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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 (출 23:25~26, 딤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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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잉태하는 여성 (출 23:25~26, 딤전 2:15)

오늘은 총회가 정한 여전도회 주일입니다. 모든 여전도회원들이 더욱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고 생명이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아직 여전도회에 가입하지 못하신 분들은 다 함께 가입하셔서 전도와 봉사와 교제의 은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못생긴 여자가 예쁜 여자를 친구로 두었습니다. 못생긴 여자는 늘 친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친구가 미워지게 할까?” 항상 그 생각을 하다가 ‘구기자’를 다려 친구에게 먹였더니 친구가 구겨지더래요. 근데 예쁜 여자는 자신이 못생겨지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열심히 노력하다 기도했더니 신령이 이걸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피자’. 피자를 먹었더니 다시 펴졌데요. 인터넷에 올라온 설렁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성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시샘과 질투는 복잡합니다. 때로는 여인들의 질투가 역사를 바꾸기도 합니다. 조선 시대의 궁중의 역사를 보면 후궁들의 시샘 때문에 궁중이 편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성의 질투 때문에 사회가 발전하기도 한답니다. 경쟁심리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여성들이 잉태하고, 낳고, 또 낳는 일은 사회를 진보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여성은 생명을 낳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여성의 생명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여성의 장수 비결이 있습니다. ‘10% 법칙’이란 이론이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10% 키가 크고, 몸무게가 더 무겁고, 손발이 크고, 밥을 많이 먹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0% 먼저 죽습니다. 양적으로 조금씩 적은 것이 여성의 장수의 비결이라고 합니다.

  여성은 인내성 근육이 남성에 비해 발달되어 있습니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모델을 씁니다. 남성은 움직이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최대 20분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성은 1-2시간입니다. 환경이나 병균이나 스트레스 등 주변 조건에도 남성보다 10-50% 강합니다.

  태아 사망률도 남아가 여아보다 25% 높습니다. 태어날 때 죽는 율도 54%나 남아가 높습니다. 유아기의 사망률도 27%나 남아가 높습니다. 생명복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제가 여성은 잘 되는데 남성은 거의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지금까지 동물을 복제한 것을 봐도 거의 모두 암컷입니다. 여성의 생명의 질이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생명의 질은 남성보다 훨씬 강합니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을 때 생존자 가운데 당시 19세였던 박승현양이 있습니다. 음식은 물론 한 방울의 물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17일을 견뎠습니다. 377여 시간이나 버티다가 비교적 건강하게 구조되었습니다.

  기네스북에 의하면 음식이나 물을 공급받지 않고 가장 오래 생존한 기록은 오스트리아의 안트레아 마하베츠라는 소년입니다. 1979년에 18일을 생존하였었는데 당시에 그는 18세이었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 살 수 있는 시간은 보통 5-7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성이 남성보다 더 길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성의 체내 지방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의 상승속도는 OECD 국가 가운데 최고의 수준입니다. 2006년 생명표에 의하면 남자가 75.7세이고, 여성이 82.3세입니다. 여성들의 생명력은 대단합니다. 그리고 세계 평균을 훨씬 웃돌 정도로 오래 삽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오래 살아야 잉태가 가능합니다. 장수는 잉태의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행복하기 원하면 살아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잉태하기 위해서는 오래 살아야 합니다. 여성들이 생명을 많이 잉태하는 복된 여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섬기면 복을 내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출애굽기 23:26에는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로서는 복의 대명사가 다산이었습니다. 다산의 축복을 보장하기 위하여 상징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16에는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라고 합니다. 에덴에서 실패하여 죄를 지은 여인에게 하나님께서는 벌을 주시는데 그 벌이 임신의 고통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임신만 고통입니까? 해산도 고통입니다. 해산 후에 육아도 고통입니다. 그렇지만 고통의 연속은 곧 특권이며 은혜입니다. 고통이 없는 가치는 없습니다.

