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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오, 그 이름!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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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사도행전 3장 1절~10절
제  목 : 예수! 오, 그 이름! 

1. 최고, 최후, 그리고 가장 귀한 것

만약, 여러분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마지막 하나만 남기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시겠습니까?

조금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사람의 심리를 테스트하는 문제 가운데 나오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사자, 말, 양, 원숭이, 그리고 소를 데리고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도 가도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고 점점 힘이 들어 더 이상 동물들과 함께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동물들을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한 마리의 동물만 남겨 둘 수밖에 없었는데요. 여러분 같으면 가장 먼저 어떤 동물을 버리겠으며, 그리고 마지막까지 함께 있고 싶은 동물은 무엇입니까? 자,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먼저 사자를 버리겠다고 생각하신 분 계시죠? 대부분이 사자를 가장 먼저 버리겠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사막을 여행하다 지치고 굶주린 사자가 주인인 날 잡아먹을지 몰라서"라고 합니다. 심리 테스트에서 사자는 자존심이나 명예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자를 버리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는 것이 힘들 때, 자존심이나 명예를 가장 먼저 포기할 분들입니다. 두 번째로 말을 버리겠다고 하신 분들은 잘 들으십시오. 말은 자아나 자신의 일을 의미합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의 일이나 직업 혹은 자아, 나아가 자신의 영혼을 포기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세 번째 소를 버릴 분들은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울 때 재물을 포기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네 번째로 양을 버리겠다고 하신 분은 자녀를 포기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최후까지 같이 있고 싶은 동물로 원숭이를 택한 분들은 쓸쓸하고 적막한 광야길을 그나마 재미있게 해 줄 수 있는 동물이 원숭이이기 때문에 끝까지 데리고 가겠다는 하시는데요. 이런 분들은 정말 잘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숭이는 배우자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오늘 주님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또 가르치려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다른 모든 것은 다 포기해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 최후까지 놓지 않고 붙잡고 있으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니 주님을 믿는 성도인 여러분에게 그것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2.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사건으로서 오순절 날로부터 하루나 이틀이 지났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오순절, 예루살렘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제자들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유창한 외국어로 예수 사건을 설명한 일, 그 전도 설교를 들은 사람들 가운데 남자들만 삼천 명이나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주로 믿어 합동 세례를 받은 일, 그리고 최초로 예수교인들의 교회가 생겨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순절부터 시작해서 예루살렘 성전과 그 주변에서는 거의 매일 너무나 놀라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그 놀라운 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후 3시경, 유대인들의 기도 관습에 따라 기도하는 시간이 되자, 베드로와 요한도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입구 가운데 하나인 미문이라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미문은 영어로 ‘the Beautiful Gate’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이 문이 아주 장엄함과 화려하게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미문이 정확하게 성전의 어느 문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방인의 뜰로 들어가는 성전 동편의 바깥문인 ‘슈산 문’이라고도 하고,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통하는 ‘니가노르 문’이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이 문 앞에 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척추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한 사람, 그 나이 대략 40세 정도인 한 남자가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친척이나 아님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날이 밝으면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라고 거기로 데려와 앉혀둔 것이죠. 그러면 그는 자기 앞을 지나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붙들어 세우고서는 “한 푼 줍쇼!” 하고 적선을 했습니다. 그 날도 그는 자기 앞을 지나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 세우고서는 그들에게 동전 몇 닢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는 구걸의 경력이 꽤 됨에도 불구하고 사람 보는 눈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뭐든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동안의 경력이라면 그는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한 눈에 구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실력이 없었는지, 정말 가난하고 무일푼인 베드로와 요한에게 ‘한 푼 달라’고 구걸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요청한 후, 그는 두 사람이 자기에게 돈 몇 푼을 주기는 할 것인지, 그리고 준다면 얼마나 줄 것인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기대와는 달리 베드로가 그 사람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다.” 한 마디로 ‘사람 잘 못 짚었다’는 말입니다. 즉 베드로와 요한은 돈 한 푼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지요. 정말 그는 대상을 잘못 골랐습니다.

그 사람으로서는 김빠지는 순간이었겠지만, 베드로와 요한의 입장에서 볼 때, 정말 그들은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7절에 보면 베드로는 자신과 동료들이 예수님을 따르면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렸노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을 유무상통하고 전 재산을 팔아 교회와 어려운 성도를 위하여 교회에 다 바쳤던 당시 상황으로 볼 때 그것마저 다 바치고 남은 것,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다른 사람과 나눌 것이라고는 없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른 것은 없어도 단 하나,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구걸하는 그 사람에게 예수 이름을 말한 것입니다.

