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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기는 자로 사는 제자 (막 10: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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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자로 사는 제자 (막 10:35-45)

2004년 미국한인이민 100년간 미국에 가장 공헌한 100인의 인사에 4명이 포함된 한 가족이 있습니다. 고광림 박사, 고경주 박사, 고홍주 박사, 전혜성 박사가 그들입니다. 전혜성 박사는 이화여자대학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하여 50여년을 사는 동안 여섯 자녀 모두 예일, 하바드를 졸업하고, 가족의 박사학위만 11개입니다. 자녀들이 미국무부차관보, 매사추세츠주 보건후생부 장관, 하바드대학 공공보건대학 부학장, 예일대 법학대학원 원장, 메사추세츠 주립대 교수, 등 훌륭한 리더들이 되었고, 본인도 예일대에서 24년을 교수로 지냈고, 현재 동암문화연구소 이사장입니다. 그가 자녀교육의 노하우를 담은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키운다.”책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전혜성 박사는‘섬김의 정신’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를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처럼 우리 가정에 굳이 특별한 자녀교육 비법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우리부부의 노력에서 찾으려 한다. 우리 부부는 우선 스스로 자신을 섬기고, 서로를 섬기고, 자녀를 섬기고, 더 나아가 남을 섬기고, 사회를 섬기고자 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섬기며 위해 오셨고 섬기며 사신 예수님을 본받아 삽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목적을 마가복음3:13-15에서 밝히셨습니다.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이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물론 전도하고, 권세 있는 사역자가 되어야 하지만 더 우선적인 것이 있음을 일깨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자들에게 전도할 때, 권세 있게 일하는 능력을 부여하심으로 제자들은 오래지 않아 상당히 성공적인 사역자로 변신하였습니다. 

마가복음6:7에는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마가복음6:12,13에서는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좇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별 볼 일없었던 어부들이 졸지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마가복음6:33에는 제자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그런데 마가복음9:1-29에 이르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제자들의 실패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간 사이에, 산 아래 남아 있던 제자들이 상당히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귀신들린 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고쳐주기를 간청하여 제자들이 모두 나서서 평소 하여오던 대로 도전하였으나 누구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완전히 코너에 내몰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오시어 그 아이를 고치십니다. 그 일 후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은 이 어처구니없는 현상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 간단한 질문 속에는 상당히 깊은 의심이 들어있습니다. 그 동안 제자로 살아오면서 계속하여 왔던 능력의 사역이 왜 갑자기 되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이 하시는 것과 똑 같은 방법으로 했었는데 왜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합니다. 기도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 제자와 함께 산위에 오르실 때에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다음 예수님이 하시는 일과 동일한 일들을 자신들도 하면서 상당한 인기를 이미 얻었고, 이제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 높은 산위에까지 가야하는지에 의심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세 제자가 산위에 오르는 수고를 할 때, 산 아래에서 한가로이 자신들의 삶을 즐기다가 이런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1983년 4월 목회의 현장에서 참으로 중요한 경험 하나를 했습니다.
3년 동안 군종장교를 끝내고 대위로 예편을 하면서 광림교회부목사로 부임하여 7개월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저는 일찌감치 교회의 모든 것을 다 파악하였습니다. 담임목사님의 목회철학, 설교, 교회의 조직, 교인들의 영적인 상태까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다 담임목사님이 외국을 나가시면서, 금방 30을 넘긴 저에게 3000명 성도가 참석하는 주일 3부 예배 설교를 맡기셨습니다. 저 스스로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껍데기만 본 결과였습니다. 진정으로 목회자로서 알아야 하는 교회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음을 후에 깨달았습니다. 그 때부터 교회와 목회의 진면목을 알기 원했고 5년 4개월 부목사의 사역을 마치면서도 여전히 부족함을 채우지 못하고 교회개척을 시작하였습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일하는 기술을 베우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예수님을 베워야 합니다. 사역이전에 사람 됨됨이를 베워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일하는 기능인이 되기 전에 예수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제자로 부르신 가장 첫 번째 이유를 “함께 있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심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기지셨습니다. 삶에 필요한 능력을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마음을 베우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소중히 여기신 것입니다.

저는 매일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납니다. 5시20분부터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7시까지 교회강단에 머뭅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금요일 밤에는 동역자들과 함께 2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기도합니다. 단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사역에 더 많은 결과를 기대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통하여 주님을 배우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구원의 주님이시며 동시에 모범이시며 스승이십니다. 
우리 모든 주님의 제자들이 배워야 할 주님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마가복음10:43-45은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설명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섬김의 삶으로 제자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섬김을 단순히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서 봉사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섬김”을 통해서 사람들의 변화와 성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전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섬김의 정신,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섬김은 권력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합니다.
사람들은 유명세와 연관된 권력에 중독되기가 쉽습니다. “배고픔, 갈증, 섹스에는 만족이 있지만 권력은 그런 한계를 모른다.” “더 강해지고, 더 중요해지고 싶은 욕망에는 끝이 없다.” “권력은 그것을 가진 모든 사람을 타락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새들백교회의 릭워랜 목사는 “오늘 날 많은 지도자들이 종의 자세로 시작하지만, 유명인사로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섬김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예수님의 섬기는 정신을 배양하는 7가지 필수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자기와 직접 연관된 것 세 가지가 입니다.

