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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와서 보라 (사 49:1-7, 고전 1:1-9, 요 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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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라 (사 49:1-7, 고전 1:1-9, 요 1:35-42)

1. 김승옥이라는 소설가가 “내가 만난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었습니다. 이분이 원래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아무리 소리 높여 자신이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아마 소설가니까 자기가 구상하는 소설이야기인가보다."라고 생각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승옥씨는 자신이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간증했습니다. 이럴 테면 1981년 4월 26일 새벽 하나님께서 그의 영안을 열어주시고 하얀 손으로 그의 명치를 어루만져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누구십니까?” 그랬더니 분명히 한국말로 “하나님이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982년 11월 어느 날 오후에는 하나님께서 분명한 음성으로 “인도에 가서 전도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1983년 10월 어느 날 오전에는 워커 힐 쉐라톤 호텔 일실에서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의 전신이 자신의 옆에 발현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런 이야기를 듣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보고 “괜찮은가?” 묻더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라고 모두 의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최근에 문화공부보 장관을 지낸 이어령씨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자신의 신앙 간증을 하니까 역시 사람들이 그렇게 묻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교회를 나가느냐?” 말자면 “교회는 당신 같은 최고의 지성인이 갈 곳은 아니지 않느냐?”는 뜻으로 묻는가 하면 역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요새 괜찮은가?”묻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역시 그는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이 베스도 총독 앞에서 자신이 처음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이야기를 하였더니 듣고 있던 총독이 벌떡 일어서면서 말하기를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고 말았구나!”라고 했던 일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서 따르게 되셨습니까? 그렇게 예수님을 따르신 후 오늘까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오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여러분의 신앙은 어떠하십니까?

2. 오늘 요한복음 본문은 최초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주고받은 대화, 그리고 나서 그들이 한 간단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을 듣고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랬더니 예수께서 뒤를 돌아보시면서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평범한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눈 먼 사람은 “주여,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병든 딸을 둔 여인은 “내 딸을 고쳐주소서.”라고 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한 백부장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께서 지혜가 많으시니까 재산 분배를 도와 달라고 요청한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질문을 받은 두 사람은 대답 대신 오히려 주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그랬더니 주님은 “와서 보라.”고 대답하셨고, 그날 두 제자는 가서 예수님이 계신 데를 보고 예수님과 함께 거하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들이 많은 설명들을 다 생략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추리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하여간 처음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난 이 이야기 속에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진정한 제자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이 간단한 이야기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여러분, 우리 주님은 지금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주님을 따르는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라고 하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어떤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서 “주여, 내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만 먼저 가서 부친장례를 치르고 나서 따르겠습니다.”라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례하도록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단지 무슨 산천경계 구경하듯 그런 안일한 자세여서는 안 된다는 매우 긴박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따지면 이 시간 당장 결단하지 않으면 영원히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사람은 가족들과 작별인사나 하고나서 따르겠다고 했지만 우리 주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도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여 이전에 좋다고 생각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노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는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푯대만을 향하여 주님의 부르심을 따르겠노라.”고 했습니다.

   이런 절박감이 없이 빵이나 얻어먹자고 따라나섰던 사람들은 나중에 예수께서 신령한 양식에 대한 진리를 말씀하시니까 “어렵다.”고 하면서 결국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한 자리하겠다고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체포 되고 나니까 한 순간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폭도들로 돌변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당시 미국 선교사들은 상당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관리들에게 눌리고 당하던 사람들은 선교사들이 누리던 특권을 힘입고 큰소리치기 위하여 교회 출입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일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도 신앙 생활하지만 목적이 다 같을 수도 없고 또 다 옳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과연 무엇을 구하십니까? 물질적인 것입니까? 정신적인 것입니까?  또는 지식적인 것이나 사회적인 것입니까? 그러나 이런 것이 근본적인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도상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질문했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을 주님은 매우 기뻐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천국 열쇠를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중세기 때 유명한 교부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토마스야, 무엇을 구하느냐?” 그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한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주님, 오직 당신뿐입니다.” 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 바로 이런 확신, 이런 고백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주께서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시니까 제자들은 오히려 주님께 묻기를 “주여,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 가운데 “임마누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뜻은 “나는 항상 내 백성 가운데 그들과 함께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임마누엘이 되시려고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이 되셨습니다. 종으로 사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까지, 아니 음부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 오셨고, 내가 겪고 당하는 모든 고난을 다 겪으셨습니다. 그 주님이 바로 나의 임마누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단지 성경에서 문자적으로만 찾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단지 저 멀리 하늘나라에만 계시는 줄로 알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단지 다른 사람의 체험 속에만 계시는 분인 줄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속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거기서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25:에 보면 주님이 특별히 계시는 곳이 있습니다. 병든 사람, 굶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된 사람, 갇힌 사람...그들 속에 주님이 계시고, 아니 그들을 주님과 동일시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주님을 찾아야 할 곳은 저 헤롯의 왕궁이 아니라 베들레헴 말구유 같은 저 낮은 곳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로 내려가서 거기 계신 주님을 만나야합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나서 “주님, 당신이 누구이십니까?”라고 물었듯이 우리도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고 믿어야 하지만 오늘 요한복음 본문의 제자들처럼 “주님 어디 계십니까?”라고 꾸준히 물으면서 주님이 계시는 그곳에 나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거기가 겟세마네면 나도 겟세마네에 있어야 하고, 거기가 고고다면 나도 역시 골고다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 계시는 곳이 어디든지 거기에 여러분도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3) 주님은 “와서 보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가서 보고 그날 주님과 함께 거했습니다. 그리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 그들은 곧바로 자기들이 만난 그분이 메시야이신 것을 증거 했습니다. 안드레가 자기 형제 베드로를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이 베드로가 우리 주님의 수제자가 되었고, 오순절 후 교회 설립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하루 밤을 주님과 함께 했던 안드레를 통하여 우리주님이 이루신 역사는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두고 흔히 “안드레 식 전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된 오늘 우리들도 안드레처럼 무엇보다 먼저 주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되고 일군이 될 수 있습니다.

   오순절 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주님 승천 후 제자들은 주님 분부대로 열흘 동안 한 곳에 모여서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만 힘썼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 성령 충만 받고서야 그들이 나가서 전파했을 때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립되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언제나 사역하기 전에 먼저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주님이 함께 하시고서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큰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와서 보라.”고 요구하십니다. 요14:에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일하기 전에 먼저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요12:에도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까?

 (1) 먼저 주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와 만나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오늘 내게 주시는 구체적인 말씀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제자들 가운데 가룟 유다는 말씀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다가 주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

 (2) 기도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우리 마음대로 합니까? 기도하지 아니하고 결정하고 진행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니 기도 없이 그러므로 주님과 통로가 단절된 채 신앙 생활한다고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도행전의 역사는 기도의 결과였습니다. 예수님도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3) 내가 만난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자신들이 만난 하나님을 증거했듯이 여러분이 만난 그리스도, 그를 통해 받은 은혜, 여러분이 믿는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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