  창세기에 말하는 잉태는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결과를 복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은 저주와 벌 같은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벌이지만 깊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보면 복인 것입니다.
  사라의 경우 잉태는 특별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히브리서 11:11에는 사라의 축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사라의 잉태는 특별한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사라의 잉태는 ‘열국의 어미’를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아들을 낳아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최근에는 남녀의 기능적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따로 나누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집안일을 남자가 하는 집도 많아졌습니다. 바깥일을 여자가 하는 집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역시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안의 일에 적합하게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밖에서 사업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돈벌이한다고 자랑할 것도 못됩니다. 집 안에서 임신하고, 해산하고, 육아하고, 가사를 돌보는 일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가정에 대한 소명이 없으면 하라고 해도 못할 것입니다. 예례미야 30:6에는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고 합니다. 어디 있습니까? 남자가 해산한다면 지구상에 인구가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만 낳고 안 낳으려고 하니까 그렇습니다. 약해 보이지만 또 낳고, 안 낳는다고 하면서도 또 낳는 것은 여자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잉태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2005년 미국의 수전 토레스라는 26세의 여인은 임신 15주에 악성 뇌종양으로 뇌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하여 뇌사가 된지 3개월 만에 딸을 출산하였습니다. 뇌사지만 생명이 있으니까 뱃속의 아기는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6개월 반 된 아기를 제왕절개로 낳았습니다. 아기는 죽어가는 엄마 몸속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출산 직후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여 어머니는 죽었습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힘이 얼마나 강인합니까? 생명을 잉태하게 만든 하나님의 피조물의 강한 모습입니다.

  어머니는 참 강합니다. 번지점프의 원조는 뉴질랜드입니다. 뉴질랜드 퀸스랜드의 해캐트라는 사람이 처음 개발하였습니다. 그는 1986년 파리의 에펠 탑에서 뛰어내려 번지점프를 했습니다. 퀸스타운의 카와라우 강의 다리 위의 번지점프는 번지점프의 원조입니다. 이 곳에서 우리나라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를 촬영했다고 합니다. 카와라우 강의 다리의 높이는 43미터입니다. 한번 뛰어내리는데 뉴질랜드 화폐로 150달러입니다. 어느 한국 여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그 곳을 가서 점프를 시도하였습니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뛰어내리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뛰어내리지 않았지만 환불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환불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이 아까운 돈” 하더니 대신 뛰어내리더랍니다.

  다산은 모든 나라들에게 공통적으로 복의 상징이었습니다. 고대 신화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도 다산의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르테미스도 다산의 상징입니다. 성경에는 ‘아데미’라고 불렀습니다. 터키의 에베소에 가면 유방이 여럿이 달린 여신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신이 아데미인데 다산의 상징으로 그렇게 형상화한 것입니다. 로마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의 여신 비너스도 다산의 상징이었습니다. 여신이 예쁘기만 해서 뭘 하겠습니까? 다산과 풍요가 함께 있어야 아름다움이지요. 술의 신 박커스도 다산의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알이나 아세라도 다 다산의 신입니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다산은 복이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여전도회원들 그리고 모든 여성들이 믿음으로 많은 생명을 잉태하기를 바랍니다. 여전도회원들에게 다산의 복이 생명을 잉태하는 해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생명을 해산하는 것은 구원입니다.

  디모데전서 2:15에는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이 성경말씀은 신약에서 가장 해석하기 힘든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정숙, 믿음, 사랑, 거룩은 그리스도인 여성의 네 가지 미덕입니다. 남자보다 여자에게 적절한 품성입니다.

  에덴의 형벌로 주어진 해산임에도 불구하고 해산을 통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해산은 하나님의 형벌인 해산의 고통을 잘 치르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구원의 근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해산은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그래서 찬송가에서는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해산과 구원은 비슷합니다. 부분적으로는 해산과 구원은 일치합니다. 해산도 구원도 다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해산은 엄청난 고통과 체력의 손실을 가져옵니다. 아기를 낳은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요즘같이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아이를 낳다 죽는 여성이 하루 평균 1,440명입니다. 1분당 1명이 아기를 낳다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기를 해산하는 것은 절대 손해가 아닙니다. 갖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구원과 기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6:21에는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고 합니다. 해산의 기쁨과 구원 때문에 해산의 가치가 있습니다. 존 웨슬레의 아내 수잔나는 19명의 자녀를 낳아 길렀지만 한결같이 훌륭하게 잘 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좋은 어머니, 좋은 아내를 말할 때 웨슬레의 아내를 떠올립니다.

