반찬은 없습니다. 간장이나마 있으면 그것을 찍어서 먹습니다.

이렇게 먹는데 한이 맺힌 사람은 풍성히 먹는 것에 큰 은혜를 받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할렐루야!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는 고기를 싫어하는 채식주의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기를 상당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60년대 한국에는 고기반찬이 참 귀했습니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점심도시락에 고기 장조림을 가지고 올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더구나 고기를 원대로 실컷 먹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대 오늘 본문 11절에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라는 구절을 봅니다. 참으로 귀한 성경 구절입니다. 아마 이 구절을 북한의 굶주리는 사람들이 보면 상당한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군침을 흘리며 “나도 고기를 원대로 먹기를 원합니다.” 하고 기도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그렇게 원대로 먹고도 또 남아서 그 남은 것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얼마나 풍성한 축복입니까? 참으로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가정이 아주 가난했을 때, 가끔 저희 어머님이 잔치 집에 가서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옵니다. 우리 삼남매는 어머니가 잔치 집에 가서 싸가지고 오는 음식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잔치 집에 음식이 남지 않아서 어머님이 음식을 하나도 싸가지고 오지 못하면 우리 삼남매는 풀이 죽습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 집은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가 됩니다.

여러분, 먹는 것이 풍성하다는 것은 부요의 표현입니다. 더구나 실컷 먹고도 남았다는 것은 아주 풍성하여 여유가 있다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올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되 본문처럼 풍성하여 여유가 있을 정도로 축복을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 여유로운 축복으로 나누어주고 베풀어주기를 소원합니다. 한국 속담에 광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창고가 가득 차서 여유로워야 남에게도 인심을 쓰고 산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이것을 쉬운 말로 하면 하나님이 너희 창고를 가득히 채워주므로 너희가 착한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창고가 풍성하지 못하고 부족하면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도 쩨쩨해질 수 있습니다. 고로 올해 우리는 여유로운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약속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1:14)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풍성한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 풍성한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우리는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시65:13)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욜2:26)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릇이 작으면 하나님도 작은 것밖에 줄 수가 없습니다. 그릇을 아예 준비도 안하면 하나님도 안타깝지만 전혀 줄 수가 없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선지자 생도의 아내가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와서 눈물로 하소연을 합니다. “엘리사 선지자여, 저의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 빚을 지고 있다가 얼마 전 죽었습니다. 그런데 채주가 이르러 두 아들을 종으로 삼고자합니다. 이제 저는 어쩌면 좋습니까?” 이 사연을 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묻습니다. “너의 집에 무엇이 있느냐?” “예, 저의 집에는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너는 밖에 나가서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많이 빌어라. 그리고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보아라.” 이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의 말대로 이웃에서 그릇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두 아들과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붓는데 부어도 부어도 자꾸자꾸 기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여인이 아들들에게 그릇을 더 가지고 오라고 하는데 아들들이 말합니다. “어머니, 이제 그릇이 없어요.”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름이 딱 그치고 말았습니다.

즉 그릇이 준비되는 동안에는 축복이 임하다가 그릇이 없으니까 축복도 그쳤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여인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큰 그릇을 더 많이 준비했을 텐데!” 다시 말해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기 위해 마음의 그릇을 여유 있게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가능한 우리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는 마음의 그릇을 아주 넓고 크고 여유롭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 풍요한 축복을 외국 땅에서도 여유롭게 주실 때 인심을 쓰십시오. 다시 말해 주신 분의 뜻을 좇아 그것을 잘 사용하십시오. 한꺼번에 모았다가 인심을 쓰겠다고 말하면서 주신 축복을 도적질하지 말고 그때그때마다 작든지 크든지 십일조를 드리는 여유를 찾으십시오.

결론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주제는 ‘여유’입니다. 주님을 위한 마음의 여유, 주님을 위한 물질의 여유, 주님을 위한 시간의 여유, 주님을 위한 환경의 여유가 각자에게 주어지고, 그 주신 여유로움을 반드시 주님을 위하여 쓰는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넘치도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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