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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종류의 이웃 (마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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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종류의 이웃 (마 22:39)

  오늘은 "네 종류의 이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9절을 보겠습니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사람이 세상을 살 때 네 종류의 이웃이 있습니다. 첫째는 영혼의 이웃입니다. 둘째는 육신의 이웃입니다. 셋째는 생업의 이웃입니다. 넷째는 생활의 이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우리들도 이웃은 같습니다. 이 네 종류의 이웃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야 생활의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존경받고 높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든지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우리 모두 이 네 종류의 이웃과의 생활에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이웃은 영혼의 이웃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이웃은 교회입니다. 우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함이 이웃 사랑 중에 중요한 첫째 부분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먼저 예배에 충실해야 합니다. 교회 존재의 제일 큰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건물을 말할 때 예배당이라는 말이 제일 정확하고 맞는 말입니다. 이 건물에 들어와서 예배드릴 줄 모르면 안 됩니다. 다른 것 모두 봉사하더라도 예배를 드릴 줄 모르면 안 됩니다.

충현교회 고등부 때 봉사할 때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교인의 3대 의무는 첫째, 공중예배 출석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이레 되는 날 쉬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우리 인간들에게 예배드리는 날로 삼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십계명의 네 번째 말씀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들은 이 십계명의 네 번째 정신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내 아들, 딸도 주일을 지키도록 부모님이 지도해 주어야 합니다. 내 남종이나 여종이나 육축까지도 일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십계명의 정신입니다. 이를 오늘 날 이 복잡한 시대는 어떻게 해석할 것입니까? 부득이 주일날 일을 한다면 내 가게에서 일하는 일군도 예배부터 드리고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내 집에 손님이 왔을 때 그 손님도 예배드리는 것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 10시 반 예배가 있습니다. 이것이 주일을 귀하게 여기는 우리들의 자세입니다. 다시 간단히 말한다면 주일을 예배드리는 날로 구별할 줄 아는 것만큼 귀한 것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부자였던 록펠러 1세가 그와 같은 큰 복을 받은 것은 '주일은 본 제단에서 예배드려라, 예배시간에는 앞자리에 앉으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잘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릴 줄 아는 것입니다. 예배는 언제, 어디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교적을 갖고 있는 교회에서 예배드릴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주일을 예배드리는 날로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뿐 아니라 내 자녀들에게도 예배를 가르쳐야 합니다.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부득이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그 정성을 가질 때 내 자녀들이 따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욕을 하고 나와서 옷을 입었습니다. 그때 다섯 살 정도 되는 아이가 목욕탕에서 나왔습니다. 아빠 따라 목욕 온 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보이지 않고 그 아이는 수건으로 몸을 닦았습니다. 거울 앞에 가더니 로션을 얼굴에 발랐습니다. 제가 볼 때 제법이네 하고 생각을 했는데 그 다음에 스킨을 얼굴에 발랐습니다.

그러더니 드라이를 켜 가지고 머리를 말리려 했습니다. 그것이 아이의 손으로 들기에는 좀 무거우니 잘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언제 나왔는지 아이 아빠가 드라이를 끄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 하는 것을 보고 많이 느꼈습니다. 어른들이 잘해야 하겠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 스킨 바르는 것, 로션 바르는 것, 드라이 사용하는 것을 누가 가르쳤겠습니까? 어른들 하는 것 보고 그러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믿음생활을 생각할 때 거짓이 없는 믿음이었다고 했습니다. 청결한 양심을 갖고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누구에게 있던 것입니까? 외할머니 로이스의 믿음이 어머니 유니게에게 있었던 믿음이었습니다. 즉, 외할머니 믿음을 어머니가 이어받았고 손자도 그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복 받은 가계입니까?