제가 부산에서 목회할 때, 혼자 사시는 한 할머니 집사님 댁을 심방을 했습니다. 좁은 방에서 홀로 사시는 그 집사님은 생활이 참 어려운 분이었습니다. 그런데요, 그 집사님 집을 가보니 집사님의 방은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받아오신 사은품과 기념품, 휴지 다발들, 그리고 또 별 쓸모가 없어 보이는 물건들로 방과 거실과 부엌과 신발장까지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겨우 당신 몸 하나 누우실 수 있는 공간만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분은 정말 가진 것이 많았습니다. 또 어떤 집사님은 비교적 넓은 아파트에 사시다가 노년에 교회 가까이로 이사를 오면서 ‘거의 전부를 다 버리거나 남을 주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의 집도 방마다 공간마다 이러 저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분들 뿐 아니라 사실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우리의 가정에도 아마 많은 것들이 쌓여져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편에서는 더 갖고 싶은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즉 지금 가진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더 갖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 보니, 만약 누군가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뭐하고 말합니까? “아, 제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있으니 그것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한 두 번 사용했을 뿐 거의 새것이나 다름 없답니다. 가만 저기 작은 방 어디에 넣어둔 것이 이제 생각났으니까, 그것을 드릴께요.” 또 어떤 경우는 정말 베드로와 요한처럼 가진 것이 하나도 없을 경우,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에게 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을 때, 그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기도 합니다. “아, 잠시 기다리세요. 제가 어디에서 얻어다 갖다 드리겠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제기 준비했다가 드리겠습니다. 어느 어느 사람에게 가보세요. 어느 기관으로 가보세요.” 이 대답 역시 위에서 말씀드린 것과 다르지 않은 대답입니다. 많이 가졌기 때문에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나, 없어서 생기면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우리에게 다가와 그 무엇인가를 구하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먼저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몇 가지를 떠올립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의 사도들은 사람의 것, 땅의 것은 정말 하나도 가지지 못한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도와달라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그들이 가진 단 하나 바로 나사렛 예수 이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비록 여러분들이 적든 많든 땅의 것 사람의 것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고 그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예수, 그 이름의 가치와 능력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볼 것은, 그렇다면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그 사람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고, 그래서 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이름 하나 달랑 말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 종종 말귀를 못 알아듣고 동문서답하는 사람들을 보셨지요? 동문서답의 대표선수인 사오정과 그의 친구가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오정 친구: 오정아, 오정아, 뭐하니?
사오정: 밥먹는다.
사오정 친구: 무스은은 밥?
사오정: 밥먹는다.
사오정 친구: 무슨 반찬?
사오정: 밥먹는다.

이렇게 엉뚱한 대답이나 대화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참 기가 막히고 답답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을 때가 많지요. 겉으로 보기에 오늘 본문의 베드로와 요한도 이렇게 동문서답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가지고 있었던 두 가지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인데요, 그들이 가졌던 믿음은 무엇일까요?

1) 첫째로 그들의 믿음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라고 한 말에서 볼 수 있는 데, 그것은 그 사람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그가 구하는 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태어나 맨날 땡볕 아래서 남들에게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한 푼 달라고 할 때, 있으면 주고 없으면 미안한 맘으로 돌아서야 하지 않습니까? 당장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어야지 그를 붙들고 예수 타령이나 한다고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당장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지 교회 타령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전 몇 닢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동전 몇 개만 주면 그만이지 왜 그렇게 말이 많냐고, 왠 유세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 있고 당당하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들에게 구걸하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비록 지금은 돈을 요구하지만 그에게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그 사람과 온 세상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 돈보다 건강보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무엇보다 예수를 말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이런 확신이 있습니까? 아마 여러분에게 다가와 이러저러한 것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구하고, 어떤 사람은 건강을 구하고, 어떤 사람은 일을 구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나 권세나 힘을 구하는 세상에서, 다들 그러한 것들이나, 사람의 것, 땅의 것을 구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도 줄 수 있으면 주어야지요.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님이라는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베드로와 요한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라고 하는 이 말을 통해서 보여주는 믿음은 “그 이름의 능력”에 대한 믿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에게 구걸하던 그 사람이 요청한 돈이나, 혹은 그의 장애를 고치는 것, 또는 그 이상의 것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에 하나님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거나 혹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세상의 권세나 힘으로 해결 할 수 있거나 없는 것, 혹은 그 이상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오직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이름을 선포할 때, 하나님이 주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즉 예수의 이름의 위력을 믿은 것입니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씨를 아시지요?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가고 어디 가고 싶은 곳을 마음먹은 대로 나다니지도 못할 뿐 아니라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이, 방에 틀어박혀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라디오를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들었고, 그 이름이 그녀의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주님을 만난 감격으로 지은 찬송시 가운데 하나가 「그 이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새겨진 기쁨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이 존귀한 이름에 대한 확신이 여러분에게도 있습니까? 그 이름을 부를 때에 오늘 본문의 상황이 여러분들에게도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에게도 베드로와 요한, 송명희 시인이나 다른 믿음의 선배들처럼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도 능력의 이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이름이 전부 혹 최고가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물질이든, 혹은 병을 고치는 것이든, 혹은 가정의 문제나 사회의 문제이건,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모든 것이 고쳐지고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이름의 능력은 성경이 기록될 때나 지금이 동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베드로와 요한처럼 믿고 구하고 외칠 때에 그 때와 동일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체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❶ 적든 많든 여러분에게 사람의 것, 땅의 것이 있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 이름만이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 최상, 그리고 최적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❷ 세상적으로는 비록 가진 것이 없다고 해도 예수와 그 이름을 가진 것이 세상 전부를 가진 것보다 더 풍요하고 값지고 권세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❸ 예수의 이름을 외치고 선포할 때에 이 땅의 것, 사람의 것, 그들이 필요로 하고 구하는 것들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이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의 것, 세상의 것을 요구하는 사람과 이 세상을 향하여 그것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 예수의 이름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에 걸맞게 행동하고 생활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 더 ․․․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말씀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마지막 하나만 남기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시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으로 성도인 여러분들이 “다른 모든 것은 다 포기해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 최후까지 놓지 않고 붙잡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성도 여러분들에게 그것은 무엇이어야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이제 그 답을 아셨지요?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와 지금의 생활에서도 가장 필요하고, 유용하고, 모든 것의 해답이 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행증이 되는 것, 그것은 무엇입니까? 예, 우리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이름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삶은 이 이름의 비밀과 능력을 사도들처럼 누리면서 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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