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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훈련받고 새로워지는 교회 (딤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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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받고 새로워지는 교회 (딤후 2:1-4)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Saddleback 교회의 Rick Warren 목사는
“Purpose Driven Church” (목적이 이끌어가는 교회)라는 책을 썼습니다.

또 우리가 다음 달에 함께 읽어나갈
“Purpose Driven Life”(목적이 이끄는 삶)라는 책을 써서 더욱 유명해 졌습니다.

그는 ‘목적이 이끌어가는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교회는 지금 무엇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습니까?”

교회는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교회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각각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첫째로, 전통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에서는 늘 예전에 해 왔던 방식을 고집하게 되고
결국 박물관 같은 교회가 되고 맙니다.

둘째로, 인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담임목사이든, 평신도 지도자이든 어떤 영향력 있는 인물에 의해 움직입니다.
이런 교회는 그 지도자가 온전하지 못할 때 교회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셋째로, 재정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어떤 행사를 할 때에도 비용이 얼마가 들까를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그 행사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변화 받고 새로워졌는가는 관심이 적습니다.

넷째로,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실시합니다.
프로그램이 이어지지 않으면 왠지 불안해하는 교회입니다.

다섯째로, 건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교회 건물이 중요하지만, 교회 건물 자체가 본질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건물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을 위해 모든 것을 쏟는 교회가 있습니다.

여섯째로, 구도자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은 전도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구도자에게만 초점을 맞출 때 교회의 정체성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교회는 무엇에 의해서 움직이는 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이해와 정의도 다를 수 있습니다.
또 이에 따라 성도들의 신앙양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Rick Warren은 가장 성서적인 교회의 패러다임을 뭐라고 합니까?
바람직한 성서적 교회는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왜, 무엇을 위해서 이곳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이에 대한 대답을 추구해야 한다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병원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렇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치료받고 회복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또 다른 분은 교회를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와서 부지런히 배우는 일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만일 교회를 사교장이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을 사귀고 교제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또 교회를 예배당이라고 하면 찬양하고 경배하는 예배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교회는 훨씬 더 많은 이미지와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거룩한 성전, 그리스도의 신부, 혹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공동체 등
그런데 교회는 어느 한 가지의 이미지로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할 때 교회를 올바르게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훈련소’라는 이미지에 집중해 보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병사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합니다.
많은 경우 자유를 제한받습니다. 면회, 외출, 외박, 휴가가 자유롭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병사는 전쟁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병사라고 할 때, 세상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마귀는 온갖 거짓메시지로 우리를 속이며 공격합니다.
이러한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우리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통치아래
세상을 공격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마귀의 손아귀에 들어있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제까지 마귀는 우리를 속여 왔습니다.
영적 전쟁이라 하면, 사단이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는 방어라는 것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사단의 거짓말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씀으로
마귀 권세 아래 있는 세상을 우리가 먼저 공격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 권세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하여 부름 받았으며, 이것이 교회를 세운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 교회는 수많은 평신도들이 두 손 놓고 잠자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크기는 거인처럼 커졌는데 잠자고 있는 거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서,
평신도는 돈 벌기에 바빴고, 헌금만 많이 하면 좋은 교인인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지 훈련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번 돈을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했어요.
이제 우리는 이러한 마귀와 전쟁을 치르는 그리스도의 병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해야”(딤후2:1)한다고 말씀합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딤후2:2)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탁하라는 말은 훈련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사람들을 훈련시켜 그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하라고 합니다.
영적인 지도자를 훈련시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인 재생산’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훈련하는 곳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람이 롯을 구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브람과 롯의 목자가 점점 많아지고, 양과 소도 점점 많아져서
도무지 함께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브람은 롯에게 분가할 것을 제안하면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먼저 좋은 땅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롯이 보니까 요단 동편의 땅이 기름지고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요단 동편의 땅을 택하여 떠나갔습니다.
그에 비해서 아브람이 받은 땅은 요단 서편의 땅으로 척박한 광야입니다.
그러면 롯이 아브람보다 훨씬 더 잘 살아야 옳습니다.
그러나 롯은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결국 전쟁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람이 어떻게 했습니까?
창14:14-16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롯이 기름진 땅에서 지내는 동안 아브람은 318명의 군사를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 롯이 위기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를 구출해 낸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사람을 길렀다는 것입니다.

삼하23장에 보면, 다윗과 함께 나라를 견고하게 세운
용사들의 이름과 그들의 용맹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센 사람 아디노, 아호아 사람 엘르아살, 하랄 사람 삼마 등 37명의 용사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대단한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하는 점입니다.
사울 왕과 함께 일하다가 다윗에게 귀순한 사람들인가?
아니면 미친 사울 왕을 피하여 외국으로 망명 갔다가
후에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귀국한 사람들인가?

놀라운 것은 이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과거에 다윗이 아둘람 굴에 피해 있을 때 함께 있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삼상22:2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한 마디로 이들은 쓸모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강한 용사가 되어 다윗과 함께 나라를 세운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요?
다윗이 이런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고 용납하면서, 강하게 훈련시켰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쓸모없는 자를 존귀한 용사들로 만들었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바로 이런 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보잘 것 없는 자일지라도 이 교회에 와서 훈련받아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대단한 사람들보다도 더욱 위대한 일꾼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미국 Costa-Mesa에 가면 Calvary Chapel이 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Chuck Smith 라는 분이십니다.
이 교회는 사실상 미국 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아십니까?
1960년대에 미국에 히피족들이 성행하고 있을 때, 그 히피족들에게 들어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솟아나는 열정을 어떻게 발산해야 할지 몰랐던 히피족들이, 복음과 접하면서
변화 받고 새로워져서 그들의 열정을 그리스도께 쏟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들이 얼마나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비록 그들은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예배를 드리지만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통해서 이렇게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교회의 표어는 “훈련받고 새로워지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훈련을 통해 소그룹 리더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이 소그룹을 잘 인도함으로 성도들의 삶이 변화되길 바랍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살리는 교회”의 비전을 이루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려서 강에서 개헤엄을 배운 사람이 자식에게도 개헤엄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전문 수영 강사로부터 자유형을 배운 아이가
아버지보다 수영을 더 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아이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 가며 개헤엄을 열심히 연습했다고 해도
체계적으로 수영 강습을 받으며 연습해 온 아들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향상될 수는 있어도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본인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훈련에도 꼭 같이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각자 자기 식대로 오랜 경륜에 의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물 위에 뜰 수 있고 또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적인 강사에게 훈련받는 것만큼 효과적일 수는 없습니다.
개헤엄을 치는 정도로 만족할 사람은 굳이 훈련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좀 더 발전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전문 강사에게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습관이 오래 되었을수록 그 습관을 고치는 것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라도 발전을 원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맞춤식 훈련이 되려면 반드시 소그룹에서 개별적인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목양실에서는 여러분을 훈련시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코치로서의 경험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직은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령께서 우리의 가장 좋은 스승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올 한해 모든 성도들이 훈련받는 일에 전념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큰 성장이 있고 놀라운 부흥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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