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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른 교리, 바른 신앙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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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교리, 바른 신앙
설교본문 사도행전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또 교회에 대해서 갖고 있는 깊은 오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오해냐면 하나님은 인간을 구속하신다라는 생각입니다. 속박하신다, 얽맨다, 뭘 하지 말라고 규제한다, 나아가서 정죄한다, 꾸짖고 나무라신다, 라는 생각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크리스천이나 비크리스천이나 똑같이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크리스천들도 이러한 생각을 하고 비크리스천들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신앙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하고 비크리스천이 교회로 오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런 오해의 증거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성직자를 만났을 때 경직되는 데에서 벌써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긴장합니다. 술을 마시다가도 술병을 치우고 담배를 피우다가도 담배꽁초를 던져버리고 TV를 보다가 끕니다. 괜한 죄의식을 느끼고 불편해 합니다. 내 속을 들여다보고 나를 꾸짖으면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종교의 역할은 사람을 속박하고 제한하고 금욕하고 그것을 덕목이라고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소위 경건 내지는 거룩함이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관건은 정말로 하나님이 인간을 속박하시는 분이냐, 정말로 기독교가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느냐, 거룩함이 거기에 있는 것이냐, 이것을 알려면 성경말씀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자세히 읽어봤을 때 아브라함의 삶에서 하나님이 최초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이전에 알지도 못하고 가본 적이 없는 땅에 가게 하시고 그 땅을 기업으로 얻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고향 땅에서 살고 죽었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전혀 기대하지도 못한 새로운 세상이 그에게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위하여 하신 최초의 일이 무엇이었느냐?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것입니다. 애굽에서 해방시켜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해방, 자유, 기업,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개입하심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로 태어나서 노예로 살다 노예로 죽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들은 갈릴리 어부로, 세리로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큰 세계가 이들에게 열린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가능성의 세계가 그들에게 열리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녀가 목회자가 되는 것에 대한 부모의 거부감은 목회자가 되면 속박을 받고, 좁고, 답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모든 목회자가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베드로를 보세요. 바울을 보세요. 천만의 말씀이지요. 하나님은 그런 좁은 분이 아닙니다. 믿음은 사람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람을 풀어주고 해방하고 자유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고 더 크고 놀라운 미래를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되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고 베풀고 남을 돕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고, 여성이 믿음을 갖게 되면 전통적인 여자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고 꿈을 갖고 미래가 열리고 다른 여성을 도울 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한 나라가 믿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 믿음이 그들을 미신과 무지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게 하고 문화가 발전하고 의식 수준이 발전하고 경제가 발전하고 정치가 발전하도록 도와줍니다.

  왜 신대륙을 발견하려는 욕구가 기독교 국가에만 있었느냐? 콜럼버스니 마젤란이니 마르코 폴로니, 닐 암스트롱이 다 기독교 국가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사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 연대민주주의가 기독교 국가에서 제일 먼저 발전했느냐? 이것도 기독교 사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 자본주의가 기독교 국가에서 발전했느냐? 그것도 마찬가지에요. 규제를 풀면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 다 기독교 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기독교 신앙이 들어가는 나라는 세속화가 됩니다.