성도 여러분! 자녀들에게, 손자 손녀들에게 주어야 할 최고의 선물은 예수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예수 믿는 것 위에 세워질 때 튼튼해집니다. 가정도 튼튼해집니다. 자손들도 튼튼해집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배를 귀하게 여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역예배, 가정예배, 어떤 일이든 하기 전에 예배를 드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정성을 받으십니다. 예비한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인의 두 번째 의무는 헌금의 의무입니다. 예배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헌금의 표준은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구별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입니다. 예수님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교회는 누구의 교회입니까? 내 교회라는 마음이 있습니까? 내 교회로 믿으시면 내 물질을 드려서 섬겨야 할 것입니다. 내 교회가 될 때 항상 내 생활이 교회와 가까와져야 합니다. 나는 이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다가 이 교회에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으실 때 이 교회가 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내 교회가 될 때 정성을 다해서 섬기게 됩니다. 아끼게 됩니다. 사랑하게 됩니다. 교회가 먼 곳으로 이사하지도 않습니다.

도회지 아파트 단지 많은 성도들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아파트 지역이 개발되면 이사를 갑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사 후 3-4개월은 잘 나옵니다. 그러고 나면 교회가 멀다, 교통이 불편하다, 남편이 오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등등 핑계를 대면서 예배에 출석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내 교회라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충현교회 있을 때를 소개한다. 거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강북에 살다가 강남으로 이사를 해도 주일은 다 지켰습니다. 순천향대학 교수 장로를 소개한다. 내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김동익 목사님이 새문안교회를 시무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성도들의 2/3가 강남에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내 교회라는 마음을 가질 때 주일날 빠지지 않고 출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입니다. 차를 가지고 왔다가 주차장에 하루 종일 세우면 3 만원 이상 나옵니다. 주일 헌금 드리는 액수보다 많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차를 주차할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내 교회니까 출석합니다. 나의 고조할아버지가 섬기던 교회, 증조할아버지가 섬기던 교회, 할아버지가 섬기던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크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믿는 사람이 불신자보다 영육간 강건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요셉에게 주셨던 복을 주십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응답되듯이 우리의 기도도 응답주십니다.

금년에는 복에 복을 더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삶의 지경이 넓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손으로 도와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구영신예배 때 드렸던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모두 모두 응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이 받았던 복과 같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 강조합니다. 이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다가 하나님 오라시는 날 천국 가도록 하십시다.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지 마십시오. 이제 철새교인이 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금년에는 온전한 십일조를 반드시 구별하여 하나님께 봉헌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쳐야 합니다. 헌금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때 받은 용돈으로도 십일조를 구별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교회 유치부부터 청년부까지 이와 같은 자녀들이 많습니다. 귀합니다. 복 받는 자손들입니다. 하늘의 복과 함께 땅의 복을 받습니다.

교인의 세 번째 의무는 교회 다스림에 복종입니다. 복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당회장인 제가 '이렇게 이렇게 행사를 합니다.'하면 따라오는 것입니다. 특별새벽기도회 참석하는 것, 부흥회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종입니다. 구역예배도 잘 참석하십시오. 여전도회도 성실히 참석하는 것이 복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영혼의 이웃인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내 교회가 제일 좋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와 가까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하고 자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올 해도 추수감사주일을 총동원주일로 지키겠습니다. 그날을 가정이 복음화 되는 날로 목표를 두시기 바랍니다. 그날을 가정이 예수 안 믿는 분들을 전부 구원하는 날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들의 이름을 기록해 제출해 주십시오. 성경이나 찬송가 앞에 기록하십시오. 그리고 그들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새벽에, 취침 전에, 식사 때마다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5번이 됩니다. 이렇게 제가 제시해 드리는 대로 따르는 것이 복종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또한 가까운 이웃과 친구 가운데 불신자 이름을 기록하십시오. 그들을 위하여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구원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혼의 이웃인 교회를 사랑하는 우리가 모두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범사가 잘 되는 복을 주십니다. 오늘 이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믿는 자의 두 번째 이웃은 육신의 이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이웃은 가정입니다. 막8:36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육신의 생명은 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가족의 영혼 구원에 힘써야 합니다.

역사상 제일 오래 사신 분은 무드셀라로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인간들이 300년에서 600년, 900년 이상 살았습니다. 홍수 이후 200세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인간들이 채식을 했습니다. 홍수 이후에는 인간들이 육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동물의 고기를 먹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간들의 생명이 줄어들었습니다.

