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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제자들 (마 4: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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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제자들 (마 4:18-20)

  피터 와그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애초에 그는 빌리 그래함 때문에 예수님을 믿었고, 빌리 그래함이 하는 일이 너무나 좋아 보여서, 거의 환상에 사로잡혀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지없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기도가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금식과 기도에 더욱 열심을 냈습니다. 그러고 나가서 설교를 했는데 또 실패했습니다. 그는 친구와 상담한 결과 혹시 내면의 숨은 죄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숨은 죄를 찾으려고 무려 10년 동안의 일기를 다 뒤졌습니다. 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심각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설교를 했지만, 듣는 사람들은 여전히 시큰둥했습니다.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빌리 그래함 같은 설교자로 세우신 줄 알고 헌신했는데 계속해서 실패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실패의 과정 속에서 그는 놀랍게도 자신이 수천 명 앞에서 설교할 때 보다, 50~60명 정도가 모이는 강의실에서 훨씬 더 신나게 설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전략가’라는 자신의 은사를 발견했습니다. 자신은 대중 설교자가 아니라 학교에서 강의하는 사람, 일대일로 사람을 만나고 상담하는 사람, 선교와 교회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사람으로서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처음 자신의 꿈이었던 대중 설교자는 되지 못했지만, 자신의 은사대로 교회 성장학 교수가 되어 강의를 하는 것이 더 기쁘고 좋다고 합니다.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해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제자를 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를 살펴볼 때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지상에 남겨진 하나님 사업의 가장 확실한 열매는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 후 제자들은 가는 곳곳마다 아무리 무서운 핍박이 있었을지라도 담담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고 그 결과 오늘날 기독교가 전 세계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생업의 현장에서 곧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어려운 처지의 어부들이 가난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큰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직업과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첫 번째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와 안드레는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어려운 시대에 예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건강한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일하는 사람

  본문 18절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갈릴리는 남북이 20km, 동서가 12km이며 해수면보다 212m나 낮아 헤르몬 산으로부터 불어오는 태풍이 풍랑을 자주 일으킵니다. 갈릴리는 어족이 풍부하여 어업이 번창하였고 그 해안에는 예수님의 전도 활동에 주요한 배경이 된 성읍들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갈릴리에서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던질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가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생업에 바쁘게 전념하고 있을 때 제자로 택하셨음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 건설의 생동감 넘치는 현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골방이나 기도원에 앉아만 있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 일할 것을 찾아 적극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에게 위대한 소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활동하고 땀 흘리는 사람들에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싸움을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말만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생업의 현장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혼 구원의 엄청난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욕의 천국이라고 합니다. 욕이 그렇게 많답니다. 세계에서 제일 욕이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중국말도 욕이 적고, 일본말도 욕이 적고, 영어에도 욕이 별로 없습니다. 영어는 ‘개XX' 그런 말이 있습니까? 우리는 욕이 안 들어가면 말이 안 될 정도입니다. 말을 고치지 않으면, 말을 바꾸지 않으면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말이 바뀌어야 삶이 바뀝니다. 좋은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외국에서 온 근로자들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견딜 수 없는 것은 주인들이 하는 욕이라고 합니다. 증오심이 쌓여 자기 나라에 가서 한국 사람만 보면 총으로 쏴죽이고 싶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욕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별의별 욕을 다 들은 것입니다. 중국에 있는 한국 사람의 공장에서도 그렇고, 중국의 동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생활할 때도 제일 싫은 것이 욕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욕하는 말, 미움의 말, 더러운 말, 불평과 원망과 시기와 질투의 말, 음란한 말, 악한 말, 멸시하는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욕을 하지 않는 백성, 욕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해야 여러분이 좋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그림이 잘 그려지는 것입니다. 좋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말, 겸손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인 말, 소망이 넘치는 말이 중요합니다.

