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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의 유일한 소망 (사 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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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유일한 소망 (사 11:1-10)

시305절에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는 다윗의 고백처럼
오늘 본문말씀도 절망 속에 희망을 가지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이사야는 절망 속에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기록할 당시 이사야는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조국 유다는 한 마디로 소망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는 이상 희망이 있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에게도 소망이 되는 은혜의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면
1. 본문말씀의 배경을 말해 보세요(참조/사1-10장)

사1:2-이하에 하나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 하늘이여 들어라 땅이여 귀를 귀울이라. ]하면서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
[ 너희가 어찌하여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
[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구나. ]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1:18절 [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하시면서
[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을 것이요. ]합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고
    여전히 우상을 섬기며 형식적인 예배만을 드립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화가 났으면
[ 헛된 제물 가져오지 말라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 고 합니다.
그리고 5:8절 이하에 보면 <화있을 진저 시리즈>라 할 만큼
    저주와 심판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부패한 사회상이 적라하게 나타나있습니다.
  부동산으로 축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지도층들,
  아침부터 저녁꺼지 쾌락에 빠져있는 부유층들,
  거짓이 판을 치고 공의가 뒤틀려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회,
이로 인하여 힘없는 자들은 짓밟히고 착취당하는 절망적인 실정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그 혼동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 보려고 힘썼던
      선한 왕 웃시야 왕마져 죽고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징조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이사야가 간청하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주지만
      귀찮다고 묵살해버리는 무능한 아하스 왕이 통치하는 때였습니다.
엄청난 고통의 강물이 사회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패역을 보시고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징계하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 것을 이사야는 보았던 것입니다.
유다는 도끼에 둥치가 잘라지고 앙상한 그루터기만 남은 형국 이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한 꿈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2. 이사야 선지자가 바라본 희망은 무엇입니까?(1절)

그가 보고 있는 꿈은
    한 뿌리에서 가지가 나고 그 가지에서 싹이 나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 꿈의 비밀을 가르쳐줍니다.
      싹이 나고 열매 맺는 이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이 세상에 태어날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사야의 꿈이요, 유다의 꿈이요
          또한 우리의 꿈인 것입니다.

절망 속에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또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미국의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입니다.
킹 목사는 노예에게 자유를 선언한지도 100년이 지났건마는
여전히 미국 곳곳에는 피부 색갈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흑인들은 정당한 사람 대우를 받지를 못하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흑인들이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빈민굴에서 딩굴고, 범죄에 빠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매우 절망했습니다.
  그는 현실에 너무나 절망하고 절망하다가 그 절망 속에서 꿈을 가졌습니다.
그는 그 꿈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감동적인 연설에 담았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피에 물든 조지아의 언덕에
  옛적 노예의 아들과 노예의 주인의 아들들이 형제와 같이 사랑을 나누며
    한상에 둘러앉아 같이 식사를 할 날이 올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나의 어린 네 자녀들이 그들의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대우 받지 않고 그들의 인격으로 판단 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꿈이
    나에게도 있습니다.」
절망 가운데서 꿈을 가진 사람의 외침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현실에 절망하고 있는 교우들이 있습니까?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도 절망 속에 꿈을 가지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절망 중에 무조건 꿈을 가진다고 다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를
        어거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오직 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가 온다는 것입니다.

3. 이사야가 바라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2-5절)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새로운 나라를 다스릴 왕이
      어떠한 통치자인지를 2-5절까지에서 가르쳐 줍니다.

그 분은 완벽한 통치자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분이십니다.
그는 지혜와 총명을 가지신 분이요, 모략과 재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는 온전한 지식을 소유한 분입니다.
그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분이십니다.

[ 그 분은 결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
신앙생활 특히 교회생활 하다보면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절대로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시면서도 세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이 다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사상가 <인터니 콜린스>라는 분이 있는데       
자기가 가장 감명을 받았던 일은 어떤 사상집에서가 아니라
한 시골 농부에게서다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콜린스가 어느 날 교회 가는 길에 가난한 농부를 한 사람 만나서
[ 어디 가세요?] 하고 인사하니 [ 교회에 갑니다 ] 라고 대답합니다.
콜린스가 속으로 이 무식한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나 싶어서
[ 당신의 하나님은 크신 분이십니까? ]하고 물으니
농부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크시기 때문에 온 우주를 품고 계시지요
  그러나 제 가슴에 머무르실 수 있을 만큼 작은 분이시기도 합니다 ]
즉 콜린스는 크신 하나님만 믿었지
  자신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믿지 못했음을 회개하면서
      항상 내 속에서 감동주시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내 속에 역사하시는 크고도 놀라우신 하나님을 믿고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판단하지 말고
내 속에 감동을 주시는 주님의 뜻을 따르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4절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 
5절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

그 분은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고, 성실로 몸의 띠를 삼고 있는 분이십니다.
허리의 띠는 그 분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어떤 띠를 두르고 있느냐에 따라 그 분의 능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공의와 성실로 띠를 띠고 있기 때문에
그 분이 통치하는 곳에는 불공평 하고 억울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이사야는 얼마나 황홀했겠습니까?
당시 유다사회나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혈연과 지연 그리고 학연에 따라
    심지어는 권력과 뇌물에 의해 판단이 굽어지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이와 같이 불공평하고 억울한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고 해를 입어 그 한을 풀지 못하여
하늘을 향해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를 만드실 것입니다.
바로 이 분을 나의 구원자로, 나아가 나의 모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하소연을 들으시고
              한을 풀어 주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의 유일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는 완벽한 통치자입니다.
4. 메시야가 다스리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6-9절)

