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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회자와 함께하는 신앙생활 (고전 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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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함께하는 신앙생활 (고전 9:11-14)

  교회는 네 가지 목적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위해서이고, 둘째는 세상을 위해서이고, 셋째는 교회 자체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넷째는 사단을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교회의 하나님을 위한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습니다. 교회는 세계를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 인격적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세상을 위한 목적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최고의 방법은 복음을 전하여 뭇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복음 전파의 명령은 절대적이고 분명한 것입니다. 이 복음전파의 영혼사랑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복음 안에서 이웃사랑을 실현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가지는 목적입니다.

  교회의 교회 자체를 위한 목적은 성도들을 은혜 중에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고 하셨습니다. 제자를 삼는 것, 세례를 주는 것,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양육과 훈련에서부터입니다. 이 양육과 훈련의 목양은 세상 끝 날까지 교회에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교회의 사단을 향한 목적은 승리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사단과의 대적에서 싸워 승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좇아내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싸울 싸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교회는 사단을 대적하여 승리해야 할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네 가지 목적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이 네 가지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입니다. 예배 만 치중한 교회라든지, 세상을 향한 복음 전파에만 치중한다든지, 교회 자체를 위한 일에만 치중한다든지, 사단과의 대적에 대하여만 치중하는 일은 교회를 불균형 되게 만듭니다. 그것이 심할 때는 교회로 기형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합니다. 교회는 이 네 가지 목적을 균형 있게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님을 위한 예배의 목적을 다하기 위해서는 제사장적 사역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세상을 향한 복음 전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도적 사역(선지자적인 사역)이 있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 자체를 위한 양육과 훈련의 목적을 위해서는 목자적인 사역이 있어야 합니다. 사단과의 전투에 지휘관과 같은 역할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이 네 가지 사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 네 가지 사역을 이루기 위해 특별히 목회자의 사역이 세워진 것입니다. 즉, 목회자는 제사장과 사도와 목자로서 그리고 전투지휘관으로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역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사역은 교회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교회와 함께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러한 목회사역과 함께하는 생활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은 목회사역을 존 귀히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목회사역에 대한 바른 이해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목회자의 사역은 교회사역이며 그리스도의 사역
  목회사역은 우리 교회에 주신 우리 모두의 사역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사역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11)라는 바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직책 중에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는 초창기에 세우셨던 직책으로 보았고, 목사와 교사 둘만이 교회내의 평상직으로 보았습니다. 칼빈은 목사와 신학자로서의 교사를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직책으로 본 것입니다. 칼빈은 󰡒성직자 제도는 교회를 다스리며 유지하는 방식으로 보아야 하며, 주께서 영원히 제정하신 이 방식이 우리들의 무시와 멸시 때문에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기독교 강요 p.62)고 했습니다.

  바울은 목회자의 사역이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엡 4:12). 목회자를 세우신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하고 단호한 것입니다. 그 사역자를 세우신 하나님의 방법은 󰡐택하여 세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소명 의식이 분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하나님께서는 목회 사역자를 택하여 세울 뿐 아니라 목회자의 목회사역과 함께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1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로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대해 설명하기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20)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의 목회 사역자들을 붙들고 계시며 함께하심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목회 사역자를 택하여 세우시고 함께하셔서 목회사역을 바로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목회사역은 절대적인 교회사역이며,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목회자 사역의 권위를 지켜주어야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은,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함께하셨습니다. 이 전투에서 모세의 손이 올라가야만 승리하도록 하나님은 모세에게 독특한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권위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고귀한 권위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모세의 손을 받쳐 주었던 아론과 훌의 손이 모세의 손을 대신해서 올라가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감으로 승리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였습니다(출 17:8-16).

  부모에게는 자식에 대해 부모의 권위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권위입니다 그러나 인간생활에서 존경과 업적으로 만들어지는 권위도 있습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권위는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권위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따라서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고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권위를 바르게 지키는 자녀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고 하셨습니다.

  홍수 심판 이후 노아는 포도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고 잠이 들었습니다. ‘함’ 은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보고 나가서 ‘셈’ 과 ‘야벳’ 두 형제에게 이 일을 고했습니다. ‘셈’ 과 ‘야벳’ 두 아들은 뒷걸음질 쳐 들어가서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덮어 드렸습니다. 성경은 ‘셈’과 ‘야벳’ 은 축복을 받았으나, 아버지의 하체를 본 ‘함’ 은 저주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경시함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는 결코 쉽게 경시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 과 ‘아론’ 은 ‘모세’가 구스 여자를 아내로 맞이함에 대해 비난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미리암’과 ‘아론’을 책망했습니다. ‘미리암’ 은 이 일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의 권위를 함부로 경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권위는 ‘모세’의 잘못된 처사가 있을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쉽게 경시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민 12:1-16).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은 목회자가 여러분께 군림하여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목회 사역자의 권위도 바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이기에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목회자의 학식이나 덕망 이런 것 때문에 존경하고 권위를 주는 것 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여해 주셨기 때문에 존경하고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야 바른 믿음생활이 이루어집니다. 목회자의 학력과 인격과 실력 때문에 그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이라면 쉽게 실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학력이나 인격은 곧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를 인정할 때는 하나님의 권위이기에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역자를 ‘섬김의 직’이라 하는데, 이러한 섬김은 천한 것이 아니며, 기도로, 말씀으로, 사랑으로, 또 귀한 것으로 섬기는 그러한 섬김을 뜻합니다. ‘만인제사장 설’ 이란 말은 누구나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한 것이지, 결코 목회사역의 권위를 부인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평신도 운동’ 이란 말은 모두가 함께 교회사역에 참여함을 중시한 운동이지, 목회 사역자의 권위를 부정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이런 모든 것은 목회사역의 권위를 무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세우기 위한 것이다. 목회사역의 권위가 바로 세워지는 데서 교회의 그리스도의 사역이 바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목회사역의 권위를 인정하는 데서 우리 자신의 믿음이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사역을 이해하며 목회자와 함께 해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목회자의 사역에 기쁨으로 지원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고 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은 그의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에게 제공되는 것을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지극히 거룩한 제물과 같이 여기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목회자의 사역을 위해 기쁨으로 돕는 지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에 대한 섭섭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 중에는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무시하며, 바울이 교회에서 받을 당연한 권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바울의 마음은 불편했습니다. 바울 자신은 교회에서 받을 당연한 권리를 요구한 적도 없었습니다. 스스로 천막을 기워 자비로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며 자신의 복음사역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의 깊은 신앙의 삶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1-14).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전 9:12).

  목회사역을 이해하며 지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목회자의 목회사역을 이해하며 그 일에 참여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또 목회사역에 대한 관계가 은혜롭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목회사역을 기뻐하며 존 귀히 여기며 힘써 동역하고 도움으로 우리의 신앙의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되도록 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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