  ‘한국 유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드신 최태섭 장로님의 일화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최 장로님이 6.25 전쟁전에 서울에서 은행 돈을 빌렸는데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이 끝난 후에 서울로 다시 돌아와서 그 돈을 은행에 갚으려고 했더니 전쟁으로 인해 은행이 불타면서 모든 서류가 없어졌습니다. 빌린 돈을 갚으려고 해도 은행 측에서는 중서가 없으니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서류가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돈을 받은 확실한 사실을 하나님께서 아시는데 어떻게 안 갚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은행이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부터 이분이 하는 일을 은행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한국유리’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고, 최태섭 장로님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존경받는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성실하고 진실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열심히 ‘그물’을 던집시다. 예수님이 삶의 현장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생업과 교회 일에 더욱 열심을 다합시다. 반드시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맙시다. 더욱 열심히 일하심으로 축복 받는 이 시대에 건강한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순종하는 사람

  본문 19절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의 신적 권위에 입각한 절대적이며 강권적인 명령입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명령은 단순히 예수님의 육체를 장소적 의미에서 좇으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 그들이 처한 삶의 방법과 목적과 관심을 모두 청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하여 전환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따르라는 결단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은 ‘사람을 낚는 어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그리고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신령한 어부에게 부여된 사명은 그들 고유의 능력과 신분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미련하고 약한 자들을 합당한 자로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전권에 의해 맡겨졌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누군지조차 잘 몰랐던 베드로와 안드레는 선뜻 예수님을 따라 나서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전적인 순종이 제자 되는 비결이었습니다.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탁하였습니다. 삶과 죽음과 모든 인생을 예수님께 맡긴 것입니다. 순종에는 힘과 기적과 감동이 일어납니다. 반면 불순종은 모든 것을 빼앗고 깨뜨립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였을 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사람을 낚는 어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충만했습니다. 순종이 모든 것이 담긴 바닷가를 미련 없이 떠나게 하였습니다. 전적으로 순종할 때 평범한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쓰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것은 최고의 가치와 영광입니다. 은혜이고 최고의 축복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이며 그릇입니다.

  마귀는 모든 것을 말씀을 떠나 인간적으로 해석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말씀대로 살도록 권면하십니다. 잘 믿는다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분은 신앙의 열심은 있는데 말씀을 무시합니다. 어떤 분은 기도는 많이 하는데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어떤 분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기 어머니가 권사님인데 평생 동안 가짜 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새벽기도 갔다 오면 가마솥에 불을 때고 조청을 달이면서 찬송가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한두 달 살고 끝낼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우리는 80세, 90세까지 달려야 할 장거리 주자들입니다. 더 나아가 영원한 천국의 삶이 있습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멀리 바라보면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잘 믿는 사람은 말씀에 순종합니다. 말씀을 버리고 멀리 못 갑니다. 기도 안 하고 멀리 못 갑니다. 주일을 범하고 멀리 못 갑니다. 잠시 하나님 말씀을 떠났다가도 견딜 수가 없어 속히 말씀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지혜 있는 성도의 삶입니다. 말씀을 떠나면 인생의 길이 형통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말씀을 하시더라도 아멘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고서는 것이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과 지식과 경험과 목적을 넘더라도 나를 포기하고 말씀을 선택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예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함으로 이 시대에 건강한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헌신하는 사람

  본문 20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버려 두고’의 헬라어 ‘아펜테스’는 ‘멀리 내던지다’와 ‘포기하다’의 뜻으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세상적인 욕망을 버린 제자들의 철저한 자세를 보여 줍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제자가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마땅히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기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향하는 대결단과 U턴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생각과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방해 되거나 다른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일반적인 ‘어부’는 고기를 죽이기 위해 잡아들이지만 ‘신령한 어부’는 죄로 죽은 영혼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생명을 살리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엄청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헌신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 자신의 노력으로 소유한 학문, 기술, 재물, 기득권을 포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한 말씀에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고깃배와 그물을 그 자리에서 포기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큰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삶과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가치 있는 분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드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이고 사명이고 헌신입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습니다. 여우가 죽을 때 그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말입니다. 여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강남에서 온 새들은 앉아도 남쪽을 향하여 앉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고기도 그렇습니다. 연어는 수만 킬로미터를 거슬러 헤엄쳐 고향을 찾아간다고 합니다. 고향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매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를 할 때 아무데나 가서 아무 음식이나 먹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좀들더라도 멋있고 근사한 곳에 가서 먹습니다. 사랑하니까 돈을 쓰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낭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낭비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의 시간을 다 드립니다. 몇 시간만 드려도 되지만 24시간 모두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좋은 것을 드리고 싶어서 내 시간, 내 돈, 내 자존심, 심지어는 내 직업과 삶과 목숨까지도 기쁨으로 드립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동이요, 감격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예수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이 시대에 건강한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대와 교회에는 베드로와 안드레같은 건강한 제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일하고 순종하고 헌신하는 최고의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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