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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명에 붙잡혀 사는 사람 (창 4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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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에 붙잡혀 사는 사람 (창 45:1-15)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유태인이 병이 깊어져 드디어 운명의 시간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근심에 싸인 식구들이 둘러 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환자가 무거운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어디 있소?”가족들은 모두 환자의 말에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마지막 유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예, 나 여기 있어요.”하고 그의 아내가 환자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식구들을 한명씩 돌아가며 찾았습니다.“딸애는 어디 있느냐?”딸이 대답했습니다.“아빠, 제가 여기 있잖아요. 아버지 손을 잡고 있는 게 아버지 딸 저예요.”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작은 딸도 빠지지 않고 다 찾았습니다. 한 사람 빠지지 않고 모두 다 환자 곁에 둘러 있었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안간힘을 쓰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모두 다 여기 있구나. 그러면 가게는 누가 보고 있단 말인가?”환자는 꺼질 듯 한숨을 쉬며 도로 누웠답니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입니다만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 입니다. 그 속에 유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지독한 신념이랄까 프로정신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사명 같은 것입니다. 이런 정신이 오늘의 위대한 유대인을 만든 것 같습니다. 서울 인구보다 더 많은 1,500만 여명의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수상한 그 배후에는 이러한 투철한 정신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명이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명에 살게 되어 있습니다. 감당하느냐 감당하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특히 예수 믿는 우리는 사명에 충실해야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본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맡겨진 일이든 교회에서의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섬기는 일을“온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맡은 모든 일에는 그러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서 사명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명에 사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자그마치 1년에 93억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미국의 토크쇼 MC로 미국 온 국민들에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오프라윈프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남보다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남보다 더 아파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남보다 더 가슴 설레는 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남보다 더 부담 되는 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사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입니다.

자,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먼저 자신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러고서야 사명을 생각합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자기를 똑바로 아는 사람이 있다면 사도바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추앙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말합니다. 롬7장에 처절할 만큼 그는 진실합니다."원하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죄만 짓는 사람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진실했습니다. 그리고 고전 15장에서"나의 나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자기 정체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장점이든 단점이든 다 알고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대부분이 자기가 자신을 모르는 멍청한 모습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를 알아야 자기의 사명이 보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통해서든 자기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모르는 나를 다른 사람이 가르쳐 줄 수도 있고, 어떤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주의하여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를 알고 사명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17세기 체코 출신의 교육학자[존 아모스 코메니우스]라는 사람이 인간의 지식 형성 과정을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먼저는 감각입니다. 사람이 센스가 있어야 지식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만지고 바로 느껴야 합니다. 이 모든 감각이 바르지 못하면 지식이 빗나가서 엉뚱한 짓을 합니다. 바른 감각을 통해서 바른 지식이 형성되어집니다. 또 하나는 건강한 이성이 있어야 됩니다. 이성을 통해서 이해하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하게 되는데 만약에 이 중요한 기능을 하는 이성 차체가 병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은 건강한 이성으로 판단해야 되고 특별히 이성이 자유롭게 자기 기능을 다할 수 있어야 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고 그 지식이 축적되었다가 삶에 재현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른 신앙이 있어야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감각과 이성만으로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보았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생각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이상의 세계가 분명히 있는데 그것은 믿음으로 알게 되는 부분입니다. 가령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보고 압니까? 만져서 압니까? 보고 만져서 아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정말 사랑은 믿음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또 진리를 눈으로 봐서 압니까? 듣기만한다고 알아집니까? 믿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에 살고 지식을 습득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바른 신앙이 있을 때에 신앙인으로서의 나를 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를 알아가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사명은 또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을 우리는 잘 압니다. 17살 때 형제들이 애굽으로 팔아먹습니다. 그래서 노예로 끌려갑니다. 형제들에게 팔려서 무려13년 동안이나 노예로 일하는 중에 감옥에 들어갔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천하를 호령하는 애굽의 총리대신이라는 권력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 요셉이 지금 높은 권좌에 앉아서 옛날 자기를 팔아먹은 형제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전에는 형제였지만 지금은 원수지간입니다. 상식으로나 인간적으로 보면 다시는 안 볼, 혹은 본다고 해도 원수를 꼭 갚아야 할 그런 관계입니다.

