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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높은 산으로 올라가자 (막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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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으로 올라가자 (막9:1~8)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이 죽어야 가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본문에서 죽기 전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천국은 장소적이고 영토적 의미가 강하고, 이 땅에서의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적 의미를 나타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나라를 말씀하실 때 권능으로 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9:1절입니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문에서도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임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곳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집니까?
주님은 성경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12:28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1:4-5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곳에는 흑암과 음부의 권세가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성령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그곳에는 하늘의 문이 열리고, 치유가 있고,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고, 사망과 저주가 생명과 축복에 삼킴바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떠나고 모든 질병과 저주와 고통 그리고 실패가 물러가며 삶에 기쁨과 평안과 행복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성도들의 가정을 바로 세우면 그곳에는 음부의 권세가 틈을 탈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면 그 곳에는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신비고 온전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찬송495장)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누구에게나 허락되어 있으나 아무나 소유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체험할 수가 있습니까?

첫째-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입니다. 즉 내 뜻과 생각이 관철되는 곳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곳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바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신앙인들의 문제 중 하나가 자기를 부인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기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색깔과 뜻을 교회에 남기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불태우고 녹여야 되는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조차도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문에서 분명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신 후에 “여기 섰는 사람들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 중에서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분들이 바로 하늘나라를 침노하는 자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는 오직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만 갈수가 있습니다.
때문에 주님께서 당신을 길이요 진리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 가 무슨 뜻 입니까?
모세는 애굽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정당한 세속적 자기 권리와 욕망을 포기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고난당함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인은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영육간의 모든 욕망과 욕심, 심지어 자기의 이익이나 이권 까지도 거절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고, 자기 십자가는 주님을 올바르게 섬기기 위해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고난과 핍박을 능히 견디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주님을 위해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거절하고, 다른 이들에 의한 시련을 이기는 능력으로 충만하시기를 소원합니다. 

둘째-주님과 함께 높은 산에 함께 오를 수 있는 신앙입니다.
산은 높을수록 오염이 덜되고 깨끗합니다. 신앙의 경지도 높을수록 정하고 거룩합니다. 많은 믿음이 선진들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산으로 올라가서 하나님나라를 체험했습니다. 성경은 모세와 아브라함 그리고 엘리야가 산위로 올라갔었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말씀을 받으러갔고, 엘리야는 영적대결을 위해갔고,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드리러 갔습니다.
특히 이들 중에 아브라함의 산행은 그 에게 참으로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독자 이삭을 자신의 손으로 번제로 잡아 드려야하는 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마디 불평 없이 그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을 인정받았고 마침내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본문에 소개 되어진 높은 산은 열두 명의 제자들 중에 세 제자만 주님과 동행했던 ‘기도의 산’ 이었습니다. 

눅9:28-29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이들은 기도의 높은 산에 오른 것입니다. 성도가 기도의 산에 높이 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 중에 단 세 명만 주님을 따라 올라간 것을 보아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나라의 신비한 환상을 기도의 높은 산 위에서만 보이셨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려면 누구나 기도의 산에 높이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위험하고 안타까운 일은 기도하기 않고도 믿음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라고 까지 선언했습니다.
때문에 ‘헨리 나우웬’ 이라는 분은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그리스도가 빠진 복음과 같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 에는 노력하지 않고 쉽게 한 목 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사상과 삶의 태도가 비 윤리 적이고 비인간적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대부분 사기꾼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사기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무조건 위로와 격려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는 수고하고 애씀 후에 넘치는 은혜로 다가오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농부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야이던 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지옥같이 힘든 훈련도 인내하면서 잘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김연아 라는 빙산계의 세계적인 고딩 스타가 나타나 온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귀엽고 아름다운 소녀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지옥 같은 훈련과 땀 흘림, 그리고 희생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참다운 신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신 신앙의 과정과 연단을 믿음으로 통과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변화산 정상도, 게세마네 동산도, 골도다 언덕도, 모세가 올랐던 시내산도, 아브라함이 올랐던 호렙산도 순종으로 올라 갈 수 있는  신앙의 결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셋째-주님의 말씀만 귀에 들리고 마음에 심기어 져야합니다.
마13:24-30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소개 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들이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25절)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28절)

사단은 말씀의 씨앗이 사람들의 마음에 뿌려질 때 밤중에 와서 그 위에다가 가라지를 덧뿌리는 일을 계속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밤중이라는 말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단은 꼭 성도가 잠들었을 때에만 가라지를 뿌리는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개가 명견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그 개가 오직 주인의 목소리만 듣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면 됩니다. 잡종견은 상황에 따라서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 꼬리를 치며 가까이 갑니다. 그러나 명견은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양은 목자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만약에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양이 있다면 그 양은 멀지 않아 위험한 곳에 다다를 수가 있습니다.

요10:4-5절의 말씀입니다.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이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성도는 언제나 주님의 말씀만 귀에 들려야 합니다. 만약에 다른 소리가 들리면 오히려 빨리 도망쳐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적지 않은 성도들은 아무리 주님의 말씀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말씀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이단들을 찾아가거나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비단 오늘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갈1:6-10절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

그러므로 그러한 신앙태도는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다름 복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딤4:1절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오직 주님의 말씀만 귀에 들리는 택한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넷째-오직 예수만 눈에 보여야 합니다.
어떤 마을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폐쇄된 철교를 건너야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철교를 건너다가 어지럼증으로 강물에 빠지는 사건도 발생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통통하고 배가 볼록 튀어나온 아이는 끄떡없이 철교를 잘 건너다녔습니다.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다른 아이들은 철교를 건너다가 밑을 내려다보면 어지러움증이 생겨 밑으로 빠지는데 배가 볼록한 이 아이는 밑을 내려다볼 수 없기 때문에 앞만 보고 똑바로 걸어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파도를 보면 파도 속에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으면 파도 위를 걸을 수 있게 됩니다.
날 삼키려고 찾아오는 악한 사탄도 밟고 넘어갈 수 있고 시련의 파도도 밟고 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사랑의 주 만 보이도다. 라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천국의 백성 된 성도의 삶입니다. 본문은 하늘의 신비한 환상 속에서 깨어났던 제자들에게 오직 예수님만 보였다고 했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 중에 예수와 함께 있었던 베드로 요한 그리고 야고보만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히12:2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왜입니까?
이유는 누구든지 예수만 보이는 삶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 역시 오직 예수만 바라볼 때 물위로 걸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역사를 체험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눈은 누구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까?
만약에 예수님께 있다면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가까이 왔습니다. 인내하며 그날을 기다리는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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