좌우간 인간들의 생명은 유한합니다. 죽습니다. 그 말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는 말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그 영혼은 천국입니다. 그러나 불신은 음부입니다. 지옥입니다. 그 육신은 땅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재림주로 주님 오시면 무덤 속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홀연히 변화되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강조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 구원을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지옥에 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다음 가정의 평화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형제간의 불화는 보기 좋지 않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불화는 더 보기 좋지 않습니다. 그 원인은 전부 물질 때문입니다. 가족 간의 화목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우리는 모든 것을 양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 가족 간의 건강을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질병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며 가정의 불행이요 손실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온전한 건강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살전 5장 23절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먼저는 영이 건강해야 합니다. 영의 건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영은 깨끗해집니다. 가족 간에 영이 깨끗해야 화목한 가정이 됩니다.

영혼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생각입니다. 영이 건강할 때 모든 것이 건강해져서 깨끗한 인간관계, 깨끗한 가족관계, 깨끗한 금전관계, 깨끗한 정서를 갖고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때 가정에 기쁨이 깃들게 됩니다.

다음, 몸의 건강이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될 때 몸의 건강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대개의 인간들은 몸의 건강을 위하여 값비싼 보약을 먹습니다. 그래야 육신의 건강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영혼이 잘 될 때 강건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영혼이 잘 되도록 하나님에게 더 가까와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때 육신의 이웃에게 항상 평화가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의 모든 가정에 이 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에게 세 번째 이웃은 생업의 이웃입니다.
우리 생업의 이웃은 내 일터입니다. 직장생활에 제일 귀중한 것은 직장이 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은 사람을 존경하고 윗 사람은 동료들과 아래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이유야 있겠지만 직장에서 월급 받고 살면서 직장에 대한 불만, 불평을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는 잘못된 직업관입니다. 잘못된 직업윤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살면 전도는 할 수 없습니다. 직장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을 사랑하며 희생적인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보던 안 보던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때 복음이 증거 됩니다. 직장을 단순히 수입의 수단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직장이 잘 되어야 나도 잘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정당한 주장을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적자투성인데도 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아는 병원 하나는 병원장이 장로님으로 병원 교회도 만들어 선교하던 곳이었는데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계속 파업을 했습니다. 환자들은 계속 진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병원은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망했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이백명 이상은 실업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병원 교회도 없어졌습니다. 누가 좋아할까요? 이것은 직장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 문 닫으면 일하던 사람들이 직장을 잃는 것입니다. 실업자가 됩니다. 노동청에서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언제까지 주겠습니까? 간단히 말하면 의사는 먹고 사는데 큰 문제없습니다. 작은 병원 다시 차리면 됩니다. 그러나 파업 주동자들은 모르겠지만 멋도 모르고 따르던 자들은 모두 어떻게 되겠습니까?

직장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아끼시기 바랍니다. 잘 되기를 바라면서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성실하시기 바랍니다.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예수 믿는 냄새가 납니다. 그래야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네 번째 이웃은 생활의 이웃입니다.
우리 생활의 이웃은 우리들의 마을입니다. 함께 생활하는 가까이 사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과 화목해야 합니다. 지금은 거의가 운둔의 문화입니다. 이웃집을 잘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사귀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치십시오. 먼저 청소하시기 바랍니다.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이웃이 됩시다.

반상회로 모였을 때도 너무 주장하지 마십시오. 말을 많이 하지 마십시오. 미소로 주민들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칭찬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때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에게는 네 가지 이웃이 있습니다. 첫째, 영혼의 이웃입니다. 둘째, 육신의 이웃인 가족들이 있습니다. 셋째, 생업의 이웃인 직장이 있습니다. 넷째, 생활의 이웃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하게 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어느 위치, 어느 곳에 있더라도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다하므로 선한 이웃이 됩시다. 복을 빌어주는 이웃이 됩시다. 기쁨을 나누어주는 이웃이 됩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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