1.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싸움을 쉬지 않는 것입니다. 
잠언16:32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고린도전서9:27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내가 내 몸을 사정없이 다루고, 종처럼 다루는 까닭은, 내가 남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나 자신은 버림을 당할까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큰일을 이룬 자들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여 실족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약물중독, 알콜 중독, 도박, 심지어 음란과 같은 것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쓰러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분에 넘치는 욕심 때문에 나의 신분을 넘어서려고 할 때마다 내 자신을 다스리는 일은 성령님이 하십니다. 

군목으로 일할 때에 나를 지켜준 것이 바로 십자가 병과마크였습니다. 그 십자가가 나를 목사로 순간순간 인식하게 할 대에 내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제는 이 성경책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자신을 지켜가려고 합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심을 믿습니다.   
 
2.삶의 열정입니다.
산에 오르려는 당당한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시작하였으나 도중에 주저앉은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매 순간 스스로를 추스르고, 새롭게 열정을 보충함으로서 비전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조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에 아니꼽고 불쾌한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일들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끝까지 가셨습니다.
식어진 열정, 식어진 사랑은 김빠진 사이다나 체온이 식어져버린 시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비전이 이끄는 열정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감소되거나 식지 않습니다.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가 날아오를 수 없고, 물의 저항이 없으면 배가 물 위를 달릴 수 없듯, 유혹과 시험이 없으면 섬김의 열정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3.긍정적인 사고와 태도입니다.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낙관적인 생각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에 절대적인 가치는 희망입니다. 요즈음 저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은 태안주민들의 자살입니다. 그간 바다를 살리는 일에 치중하는 동안, 삶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주민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일으키는 일에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삶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당면한 현실이 우리를 좌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당신의 삶의 현실을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면 희망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쉽게 절망을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설령이 절망의 순간이 닥쳤다 해도 그 순간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큰 교통사고로 입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자기병실 안에서는 금지된  먹을 음식을 만드는 중에 잠이 들었습니다. 간호사가 그 방에 들어가 보았을 때는 음식이 타서 냄새가 가득한데 환자는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아이쿠, 이 사람 죽었네.” 그런데 이 환자는 실상은 아직 의식이 또렷이 있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죽었다는 간호사의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 후에 한번도 가지 않았던 교회를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허히 자신을 맡기기로 한 것입니다.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희망은 그곳에 잇습니다.
힘없는 사람이 마지못해서 섬겨야한다고 생각하면, 굴욕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으로 섬긴다면 그것은 영광입니다. 당신의 삶에 모든 것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해석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에 대하여 낙관적인 결과를 희망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둘째, 다른 이들과의 관계된 것 세 가지입니다. 

4.신뢰입니다.
신뢰는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이 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신뢰는 오늘 나를 나 되게 하는 결정적인 축복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크리스챤으로서,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혹은 가장으로서, 얼마나 자주 겨함을 나타내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믿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셨습니다. 
배려하는 마음과 역지사지의 원리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을 대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과정에서 그 많은 고통과 비난과 모욕 속에서도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결국 그들이 다 주님께로 돌아올 사람들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용서를 빌어주고, 기다려주었습니다. 이 신뢰 때문에 제가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가 있습니다. 

5.겸손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는 믿음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면 우쭐댈 것도 없고, 교만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좋은 기업을 넘어서,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짐 콜린스’는 리더들이 성공과 실패를 대하는 태도를 “유리창과 거울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거울로 가서 문제가 자신에게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며 책임을 져야하고,
일이 잘 되어 갈 때는,
유리창으로 가서 성공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
잘 된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영광을 나누고, 잘 못된 것은 나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찾아내어 교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섬김이 있습니다. 

6.듣는 귀와 열린 자세
“내가 함께 일했던 탁월한 리더들을 구별 짓는 것은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생각, 깊은 헌신, 끊임없이 배우려는 열린 마음이다.”-Peter Senge-The Fith Discipline
성공은 편견보다 빨리 마음을 닫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만큼 큰 실패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혹이나 교만하여 마음 문을 걸어 잠그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십시오.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섬기는 것이 진정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여섯 가지를 아우르며 받쳐주는 것이 

7.희생입니다.
우리는 1967년 6월에 있었던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6일 전쟁을 기억합니다. 
이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사람들은 오래가지 않아 이집트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쉽게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이스라엘은 6일 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많은 장병들이 불에 타 전사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는 이집트군 사상자들은 대부분이 사병이었던 반면, 이스라엘의 사상자들은 거의 장교였다는 점입니다. 리더의 희생이 불리하게 보였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섬김은 내가 먼저 희생하는 헌신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같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메인 잇슈는 “섬김”입니다.
이 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한 “매우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습니다.” 는 말이 우
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섬김은 주님의 마음입니다.
섬김은 제자의 길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한 사람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섬김으로 보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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