이렇게 완벽한 통치자가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 분이 다스리는 나라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6-9절 까지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서사시가 바로 그 내용입니다.   
[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
동화같은 데서나 나오는 놀라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서 손을 넣고도 괜찮은 나라 ]
곰처럼 미련하고, 사자처럼 포학하고,
      독사처럼 악한 인간이 변화를 받아 어린아이같이 순진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나라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다스리는 나라는                         
모든 곳이 거룩한 곳이 되고, 거기에는 해됨도 상함도 없습니다.
상처를 주는 자도, 상처를 받는 자도 없습니다.
    악한 자들이 선하게 바뀝니다.
    자연과 인간이 화목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사야가 본 꿈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꿈입니다.
    현실을 바라보고 절망하고 낙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야 할 꿈이요 비전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 생태계를 보면
맹수들이 힘없는 초식동물들을 잡아먹는 것을 볼 때
저대로 놓아두면 힘없는 동물들은 멸종하지 아니할까 염려가 됩니다만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도리어 맹수들이 멸종하지 연약한 초식동물들은 더 번식하는 것 있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역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굽의 파라오는 사라져도 종살이 하던 히브리인들은 세계에 충만한 것같이
    힘의 논리와 하나님의 통치논리는 다른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의 통치를 받고, 예수님의 통치를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새로운 나라가 임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5. 새로운 나라가 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9-10절)

9절「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이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주님이 오셔서 다스리는 나라는
모든 곳이 거룩한 곳이 되고 거기에는 해됨도 상함도 없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나라입니다.

메시야가 나타나 다스리는 나라는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국입니다만
그러나 이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의 은혜는
지금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통치 받는 곳에는
          현실적으로도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저는 임하는 천국이라고 합니다.
천국이 임하면 변화됩니다. 순전해집니다. 화목됩니다.
평강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나라가 될 수 있나
사9:7절에 예수님은 정사와 평강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이 천국의 은혜를 맛보며 살아가는 우리 내일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는 갖추워야할 중요한 요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갈 때 아래를 보면
바다 물만이 망망대해에 넘실거립니다.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가득찰 때
예수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막연히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신에 대한 의식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마귀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런 지식만을 가지고 하나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을 비꼬어 책망하기를
약2:19절에 [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요17:3절 말씀같이
[ 영생은 이것이니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로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밖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유의 주가 됨을 고백하며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고백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되면
사람의 심령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심령이 변하면 그의 삶도 바뀝니다.
먼저 이 은혜가 우리 심령과 가정에 이루어 지며
    나아가 이 땅에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임하도록
        우리는 간절히 바라야합니다.

러시아가 낳은 유명한 문호인 <솔제니친>이란 분이 있습니다.     
<수용소군도>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어 이름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1917년에 공상혁명이 일어났을 때 솔제니친은 어린아이였습니다.
매일 수십 명, 수백 명씩 끌려가 학살당하고 시베리아로 추방당하는 가운데
온 나라가 공포 분위기에 빠지고 온 땅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것을 보았읍니다.
그 후 솔제니친은 대학에서 러시아 혁명사를 전공하였습니다.
오늘날 그는 그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존경받고 있는 지성인입니다.
그가 수십 년 동안 러시아 혁명사를 연구한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불과 반세기 만에 6,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참담한 악마같은 공산주의 혁명의 비극이 왜 러시아에서 일어났을까?” 
1983년 미극 템풀톤에서 강연을 하였을 때
    그는 여기에 대한 결론을 의외로 간단하게 내렸습니다.
솔제니친이 어릴 때
이러한 재난 속에서 어른들이 앉아서 주고받는 말들을 들었습니다.
그 말들이 너무나 인상적이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 말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은
“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야,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야.”
바로 이 말이 그가 템풀톤 강연에서 들려준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멸시하는 나라는 지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몰아내어 버리고 그 자리에 <레닌과 스탈린>이 대신 앉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북녁 땅에는 하나님 자리에 대신 김정일이가 앉았습니다.
결과 우리는 눈으로 보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사실은 <맑스 레닌> 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에 지식이  물질이 권력이 자리 잡으면
      엄청난 비극이 초래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자녀들에 대해서
우리는 공부 때문에 신앙을 양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야!」라는 탄식이 나올 때면
벌써 늦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쟈크 엘률>이라는 불란서의 기독교 사회학 법학 역사학 교수님이 있습니다.
이 분이 <뒤틀려진 기독교>라는 책을 썼는데 그기에 보면
“현대 기독교회의 모습은 마치 스폰지와 같아서
  오늘날의 세속문화를 그대로 빨아먹고 있다.
  다만 껍데기는 기독교라는 간판을 걸고 있지만
마치 빈병과 같아서 계속하여 잘못된 문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겠지요.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변질되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부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냄세를 피우고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잘못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이 세상의 소망은 교회 밖에 없습니다.
이사야가 그랬듯이
    그 시대와 하나님 백성에 대해서 절망하지만
    그러나 예수 안에서 희망의 꿈을 갖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과 교인들에 대해 실망을 하더라도
    예수 안에서 꿈을 갖는다는 점에서 교회는 세상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불완전하다 하더라도 이 사회의 소망은 교회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알 수 있는 도구로
      교회를 이 땅에 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말씀을 전할 때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을 잘 전하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떨어지면 열매를 거둡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이 땅에 충만하기 위해서     
성도가 꼭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 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 땅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도록
    먼저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약점이 여기 있습니다. 역사의식이 결여되었습니다.
  개인 구원은 강조하지만 민족적 구원은 등한히 합니다.
이 사회에 대한 시대적 사명의 급선무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 세상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신앙의 관점을 바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픈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 차, 주님이 다스리는 새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가 바라본 꿈처럼
    세상의 유일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내가 맛보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우리는 현실을 바라보면 절망합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 꿈을 갖는 자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꿈 우리는 예수 안에서 갖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가정에 이 세상에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도록 기도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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