역설적이지만 그건 진짜입니다. 기독교신앙이 들어가면 사람들을 전통적인 편견, 차별로부터 자유하게 해 주다 보니까 자유하게 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세속적으로 변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세속화가 된 기독교 국가들이 이후에 어떻게 변할 것이냐? 이것이 이십 일 세기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이것을 과거에는 어느 누구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 시대에 우리가 그것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과연 세속화 이후에는 어떤 식으로 문명이 변할 수 있을 것이냐? 그것이 기독교 신앙이 여전히 부흥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그것을 과연 지켜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속박하지 않는다면 누가 사람을 속박하는지 아십니까? 사람이 사람을 속박합니다. 이건 아주 숨겨진 사실입니다. 여자가 여자를 속박하고 흑인이 흑인을 속박하고 한국인이 한국인을 속박합니다. 종이 종들을 속박합니다. 사람을 속박하는 것은 사람이요,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에 대한 깊은 오해가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신 것뿐인데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세밀한 규정을 만들어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 고치는 것을 금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래 의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병자를 고쳐주시는 분입니다.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이에요. 소가 안식일에 우물에 빠지면 당연히 건져야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람이 사람을 규제하려고 하면서 이제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까지도 규제하고 핍박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간파했느냐? 예수님입니다. 그 증거는 병자가 나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병자가 나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고쳐 주셨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고쳐주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그 열매로 판단합니다. 예수님은 증거로 결과로 당신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라는 증거는 예수님의 부활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증거를 가지고 말하는 신앙이에요. 그저 이론, 사람의 말과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이 진리는 우리를 얽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믿음으로 물맷돌을 던졌더니 그 물맷돌이 날아가서 거인을 쓰러뜨렸던 것처럼 사람이 믿음으로 무엇을 할 때 그 믿음이 물맷돌처럼 날아갑니다. 그 믿음을 풀어놓으면 물맷돌처럼 날아가서 거인과 같은 장애물을 쓰러뜨릴 수가 있고 사람을 두려워하고 민족을 위축시키고 사람으로 하여금 종이 되게 하려는 그런 세력을 넘어뜨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누가 사람을 속박합니까? 스스로 합니다. 사람이 서로를 속박하고 자기 자신을 속박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이십세기 중반에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했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그들이 정말로 자유해졌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백인들이 떠나갔더니 이제는 흑인들끼리 전쟁을 하고 싸우더라는 것입니다. 백인이 식민지를 했을 때 착취를 했는지 모르지만 흑인들이 서로 싸울 때는 아예 씨를 말려 버리고 종족 청소를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같은 흑인들끼리 서로 차별하고 같은 여자들끼리 서로 차별하고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서로 차별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얽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성경은 창세기에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계시가 없는 상황에서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람과 같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간의 형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인간은 어떤 존재냐? 편협하고 판단하기를 좋아하고 자기도 죄인이면서 남의 죄를 탓하는 그런 존재로 사람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도 그런 분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셨지만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계시가 없는 상황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편견이 있고 자기의 생각이 좁고 자기가 두렵고 자기가 죄의식을 느끼니까 하나님도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시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시가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누가 가장 잘 보여주셨느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면 예수님을 보면 됩니다. 예수님 말씀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했고, ‘내가 하는 일은 아버지가 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고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면 예수님을 보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은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워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면 예수님도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증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용서하시고 정죄하지 않는 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장에 ‘우리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오해를 깨뜨리는 말씀이 많습니다.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몇 가지만 예로 들면 탕자의 비유,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깨뜨리기 위한 말씀입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가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가 심판하고 꾸중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전혀 기대하지 않던 방법으로 그 아들을 맞아주었지요.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아비 된 자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뿐만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가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에 대해서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뿐만이 아니고 하나님도 정죄하지 않는다는 얘기에요.
  정죄하는 자는 인간이에요. 돌을 던지는 자는 인간이에요. 그러나 예수님도 정죄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도 송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아니면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서만 납득할 수 있는 진리에요.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고 그 두려움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하도록 만드는데 그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두려움이 아니고 자신의 무지함과 불신으로 인해서 스스로 받는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끌지 못하고 진리로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을 자기의 죄 중에 가두어 놓는, 어떻게 보면 지옥이라는 것은 이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 스스로 가두어 놓는 것이 지옥입니다. 지옥은 그런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오늘 성경말씀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죗값을 다 지불, 100% 지불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공로를 우리는 겸손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은 그렇게 하지 않고 여기에다 자꾸만 무엇을 추가하려고 합니다, 선행을 추가하려고 하고 사람의 노력을 추가하려고 하고, 행위를 추가하려고 하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추가하려고 했습니다. 1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쳐서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당연히 이것은 여자에게는 해당되지 않겠지요. 그럼 여자는 안해도 되는데 남자만 해야 된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런 논리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예수님+모세의 율법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게 그 시대에 굉장한 교리의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쟁쟁한 사도들이 다 예루살렘에 모여서 이 문제를 의논하게 됩니다. 이것이 최초의 기독교 공의회 모임입니다. 이천년 전의 일입니다마는 이와 비슷한 시험이 오늘날도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쉽게 만드신 것을 사람은 어렵게 만들려고 하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신 것을 사람은 불의하다고 만들고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더럽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이런 유혹은 기독교의 스펙트럼, 보수에서 진보에까지 이런 유혹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사람이 방언을 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이런 말하는 사람도 있고, 선행을 하고 좋은 일을 해야 구원을 받지 그냥 믿음으로 받겠느냐, 이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결론을 내립니다마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신학의 영향을 받았다, 바울신학의 영향으로 오늘날 기독교가 이렇게 됐다고 말하지만 본문 말씀을 보시면 베드로와 야고보가 주로 발언하고 바울은 증인으로 채택된 것뿐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가 권위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절부터 12절까지는 베드로의 발언이고 13절부터 21절까지는 야고보의 결론입니다. 바울은 12절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했다’라고 밖에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면 기독교의 교리를 정립할 때 모든 사도들이 일치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증거가 일치했어요. 베드로의 신학과 야고보의 신학과 바울의 신학이 다른 것이 아니에요. 이들은 같은 복음을 전하고 같은 예수님을 믿고 같은 진리를 증거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천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이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처음 그들이 전한 복음과 같은 내용이에요. 그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11절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이게 진리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교리입니다. 교리는 이렇게 중요합니다.

교리는 신학자들만 염려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교리를 배워야 되고, 옳은 교리에서 옳은 신앙이 비롯됩니다.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마음을 뜨겁게 해주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기만 하면 은혜가 될 줄로 생각하는데 그러나 옳은 교리를 배워야 됩니다. 마틴 루터는 교리를 설교했습니다. 요한 칼빈도 교리를 설교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강해설교를 교회입니다. 교리를 배울 때 사람의 신앙이 자라납니다. 바울서신은 전부 교리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교리를 쉽게 풀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멍에는 율법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사람의 목에 멍에를 지우지 하나님이 지우시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하나님은 사람이 지웠던 멍에를 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쉽다’ 내 멍에는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놀라운 진리가 아닙니까. 마틴 루터가 말하기를 ‘사랑을 하고 담대하게 살아라.’고 했습니다. 'Love and live boldly" 이것은 은혜가 뭔지를 아는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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