요즘 세상에도 형제간에, 부모 자식 간에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들여다보면 다 이런 문제들이 원인이 되어 있습니다. 배신하고, 신뢰할 수 없고, 상처를 주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흘러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끝까지 원수로 살다가 갑니다. 참 불행이지요.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때 요셉이 그 형제들을 평생 미워해야할 대상, 원수 갚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집니다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맞이합니다. 자기가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있고 마음만 먹으면 권력을 가지고 해를 끼칠 수도 있을 법한데 오히려 자기가 섬겨야 할 대상으로 형제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원수를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본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보통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인격과 신앙이 어떻게 요셉에게는 가능했느냐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입니다. 요셉은 먼저 자신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부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요셉은 지금 하나님의 큰 은혜의 섭리를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그 경륜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믿고 인정합니다. 5절부터 8절까지를 보면 형들이 자기를 애굽에 팔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까 그것으로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는 내용으로 오히려 형들을 위로하고 있는 모습니다. 우리도 가끔 경험하는 일 가운데 때로는 사람의 실수 같으나 그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 사실을 요셉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일을 돌아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믿었던 형제들이 팔아먹었고 죽은 사람으로 살았으며 갖가지 어려운 일은 다 겪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생각하면야 이 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으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을 보세요. 그가 신앙 안에서 자기를 바라볼 때에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요, 경륜이며 단지 나의 모든 일은 그 과정 속에 있을 뿐이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런 요셉의 신앙관은 창50장19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내가 누구를 미워할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원수 갚을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창50:20절에 보면"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그랬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난 일이니 그 처음과 결과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에 자기는 사용된 것이고 그것이 곧 자기의 사명이라는 놀라운 고백과 함께 오늘 이 시간 감사하며 형들을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사명 안에 요셉은 우리가 생각할 때 모순된 세상을 신앙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든 것을 나 자신의 은혜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될 때 내 사명이 보이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 내 사명이고,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이 내 사명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이 사명을 안다면 요셉처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정말 어려운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살려고 하고 또 실제적으로 열심히도 삽니다. 그런데도 매일 어렵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계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힘든데 예수 믿어야 되나 신앙적 회의가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절망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닙니다. 소망을 가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절망해도 원망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원망해서 문제가 해결되고 생활이 나아집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살기 힘든 세상, 어려운 세상 끝장낸다고 무엇이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는 더 크게 남게 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미워하고 자기 권력을 이용해서 끝장을 내려고 했다면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사명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깨달음을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를 알고 베풀며 사는 것이 사명입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랑을 알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사명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최소한의 사명입니다.

오늘 요셉이 우리에게 보여준 사명은 사실 어떻게 보면 최소한의 사명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배우는 최소한의 사명 아닙니까? 오늘 말씀이 순교의 사명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가져다 바치라는 강요도 아닙니다. 다만 최소한의 사명일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최소한의 사명 앞에 얼마나 떳떳합니까?
[카를 힐티]는<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는 책에서“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발견하는 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값을 발견하는 삶이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제부터 예수를 믿었습니까? 기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부터라도 좋습니다. 다만 그때부터가 여러분이 깨닫고 의식할 수 있는 사명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실존주의 철학자[키르케고르]는 22세 때 그의 일기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온 세계가 무너진다 해도 내가 꽉 붙들고 놓을 수 없는 이념, 내가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사명을 나는 찾아야 한다.”오늘날 이런 사명을 붙들고 그 사명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우리의 사명을 일깨워 달라고 간구한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최소한의 사명임을 자각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현재는 이런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서 애쓰는 마음이 아쉬운 시대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사명에 붙잡혀 살아감으로 세상을 바꾸고, 교회를 변화시키고, 가정을 살리며 나 자신도 은혜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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