  여자의 해산은 약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해지게 합니다.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산의 은혜입니다. 얼마 전에 개성에 다녀왔습니다. 개성에서 박연폭포와 관음사 그리고 선죽교를 보고 고려성균관이라 불리는 고려박물관에 가보았습니다. 박물관에는 “노예를 팔고 사는 값”이란 그림이 있습니다. 고려 시대의 노예의 값을 한 눈에 보게 한 것입니다. 15-50세의 여자노예가 가장 비쌉니다. 15-50세 이하의 여종이 비단 120필입니다. 15-50세 이하의 남종은 100필입니다. 15세 이하 50세 이상의 여종은 60필입니다. 15세 이하 50세 이상의 남종은 50필입니다. 소는 400필입니다. 옛날 미국에 노예 제도가 있을 때 가장 비싼 노예는 아기 하나 낳은 어머니 노예였습니다. 노비(奴婢)란 한자어를 보세요. 남종의 의미하는 노(奴)자도 여종을 의미하는 비(婢)자도 다 계집녀(女)자가 있습니다. 남종도 여자처럼 손이 부드럽고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최근에는 아줌마의 힘이 얼마나 센가를 측정하여 신문에 났습니다. 여성의 근력을 측정한 결과, 30-40대의 팔 다리의 근력이 20대보다 앞선다고 합니다. 여성 30-40대 전업주부의 근력이 가장 강하다는 말입니다. 여성의 약력 즉 쥐는 힘은 40대가 가장 강하고, 남성은 20대가 가장 강하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왜 쥐어 사는가 했더니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나이 들면 부인들에게 쥐어 삽니다. 주인양반이 아니라 쥔 양반이 됩니다. 여성들의 강한 면은 점점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아이들을 낳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자가 안 낳으면 누가 낳겠습니까? 아이를 안 낳는 한국은 미래가 없습니다. 점점 3인 가족 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앞으로는 고모, 이모, 삼촌, 사촌이 사라질 것입니다. 한 집안에 과거에는 5대 136명까지 살았답니다. 이제는 2명씩 낳아도 62명밖에 안 됩니다. 젊은 세대는 조부모, 부모, 자녀 3대를 부양해야 할 형편입니다. 한 대가 20-25년에서 30-35년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늦어지는 결혼에 아기 낳을 생각들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존한 증조부, 조부가 손자, 손녀보다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평균수명이 증가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에 대가 이어지지 않아 공란이 늘어납니다. 생명을 잉태하지 않으려는 여성들은 결국 여성의 질뿐만 아니라 사회의 질을 떨어트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문제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아이 안 낳는 교회가 문제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생산은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전도는 하지 않습니다. 지난 일년 동안 내가 낳은 생명이 얼마나 되는지, 내가 몇 명이나 전도했는지, 교회까지는 인도하지 못했지만 예수 믿으라고 해 본 적이 얼마나 있는지 한번 세어보세요. 저 출산이 아니라 무 출산의 교회 아닙니까? 교회의 문제는 잉태하지 못하고 생산하지 못하는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례미야 31:8에는 “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 그들 중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있으며 큰 무리를 이루어 이 곳으로 돌아오리라”고 하십니다. 잉태한 여인과 해산한 여인이 함께 돌아오리라고 하십니다. 여인이 잉태하고 해산하기 때문에 모으고 돌아오게 하고 인도하심의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이런 잉태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미국 대선주자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대선 후보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공화당의 줄리아니의 부친은 늘 “침착하라”는 교훈을 주어 뉴욕 시장 시절 ‘911 사태’ 때에 큰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민주당의 힐러리의 아버지는 여자라고 못할 것이 없다고 늘 북돋워 주었다고 합니다. 민주당의 오바마는 케냐에서 미국으로 유학 온 부친의 성공 스토리가 자극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은 부성사회이므로 아버지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모성사회로서 어머니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힐러리는 여자라고 못할 것 이 없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던 모양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여자라고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들이 더 소중하고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여성부를 없앤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여성들이 반발하는 모양입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차라리 없애달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오히려 더 당당하게 남성부를 신설하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여자라고 못할 것이 없습니다. 생명을 잉태하고 해산하는 여성인데 여성부가 문제이겠습니까? 생명은 무엇보다 귀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은 여성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잘 감당하여 많은 육적 영적 생명을 잉태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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