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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일조의 정신 (창 14: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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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일조의 정신 (창14:17-20)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낙후된 마을 발전을 위한 주민 총회가 열렸습니다. 주민 총회에서 좋은 제안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마차를 두 대 이상을 가지고 있는 주민은 한 대씩을 마을 발전을 위해 기부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또 마차와 말을 보관할 창고가 있어야 하니 헛간을 두개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은 헛간을 하나씩 마을에 기부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결정하기 어려운 제안이었지만 마을 발전을 위해 주민들은 만장일치로 그 제안들을 가결시켰습니다.

  그 주민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주민이 부끄러워하며 일어나 ‘나는 마을을 위해 내어 놓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닭 두 마리입니다. 그 중에 한 마리를 내 놓아 마을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한 가지 제안합니다. 닭을 두 마리 이상을 가지고 있는 가정은 한 마리씩을 마을 공동재산으로 내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도 당연히 만장일치로 통과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표결에 붙이자 다른 안에서는 만장일치로 찬성하던 사람들이 닭 한 마리씩 내자는 제안에는 반대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결국 과반수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마을 주민들 중에 말이나 마차를 내놓아야 할만큼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은 몇 사람이 안됐습니다. 그러나 닭은 누구나 한 마리 이상을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은 다른 사람의 재물 보다 더 귀하게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결정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작은 것이라도 내가 관련된 결정을 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미국의 흑인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면서 ‘오늘의 교회들이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교회는 세상을 위해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흑인 성도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걷게 하소서. 걷게 하소서’라고 화답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성도들이 ‘걷게 하소서. 걷게 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목사님은 성도들의 뜨거운 반응에 기뻐하며 ‘오늘의 교회는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이제 교회는 세상을 향해 달려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조금 전에 외쳤던 그 성도가 ‘달려가게 하소서. 달려가게 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성도들도 힘을 다해 ‘달려가게 하소서. 달려가게 하소서’라고 호응했습니다.

  목사님이 ‘이제는 우리가 전 세계를 가슴에 품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날아가야 합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 성도가 일어나 ‘날아가게 하소서. 날아가게 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성도들도 ‘날아가게 하소서, 날아가게 하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전 세계로 복음을 들고 날아가기 위해 사용되는 선교 비용을 위해 헌금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이 선교 헌금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에 목사님의 설교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던 성도가 다시 일어나 ‘걸어가게 하소서. 걸어가게 하소서’라고 외치더랍니다.

  교회에서 설교하기 가장 힘든 주제가 헌금입니다.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는 돈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교회에서 헌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이 재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재물에 대해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3분의 1은 돈과 관련된 비유를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물을 돌처럼 여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예수님은 돈을 보물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보물이라는 것은 다른 것보다 가치있고 소중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돈을 보물이라고 표현하시며 돈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돈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비교할실 만큼 돈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람들이 그 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돈이 하나님보다 더 소중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물질에 매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을 위해 물질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질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거나 담을 쌓은 관계가 아니라 도리어 물질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아름다운 관계로 세워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물질로부터 자유하고, 하나님을 위해 물질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더 놀라운 물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초의 헌금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의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헌금, 특히 십일조의 의미와 정신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정착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요단강 동편에 있던 4명의 왕들이 동맹을 맺은 후에 군사를 이끌고 소돔과 고모라를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중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식솔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그의 식솔들이 포로로 잡혀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의 318명의 사병을 이끌고 연합군을 쫓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연합군과 싸워 승리한 후에 롯과 가족들을 구출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예루살렘 왕이며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라’고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다. 제사장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의 전리품 중에서 십일조를 드립니다. 이 사건이 성경에 최초로 기록된 십일조입니다. 

  최초의 십일조가 드려지는 사건을 보면서 헌금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축복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제사장 멜기세덱의 축복 기도를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이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전리품 가운데서 십의 일을 떼어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을 지키기 위해 행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헌금의 정신은 감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감사함의 마음이 없이는 진정한 헌금이 드려질 수가 없습니다. 감사함이 없으면 헌금에 인색하고 소극적입니다. 감사함이 없으면 헌금이 조건적이 됩니다. 거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수 없습니다.

  뉴욕 타임즈에서 20세기의 세계적인 갑부를 16명 꼽았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록펠러입니다. 록펠러의 집은 가난했습니다. 그는 열 살 때부터 신문 배달을 하며 가정을 도왔습니다. 신문 배달로 그가 받은 첫 주급은 1달러 50센트였습니다. 록펠러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록펠러의 어머니는 ‘이것이 네가 벌어들인 첫 열매구나. 무엇보다 십일조부터 하나님께 드려라. 그리고 앞으로 오른 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해라. 하나님의 것을 먼저 구별해 오른 주머니에 넣어 놓은 후에 나머지를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록펠러의 어머니는 십일조 생활을 철저하게 가르쳤습니다. 록펠러는 평생토록 어머니로부터 배운 십일조 정신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십일조를 도둑질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33세에 100만 달러를 모으더니 53세 때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교회와 학교,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구호 활동을 펼친 사업가였습니다.

  록펠러가 자녀 교육을 위한 한 강연회에서 부모들에게 ‘당신의 자녀를 위대한 인물로 키우고 싶습니까? 그러면 자녀에게 먼저 십일조를 빠뜨리지 말도록 가르치십시오. 그것은 교회 제도가 아니라 인생의 토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토대를 내게 둘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에게 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십일조를 드리는 신앙과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신앙은 뿌리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십일조 신앙을 가르치는 것 이상의 신앙 교육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훈련이 된 자녀들은 신앙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일조 생활을 통해 이미 가장 귀한 가치를 하나님께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더 큰 축복을 받는 조건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이 말씀은 ‘너희들이 십일조를 드림으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재물보다 나를 더 사랑함을 고백하면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나, 여호와가 너를 더욱 복되게 세우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온전한 십일조’는 사람들의 이목과 명분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감사와 정직함이 있는 십일조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가정들이 온전한 십일조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 직분자들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아름다운 신앙의 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항존직자로 임직할 때 특별헌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존직자들은 일상 생활속에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이 훈련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이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동안 행복한 교회 모든 성도들이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통해 믿음의 사람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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